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 - 조용기 목사님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13)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를 통해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시험관 속에 들어오시지도 않으며 지식의 대상이 되시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은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우리 마음 속에 임하시고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고 붙잡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만리 장천 먼 곳에 계시지 않고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성령과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변화된 영.혼.육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안에서 밖으로 넘쳐 흐르게 될 때 우리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며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은 3중적 구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고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그 기도를 발판으로 삼아 우리와 함께 일하시기를 원합니다. 6.25사변이 일어나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마지막 숨통이 조여졌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에 피난 온 목사님들을 부지사 관사에 모아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들, 지금 국군 용사들이 용감하게 싸우고 있지만 낙동강 방어선만 무너지면 우리나라가 위태하게 되므로 내가 맥아더 사령관에게 비행기를 보내 주도록 전화했는데 7,8월이 장마철이라 비행기가 뜨지 못해 적군을 물리치지 못할 우려가 있으니 목사님들이 조국을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모든 목사들이 광복동 교회에 모여 금식하고 철야하며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장마철에 푸른 하늘이 되어 미군 폭격기들이 낙동강변의 적진을 융단 폭격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행하시면서 소원을 주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발판으로 삼아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이미지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지금 여러분이 구하려는 그 소원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원이라면 그 소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기 원하시고 이웃에 평강의 덕을 끼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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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케 하시는 성령님 - 조용기 목사님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한복음 14:16)
우리는 죄악의 자손들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범죄한 죄의 피가 우리 혈관에 흐르고 있습니다. 마음 속에 불순종의 악령이 들어와 있고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래서 의롭게 살려고 결심하면 할수록 우리는 죄에 묶여서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하시는 일이 성결의 역사입니다. 죄에 묶여 몸부림치는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줍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악의 권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 곧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정죄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스가랴 4:6).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십니다.(로마서 8:2)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결하게 하시기 위해 먼저 마음에 죄책을 주십니다.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죄책감이 우리의 영혼을 부여잡아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합니다.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은 마음대로 죄를 지을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또한 우리를 성결케 하시기 위해 우리가 범죄할 때 채찍으로 때리십니다. 옛날에 “미운 자식에게 떡이 셋이요, 사랑하는 자식에게는 매가 셋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하면 매를 들어 무섭게 때리시고 돌이키게 하십니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에게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싸매주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에 매가 다가오거든 여러분께서 신속히 회개하여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성결케 하기 위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죄책과 채찍으로 말미암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24)하고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몸부림을 치고 우리를 묶은 사망의 줄을 주먹으로 치며 통곡해도 소용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뜨거운 불이 와서 닿으면 그 묶였던 줄이 타서 없어지고 우리는 해방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우리가 뜨거워지면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 되었던 마귀의 법에서 해방되어 성결하고 능력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여러분이 엎드려 금식하고 기도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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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성령님 - 조용기 목사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26)
어린 아이를 한 사람의 장성한 성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육체적 성장과 함께 끊임없이 정신적, 도덕적, 지적인 면에서의 가르침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 사람이 되려면 이 사람도 신령하게 장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신령한 새 사람을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성장하도록 교육시키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믿음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의 교육은 인본주의적 교육이요 그 방법은 감각을 통한 실험적 교육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전 인격적인 교육을 시키십니다. 이 교육은 신본주의적이요 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계시적 교육입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을 교육시키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거듭난 신령한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며 나아가서 천지의 대주재가 되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뿐만 아니라 오직 삶의 전 목적과 동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와같은 성령님의 교육은 인간의 의, 감정, 지성 전반에 걸쳐 진행됩니다.
성령께서는 말씀과 실생활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누누이 성령께서 오시면 모든 진리를 가르치시며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감당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중생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후에 성령의 가르침을 사모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공부하고 듣는다고 해도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 내면적인 뜻은 놓쳐 버리고 항상 영적인 기갈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실제 상황을 통하여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누가복음 4:1.2)고 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예수님을 파멸시키기 위해 마귀에게 시험을 당케 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시험과 환난과 연단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속으로 들어오도록 교육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뒤로 물러서지 말고 성령께서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시기 원하시는지 깊이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과 지식과 인격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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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하시는 성령님 - 조용기 목사님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복음 16:13)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느 누구의 인도도 받지 않고 스스로 성공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신령한 생명을 받아 영계에서 살게 될 때,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성공적인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현 세계 속에 살면서 영적인 생활을 하고 빛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문제는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삶의 주도권 문제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인도를 받기 원하면서 삶의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마치 안내자에게 길을 부탁해 놓고 실제로는 자기가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생활 문제에 관하여 인간적인 계획을 다 짜 놓은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자기가 그린 청사진을 따라 실천하시고 성공적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생의 바탕 때문에 수많은 성도들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인류를 묶고 있던 사탄의 미끼, 즉 자아를 내세우는 교만과 아집과 인본주의입니다. 우리가 이 아집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자기의 영.혼. 육과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온전히 드리지 않으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아’를 죽이고 내 안에 하나님께서 사시기를 원할 때 비로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이 바울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성령께서 우리를 점령하시고 우리를 통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 주시는 것이며, 이와 같은 생활 속에서만 평안과 기쁨과 생의 확신과 소망이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주도권 문제가 분명해질 때 우리는 로마서 8장14절 기록된 말씀대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당당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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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 - 조용기 목사님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로마서 8:2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감화를 받게 될 때 제일 먼저 심각하게 느끼는 것이 죄책감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모든 행위의 죄책에 눌려 “오 하나님 저는죄인입니다.”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써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흘리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보혈을 알게 되고, 그 피로써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내 양심의 죄책을 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죄를 용서받은 기쁨으로 즐거움에 넘치다가 얼마 있지 아니하여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것은 용서받은 내 속에 아직도 죄의 권세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죄악이 아직도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죄를 범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죄성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하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로마서 6:6)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이와 같은 체험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일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구원하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는 하나님 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일해 주심을 가리킵니다.
이러므로 옛 아담의 죄성을 가진 내가 그 죄의 성품에 대하여 죽는 도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리스도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속에 이미 용서해 놓으신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은혜를 힘입어 선하게 하려고 하나 얼마 있지 아니하여 거듭거듭 실패를 하고 나중에는 과연 자기의 죄의 성품에서 벗어났는지를 의심하기에 이릅니다. 그때 우리는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로마서 7:18)고 하며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때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옆에 계셔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것입니다.(로마서 8:2)
위로하시는 성령님 - 조용기 목사님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삶에 �기며 실망하였을 때 사랑하는 부모 형제나 다정한 친구의 간절한 위로의 한 마리가 그 상처에 기름을 붓는 것 같아 새로운 용기와 힘을 얻고 일어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위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위로가 미치지 못하는 구렁텅이나 절망 상태에 처하게 될 때 하나님만이우리 마음 속에 위로의 능력으로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시는 동안 제자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시면 제자들이 고아와 같이 될 것을 염려하시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거듭 위로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보혜사’는 다른 말로 하면 ‘위로자’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위로자가 되셔서 죄에 짓눌린 자, 질병에 억압되고 마귀에게 찢기며 절망과 슬픔의 노예가 된 사람에게 축복과 구원의 은혜로 위로해 주셨습니다. 또한 다른 보혜사 성령님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위로와 평강과 담력이 넘치게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로부터 시작해서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채찍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 마음 속에는 추호의 고독이나 슬픔이나 절망이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그 들속에 계셔서 무한하신 하나님의 위로로써 그들을 위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돌무더기 속에 파묻혀 죽으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원수들을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복을 빌어 주는 위대한 신앙을 갖게 된 것도 성령의 위로하심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역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포박당하여 무수히 매를 맞고 깊은 감옥 속에 갇혀 착고에 채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송을 부른 까닭은 그들의 마음 속에 성령님의 위로가 넘쳐났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1장 3절부터 5절까지에서 위로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렵고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들은 시시때때로 상처받은 마음을 움켜쥐고 주님앞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가 이웃을 위로하도록 새힘과 소망과 기쁨을 주시는 이는 오직 다른 보혜사 우리 성령이신 것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오늘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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