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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체험/지옥 간증

[스크랩] 지극히 어리석은 어느 바보의 간증

지극히 어리석은 어느 바보의 간증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7)

 

부족하고 또 부족한 저에게는 그리스도의 증인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저의 행위나 행동은 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으로 인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하시는 주님의 뜻에 따르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가족과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구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방법을 앞세워 왔으며, 주님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타인과 나누는 일에도 종종 기계적이고 억지로 행하며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우리의 마음의 처음과 끝을 알고 계시고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과 위선을 행하여 왔습니다. 또한 주님의 끝없는 인내와 자비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의 자리에서 속량된 자신의 처지를 잊고 타인의 실수와 허물을 반복해서 가려내고 판단하는 죄를 저지르곤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헤아리고 계시는 주님이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잊은 채로, 내가 먼저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다가가 손 내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그들을 두려워하고 멀리해 왔습니다.

 

또한 목전의 자신의 현실에만 갇혀서 타인의 아픔과 신음을 까맣게 잊고 살고 있으며 간혹 그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눈과 귀로 접할 때에도 그들이 나의 마음과 손 닿는 곳과는 너무 멀리 있다고 탄식하면서 그들을 위한 기도조차 하는 것도 인색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형편없는 한 인간의 육신의 눈과 귀를 통해 보여주고 들려주신 하나님의 준엄하고 거룩한 진실이 증인된 자의 형편없음으로 인해 이 세상에서 왜곡되거나 조롱거리가 되리라는 사실만은 참으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증인된 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께서 저의 육신을 통해 실제로 목격하고 경험하게 하신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다고는 누가 나를 죽인다고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죄와 무지로 죽어있는 한 인간을 살리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무한한 인내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저의 목숨을 걸고 증언합니다. 아니 그럴 수만 있다면, 천 만 번이라도 더 저의 목숨을 걸고 증언하겠습니다.

 

나는 나이 50살이 될 때까지 성령이라는 단어를 한번 들어 본적도 없고, 그러한 순간을 꿈꿀 수 있는 기대나 상상력 조차도 전혀 없었던 문 밖의 인간이었습니다. 궁핍하고 혼란한 이 세상에서 정신하나 만은 똑바로 지니고 살자는 것이 변변히 내세울 것 없는 저의 지난 삶의 주춧돌이었습니다.

 

오래 전 어느 이른 아침 저는 사람들로 가득 찬 성당 한 가운데에서 두 다리로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곳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돌아가신 오빠의 영혼승천을 위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동안에 저는 머리를 치켜 들고 두 눈 똑바로 뜬 채로 대항했습니다. ‘나는 왜 기도하는 지도 모르고 어떻게 기도하는 줄도 몰라요!’하고 속으로 외치면서

 

그러나 전지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무지와 세상의 온갖 악으로 물들어 있는 한 인간의 영혼을 영롱한 새벽 이슬보다 더 맑고 빛나는 눈물로 씻어 주시며 멀었던 눈을 뜨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 불쌍한 영혼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그 준엄하고 참된 영생의 진실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을 구하는 일을 감히 상상조차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을 때 주님이 우레와 같이 힘차고 깊이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음성으로, 교회의 천장을 가득 메우며 보잘 것 없는 한 인간의 이름을 친히 부르시면서 사랑한다!’고 외쳐 주셨지만 불쌍한 귀머거리는 그 분이 그에게 그토록 전하고자 하는 사랑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늘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무지몽매한 인간은주님이 외치시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의 만분의 일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2년 전 어느 이른 아침, 포도 밭길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걷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아주 가까운 발자국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순간 놀라서 주위와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저의 동생과 그녀의 열한 살 난 딸이 저만치 뒤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 발자국 소리는 그들의 발자국 소리려니 하고 멈추었던 길을 가고 있는 도중에 차츰 저는 그 커다란 발자국 소리는 저만치 떨어져서 자근자근 걷고 있는 딸과 엄마가 만들어 내는 네 개의 발자국 소리이거나, 잔뜩 긴장해서 걷기 시작한 나의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 옆에서 발아래 거친 길을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함께 걸어 주시는, 또 다른 두 개의 커다란 주님의 발자국 소리임이 분명했습니다. 그 시점으로부터 약 6개월 전 서울의 장위동 교회에서 찬송 중에 저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외쳐주시던 주님의 신비한 임재를 가슴속에 너무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저는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돌아보던 일을 중단하고 주님의 발자국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어 주던 그 조용한 이른 아침 외로움에 지쳐있는 한 인간에게 다가와내가 너와 함께 걷고 있노라하시며 거침없는 발자국 소리를 내어 주시며 함께 걸어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춥고 외로웠던 지난 시간들을 송두리째로 거두어 가 주신 주님과의 그 환하고 따스한 빛으로 가득했던 아침의 산책 길을 죽어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위에 열거한 이러한 사건들은 제가 잠을 자면서 꿈을 꾸거나 혹은 상상의 나래를 펴서 지어낸 가공의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반대로 위의 사건들은 제가 가뿐하게 잠에서 깨어나 하루의 활동을 시작하는 아침이나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명료하게 의식하며 그 상황에 열중해 있을 때 저의 기대나 상상을 초월해서 저에게 보여지거나 들려진 일들에 대하여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분석, 확인하며 재검토 하는 과정 속에서 쓰여졌습니다.

 

혹 여라도 오해가 있을까 사려되어 말씀 드리지만 저는 술과 담배 냄새 맡는 일 조차도 잘 못하며 환각제도 사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또한 보지 않고 듣지 않은 것을 상상해 내며 글을 쓸 수 있는 제주도 없고 그러할 관심도 저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누구에게라도 도무지 저 자신에 관하여 할 말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죽었던 영혼, 죽었던 인생, 늘 죽어있었던 인간이 누구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그 진실이 가 닿을 수 없는 세상의 땅끝에서 자신이 지은 죄로 영원히 갇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을 구제해 주신 은혜와 참 생명의 주님이 친히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그 엄중한 진리에로의 길과, 우리 모두를 향한 그 분의 간절한 사랑을 부족하지만 있는 힘을 다하여 제 육신의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1년여 전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느 거실의 벽난로 안에서 마른 가지 하나하나에 차례로 각각 다른 방향에서 바람을 불어 일으키시며 불을 지펴 붉게 타오르게 하신 후 장차 저에게 다가올 연단을 시사하여 주셨지만 그때까지 성경도 한 번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못했던 저 혼자의 부족한 지혜로써는 그 붉게 타오르는 불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의 상상과 기대를 초월한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난 1년여 기간 동안 나도 모르게 내가 온 세상 사람들의 적이 되어서 사방으로부터 우겨 쌈을 당하며 수많은 영적, 육체적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고립의 상황 속에 놓여있을 때 늘 저는 저와 함께해 주시는 주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날마다 주님은 저에게 말씀과 교회를 통하여 영육간의 강건함을 더하여 주셨고, 시시각각으로 사방에서 나를 향하여 다가오는 위험을 매 순간마다 상상치도 못할 방법으로 막아주셨습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천사들을 보내주시기도 하였고, 여기저기의 나를 겨냥한 위협의 세력들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나를 보호하려는 선한 분들도 늘 제 곁을 떠나지 않게 하셨다는 것도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안타까운 일은 그 분들은 저를 아는데 저는 그 분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일의 시작과 끝의 전부를 아신다는 것 만을 압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가 깊이 잠들어 있던 한 밤중에 갑자기 저를 깨우셔서 저의 연립 2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외부로부터 침입하려는 괴한을 잠결에 물리치게도 하시었고 때로는 갑작스럽게 상황을 변화시키시면서 갈 길을 인도하시며 늘 저와 동행해 주셨고 지금까지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못하도록 저를 안고 지켜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는 지금 저의 열거한 이야기가 허황되게 들리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분 들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렇다면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만큼 슬프고 고통스러운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은 믿으십니까?

 

지금으로부터 이 천년 전에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모든 고통을 온 몸과 마음으로 껴안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다 가신 예수라 불리는 분이 계셨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로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던 그 분은 지은 죄도 없이 가장 외롭고 고난에 찬 삶을 사시다가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의 길을 택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누구도 그 분 앞에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분 앞에서는 이 세상 그 누구도 용서받고 위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 하늘로 올려져서 빛나는 면류관을 받으시고 뒤에 남아있는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승천 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약속은 먼 옛날 이야기책에 나오는 전설이나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어낸 동화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삶이 버겁고 마음이 허전한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내기 위해 지어낸 관념 속의 이상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2천년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셨던 그 약속은 2 천 년이 지난 오늘 이 순간에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2천년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역사하셨던 전지 전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와도 함께 이 곳에 계시며 우리를 통해 이 시대에 강렬하게 역사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진실을 붙들지 않으면 단 한 번뿐인 우리의 삶은 혼돈과 허망한 무로 끝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살아계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삶을 통해 확증해 내야 할 엄중한 현실입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가 값없이 받은 구원은 한 번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 보혈을 힘입어 죽음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끝없이 거듭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영원한 빛과 진리이신 주님에게로 향하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옭아매는 좁고 낡은 시야, 그 좁고 낡은 시야에서 비롯되는 이기심, 우리 자신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교만, 나약함, 탐심, 외부에서 오는 억압과 편견 그 모든 것들을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지셨던 십자가에 날마다 못박으며 새로 태어나는 고통을 인내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회복시켜 주신 우리의 영혼의 눈과 귀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그렇게 소생시켜 주신 지혜로 하나님의 준엄하신 말씀을 분별하고 단호하게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멈추지 말고 길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누구일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참사랑을 세상에 투영하는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전의 우리와 같이 지금 이 순간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되 돌아갈 수도 없는 세상의 땅끝에 망연히 서 있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힘을 내어 위를 바라보자손 내밀면서 그들과 함께 있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곳에는 있는 힘을 다하여 우리가 가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고개 숙이고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간구하는 대신에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앞장세우며 하나님을 한 없이 슬프고 곤혹스럽게 만드는, 깊은 잠 속에 빠져 있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통곡의 눈물로 하나님을 잊고 잠들어 가고 있는 이 세상을 다시 깨워야 합니다.

 

두려웠습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한 진실도 믿지 못하고 아무리 사랑한다고 외쳐도 그 깊은 어둠의 잠에서 깨어날 수 없었던 죽은 영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붙들어 주시는 뒤 늦게 깨달은 그 하나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없어서 한없이 두려웠습니다. 그 끝 간데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토록 우매하고 비천한 한 인간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이해되지 않아서 뒤 늦게 말할 수 없이 두려웠습니다.

 

뒤늦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뒤 늦게라도 깨달은 하나님의 참뜻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진실을 깨달았던 그 때에,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이 세상 사람 모두의 적이 되어 있는 기막힌 현실을 직시하면서 질식할 듯이 두려웠습니다. 아니 우매하고 비천한 인간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막다른 길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으리라는 그 기막힌 사실을 인정하기에 참 많이 두려웠습니다.

 

     정체도 모르게 옥조여 오는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내가 목격하고 들은 진실을 모두에게 증거 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갖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이 저를 더욱 더 한심한 두려움 속으로 몰고 갔습니다. 지극히 우매하고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한 죄 많은 인간에게 맡겨 주신 소명을 다하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두려움이 저를 더한층 두려움 속으로 몰고 갔습니다.

 

더할 수 없는 두려움의 끝에서 비로소 이해된 하나님의 참뜻을 제대로 행할 수 없었던 나약하고 부족한 자신의 실상을 대하게 되었을 때 또한 몸부림치며 두려워했습니다. 그 또한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삶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지극히 어리석은 오만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분별한 나 자신이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의 처음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 말고는 그 어떤 두려움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후로부터 여러분이 저와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우며 용기 있고 무엇보다도 참되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려 애쓰는 여러분들에게 지극히 어리석은 한 바보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참 뜻을 이 세상 끝까지, 이 세상 끝날까지 전하는 일에 함께 동참해 주라시는 주님의 명령과 축복이 임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후로부터 내 인생의 남은 기간 중의 내가 맞는 오늘이 내 평생의 처음 맞는 날이자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일 수도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쁨을 단 한 순간도 잃지 않을 것 입니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함의 기쁨을 통하여 저는 주님의 사랑 안에 비로소 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어느 곳, 어느 상황에 처해 있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느끼고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때, 그 자리가 우리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축복이고 천국입니다. 태초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그 영원한 천국을 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그리고 순결을 우리 모두 끝없이 지켜나갈 수 있기를 간구하면서

 

뉴질랜드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며 유 정애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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