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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뇌 칩이식 기술이 가장 유망·기계 속 정보도 뇌에 옮긴다

뇌 칩이식 기술이 가장 유망·기계 속 정보도 뇌에 옮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1.05.15 09:15 / 수정 2011.05.15 15:25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8> 뇌와 기계 연결되는 신경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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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교실 안 풍경. 간단한 헤드셋을 쓴 학생들이 선생님의 수업을 듣는다. 개중 몇 명은 몸이 안 좋아 집에서 수업을 듣는다. 그러나 선생님의 교탁 위 모니터에는 헤드셋으로 측정된 모든 학생의 뇌파를 분석해 얻은 ‘집중도 레벨’이 표시돼 있다. 지금 이 순간 누가 졸고 있는지, 딴생각을 하는 학생은 누군지 한눈에 학생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장치가 선생님의 수업 통제를 돕는다.

공상과학(SF)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 풍경은 기술적으로 이미 구현 가능하다. 심지어 학생용 의자로는 몸을 비비 꼬고 안절부절못하는 동작을 정교하게 모니터링해 ‘수업 몰입도’를 측정하기도 한다(이 기술은 영화 시사회장의 의자에도 적용돼 ‘영화 몰입도’ 측정을 통한 예상 관객수 계산에 활용될 수 있다).

이런 세상을 가능케 해 주는 기술은 뇌공학(Brain Engineering)이다. 뇌신경계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공학적인 장치·제품·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술을 말한다.
인류 사회는 모름지기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인간 사고와 행동의 중추’인 뇌에 대한 이해 없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뇌공학기술이 이끌 미래사회를 ‘신경사회(Neurosociety)’라고 부르며, 이를 이끌 ‘신경혁명(NeuroRevolution)의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뇌공학인 것이다.

뇌와 컴퓨터의 언어는 모두 ‘전기 신호’
미국과학재단(NSF)은 뇌공학을 2040∼2050년 무렵 ‘인류사에서 가장 꽃필 기술’로 꼽았으며, 많은 뇌공학자는 그 시기가 점점 앞당겨질 것으로 예측한다. 지난 30년 동안 신경과학적 지식이 기하급수로 늘어났고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뇌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기술, 뇌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뇌조절기술이 함께 발전한 덕택이다.

‘신경혁명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은 단연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다. 영화 ‘매트릭스’나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처럼 뇌와 기계를 곧바로 접속해 생각만으로 기계를 조종하거나 기계 속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흥미롭게도 뇌와 컴퓨터가 사용하는 언어는 모두 ‘전기신호’다. 따라서 둘 사이에 적절한 통역기만 삽입해 주면 키보드나 음성을 통하지 않고 서로의 정보를 직접 주고받게 할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애틀랜타 에머리대 신경외과 필립 케네디 교수는 척수 손상 환자의 뇌에 간단한 전극을 삽입해 가족과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왼손을 들거나 오른손을 드는 생각, 무언가를 잡는 생각을 하는 동안 활성화되는 뇌 영역에 미세전극을 삽입해 컴퓨터 화면의 커서를 좌우로 움직이고 원하는 알파벳을 선택해 글자를 쓰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1년 현재에는 여러 신경세포와 미세전극을 직접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이 등장했기에 10∼20년 후에는 생각만으로 기계를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술이 크게 발전할 전망이다.

사람이 직접 하면 되지 왜 굳이 로봇을 시키느냐고?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사고가 났을 때 원전에 들어가 특정 임무를 수행할 전문가를 못 찾아 낭패를 본 것처럼 지진이나 쓰나미 피해 지역, 깊은 바닷속, 달이나 화성 등 인간이 직접 가기 어려운 곳에 로봇을 보내 인간처럼 일하게 하려면 뇌-기계 인터페이스 기술이 필수적이다.

양계장 로봇, 어둠 속에서 고양이·들개 구분
몸이 불편하거나 나이 든 어르신들에게도 이 기술은 매우 유용하다. 가사도우미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의 생각만으로 물을 떠오고, 집안 청소를 해 주며, 위급상황에서 병원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진다.

양계장을 지키는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닭을 노리는 들고양이와 지나가는 들개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어두운 밤에 빠르게 움직이는 짐승에 대한 구별이라 정확도가 턱없이 낮다. 그러나 쥐는 개와 고양이를 만났을 때 전혀 다른 뇌반응을 보인다. 고양이는 쥐의 편도체에서 ‘공포신호’인 강한 세타파를 유도한다. 따라서 양계장 지킴이 로봇은 쥐의 뇌와 연결돼 있어 쥐의 뇌반응에 따라 고양이의 출몰을 인지하고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할 수 있다. 2020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몇 해 전, 저명한 과학저널 ‘네이처’의 편집장이 방한했을 때 기자가 물었다. “네이처가 가장 선호하는 미래의 유망 분야는 무엇입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뇌 칩이식 기술’을 연구하세요. 이 분야의 성과라면 언제든지 네이처는 환영합니다.”

‘뇌 칩이식 기술’은 기능이 떨어진 뇌영역에 신경칩을 삽입해 회복시켜 주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뇌기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질환을 앓게 되면 상담을 받거나 약물치료를 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머릿속에 칩을 삽입해 뇌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 애가 너무 산만해요. 머릿속에 칩 좀 박아 주세요!”라든가 “나는 강박장애가 있는 것 같아. 머리에 칩을 삽입해야겠어”라든가. 이런 일은 아마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몇 해 전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모가 약물로도 치료될 수 없는 치매에 걸렸다면 ‘뇌 내 칩 이식수술을 받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 56%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대 테오도르 버저 교수는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해마(Hippocampus)’를 대신해 주는 칩을 디자인해 쥐의 뇌에 삽입, 장기기억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치매 쥐의 뇌기능을 회복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아직 부작용이나 위험성 등이 충분히 평가되지 못해 인간에게 적용되진 않고 있지만 10∼20년 후 충분히 적용 가능한 기술이다. 꼭 뇌 안에 삽입하지 않더라도 두피에서 뇌파를 변화시켜 뇌활동을 조절하는 기술은 조만간 등장할 전망이다.
뇌공학, 영생불사 기술로 진화 가능

뇌와 기계의 접속은 무엇보다 군사적으로 유용하다. 전투기 비행 중 갑자기 나타난 이상물체와 충돌해 추락하는 사고가 한 해 미국에서만 10여 건이나 된다. 전투기 한 대 가격은 600억원에서 3000억원, 매년 귀한 조종사들의 목숨과 1조∼3조원에 가까운 세금이 어처구니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전투기의 속도는 마하 3. 소리속도의 세 배이다 보니 1초에 1㎞ 이상을 진행한다. 따라서 수백m 앞에 갑자기 이상물체가 나타나도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투기 조종사의 뇌파를 비행기에 바로 전송해 조종사가 이상물체를 발견하는 순간 비행기가 알아서 방향을 바꾸도록 하면 추락사고를 줄일 수 있다.

이른바 ‘외골격 기술(Exoskeleton)’도 군사적으로 각광받는 기술이다. 세계 3대 SF소설가로 알려진 로버트 하인라인의 고전 과학소설 『스타쉽 트루퍼스』에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인간 몸에 기계장치를 설치해 뇌와 직접 연결시켜 근육의 힘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훨씬 더 강력하게 대응하도록 도와주는 장치다. 다시 말해 ‘수퍼 솔저’를 만드는 프로젝트(Super-soldier project)다. 이것이 성공할 경우 20년 후 미군의 모습을 시각화한 것이 바로 할리우드영화 ‘아이언맨’이다. 미군들이 아이언맨처럼 바뀐다고 상상해 보시라.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전신마비 환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휠체어를 운전하는 기술을 넘어 다리 근육에 기계장치를 부착하고 뇌파로 움직임을 제어해 보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도 외골격 기술의 한 예다. 일종의 ‘옷처럼 입는 로봇기술’이라고나 할까?

앞으로 뇌공학은 ‘거짓말 탐지기’(Lie detector)를 통해 범죄과학과도 만날 예정이다. 거짓말이나 거짓행동은 가능해도 뇌반응까지 속이기란 쉽지 않다. 최소한 거짓말을 해야겠다는 의도는 포착 가능하다. 따라서 용의자 검거 시 사건현장 사진에 대한 뇌반응을 측정해 거짓말 여부를 판단하는 기술이 조만간 등장할 전망이다. 아직 법원에서 인정받고 있진 않지만 미국에선 이미 신빙성 있는 증거로 채택되고 있으며,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뇌공학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학자들은 우리가 이를 통해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나인 이유는 바로 나의 뇌 때문. 그렇다면 나의 뇌를 젊은 뇌에 이식하거나 나의 뇌 회로를 기계에 업로드하면 평생 살 수 있다는 얘기다. 한스 모라벡은 저서 『마음의 아이들(Mind Children)』에서 이를 ‘마인드 업로딩’이라고 처음 불렀다. 아마도 2040년, 뇌공학이 꽃을 피울 먼 미래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지만 바야흐로 뇌공학은 지금 ‘영생불사의 기술’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정재승 KAIST 물리학과 박사,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컬럼비아대 의대정신과 조교수 등을 거쳤다. 의사결정 신경과학, 뇌-기계 인터페이스, 정신질환 모델링을 연구하고 있으며 2009년 다보스포럼에서 ‘차세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됐다.

정재승 교수 jsjeong@kaist.ac.kr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