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2:15)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에서 에베소와 버가모 교회에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예수님도 미워한다 하셨고,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이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게 됩니다. 아무리 잘 믿는다할지라도 예수님이 미워하는 행위나 그러한 교리를 따른다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1. 니골라의 배경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Νικόλαο?)를 택하여....(행6:5)
니골라(Nicolas)는 일찍이 시리아 안디옥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유대교 교인이었으나 어느 날 안디옥에 온 여자 전도자 신티키아/순두게(Syntyche/-빌4:2)의 전도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니골라는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이라 하였는데 이는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로 개종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니골라는 이왕 믿을 바에야 믿음의 본고장인 예루살렘에 가서 제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신념으로 안디옥에서 유다로 왔다고 합니다.
니골라는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72명의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고 일곱 집사를 뽑을 때 안수까지 받았던 집사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며 복음을 배웠고 안수까지 받은 집사가 왜 이렇게 변질되었기에 계시록에 와서 예수님도 미워하는 교리를 만들었습니까? 사도행전 9장에 기록된 교회에 박해가 있을 때 니골라는 은둔했다 합니다. 은둔생활에서 그가 정립한 교리가 있었습니다. 니골라가 정립시켰다는 교리가 어떤 것이기에 에베소 교회가 미워하고 예수님도 미워한다고 합니까? 그의 교리를 보겠습니다.
2. 니골라당의 교훈이란?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고, 버가모 교회는 ‘교리’를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행위는 엘곤(ergon)이며 이는 몸소 실행함을 말합니다. 교훈은 디다체(Didache)이며 이는 교육적으로 대중에게 말하고 가르치는 이론적인 교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는 비진리가 들어온 것을 배척하였고 버가모 교회는 비진리를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사나 역사를 찾아보면, 니골라의 교리은 구원에서 행위를 부정하는 사상이었습니다. 니골라의 사상은 구약의 율법적인 제도와 교리들은 신약교회 안에서는 필요치 않으므로 율법의 행위에 제약받지 않고 사랑만을 강조하는 교리었다 합니다.
니골라당의 교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중요한 요소는 영만이 구원받는다.(벧전1:9) 몸은 땅에 묻어서 썩으므로 썩어질 육신을 마음대로 즐겨도 된다며 행위를 부정하는 교리였다 합니다. 그러니 생활 속에 있는 육신은 음행해도 된다. 그러므로 세속에 물들어도 좋으니 육신의 정욕을 억제시키면 안 된다. 먹고 마셔도 영만 순수하면 된다는 것이 니골라당의 교훈이라 합니다.
니골라의 교리로 인하여 고린도 교회는 우상숭배와 음란 등으로 타락하게 만들었습니다. 도덕적으로 타락되면 이러한 습관에 물들어버려서 성적행위도 죄로 깨닫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의 생각과 행위가 그런 것에만 집착하므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안식일에도 예배할 마음이 없어집니다. 이러한 결과는 신자들의 신앙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니골라 당의 교훈에 좌우되거나 끌려들지 않았고,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교훈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타협하지도 아니하고, 철저히 미워했던 교회가 에베소교회라 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버가모 교회 신자들 중에서 믿기만 하면 영혼은 구원됨으로 술과 도박과 음란을 행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악습에 대하여 안디바 감독이 신자들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을 회개할 생각은 아니하고 로마정부에 안디바 감독을 고발했습니다. 고발의 내용은 안디바가 황제예배를 반대하는 설교로 가르친다는 내용으로 은밀히 고발했다. 사실 안디바는 황제예배는 우상숭배이므로 절대로 황제예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변명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자신들의 죄를 감추고 모면하기 위해서 어두움의 권세와 합세하여 목자를 희생시킨 사건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이러한 잘못이 있을 때 목자는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악행에 대하여 책망해야 합니다. 그럴 때 회개하지 아니하고 목자의 비행이나 설교를 책잡고 목자를 교회에서 내어 쫓는데 이것이 곧 니골라당의 교훈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일이 과연 옳은 것인가?
① 구원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악행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를 대환난으로 버리시
지 않으십니까? 출애굽기 33장 33절의 교훈은 무엇이라 합니까?
②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무렇게 살아도 됩니까? 그러면 계시록 2장 22절과 19장 7-8
절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③ 영만 천국가고 육체는 천국에 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로마서 8장 23절에서 말하는 “우
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과 데살로니가서 5장 23절의 경고는 어떻게 설명해야 됩니까?
버가모 교회는 외부로부터 오는 핍박에 대해 죽음을 감수하고 이겼는데 잘못된 교훈은 막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 이런 비진리, 이러한 행위를 부정하는 교리는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책망 받지 않고 들림 받기 위해서는 누구도 이런 일에 빠지면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니골라 당의 교훈이 우리에게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함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보이는 육체적인 타락이요, 둘째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타락입니다. 영적타락이라 함은 구원받은 영은 천국에 가고 육신은 땅에서 썩어지므로 썩어질 육신을 정욕으로 행하여도 된다는 행위를 부정하는 교리를 말합니다.
오늘날 ‘믿기만 하면 구원받았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면서 구원관에서 행위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치는 교리가 현대판 니골라당의 교훈이요 현대판 니골라당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많은 교회들이 ‘우리는 구원받았다’ ‘믿기만 하면 구원 된다’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다’고 가르치는 것을 예수님도 미워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 합니까?
니골라당의 교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행위를 부정하면 그것이 곧 니골라당의 교훈이 됩니다. 이 지적에 반대하지 말고 주님의 경고를 생각해야 됩니다. 주님께서 “내가 심판 날에 행위대로 갚고, 행함대로 심판하고, 행함에 따라 영벌을 받으리라” 하였는데도 신학교 교수들과 교회를 담당하는 목사님들은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되고 다 천국 간다’고 성도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고 있다는 것은 니골라당의 교리를 받아들이고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2:22)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회개하라.(계:2-3)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이니라 (약2:24-26)
너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이런데도 현대 교회가 믿기만 하면 된다고 니골라당의 교리에 빠져있습니다. 참으로 잘못 받아들인 교훈입니다. 에베소교회가 주는 교훈은 이렇습니다. 우리 기독교 안에서 이런 무리가 있다면, 이런 것을 막지 않고 허용한다면 과거 에베소교회에 들어온 니골라당처럼 전 교회가 주님께서 미워하는 행위가 된다는 교훈입니다. 왜 주님께서 니골라당의 교훈을 미워하십니까? 그 이유를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세하게 알아보고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주의 날까지 온전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하여 이러한 것을 미워하고 배척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등의 교리를 가르치는 무리를 미워하고 배척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관에서 행위를 부정하는 잘못된 교리를 에베소 교회처럼 미워하고 배척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그리스도가 왔었고, 또한 십자가를 통하여 구약성경은 다 이루어졌고,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받았고,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면서 행위를 부정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은 완전히 배제시킨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무지한 가르침이며 그러한 사람은 교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왜냐하면 성경은 시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무시하거나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과일나무가 열매를 맺었을 때 열매가 열었다고 과일나무 뿌리를 잘라버리면 그 열매가 어떻게 익겠습니까?!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영은 나의 속에 있는 성령의 자리요, 혼은 나의 마음의 자리입니다. 몸은 이것들을 보호하는 육신입니다. 그러므로 셋은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까지 흠이 없어야 들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죄만 사함 받은 것을 착각하고 구원받았느니, 구원을 얻었느니, 천국 티켓을 따 놓았다는 등으로 가르치기만 하면 어떻게 휴거라는 완전한 구속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말세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니골라당의 교훈이 어떤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도 미워하는 그런 교훈은 받아들이지 말고, 타협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원죄 사함만으로 구속된 것으로 착각하고 성화(聖化)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구원을 받았다는 말로 가르치는 것이 곧 현대판 ‘니골라당의 교훈’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행위는 가르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하는 사람들은 니골라당의 교훈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런 부리가 우리교계에 많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는 ‘그리스도 자신의 것이며’ 우리에게 그것을 본으로 보여주시면서 각 사람은 거룩한 행실로서 ‘자기 의를 나타내라’고 행위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어주신 그분의 의의 공로로서 ‘우리가 의롭게 됐다’고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저(예수)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3-6)
성경의 교훈은 누구든지 자신의 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 합니다. 이유는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 속에는 진실이 없기 때문이라 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행함은 없고 말로만 믿는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곧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은 행위가 될수 없습니다. 믿음과 행위가 함께 나타나야 온전히 믿는 자라하게 됩니다.
▶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자신의 것으로 도적질하고 말로만 구원받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예수님도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 한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가르치는 교리가 예수님도 미워하는 니골라당의 교리입니
다.
▶ 한번 받은 구원은 짐승의 표와는 상관없다고 가르치는 교리가 예수님도 미워하는 니골라
당의 교리입니다.
▶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며 어린양의 신부가 되려면 예수님도 미워하는 교리를 따르지 말아
야 합니다.
▶ 예수님이 미워하는 교리에 빠져있는 데 예수님이 어떻게 신부로 데려갑니까?
▶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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