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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질서의 비밀/신세계질서의 비밀·3

드러냄 - 마지막 회차 - 때가 차매

때가 차매

 

나는 책 '드러냄'을 통해 일관되게 -- 시대 주후 2012 년은 성경에서 말하는 , ‘마지막 때’ 그리고 ‘말세에 고통하는 때’에 해당하는 시기라고 주장하고 이를 증명하고자 노력하였다.


성경에는 ‘때’ ‘시기’ 단어가 헬라말 ‘크로노스’ ‘카이로스’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 ‘크로노스’가 포괄적이고 연속적인 물리적 시간 개념이라면, ‘카이로스’는 어원이 되는 동사 헬라어, ‘케이로’, ‘잘라내다, 깎다’의 뜻에서 짐작할 있듯이 ‘분절된 시간’ 특정 ‘시점’(時點) 의미를 가진 말이다.

갈라디아서 4 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 때의 ‘때’는 카이로스 이다. ,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사건이 이루어지기에 합당한 시점이 것이다. 시간의 분량이 차서 ‘때’가 되었을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이루신다는 , 그리고 ‘때’가 되었을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이 성경적 역사관이다. 예컨대 많은 성경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지상에 처음 오신 BC 3, 4 경의 로마 시대는 예수님 초림에 필요한 제반 여건 , 정치적 준비와 문화적 준비와 종교적 준비가 완벽히 이루어져 있던 시점 것이다.

(첫째, 로마 제국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서쪽의 스페인에서 동쪽으로 소아시아와 팔레스틴, 그리고 북아프리카 연안 지역에서부터 라인 도나우강 이남 전 지역에 Pax Romana 팍스 로마나, 로마에 의한 평화시대가 존재했다. 로마로부터 시작하는 포장 도로들은 제국의 각지로 뻗치고 있어 안전하고 신속한 교통과 통신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도 있다. 헬레니즘 문화의 통일에 힘입은 언어의 통일도 있다.  제국은 라틴어 외에도 희랍어를 상용어와 학문적 언어로 채택하고 있었, 복음 전파에 필수적인 언어의 통일이 이미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구속의 경륜을 이루기 시작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크로노스가 모년 모월 모일이라고 하는 기계적 시간(Clock Time) 혹은 물리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역사적 시간(Historical Time), 절대 절명의 하나님의 시간임과 동시에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가장 적합하고 결정적인 순간” 가르킨다.


한편, 요한복음 7 6절에서 예수님이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 때의 ‘때’ 역시 카이로스이고 사도행전 1 7 절에서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아니요 라고 말씀하실 때의 ‘때’ 역시 카이로스로 봄이 옳다.


성경을 읽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상한 구절에 이르게 되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 인류의 마지막 , 마지막 시점이 예수님이 살아 계시던 당시, 혹은 예수님의 승천 직후에 찾아 있다고 --- 믿고 계시는 듯한 장면이다.

마태복음 24:34 마가복음 13:30, 그리고 누가복음 21:32 에서는 공히,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있을 재난의 징조들을 설명하시고 다음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일이 일어나리라 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한편, 마태복음 16:28 에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자들도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시고, 마태복음 26:64 에서는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 대제사장 앞에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길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장면도 나온다.

모든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혹시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 ‘다시 오실 때’ 그리 멀지 않았다는 , 심지어 당시의 제사장들과 제자들이 아직 살아 있을 당시에, 크로노스적인 인간의 시간으로는 년이 지나지 못하여 -- 다시 오실 있다고 생각하신 아닌가 하는 점이다.

, 예수님은 본인 스스로 이렇게 인자의 재림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다고 - 생각하셨기에 요한 복음 21 21절에서 베드로가 사도 요한을 가리키며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에 22 ; “내가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대답을 하시기도 하셨고 마태복음 10 23절에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니지 못하여 인자가 오리라”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 요한 복음 16 16 에서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조금 있으면 나를 다시 보리라”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셨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록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셨을지라도 모든 , 시기의 결정, 그리고 때와 시기에 관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셨다. 그래서 모든 말씀 뒤에는 항상, “그러나 날과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 마태복음 24:36, 마가복음 13:32 라는 말씀을 빠뜨리지 않고 하셨던 것이다.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재림의 시기가 아주 가까운 장래에 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머지 않은 시기에 다시 재림할 있으리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다.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이 초림하셨던 AD 1세기의 시대적 상황이 벌써 마지막 때에 해당하는 시기 였기 때문이다. , 성경은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의 기간을 통틀어 말세라고 지칭하여 말한다.


벧전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되신 이나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되었으니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이렇게 보면 주후 2012년인 오늘 지금 시점은 말세중에서도 말세 , 말세지말 (末世之末)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지막 , 예수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머지 않았다고 보신 마지막 , 재림의 시기는 이렇게 인간 역사속에서 마냥 --- 무려 2,000년간이나 미루어져 오는 것일까? 마지막 때는 아직 오지 않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길이 참으심’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2:4에서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로마서 3:25 에서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까지도 하나님은 길이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해 - 인자하심과 용납하심으로, 참고 계신 중인 것이다.

둘째, 성경에 미리 예언되어 있는 모든 일들이 응하게 하기 위해서는 크로노스의 시간 , 물리적인 시간이 인간 역사속에서 필요한 까닭도 있다. , 신로마제국이 일어나야 하고 음녀 바벨론이 일어나야 하고, 예루살렘을 이방 나라 군대가 에워싸야 하고,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돌아와야 하고, 지식이 더하고 왕래가 빨라지는 일이 생겨 나야 하고, 곡과 마곡이 유브라데 강을 넘어 있는 제반 사건적 여건이 인간 역사속에서 먼저 충족되어야 하는 것이다.


, 우리는 절대로 우리의 생각으로 ‘마지막 때’ ‘주님 다시 오실 날’을 모년 모월 모일 이라고 인간적 기준의 크로노스적 시간을 규정하려 들면 안된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아니요” 라고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부분을, 예수님 조차도 하나님 아버지께 완전히 맡겨 드리고 복종하고 계신 시기 문제를 --- , 우리 인간이 1999년이니, 2012 몇월이니 주장하는 자체가 이단이요,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시기는 알수 없으니 그냥 넋놓고 기다려야 하나 --- ? 그게 아니다.   

 먼저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태 복음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날과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둘째, 시대를 분별할 알아야 한다.   누가복음 12:56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마태복음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없느냐  

셋째, 징조를 통해 깨달을 있어야 한다. 마태복음 24 3절에서 제자들은 세상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으리이까 하고 진지하게 묻는다. , 오늘 우리도 2,000년전의 제자들처럼 징조를 알아 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오늘 시대를 통하여 무슨 징조가 우리에게 주어 지고 있는지 유심히 살피고 깨달을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 전체를 통하여 제자들에게 마지막에 있을 재난과 이전에 있을 징조들을 설명하시면서 15절에 가서는 “읽는자는 깨달은진저”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 징조는 ‘알라고’, ‘깨달으라고’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24:33 이와 같이 너희도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문앞에 이른줄 알라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징조들은 무엇이 있나? 글의 페이지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오늘 시대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신 , 많은 사람이 나는 그리스도라 하며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시대이며, 난리와 난리 소문이 매일 들려 오는 시대 이며, 또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 나고 있는 시기이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 나고 있는 시대이다. 모든 것이 재난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 바로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 24:8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 위에서 이미 언급한 징조들 이외에도 예수님은 무수히 많은 여러 다른 징조들도 동시에 말씀하고 계신것을 있다.

- 먼저,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환난에 넘겨 주고 죽이는 일과 성도가 예수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일과

-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는 일이 있을 것이며

-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며

-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며

- 때에 환난이 있을 것이며

- 사람들이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말들을 것이며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표적과 기사를 보여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일이 일상으로 벌어 것이다.


물론, 마태복음 24: 14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처럼 먼저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 모든 나라에 전파되는 일도 일어 나야 것이다.

결론적으로 징조는 보고 깨달으라고 있다. 보고, 깨닫고, 알고, 준비하라고 주시는 것이다. , ‘드러냄 이런 징조, 세상 역사 속에서 벌어 지고 있는 제반 사건들을 마지막 때의 징조의 모습들과 비교해 살펴 보려고 시도이다. 다른 한편, 글은 세간에 나와 있는 ‘마지막 성도’ 류의 책들이 미처 다루지 못하고 있는 - 세상 사건과 성경 말씀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 설명하고자 시도한 글이기도 하다.


나는  글 통하여 시대가 마리 말들이 이미 뛰고 있는 시대라고 언급하였다. 다음에 벌어질 일은 우리 믿는 성도에 대한 핍박과 박해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나의 주장이 과연 맞아 들어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다만 ‘드러 내어야 한다’ 소명감만으로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런 소명감은 안에서 스스로 자라났다기 보다는 주님께서 감동을 통하여이런 생각을 내게 불어 넣어 주신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어설픈 내용이지만 한가지, 독자 여러분께서 ‘이 때가 정말 마지막 때이구나’ --- 하고 느껴 주신다면 비로소 ‘드러 냄’을 보람이 있겠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