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추억의 설교/황수관박사

웃으며 먼 길 떠난 황수관 교수 아직도 눈에 선 해

//

 

웃음

蝸牛角上爭何事(와우각상쟁하사)-달팽이 뿔 위에서 서로 다투다니 웬말이요

石火光中寄此身(석화광중기차신)-부싯돌 불빛같이 반짝하는 인생인 것을

隨富隨貧且歡樂(隨富隨貧且歡樂)-부자도 가난해도 기쁨인 것을

不愷口笑是癡人(부개구소시치인)-입을 열어 웃지 않으면 바~

백거이(白居易)

 

웃으며 먼 길 떠난 황수관 교수 아직도 눈에 선 해

 

웃음은 도둑질해서라도 웃으라고 하였다.

수백만원짜리 명품 핸드백은 짝퉁이 있어도 웃음은 진품과 짝퉁을 뇌()가 구분 못한다고 한다.

 

때로는 ()처럼 바보가 좋을 때도 있다.

그러니 헛웃음이라도 웃으라고 했다.

 

위의 백거이(白居易) 시인도 부싯돌 불빛같이 반짝하는 인생, 부자 가난한 것을 구분하지 말고 웃고 살자고 한다.

 

웃음은 행복의 상징이다

극락과 천당은 행복의 상징인데 불경 성경에는 많이 웃으라는 말은 아직

보지 못했다.

 

목사나 스님들이 불경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억지로 각색하여 웃음을 만드는 설명하는 정도다

웃음 없이 무엇이 극락이고 천당인가

 

그래서 필자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불경(佛經), 성경(聖經)보다 웃음경(笑經)”이 있었으면 좋겠다.

 

구약성경 창세기 215-7절에 하나님의 은혜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낳을 때 나이가 100세고 아내 사라는 90세라.

사라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

이정도가 성경의 웃음 이야기다.

 

남자 100, 여자 90살에 애기를 낳는다고 하니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헛웃음이다.

 

우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괴로운 상()은 웃음하고는 거리가 멀다.

세상의 죄를 대속(代贖)”한다고는 하지만---

 

불교경전에는 대체로 웃음이 많이 등장한다.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뜻인 염화미소(拈華微笑)이다.

 

관세음보살상이나 수월관음도 불화(佛畵)에도 알 듯 모를 듯한 모나리자 같이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불교경전 잡보장경(雜寶藏經)

남에게 베푸는 것이 반드시 물질이 아니라도 보시(布施)가 되는 것을 열거하고 있다.

무재칠시(無財七施)라는 포시(布施)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라는 항목이 있다.

얼굴에 온화한 색을 띠고 부드러운 얼굴로 남을 대하것이다.

 

1. 眼施(안시)-부드럽고 편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

2. 和顔悅色施(화안열색시)-자비롭고 웃음 띤 얼굴로 사람을 대하는 것

3. 言辭施(언사시)-공손하고 아름답게 말하는 것

4. 心施(심시)-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

5. 身施(신시)-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여 남을 돕는 것

6. 床坐施(상좌시)-자리를 양보해 주는 것

7. 房舍施(방사시)-내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하는 것

잡보장경(雜寶藏經)

 

웃음에 특별히 깊은 신학(神學)이나 철학(哲學)의 의미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활짝웃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40개 웃음 근육을 총 동원하여 웃으면 된다.

 

예를 들어

어느 중학교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기를

술에 취해 거리에서 고성방가로 마치 미친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일컬어 무엇이라고 하는가?” 답해 보아라.

예시문으로 “( )( )( )()”의 나머지 3개의 괄호 안에 글자를 넣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제각기 답을 적어 넣었다.

()()()()

()()()()

()()()()

()()()()

 

그런데 한 학생의 답에 모두가 입이 쩍 벌어졌고 웃음바다가 되었다.

()()()()

 

영어의 건강(health)과 행복(happiness)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웃음(hele)에서 왔다고 한다.

 

사람은 영원히 살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늘 웃음을 주시던 황수관 교수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본인의 타고난 얼굴이 호랑이 상같이 무서워 부드러운 인상의 훈련으로 웃기 시작한 것이 웃음 전도사가 되었다고 하면서 눈은 밑으로 입은 위로 걸리는 웃음 캐릭터를 우리생활에 주신분이다.

 

한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했지만 TV 브라운관을 통해서 가난한 시절, 공부하던 이야기 부모간 가족간 뭉클하던 강연으로 한숨과 주름진 우리에게 웃음 선물을 주시던 분이 떠나셨다.

 

서운한 것은 황수관 교수가 특별한 지병도 없었는데 갑자기 간농양(肝膿瘍)으로 인한 패혈증(敗血症)에 감염된 것이 치명적(致命的)이었다 한다.

 

황수관 교수는 강연에서 건강을 지키는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골고루 먹되 과식은 금물이라고 했는데

역시 죽고사는 것은 건강관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란 말인가

 

그리고 고인은 이날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눈을 감았으며 숨지기 며칠 전 가족에게 유언을 남겼다고 하는 병원의 소견을 들으니

본인은 혹시 하나님으로 부터 소천(召天)하라는 명령을 미리 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육신의 한사람인 성삼문은 새남터에서 마지막 세상을 영별할 때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황천 가는 길에는 주막 하나 없으니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오늘 밤은 누구 집에서 잘 것인가

라고 죽음의 외로움을 탄식했지만

 

황수관 교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시고 천당에 가서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 곁에 앉게 되어 천당만을 생각하고 골치아픈 땅의 일은 생각지 말라 (골로새서 316)는 성경의 말씀대로 편안한 모습으로 지금쯤 활짝 웃으시면서 계실 것이다.

 

슬플 때는 황수관 교수님의 웃음을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명복(冥福)을 빕니다.

 

아래 사진은 너무 뜻밖의 비보가 안타까워 생전의 활짝 웃는 모습을

황수관 추모특집에서 캡처한 것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