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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영상/소망·휴거·3

환란날에 성령님이 이 땅에 안 계신 이유

     환란날에 성령님이 이 땅에 안 계신 이유

                                                                             미래를위한

2009년 9월 15일

 

휴거될 자들을 성령님이 그 몸(body, flesh)을 바꾸어주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타락한 몸을 가지고 있지 않고 거룩한 상태로 올라갈 것입니다. 죄의 근원과는 영원히 분리됩니다.

성령께서 휴거될 자를 데리고 올라가신 후 이땅에는 환란이 시작되고 짐승이 자기 때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에 성령은 이 땅에서 역사하시지 않으십니다. 남은 성도는 이제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환란사역자나 휴거 이후의 환란기의 대부흥은  비성경적입니다.


들어가는 말

 

오늘날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우리에게 그렇습니다. 그러나 불신자에게는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구원을 위하여 그 사람 바깥에서 애끓는 마음으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것은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과 같은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성령이 역사하신다고 그렇다고 환란날에 남은 성도들에게도 성령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역사하시듯이 역사하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은 사상입니다. (참고로 저는 일단 개인적으로 환란전휴거를 믿고 그 근거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이해를 하려면 이에 관련된 진리(1)-(5)를 함께 생각하신다면 왜 이 땅에 7년환란 동안 성령이 역사하시지 않고 머물지 않으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디 인내를 가지시고 읽으셔서 올바른 진리에 도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진리 (1) 성령을 보내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환란의 날은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자 어린 양의 진노의 날입니다. 곧 이 땅의 남은 자들에게 진노하시지 생명의 역사, 성령의 역사를 이 땅의 거민에게 주시는 날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6: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6: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For the great day of his wrath)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한글개역은 17절의 ‘그들’이라고 복수로 번역했다. 그러나 영어나 헬라어는 단수인

 '아우투' (aujtou)로  되어있다. 원어로는 단수로 되어있으나 이는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큰 무리는 없다. (이는 백합님의 도움으로 연구.)

 

좀 더 기초부터 생각을 해봅시다.


예수님이 거듭난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시기 이전에 성령은 어디든지 편재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조하신 피조물을 붙드시는 일 이외에는 마음대로 일하시지 않으셨고 일부 기름부음을 받은 구약의 왕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몇 몇 하나님이 정한 자이외에는 역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말씀이 이것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요한복음

7:37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7:39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제물을 드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그리고 영광을 받으신 후로는 예수님이 보내셔야 성령이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명령과 보내심없이 절대로 성령은 이 땅에 오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자의(自意)로, 원어로 하면 자기로부터, ajf! eJautou,   from himself)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자의(自意) vs 자의(恣意) : 앞의 것은 스스로 말함이고 뒤의 것은 방자히 말함이다. ‘방자할 자(恣)’는 마음내키는 대로 말하다. 하고 싶은 대로 하다의 의미이다. 이단은 방자히 말한다 라고 말하여지기도 한다.]


성령은 듣는 것을 말하신다. 보냄을 받아 일하신다. 성령은 예수님이 부어주신다. 이 기본적인 진리를 떠나서 성령의 역사를 믿는 자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인간의 주장이나 요구나 기도대로 성령이 역사하신다는 망령된 신학과 사상과 추측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자들이 성령을 자기 마음대로 역사하게 하다는 사역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령사역을 하는 모든 자들이 다 그렇다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런 자는 성령모독죄를 짓는 것이며 그런 자는 영적 혼란에 빠지게 되고 만일 악한 영이 역사하게 된다면 휴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의 인격과 사역에 대하여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가 예수님이 성령님을 소개하실 때에 주신 것인데 이것이 요한복음 14-16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령에 대하여 말하고 타인에게 가르치려면 이 부분을 깊이 묵상하셔야 합니다.


원리 1.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입니다.


이는 세례 요한이 증거한 바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그런데 언제 그렇게 하십니까? 즉 언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까?

< 참고 :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 공생에 동안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아닙니다. 권세를 주신 적은 있습니다.(마태복음 10장)>


원리 2 :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자에게 즉 성령을 받을 그릇인 ‘거듭난 영’이 없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는 거듭남이 없었습니다.(어떤 신학은 거듭남이 있다고 말하나 사실 실제적인 거듭남, 우리와 같은 거듭남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내적인 기름부으심은 없었고 단지 외적으로 기름[관유]을 부으심을 통하여 왕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에게는 외적인 기름부으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성령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유 1. 정결하지 않기 때문에 거룩하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지 않고 그들을 파괴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유 2. 선물인 성령은 믿는 자에게 주시며 구원의 보증이며 때가 되면 우리의 몸까지 구속하는 능력이십니다. 이 때는 바로 휴거 때입니다.


다음 말씀은 말씀을 믿고 말씀으로 회개한 후 성령안에서 살아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것은 그저 개념으로 내가 너희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자 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적으로, 실질적으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안에 거하시며 우리가 성령안에 거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성령을 모르고 받지도 못합니다.


요한복음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은 믿는 자안에 거하시고 함께 계십니다. 이것은 그저 내주하심보다는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원리 3 : 성령으로 거듭난 후 예수님은 성령을 계속적으로 부어주십니다.


사람이 성령을 소멸시키는 죄도 있으나 회개하면 또 부어주십니다.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거듭남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 저녁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성령을 받으라 라고 숨을 내쉬실 때에 일어난 일로 저는 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에 올라갔다가 그리스도의 피로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히브리서 9:23)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이 없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십니다. 그리고 저녁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50일 후에 성령을 받되 40일 동안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듣고 배우고 그리고 예수님은 승천하셨으며 열 흘 동안 간절히 기도하고 또한 회개도 하였으리라 생각됩니다. 이것은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이 아니라 충만하게 하심이라 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0장의 경우 이방인인 고넬료와 같은 경우는 이 이후의 사건으로서 거듭남과 충만함이 같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의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원리 4 :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셔서 영광을 받으신 후에 성령을  사람들에게 부어주실 수 (역사하시게 하실 수, 보내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사역을 마치신 후 온전히 인정받고 이제부터 성령을 부어주실 수 있는 자리에 앉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귀(올라가셔서 귀히 여기심을 받으심)되신 후로 그러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이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6  kai; ejgw; ejrwthvsw to;n patevra kai; allon paravklhton dwvsei uJmi'n i{na mevnh/ meq! uJmw'n eij" to;n  aijw'na

 


예수님이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인간에게 보내십니다. '너희에게' 란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자요 말씀으로 정결하게 된 자입니다. 결코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이 무조건 성령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보혜사’(파라클레이토스))란 성령님을 칭하는 이름중 하나인데 우리 옆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요 예수님과 하시려는 그 일을 하시는데 사실 예수님이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시므로 성령과 예수님은 두 분이나 온전히 하나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의 신비에 속합니다.


(‘다르다’는 말도 가능하지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삼갑니다. ‘다르다’ 라는 말은 헬라어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질적으로도 다른'의 ’헤테로‘가 있고 ‘본질은 같은데 다른’이라는 ‘알로스’(allos)가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another)라고 번역합니다.)


사실 예수님도 보혜사이십니다. 요한일서 2장의 ‘파라클레이토스’는 대언자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파라클레이토스)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진리 (2) 성령을 오순절날 보내신 예수님은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교회와 함께 하시고 교회를 보호하시고 교회를 성화시키시면서 함께 계시다가 / 교회의 구원의 완성 곧 구속하심을 위하여 계신 것입니다. 우리를 하늘로 데리고 가시려는 목적으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세상을 변화시키심이 아니라 이미 주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회개한 자들을 붙들어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인 자들 거듭난 자를 성령의 인친 자라 합니다.


디모데후서 2:19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믿을 뿐 아니라 불의를 떠난 자가 사실상 인침을 받은 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회개가 휴거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불의를 떠난다는 것은 우리의 죄뿐 아니라 우리의 타락한 본성도 제어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만 되는 일입니다.

성령의 인친 자는 '소유물'이라는 의미인데 '그리스도에게 붙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휴거됩니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ejn th'/ parousiva/ aujtou') 

그에게 붙은 자(oiJ Cristou')요


A. 여기서 첫 열매란 첫 부활의 열매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다음에는 또 부활사건이 있는데 이것은 휴거 때에 (1) 주안에서 자는 자들이 일어나며 (2) 살아서 주님의 것인 자들도 부활체를 입습니다. 부활체란 영원한 생명이 적용된 몸입니다.

휴거는 첫 열매 이후의 열매들입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님 이후의 열매들이 바로 휴거의 대상자들입니다.


B. 여기서의 '강림'은 '파루시아'를 사용하였으나 휴거를 말함이 분명합니다. 꼭 파루시아가 재림만 사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은 사도 바울은 과거에서 미래를 보며 휴거와 재림을 동시적으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 비하여 7년이라는 가능한 간격은 큰 차이가 아닌 것으로 보고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에게 붙은 자 (헬라어로는 ‘그의 소유’라고 되어 있습니다.)는 주님이 데려가십니다. 그에게 붙은 자는 말 그대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의 것인 사람들”(oiJ Cristou')입니다. 즉 ‘너는 내 것이라’라는 말이 적용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의 것을 예수님이 챙기시는데 사단이나 세상이 설령 믿는 자라고 해도 아무 소리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것을 이 지상에 진노가 쏟아질 때에 같이 두실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란전휴거가 옳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실 이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인친 자라 해도 성령이 완전히 그 사람을 사로잡으려면 그의 모든 부분이 성령께 굴복해야 합니다. 사상이나 마음이나 육신의 어떤 죄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하게 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을 보내신 이유입니다. 불신자는 성령과 무관합니다.


불신자의 사상이 성경해석하는 과정에 들어와서 진리를 왜곡하면 성령이 역사하심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떤 신학은 그러므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성령을 소멸하는 신학은 사단의 영향을 받은 바입니다. 귀신의 가르침이 오늘날도 교회안에 누룩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으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것은 성령의 편재설로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환란날에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주장을 편재설을 근거로 해서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것은 비성경적이고 아전인수격인 해석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심은 예수님을 믿고 그의 보혈로 우리가 정결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A. 구약의 성도나 짐승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우리와는 다른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B. 예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도 우리와 같은 정도의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편재설로서 성령의 임재를 계속 주장한다면 지금 불신자에게도 성령이 역사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것이 종교다원주의의 신학이기도 하며 귀신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환란사역자를 주장하는 것은 종교다원주의적 신학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하시는 성령님은 그 존재가 우리에게 실재(real exitence)하시고 우리가 그 안에 있고 성령이 우리안에 있으며 우리가 느끼고 감각할 수 있고 교제할 수 있고 옆에 계심을 알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다음 말씀은 성령이 세상에 편재하신다 라는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들에게 구체적으로 관계하시면서 함께 하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한다는 말은 성령이 우리에게 하시듯이 세상에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임하시듯이 세상에 임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을 앎이 있고(아 이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이구나 처럼) 성령은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성령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골로새서

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비밀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29절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역사와 그 능력을 감지하고 따라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사역자의 모습입니다.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려고 성령으로 오시는 예수님


요한복음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아이들도 아닌데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이 바로 옆에서 보호하시고 먹이시고 힘주시고 도우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셔서 며칠 떠나시는 것도 상당히 마음쓰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너희는 고아와 같은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감싸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의 생명이고 우리의 능력이고 우리의 지혜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성령이 임하신 것과 오늘날의 사람들이라도  거듭나지 않은 자가 성령을 체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자가 거듭나지 않는 자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 있다면 그런 것입니다.)


만일 우리를 이 땅에 내버려 두심은 어린양의 진노를 통과하는 것이니(어린양의 진노가 후반부이어도 중간에 휴거되는 것은 없으므로) 휴거될 자는 환란전에 휴거됩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인내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우리가 환란전휴거가 된다면 성령은 우리와 분리되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의 편재설 때문에 이 땅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휴거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역사하셨듯이 역사하실 일이 없는데 그것은 성령은 이미 신부를 데리고 올라가서셔 신부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성령의 구체적인 역사가 이 시대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에게도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처럼 동일합니까?

그럴 수 없지요. 그 이유는 다음입니다.


갈라디아서

2:15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2:16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우리가 알지만 유대인들이 죽인 사람은 다음입니다.

 (1) 참 사람이시자 참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2) 하나님이 보내신 많은 선지자들

(3) 베드로, 야고보등 제자들

사도 바울이나 도마 등은 외국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을 이유로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좋아하실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입니다.

2000년 동안에 유대인들의 회복을 나중에 한 이레 동안에 하시기로 하시고 교회에는 2000년동안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완성해주십니다. 그리고 휴거때에 주안에서 죽은 자와 살아서 예수님을 믿되 휴거될 자를 다 구속하십니다. 그리고 하늘로 데려가십니다.


나머지 7년환란 때에 하나님이 이 땅을 살펴보아도 성령을 부어주실만한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휴거되지 않은 성도들은 남겨진 자요 그들은 기름이 떨어진 것입니다. 곧 성령의 부어주심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 (3) 성령을 부어주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씻고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고 믿음이 있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8-41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을 받는 조건입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38절에는 사람이 성령받는 조건들이 나와있습니다. 악쓰고 기도하고 무조건 기도한다고 성령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실 때에 이러한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사도행전 10장의 고넬료도 바로 이러한 자였습니다. 이 기준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39절은 바로 오늘날의 우리도 이렇게 성령을 받을 것이라는 사도 베드로의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부르시기만 한다고 성령을 무조건 부어주는 것이 아니라 38절의 기준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회개에 있어서 강력한 도구가 바로 십자가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입니다. 피를 뿌리면 죄를 지적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실 제사장의 사역입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피뿌린다는 것이 어디 나오느냐고 질문하는 분도 있을텐데 그것은 바로 제사장이 그렇게 하였으므로 우리는 그 상징되고 예표된 것을 실제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란때에 남아있는 성도들에게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을 것에 대하여는 진리 (3)과 같이 생각해야할 것은 다음의 진리입니다.


진리 (4) 7년환란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의 날이요 형벌을 주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믿느냐 진노에 떨어지느냐 의 갈림길에 선 것을 세례 요한은 말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예수님의 말씀도 안 듣던 바리새인은 결국 진노를 당하게 되어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유대인 110만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1:21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21:22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21: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사실 이 구절은 유대인의 7년환란 때를 말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이 날은 진노의 날이며 이방에는 올바른 교회란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주의가 지배하는, 그리고 마리아를 숭배하는 거짓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부어주실 곳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이방세계나 유대인에게나 진노의 날이요 형벌의 날입니다.

유대인에게도 형벌의 날입니다. 그중에서도 구원의 사역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참고로 여기서 잠시 클라렌스 라킨의 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대주의의 이해'(Dispensational Truth)라는 책을 쓴 신학자인데 소위 세대주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글을 쓴 후에 이 분의 책을 읽은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즉 이 글은 세대주의의 영향하에 쓴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란날의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성령의 역사가 이 땅에 없다는 사실에 일치하고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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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싸우는 두 영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영"이며, 다른 하나는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은 사탄이 그의 "불법자"인 적그리스도를 등장시키는 것을 막고 계신다.

이 시대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은 교회가 완성될 때까지 악이 충만해 지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후 성령이 "떠나버린" 뒤에는 불법의 신비가 일어나는 것을 막는 힘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4. 휴거와 재림 사이(7년 대환난 동안)의 성령의 사역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오순절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탄생시키려고 오신 성령은 교회가 완성될 때 신부인 교회를 데리고 하늘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 후 성령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거듭날 수 없으며 (요3:3;5:7),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주라 부를 수 없으므로(고전12:3), 이 세상은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소금"인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 사라질 것이며 이 지상에서의 도적적 부패는 날로 심해져 주님의 재림 전에는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7:9-17절에는 휴거와 재림 사이의 기간에 각 나라와 민족들과 백성과 언어들이 셀 수 없는 많은 수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성령이 더 이상 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을 받겠는가?

구약에서 성도들이 구원받았던 것처럼, 휴거와 재림 사이에는 믿음과 행위로 구원을 받을 것이며, 성령의 사역은 오직 개인적이다." -----


그러므로 휴거 이후 환란때에는 유대인은 성령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믿는다고 지금의 우리들처럼 거듭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리 (5) 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가?


그런데 왜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부어주실까요? 믿음으로도 천국가는데.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믿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 하나님의 방법이며,

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셔서 올바른 믿음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 하나님의 방법이며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성령안에서 예수님과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나타나시며

성령안에서 그 사람과 교제하시며

성령이 계시는 것이 우리가 영분별을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며

성령으로 그 사람을 능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사역이십니다.

성령으로 우리에게 인내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자 한 가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질문> 어떤 그리스도인이 거듭났습니다. 그런데 도둑질을 하고 간음을 하고 성경의 진리를 무시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그는 성령의 충만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1) 있다.

(2) 없다.

간단히 생각해보십시오. 답은 (2) '없다'입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성령을 충만히 받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린 바 사도행전 2:38절의 위반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으로서 이러한 말씀을 성경에 기록하시고서 그것을 어기면서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지 않으십니다.

휴거를 사모하는 우리가 회개하는 이유는 바로 성령충만을 받고 그 휴거의 날에 우리의 몸이 변화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남겨진 자들은 성령의 능력이 그의 몸을 변화시킬 수 없으므로 남겨진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개념의 남겨진 자가 아닙니다. 구약의 남겨진 자는 살려둘 자이지만 휴거시에 남겨진 자는 무서운 재앙과 진노의 날에 남겨지니 비참한 것입니다.)

몸이 변화되지 않으면 우주 공간을 뛰어넘어 천국으로 갈 수 없습니다.


어떤 이는 혼인잔치를 공중에서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안됩니다. 우주에서 혼인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집 곧 천국에서 혼인잔치를 합니다. 그곳까지 가려면 몸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열심으로 기도한다고 몸이 변화되겠습니까? 이것은 전적으로 주 예수님의 결정사항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면 몸이 변화되고 아니면 몸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 땅에 남아있는 자들이 성도이긴 합니다만 이미 예수님을 충분히 기쁘시게 하는 자라면 이미 성령을 충분히 부어주셔서 몸이 변화되게 하시고 그러면 우리는 휴거되고 날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것은

내가 회개하지 않은 죄,

내가 죄인줄 몰랐으나 죄인 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오늘날도 우리를 회개하도록 부르십니다.

어떤 죄는 회개하기에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기 때문에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계속 그 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에 인박혀서 끊지 못하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지 못한 것입니다.  롯이 소돔을 나올 때에 그 아내 (이름도 기록하지 않으십니다.)는 자신이 두고 온 재물과 가구, 금목걸이가 생각났는지 모릅니다. 혹시 귀여운 강아지 아 그 놈은 그거 강아지 구이가 된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팍 드는 바람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 보십시오.


그 아내를 소금기둥으로 만들어버린 분은 누구입니까?

(1) 소돔과 고모라에 떨어진 불

(2) 하나님

(2)번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치신 분도, 그 아내를 소금기둥이 되게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회개하지 못하는 죄, 이건 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하나님께 따지는 죄를 짓는다면 그 사람에게 성령부어주시지 않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환란날은 어린양이 진노하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재림하시면 진노하심으로 철장 곧 쇠뭉둥이로 질그릇처럼 모든 것을 깨부숴버리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들을 말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편 2편을 보시면 이것은 바로 예수님과 그 재림과 진노에 대한 시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2: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2: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서 소유를 찾으십니다. 이 세상이나 물건이나 사람들은 한 번도 사단의 소유물로 전락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말은 비성경적입니다. 단지 불법적으로 사단이 사람들을 잡으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라고 가르치는 어리석은 목회자가 있긴 합니다.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은 죄요 어리석음입니다.)

이렇게 재림때에 세상을 깨부수시기 때문에 군왕과 관원들은 교훈을 받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떨어야 합니다. 무서워 떨어야 합니다.

그런 자에게 구원을 주시니 또한 즐거워 하라는 것입니다.


이유 1. 진노와 성령을 같이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환란전휴거의 명백한 이유중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진노의 날에 성령을 같이 부어주신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긍휼히 여기심이요 구원하시려는 것이요 진노를 붓지 않으시는 것인데 환란날이 그러한 날인가요?


하나님이 교회시대를 끝내고

이제 7년이라는 진노의 날에 성령을 같이 부어주신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이 홀연히 변화되는 일은

환란중간에는 나타나지 않고 환란후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되는 이러한 일이 중간에 일어날 리 없고

성령이 이 땅에서 역사하시는 마지막 사역이

바로 우리의 몸의 변화시키시는 것이며 이것은 환란 전입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시기 전에 성령이 마지막으로 역사하십니다.

환란전 휴거가 올바른 것이며 환란중간이나 환란후 휴거는 아닙니다.

다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이 의미는 하나님이 그 모든 힘을 다하여(이런 표현은 안되지만 인간적인 시각으로 한 가지만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이 땅에 내리신다는 의미입니다.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고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중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이 땅의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주신다고요? 앞뒤가 안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살리시면서 죽음의 환경을 만드시고 죽음을 보내십니까? 애굽을 치실 때에 이스라엘도 같이 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이나 성령론을 공부하지 않았다 해도

성경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 하나님이 살리시면서 죽이는 일을 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살리시면서 죽이는 그러한 분열적인 이중적인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살리신다 하시고 뒤통수를 치시는 분이라면 믿을 수 없는 분인데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환란날에 성령이 계속 역사한다고 가르치고 떠들고 다니는 이들은 분명히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인데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지옥에 가서도 살만할 거야 라고 가르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이 분열된 분으로 묘사하는 그러한 말 자체가 이미 심각한 신성모독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참고 :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실 때에 바리새인이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저가 뉘길래 남의 죄를 사한다 하는가?’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판단하시기를 악한 생각을 아시고 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하여 악한 생각을 한 것인데 하나님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은 신성모독의 죄입니다. ]


이 시기가 분명한 환란이요 진노의 날이요 형벌의 날임을 성경은 수 차례 구약에서 부터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령을 주셔서 살리실려고 합니까? 거짓말에 속은 것입니다.

그렇게 안타깝다면 이미 휴거시키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남은 그리스도인들은 휴거되지 못할 상황인데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거부하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혹은 성령이 역사한다 생각하나 거짓된 영에 속아넘어 살아온 것입니다.


남은 자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목베임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면 환란 끝날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7년의 고통의 세월동안 미치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다가 고통이 극심하여 일순간 “에이, 하나님이고 뭐고 다 가짜야”하고 나가서 '표받고 먹고 싶은 거 사먹고 집에 들어가서 살아야지' 한다면 그는 사로잡힐 수도 있고 표를 받는다면 그는 영원한 불연못에 들어가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천사들이 이 시대에는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아마 성도들에게는 이 천사들이 보이거나 들릴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14:7 [복음 1 하나님을 경배하라. ]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4: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복음 2 이 체제가 무너졌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14:9 [복음 3 표를 받지 말라. ]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4: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4:12 [성령의 능력이 없으므로 스스로의 인내로 버티어야 하는 성도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6장-19장에서 성령은 여기에 한 번 언급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바로 하늘에서 나는 음성 곧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서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자의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원리를 따라 성령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은 아님을 잘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이라 함은 어렵기가 말할 수 없고 휴거되지 않음이 너무 후회되지만 그래도 불과 유황불에 던져지지 않는 것은 복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어렵다고 표를 받는다면 거룩한 천사들도 구해주지 않습니다. 잘 보십시오.

예수님도 안 구해주십니다. 짐승에게 경배하는 성도들이 있다면 그는 예수님이 구해주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도들을 7년 환란 중간에 구해주시지 않습니다. 구원받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목베임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14:13-14입니다.

둘은 7년환란 끝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도망치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됩니다. 성령충만하게 살다가 거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목베임을 받거나 7년환란끝 까지 거지중에 상거지로 살아갈 것인가?

집에도 갈 수없고 사람도 만날 수 없이 살아가야할 것입니다.


거지로 위장하여 다닐 그리스도인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는 인식되기 때문에 만약 어떤 기계에 인식이 안되는 사람이라면 그는 표를 안 받은 자로 드러나고 신고당하고 잡힐 것입니다.


그는 가게에 들어갈 수도 없고 교통수단도 못 이용하고 걸어다닐 것입니다.  옥상 한 구석에서 숨어살면서 가족이 가져다 주는 밥을 먹고 살지도 모릅니다. 가능한 한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지옥보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찾아낼 것입니다.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하지 않고 불을 내리시지 않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이 없으니 망한 것입니다. 참된 의인은 말로만 믿고 말로만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함께 거하실 수 있고 잡아주실 수 있는 자입니다.


[참고 : 성령이 그리스도인안에 내주하고 계시며 떠나지 않으신다 라는 신학적인 사상은 이 환란 때의  그리스도인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장로교의 신학사상 중 ‘성령의 내주’라는 개념이 성령부어주심에 대하여 많이 오해하게 하였습니다. 저도 장로교에서만 교회생활하고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성령의 내주'라는 말은 성령의 역사를 전부 다 설명하기에는 불확실한 개념입니다. 우리의 영(과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이지만 성령의 역사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도 상당히 많습니다. 칼빈이 성령론이 매우 약하고 성령론이 충분하지 않으면 해석할 수 없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근거 1>. 이 환란시대의 성도들은 어떤 능력으로 삽니까?

자기의 인간적인 능력이외에는 없습니다.

분명히 성도들이지만 이들의 권세가 깨어지며

짐승이 이기며

성도들이지만 죽임을 당하며

자기의 인내로 살아가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는 성령의 부어주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증거가 말로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초대교회 때에도 그러하지 않았느냐 라고 하지만 그때에는 교회가 이 땅에 있던 때이며 7년환란 때는 휴거되는 교회가 이 땅에 없으며 7년환란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한 환란의 때입니다. 그리고 온 세계에 임하는 환란입니다.

교회로서 승리하는 모습은 7년환란때는 없습니다.


70이레의 목적


다니엘 9:24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유대인에 대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온전히 구속당하려면 예수님이 필요하였는데 이제 예수님을 거부한지 2000년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이들을 온전히 구속하시려고 하나님은 계획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7년동안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한 이레'입니다. 이 한 이레를 다니엘에 나오는데 유대인들에게 해당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유대인이 그렇게 거부하는 가운데 그들이 바라던 바 구세주가 나타나는데 사실은 알고 보니 적그리스도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너희가 그렇게 바라던 구세주는 바로 이러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속임수를 알고 더욱 고통하면서 참된 구세주를 기다릴 때에 예수님을 전하는 두 증인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까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므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실 때에 그래도 유대인을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유대인의 물과 바다의 1/3만 피가 되게 하고 나머지는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물은 유대인이 먹을 물이지 진노를 당하는 이방인이 먹을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휴거도 되지 않은 버림받은 이들은 버려지는 자이므로 죽든 말든 게의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들은 물을 위하여 뛰어오지만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직접 멸하여 버리십니다.

한편 유대인들은 그러한 7년 동안에 구속당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성령의 역사는 없고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이 없는 7년환란기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오늘날의 성도와 성령의 관계를 말하여 주는데 그 말씀하시는 바 내용이 7년환란 때와는 분명한 구분이 있습니다.

환란전의 시대에는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가 힘을 얻어야 한다고 곳곳에서 말합니다.


(예)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 10: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롬 15: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8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고전 2: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갈 3:5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듣고 믿음에서냐

엡 3:16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살전 1:5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히 2: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그러나 요한계시록에서 7년환란을 보여주는 6-19장에서 성도에 대한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서 능력과 인내와 소망을 준다는 말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기도에 대한 언급은 꼭 성령이 역사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13: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13: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

 성도들과 싸워 이기는 자가 있는데 바로 짐승입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인데 이 모습은 어찌된 것입니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런데 성도의 권세가 깨어진다는 것, 성도들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다른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휴거될 자 곧 예수님의 신부를 데리고 올라가시고

나머지 휴거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 땅에 남아서 슬피 울며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이 한 번 휴거시키십니다. 여러 번이 아닙니다.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없으므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 성도들이 성령이 주시는 인내와 믿음으로 참아야 한다 라는 말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첫째, 인내를 가지라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 짐승은 이 때에 초대교회나 가톨릭의 개신교 박해보다 비교할 수 없이 잔혹하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을 죽일 것입니다. 죽음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단은 짐승을 통하여 활동하는데 (짐승으로 육화하였다는 말은 비성경적입니다.) 믿는 자들을 하나라도 더 지옥보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는 믿음을 거부하고 표를 받고 예수님을 거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오랜 기간 동안 환란과 핍박을 받아본 적이 없는 현대인들, 기복신앙에 물든 신앙인들은 휴거되지 않고 남아서 환란을 볼 때에 미칠 일입니다. 도무지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그동안의 착각이라고 생각하고 다 던져버릴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때에 얼마나 많은 예수믿는 사람을 죽이는지 음녀가 그 피에 취할 정도입니다.


요한계시록 계17: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18:24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결론


이제 믿음의 시대,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을 굳게 할 수 있는 때는 조만간 끝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도 갖고 다닐 수 없을 것입니다. 성령이 이 땅에 안 계신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휴거 이후에, 그리고 7년 환란 때에 성령을 근거로 하는 사역을 말하는 자는 주의해야 합니다. 그런 것은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환란사역자라는 개념은 비성경적입니다.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이 없으므로 짐승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휴거된 자가  아닌 성도임을 이제 이 놀라운 일에 대하여 충격을 받고 

다가올 7년환란의 지독한 고통 때문에 슬피 울어야 할 것이고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계시지 않은 어둠에 빠진 지구입니다.


[마24:51]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25: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영적인 빛이 없고 성경도 없어지고 올바른 교회도 없는 어두운 곳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휴거나 목베임이냐로 간단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극단적이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휴거냐 동굴속 7년이냐 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나라가 안전할 수 없고 저 나라가 안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역은 이제 휴거가 되면 종료됩니다.

주님이 그만 하라고 하시면 이제 그만 하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온 세상와 인류역사에 대하여

우리가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우리는 착하고 지혜로운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합니다.

충성되다 라는 말은 오직 말씀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내 마음대로의 열심이 아닙니다.

성경대로, 올바른 성경해석대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충성된 종의 모습입니다.

정말 깨어있다는 의미는 주 예수님과 교제한다는 말이며 감정적인 교류가 아닌 진리로 가르침을 받는다는 의미가 분명합니다. 정말 깨어있는 자라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해야할 것입니다.


또한 가르치는 자로 사역하시는 많은 분들이 있는데 그들의 가르침이 성경 특히나 요한계시록과 다른 것을 가르치게 된다면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재앙을 받게 되는 것이므로 조심해야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