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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샬롬·기독정보

[스크랩] 현대의학적으로 본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 -트루먼 데이비스-|

이 글에서 저는 「예수님의 수난」 혹은 「예수님의 고난의 육체적인 면」에 대하여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으로부터 재판, 채찍질, 고난의 행렬, 그리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던 마지막 몇 시간까지 있었던 예수님의 발자취를 뒤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제가 예수님의 육체적 고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약 1년 전으로, 짐 비숍이 쓴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날」이란 책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지내 온 모든 날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다소간 덤덤하게 생각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성경에 그 비참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지만, 점차 익숙해짐에 따라 그 사실에 대해 무디어져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제 자신이 내과 의사이면서도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습니다.

이 점에서 복음서 기자들도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십자가 형벌이나 채찍질이 그 당시에는 잘 알려진 사실이었기 때문에 그 들은 그 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상술한다는 것을 불필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마가가 간략히 남겨 놓은 다음과 같은 식의 글을 볼 수 있을 뿐입니다.

"빌라도가 ...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때가 제 삼 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막 15:15, 25)

과거에 예수님의 육체적 수난에 대해 연구한 많은 사람들, 특히 프랑스 외과의사로서 그 문제에 대해 철저히 역사적, 실험적으로 연구하고 광범위하게 글을 써온 피에르 바르베 박사에게 저는 힘입은 바가 큽니다.


십자가형의 관습

타락한 인간의 죄를 속하기 위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심적, 영적 고통의 깊이에 대해서는 제가 논의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의 몸이 그 고통의 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경험했는지, 곧 그 분의 수난에 대해 생리적이고 해부학적인 면은 어느 정도 세부적으로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저는 먼저 십자가에 못 박는 관습 자체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외관상으로 십자가에 못 박는 관습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페르시아인들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것을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장군들이 이집트와 카르타고(아프리카 북부의 고대 도시 국가. 주전 146년 로마에 멸망)에 소개했습니다. 키케로(주전 106∼43년,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 철학자), 타키투스(주후 55∼117년, 로마의 역사가)와 같은 로마의 많은 저술가들이 그에 대해 평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의 몇몇 변화가 고대 문학에 묘사되어 있는데, 저는 이 글을 뒷받침해 줄 부분만 언급하려 합니다.

십자가의 세로대 부분에는 꼭대기로부터 수직으로 60∼90cm 밑에 가로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이 것이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고전형의 십자가(후에 '라틴 십자가'라고 명명함)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형은 '타우 십자가'(헬라어 알파벳 중 하나인 '타우'. 영어의 T자 모양)였습니다. 이 십자가에서는 가로대가 십자가 꼭대기에 있는 새김눈에 놓여졌습니다. 고고학적 연구 결과 대부분이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가 바로 그런 십자가형(T자형)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직립한 세로대는 이미 형장에 박혀 있었고,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는 무게가 50kg이나 나가는 가로대를 지고 감옥에서 형 집행 장소까지 강제로 운반해야 했습니다. 아무런 역사적, 성경적 근거 없이 중세와 르네상스 화가들은 십자가 전체를 지고 가는 예수님 그림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상에 대한 작품을 남긴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손바닥에 못이 박힌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역사적 자료를 검토하고 실험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못이 예수님 손바닥에 박힌 것이 아니라 손목의 작은 뼈 사이에 박힌 것이었습니다. 만일 손바닥에 못이 박혔다면 못은 사람 몸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손가락 사이를 찢고 나갔을 것입니다. 내 손을 보라(요 20:27)고 도마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혹 잘못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고대 해부학자 현대 해부학자 할 것 없이 항상 손목을 손의 한 부분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죄목이 새겨진 작은 패는 보통 형장까지 가는 행렬 앞에 놓였고, 나중에 사형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그의 머리 바로 위에 그 패를 함께 박았습니다. 십자가 꼭대기에 나무를 박고 그 위에 붙인 이 패는 어떻게 보면 라틴 십자가 모양을 띱니다.


겟세마네의 수난

예수님의 육체적 수난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시작됩니다. 이 초반의 고통에서 특별히 생리학적으로 흥미 있는 점 하나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로 '피 같은 땀'에 대한 것입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복음서 기자들 중에서 오직 의사인 누가만이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눅 22:24)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학자들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잘못된 전제 아래 이 구절을 자기네 구미에 맞게 해석하기 위하여 별별 시도를 다해왔습니다. 우리는 의학 서적을 참고해 봄으로써 상당한 수고를 덜 수 있습니다. 매우 희귀하기는 해도 「헤마티드로시스(피 같은 땀)」 현상이 의학서적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극도의 감정적인 과로 상태에서는 작은 모세관이 땀샘에서 파괴될 수 있는데, 이 현상으로 말미암아 피와 땀이 섞이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앞에서의 수난

이제 예수께서 배신당하고 붙들리신 현장으로 가도록 합시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가 예수님의 수난 기사를 모두 다루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실망할지 모르나 순수하게 수난의 육체적인 관점만을 논의하는데 집중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그렇게 했습니다.

한밤중에 잡히신 후 예수께서는 산헤드린 공회와 대제사장 가야바 앞으로 끌려갔는데, 바로 여기서 처음으로 외상을 입으셨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질문에 아무 대답 없이 잠잠히 있다는 이유로 사환 중 하나가 예수님 뺨을 때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성전 경비대가 그 분을 끌고 가서 때리는 자가 누구인지 밝혀 보라고 하면서 조롱하고 비웃고 침 뱉고 얼굴을 때렸습니다.


빌라도 앞에서의 수난

상하고 멍들고 탈수한 데다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지쳐 버린 예수님은 이른 아침 예루살렘을 지나 유대 총독 빌라도의 재판정이 있는 안토니오 요새의 관정으로 호송되었습니다. 물론 당신은 빌라도가 책임을 유대 분봉왕 헤롯 안디스바에게로 전가하려 했음을 잘 알 것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에게서는 육체적으로 아무 데도 다치지 않고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내졌습니다. 빌라도는 군중의 외치는 소리에 응하여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선고를 내렸습니다.

채찍에 맞는 것이 십자가형의 서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그 당시 로마에 있는 저술가 대부분은 그 둘을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빌라도가 본래 예수에 대한 형벌로 채찍질만 명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칭하는 예수에 대해 가이사 편을 들지 않는다고 군중들이 힐책하자 그때서야 십자가형을 선고했다는 것입니다.


채찍질의 수난

채찍질을 위한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죄수'의 옷이 벗겨지고 두 손은 머리 위에 있는 기둥에 묶여졌습니다. 여기서, 로마 군병들은 채찍질하는데 유대법을 따르려고 어떤 시도를 했는지 궁금합니다. 고대 유대법에 따르면 사십 번 이상 때리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확실히 그 법을 준수토록 하기 위해 최고 서른 아홉 번만 때리도록 하였습니다.

로마 군병이 손에 채찍을 들고 한 걸음 다가섰습니다. 그 것은 무거운 가죽끈으로 된 채찍으로, 그 끝에는 각각 두 개씩 둥그런 납덩이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 무거운 채찍으로 예수님의 어깨, 등, 그리고 다리를 사정없이 거듭 내리쳤습니다. 처음에는 그 무거운 가죽끈들이 피부만을 찢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내리침에 따라 그 가죽 채찍이 피하조직을 찢고 파고들자 모세관과 혈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드디어 속 근육에 있는 혈관에서 피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조그만 납덩이들 때문에, 계속되는 채찍질 때문에 넓고 깊은 상처가 생겼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분의 등살가죽이 마치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고, 등 전체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피로 범벅된 살덩이가 되었습니다. 그 '죄수'가 거의 죽게되었다고 담당 백부장이 추측하자 드디어 채찍질을 그쳤습니다. 실신 상태의 예수님은 포박에서 풀리자 자신의 피로 물들여진 돌 바닥 위로 푹 쓰러졌습니다.


가시 면류관의 수난

로마 군병들은 왕이라고 자칭하는 이 시골뜨기 유대인을 보며 희롱했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어깨 위로 자색 옷을 던지고 그 손에 왕이 쥐는 홀 대신 갈대를 쥐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그들의 익살스런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조롱의 면류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긴 가시로 덮인 유연성 있는 가시더미가 면류관 모양으로 만들어져 예수 머리 위에 씌워졌습니다. 그러자 또 다시 많은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머리카락이 있는 곳은 신체 중 혈관이 가장 많이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비웃고 얼굴을 때리고 난 후 그 군병들은 그 가시 면류관을 머리 깊숙이 씌우기 위해 예수님 손에서 갈대를 취해 머리를 내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잔인한 장난에 싫증이 나자 그들은 예수님 위에 덮여있던 자색 옷을 잡아챘습니다. 그 자색 옷은 이미 예수님이 흘린 피와 상처에 있는 혈청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옷을 잡아채는 것은 마치 상처를 감싼 외과용 붕대를 마구 떼어내는 것과 같아서 그분을 몹시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마치 또다시 채찍에 맞는 것 같이 피가 그 상처 난 곳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난의 발걸음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 옷을 돌려주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 가로대에 예수님 어깨를 가로질러 묶었습니다. 그리고 나자 사형 선고를 받은 예수님 행렬이 두 강도와 로마 군병들과 함께 천천히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가신 길)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똑바로 서서 걸으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피를 많이 흘린 충격에다가 그 무거운 가로대 무게를 감당한다는 것이 그분에게는 무리였습니다.

예수님은 비틀거리고 쓰러졌습니다. 그 거친 나무 기둥은 그분 어깨의 찢어진 피부와 근육 속을 도려내듯이 비벼댔습니다. 다시 일어나려고 했지만 인간 근육의 힘이 견디어 낼 수 있는 한도를 이미 넘어선 후였습니다.

백부장은 빨리 십자가형을 집행하려고 했기 때문에 건장한 북아프리카 구경꾼 구레네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피와 끈적끈적한 땀을 흘리면 행렬을 따라갔습니다. 안토니아 요새로부터 골고다까지 600여 미터에 이르는 행렬이 끝나자 군병들은 속옷만 남긴 채 예수님의 옷을 다시 벗겼습니다.


못 박히는 수난

그런 다음 곧 십자가형이 시작되었습니다. 로마 군병이 독하지 않은 진통제와 몰약을 혼합한 포도주를 예수께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시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십자가 가로대를 땅에 내려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예수님의 두 어깨를 가로대 위에 눕혔습니다. 로마 군병은 예수님 손목 앞에 약간 오목한 곳을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그는 곧 무겁고 네모진 못을 예수님 손목을 뚫고 나무에 박았습니다. 그는 재빨리 다른 쪽으로 가서 팔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도록 조심하면서 그분의 팔을 세게 잡아당기지 않고 못을 박았습니다. 군병은 십자가 가로대를 세워 올리고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표를 그 위에 박았습니다. 그리고 왼쪽 발을 오른쪽 발에 포개어 발가락이 아래로 향하게 하고, 무릎을 적당히 움직일 수 있도록 발목에 못을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졌습니다. 점차 몸이 펴져 손목에 박혀있는 못이 몸무게를 지탱하지 무서운 아픔이 예수님의 손가락과 팔을 따라 뇌로 전해졌습니다. 손목에 박혀있는 못들은 중추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몸을 위로 밀어 올리자 몸무게 전체가 다리에 박힌 못에 지워졌습니다.

바로 이 때 또 다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팔이 피로해지자 경련이 그 근육 전체로 퍼졌는데, 그 것은 깊고 사정없이 쑤시는 아픔이었습니다. 이 경련 때문에 그분은 몸을 위로 밀어 올리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팔에 몸무게가 실리게 되자 가슴 근육이 마비되고 늑간 근육도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기를 폐 안으로 흡입할 수는 있지만 내쉴 수는 없었습니다. 짧게라도 숨을 쉬기 위해 예수님은 몸을 위로 들어올리고자 안간힘을 쓰셨습니다. 드디어 이산화탄소가 허파와 혈류에 채워지자 근육에 일어나던 경련이 부분적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분은 발작적으로 숨을 내쉬기 위해 몸을 위로 밀어 올리고 산소를 들이마셨습니다.


가상칠언

십자가 고통을 당하시는 가운데 예수께서는 일곱 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자신의 옷을 차지하기 위해 주사위를 던지는 로마 군병들을 내려다보며 하신 말씀입니다.

둘째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회개한 강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셋째 / 보라, 네 어머니이시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두려워 떨며 슬픔에 찬 요한(사랑하는 제자)과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하신 말씀입니다.

넷째 /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이 말씀은 시편 22편 서두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 관절 마디를 부수는 듯한 경련, 때때로 일어나는 부분적 질식, 그리고 그 거친 나무 기둥에 대고 위아래로 몸을 밀어 올리고 내릴 때마다 찢기어진 등허리를 또 찢기는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며,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심장이 압박되기 시작하자 심하게 으깨는 듯한 고통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습니다. 이것은 시편 22편 14절 말씀을 상기시켜줍니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나이다."
이제 거의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세포 조직 분비액이 계속 유출되어 위기상태에 이르고, 압축된 심장은 무겁고, 그나마 남은 피를 세포조직으로 보내기 위해 애쓰고 시달림 받는 폐는 약간의 공기라도 흡입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탈수가 많이 된 세포 조직은 다량의 자극을 뇌에 전달했습니다.

다섯째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 말씀은 예언시인 시편 22편에 있는 또 다른 절을 상기시킵니다.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로마 군병들이 자기들이 주로 마시는 값싸고 신 포도주를 스펀지(해융)에 적셔 그분의 입술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그분은 어떠한 음료도 마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이제 극도의 고통과 탈진 상태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분은 죽음의 냉기가 자신의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섯째 / 다 이루었다.(요19:30)
죽음의 기운을 실감하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고뇌에 차 속삭이는 소리보다는 좀 더 크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속죄의 임무가 완성되었습니다. 드디어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마감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일곱째 /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찢기어진 발로 못을 딛고, 다시 한 번 몸을 밀어 올리며 다리를 뻗어 깊은숨을 들이쉬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 후의 내용은 우리 모두 잘 아는 바입니다.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기 위하여 유대인들은 그 희생자들을 빨리 처치하여 십자가에서 옮겨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십자가형을 끝내는 평범한 방법은 다리를 꺾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희생자가 몸을 위로 밀어 올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가슴 근육이 긴장을 풀지 못하여 재빨리 질식해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군병들은 두 강도의 다리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 왔을 때는 그것이 불필요함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한 군병이 창으로 다섯째 갈비뼈 사이를 뚫고 심낭과 심장을 찔렀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이 복음서 19장 34절에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고 적고 있습니다. 심장을 둘러싸며 고였던 액체와 심장에 있던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질식으로 죽음을 당하신 것이 아니라, 심장에 있는 액체에 의한 심장의 충격과 압축 때문에 심장 쇠약으로 돌아가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과 하나님을 향해 인간들이 드러내 놓은 악의 모습을 대강 흩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결코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라 우리를 낙심케 하고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편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 인지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의 모습이...

속죄의 기적과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