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되고 싶었지만 성경 대신 총을 들었던 소년 |
글쓴이 : 海眼 |
채명신 初代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관 별세목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6·25 때문에 성경 대신 총을 들었다. 북한군과 중공군, 베트콩을 섬멸했던 6·25와 베트남전(戰)의 영웅,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87·蔡命新) 예비역 중장이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채명신 장군은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 평양 부근에서 자랐다. 평안남도 진남포 부근에 덕해교회를 세운 외조부 박진준을 따라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덕해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1946년 북한군 사관학교 격인 '평양학원' 개교식에서 김일성을 만났다. 김일성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동무 같은 젊은이들이 필요하오. 평양으로 가 나와 함께 일합시다"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그때 김일성을 따랐다면 몇 년 뒤 나의 총구(銃口)는 남쪽을 겨냥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채 장군은 1965년 8월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관에 임명됐다. 그는 "내가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은 '두코 전투'와 해병 신화를 세운 짜빈동 전투"라고 말했다. 1966년 8월 캄보디아 쪽 국경 4㎞ 지점의 두코(Duc co)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맹호기갑연대 3대대 1개 중대는 자신보다 6배나 많은 월맹군 2개 대대의 기습을 막아내고 대승을 거뒀다. 아군 7명이 전사했지만 월맹군 189명을 사살했다. 1967년 2월 짜빈동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해병대 청룡부대 1개 중대는 적 1개 연대 공격을 막아내고 적 243명을 사살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고의 승전보"라고 했다. 그는 1969년 3월 미국 닉슨 대통령으로부터 공로훈장을, 그해 5월 남베트남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2등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문정인(84) 여사와 경덕(재미 사업가)·은하(주부)·경화(주부) 등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발인은 28일 오전 7시. 장례는 육군장으로 거행된다. (02)3010-2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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