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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설교·6/장죠셉목사님

살인하자 말거라

http://cafe.daum.net/shalomwoosister/8qif/236

 

제6계명: ‘살인하지 말거라’

 

 

살인하지 말지니라.(출20:13)

옛 사람에게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1)

 

얼마 전에 어는 신학교 교수께서 “자살하면 지옥 간다고 가르쳐선 안 된다.”라는 글이 카페에 올려진 것을 읽었습니다. 자살은 사람의 생명이 끊어지는 죽음을 말합니다. 생명은 인간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살은 첫 번째로 하나님의 것을 죽인 살인죄입니다. 그 교수는 “인간의 행위계약은 가톨릭의 행위구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였는데 행위계약은 주님께서 십자가로 주신 은혜계약에 속하는 행위계약이지 가톨릭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두 번째로 주님의 은혜계약을 위반하는 죄입니다. 자살이 죄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을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예수님께서 성경에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 계명은 어떤 계명군()에 속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대부분이 둘째 계명군에 속한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살인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죄입니까? 아니면 이 죄에 희생된 사람을 모욕하는 죄입니까? 역시 두 번째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일이 살인죄밖에 없습니까? 사람을 죽이면 이 죄 하나만을 짓는 것입니까?

 

우리의 생각에는 살인과 구타에 관한 율법장의 뒤를 따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왜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다. 우리는 지혜와 진리를 알아보기 때문에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잘못 생각했으면 가르쳐 주시고, 목마른 양들에게 물을 먹이시는 참 목자의 교훈을 받기 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겸손과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보시고 웃으실 것입니다. 유죄(有罪)의 정도를 측정하려면, 죄 자체가 앞서 가고, 그것을 준비하고 해명하고 설명하는 상황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나누면 -내가 누구를 때렸는가? 무엇으로 때렸는가? 어디를 때렸는가? 무엇을 가지고 때렸는가? 왜 때렸는가? 어떻게 때렸는가? 그리고 언제 때렸는가? - 하고 사람을 죽인 사람은 용서를 받으려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이것을 스스로 물어봐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왜 생명을 끊었는가?

 

사람의 생명을 끊기 전에, 나는 생명을 끊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부자인지 또는 가난한지, 자유인인지, 노예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또한 고려하지도 않을 것이므로 유일신 분으로부터 창조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므로 평등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서 권세가 있고 강한 군주일지라도 하나님의 엄하신 위엄 앞에서는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 모두가 한 곳의 노예상태 일 뿐입니다. 그것은 죄의 상태로 사탄에게 사로잡혀서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옛날 율법은 상전과 노예를 구별하였고, 죽음이 즉시 왔느냐 하루나 이틀 동안 살아있었는가? 또는 임신한 여자가 맞아 죽었느냐, 혹은 뱃속에 있는 아이만 죽었느냐, 등 세부 한 것까지 고려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비추이는 빛이 멀리 있었던 시대에 하던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한 빛이 우리 가운데 있으며, 우리에게 “누구든지 자기와 같이 생명을 가진 사람을 죽이면 하나님은 그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사람에 대하여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2. 사람이란 무엇입니까?

 

사람은 모든 피조물의 왕이 되라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최고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는 사람을 당신의 모습대로 당신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있던 영을 사람에게 넣으시고, 영으로도 당신을 닮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생각도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하늘과 땅과 물속을 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사람과는 비교할 동물이나 식물은 없습니다. 동물은 뛰고, 먹고, 마시고, 자고. 새끼를 낳고, 일하고, 노래하고, 날고, 기고, 기어 올라가고 합니다. 그러나 말은 못합니다.

 

사람도 달리고 뛰어오를 줄 아는데, 뛰어오를 때에는 아주 빨라서 새와 같습니다. 사람은 헤엄도 칠 줄 아는데, 아주 빠르기 때문에 물고기와도 같습니다. 사람은 노래를 부를 줄 알아서 새와 같이 보입니다. 사람은 아이를 낳아서 번식할 줄도 압니다. 또한 말도 합니다. 어떤 짐승이든지 나름대로의 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소는 메에 하고, 양은 매애 매애 하고, 나귀는 앙앙 하고, 새는 지저귀고, 또 떠는 목소리로 노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높이나 똑같이 한 가지 울음소리만 낼 것이고, 양도 세상 끝 날까지 매애 매애 할뿐입니다. 나귀도 첫 번째 운 것처럼 앙앙하고 똑같을 것입니다. 참새는 항상 짹짹거릴 것이고, 종달새와 꾀꼬리도 같습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은 목젖과 혀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심이 지능의 중추인 뇌의 중심으로 복잡한 신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로서 새로운 감각을 파악할 줄 압니다. 그 파악으로 자신이 심사숙고의 대상을 만들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줄 줄 압니다. 아담은 그의 벗을 개라고 불렸고, 수염이 거의 없는 얼굴위로 갈기를 달고 개와 비슷하지만 개라 하지않고 사자라 했습니다. 그는 다정스럽게 인사를 하는 새끼 양에게는 양이라는 이름을 붙어주었고, 나비처럼 날아다니지만 나비가 가지지 못한 기분 좋게 하는 날개달린 꽃을 새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담의 후손들이 피조물들 안에서 하나님의 작품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지능으로 아이들을 낳습니다. 인류가 번성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거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신과 이웃에게 유익을 주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하나님을 거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바로전달하려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비 진리를 진리인양 착각하고 진리를 전달하는 사람들을 모독하며 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자신의 모습입니까?

 

3. 사람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피조입니다.

 

비록 죄를 지은 존재일지라도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께는 가장 소중한 피조물입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으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천사나 천사장 케루빔이나 세라빔을 보내시지 않으시고 사람을 구원시키시려고 당신의 말씀에 사람의 형체로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속죄의 고통(행위계약)을 준행하라고 감수성이 있는 존재로 말씀에 육체라는 옷을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당신과 같은 순수한 영만으로는 사람의 죄를 속죄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성부께서 성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사람이 되어라,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라. 내가 만든 모든 것이 그런 것처럼 완전한 사람을 만들었다. 나는 사람이 즐겁게 살고 즐겁고 복되게 살다가 하늘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만들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삼위인 하나님이 보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렵혀진 것들은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다. 이 보좌가 있는 곳에서는 거룩하지 않으면 있을 수가 없다. 나는 스스로 있는 존재 그 자체이다. 신비로운 본질을 닮은 아들밖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더렵혀졌다. 그러므로 너(아들)는 깨끗하게 하여라. 이것이 내 뜻이다. 이제부터 너(아들)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사람, 곧 맏아들이 될 것이다. 이 뜻은 네가 죄 없는 죽음의 육체와 원죄가 없는 영혼을 가지고 맨 처음으로 여기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이다. 너 보다 먼저 세상에 있었던 사람들과 네 뒤에 올 사람들은 구세주인 너의 죽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태어났고 또 죽어야 했습니다.

 

4. 사람은 하나님의 특권을 받은 피조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여러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 중에 한 아들을 특권을 받은 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는데, 그 아들의 생명이 끊어지면 아버지는 다른 자식 중에서 그 소중한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을 괴로워하십니다. 아버지는 모든 자식에게 공평해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모든 피조물에서 창조와 더불어 공동으로 신령한 영혼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아버지를 모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한 아들을 죽이면 그 아들만 모욕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도 모욕하는 것입니다. 죽인 아들에게는 육체로 모욕하고, 아버지에게는 마음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의 육체에, 하나님에게는 그분의 권리에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하나님만이 주고 빼앗고 해야 하기 때문에 자살이던 살인이던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폭력을 쓰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사랑의 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한 생명을 없애기 때문입니다. 살인하는 행위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하여 갖기를 원하는 생명, 그 생명을 그 사람에게서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아벨을 죽이는 가인이 너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겉으로는 회칠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덮었지만 속에는 사탄이 왕이 되고, 가장 교활한 악마 같은 말과 행동은 더러운 무덤과 같은 사람들은 무엇을 믿습니까? 아벨은 아담의 아들 한 사람밖에는 없는 줄로 아십니까? 하나님이 사람의 노예가 아닌 사람들만을 호의적으로 보시는 줄 압니까? 그리고 노예가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고 믿습니까? 그들의 눈물이 양념이 된 진정한 노예들의 제물을 하나님은 받지 않으리라고 믿습니까? 아닙니다.

 

진정으로 의인들은 비록 사슬에 묶였어도 하나님은 그 의인들의 제물을 받습니다. 노예들이 밭고랑에서 불의한 사람의 채찍질로 피를 흘리며 죽었더라도 아벨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선물이요 잘난체하려고 드리는 사람은 모두가 현대판 가인 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을 모독하는 사람들과 사람을 모독하는 사람들, 살인자들, 신성모독 자들은 누구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살인이나 자살은 목숨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유황으로 타는 불 못의 고통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