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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자들 속에 활동하는 귀신들의 정체

신자들 속에 활동하는 귀신들의 정체





땅에서는 두 종류의 신자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여 전도하는 사람들과 메시야 예수의 사역과 일치된 전도의 일을 하는 신자들입니다. 이 하나님의 신존을 증거하는 사역을 기점을  가르켜 무신론자냐? 유신론자냐?로 나뉘기도 합니다. 지구상엔 캐톨릭+개신교인이 십억이 넘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실존을 증거하는 신자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야에선 세 종류의 인류가 땅에 존재하는데..1. 무신론자 2. 유신론자 3.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믿고 그 사역에 몸담는  신앙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항상 "유대인(유신론자) 헬라인(무신론자) 우리 형제들,즉그리스도인"으로 분류하여 설교한 것입니다.

종교인이냐? 그리스도인이냐로 나누는 분기점도 이 관점의 근거로 표명한 것입니다. 기독교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는 '종교인'과 '그리스도인'이 함께 섞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둘다 신앙인은 맞습니다. 하지만..예수의 형제인 그리스도인들과 그냥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들로 하나님의 시야에서와 바울의 분별법,그리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분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심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해서 모두가 성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보내신 약속의 성령을 따라 사는 신자는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하나님을 신앙하는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냐면...믿음의 발전정도..신앙의 진전 상태에 따라 드러나는 자연스런 현상입니다...이스라엘에서 난자라도 다 구원을 얻을 것이 아니요..남은 자만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고 확언한 이 바울의 사상은 일맥상통하게 신약성경에 한줄기의 핵심 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요 2:23-25 에서 그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살아계신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적을 보고 그의  믿는 자(believed in his name)들을 산출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의 속을 아심이요..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심으로 그런 신앙인들에게 자기에 대하여 증거를 받으실 필요를 느끼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신앙은 그의 이름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증거하러 다니나 참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열리지 않은... 신앙심인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고 믿었으나 그 말씀에 내포된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인하여 생의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즈음엔 즉시 배반하는 신앙인 것입니다. 생에 어떠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실족하지 아니하는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간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


그래서 요:23-25에 나타난 신앙인과 달리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능력을 수반한 수반한 전도자들을 택하심이 막3:14에 나타나는데

이들은 자기 자신의 제자들로 선택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 '제자들'이란 칭호가 나타납니다. 이들이 참 그리스도의 추종자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받은 축복은 "함께 있게 하심 they should be with him"입니다. 주님과 동행하고 메시야의 사역에 협력자가 되며..주님 안에 거하시는 똑같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해서 선지서에 기록된 메시야의 일을 남은 생에서 성취해 나갑니다.


또 다른 성경기록에서 주 예수께서는 이 관점을 피력하시는데 눅8:26-39절의 사건에서 입니다.

군대 귀신이 들렸다가 나음을 입은 사람이 주님과 같이 있기를 구했으나 허락지 아니하십니다. 단지 그에게 하시는 명령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일일이 고하라(간증하며 전도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을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리라..입니다.


무엇을 시사합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그 간증을 온 지구상에 전파하러 다니는 사람들입니다..하지만,그는 예수님이 메시야 사역을 하는 그 무리에 함류하는 축복은 받지 못하였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지금은 잠시 기쁨으로 신앙하지만,,언제든지 육신의 힘에 버겨울 만큼 환난이나 시험을 만날 때 배반할 여지를 항상 갖고 있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는,이를 가르켜 "뿌리가 없어"라고 하셨습니다. 기반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변동없는 행동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을 다니며,,쉬기를 구하되...얻지 못하고 얻지 못하고 이에 기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하고 와보니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들어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게 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도 더 심하게 되니라."(눅11:24-6)합니다. 

이 말씀하심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첫째. 귀신은 쉴 곳을 찿아 다닌다는 사실

둘째, 청소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그리고 나중에 더 나쁜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찌무라 간죠는, 이 구절에서 의미하는 바는, 타락하여 종교화된 기독교회..그리고 종교적 기독교인들이라고 진단합니다.

계시록에서는 "귀신들의 처소"가 된 바벨론이 나타납니다..이들은 혼합종교입니다. 하나님께 신앙하는 진리와 세속종교에서 믿던 방식의 혼합입니다. 하나님을 신앙한다고 하나 귀신들의 처소가 되어 버렸습니다..그들이 쉬기에 적합한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악령들은 어디에서 쉴 수가 있습니까? 더러운 마음을 품는  영혼 속에서 안식합니다.

악마.,마귀.귀신들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거짓의 아비이여. 위장술에 전문가입니다. 광명한 천사로 위장하기도 하고, 하늘로부터 온 권능으로 위장하기도 합니다. 인간이 악령들을 활동에  완벽하게 속아 버리는 이유는 너무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성령의 활동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을 과거에 따랐으니...무신론자의 정신을 콘트롤하는 영은 귀신입니다.

악령에 의하여 사는 영혼은, 심하게는 정신질환을 겪게 하며..더 심하면 자기의 정신을 콘트롤 할 수 없어서 점유되어 버립니다. 이들이 신들린자요.정신이상자입니다. 이성적인 의지가 굳은 영혼에게는 고민,갈등,생의 회의주의자에 빠지게 하며...육체의 쾌락,,음란,도박,살인,사기, 양심의 부패. 신의를 배반함, 인간과 인간이 서로 서로 피터지게 견해다툼을 벌림...이 모든 것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약령에 의해서 솟구치는 일입니다.


성경은 귀신들의 활동,그 악령의 정체를 자세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악령은 참소자(디아볼로스), 귀신의 왕(바알세블,벨리알) 이라고 합니다. 삼상1:12 에서 "한편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은 벨리알의 아들들(eli were sons of Belial.KJV참조)이라 그들은 주를 알지 못하더라. 합니다. 외향상은,거룩한 신자요.하나님의 공동체에 지도층인사입니다. 어릴적부터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합니다. 하지만,,그들은 주의 어떠하심을 알지 못하더라...로 결론납니다. 그가 가진 지성은, 하나님을 모르고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이방종교의 사제들과 같습니다. 이들의 정신적 후예가 신약시대에 드러난 "육체를 따라 난 자(갈4:29)"즉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종교적 그리스도인입니다.


진실로 악령의 정체는, 악신,더러운 귀신(막4:11) 사탄,마귀,옛뱀,거짓의 아비,능력,점술(행13:16) 세상 권력자의 정신의 지배자(엡6:12) 세상에 모든 정신사상의 지배하는 신(고후4:4) 진리를 의심케 하는 영.탐욕.음란의 영(엡5:3)으로 세상에 나타납니다.

사도요한은 자녀들아 우상을 멀리하라...하였으며..바울 사도는 '탐욕은 우상숭배니라.."하였습니다. 인간의 육체에서 솟구치는 모든 갈망, 욕망,소원함은 귀신으로부터 오는 힘입니다. 탐욕이란..육체를 통해 두 방면으로 가장 드드러지게 나타나는데 혀의 욕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식기를 통해 일어나는 성욕입니다. 그는 음란의 영이요. 주를 위하여 사용해야할 몸을 위해 영양을 섭취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을 그 이상 지나친 입맛의 욕구에 매여 살도록 유도합니다.


영에 충만,영에 점유되어 능력을 행사하는 사역자들에게서 하나님께로서 오신 성령에 의한 능력이냐? 세상 종교에게 임한 그 악령이냐의 분별은 간단합니다. 그 행실이 음란, 육체와 관련된 것을 탐하는 것,,,이 열매(행실)에 의해서 성령의 사역과 악령의 사역자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엔 아무 분별법이 없습니다.왜냐하면.그는 위장술의 전문가이기 깨문입니다.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능력,성령의 역사처럼 포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은사운동,기름부음사역,성령운동을 하는 사역자들도 자가 진단을 하여야 합니다. 성령받았다고 하면서 큰 권능을 행하고 다니는데 왜 내 속엔 거룩함에 이르는 능력은 없는 것일까?..이런 분은 악령을 받은 자역자요.악령에 의해서 조종받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성령세례받았다느니...방언을 한다느니..거듭났다고 .하면서...음란, 세상 것을 버리지 못함,,,이것이 자기 자신이 거룩함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령을 받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내가 보낼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그 진리를 가르침으로 거룩에 이르게 한 것이다...라고 천명하셨습니다.

이 기준에 벗어나는 모든 능력의 역사는 세상 종교에게 내리던 신입니다.


믿는 자의 정신,사상,관념,이성,지성에 영향을 미치는 귀신들의 활동

예수께서 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추종하려는 신앙인을 내치시고 그들의 협력을 거절하셨겠습니까? 왜 예수에 의해서 마음이 청소된 영혼 속에 다 악한 일곱귀신이 들어가 머물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함을 입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을 온전히 입은 상태가 아닙니다.

옛 생활과 새 생활을 번복하고 있는 신자들입니다.


인간의 행동을 규제,통제하는 근원은 어디일까요? 그것은,그의 사상,관념,지성,앎,이성적 판단력,냉철한 정신,에 의해 행동과학적 실행으로 표출됩니다. 행동에 돌입하기 전에, 그 정신적,이성적 판단의 의해서 결단하여 시도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다년간 좇은 신앙인이라할지라도 언제든지 귀신에게 이용을 당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여 그리마옵소서,,,,하자 예수께서는 즉시 "사탄아 물러가라..네가 하나님의 일을 품어 생각지 아니하고..."라면서 책망하십니다. 베드로가 사탄입니까? 아닙니다. 그 속에서 그런 생각을 일으킨 사탄에게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줄곳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에 동의하는 신앙을 가질 수 있느냐? 그 답은 바울이 해 주고 있습니다.

그 경건의  비밀은,"생명의 새로움"을 바탕으로 주를 섬기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롬7:5...육신에 있을 때에...사망을 위하야 열매를 맺게 너희 삶이 허락되었으니...롬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벗어났으니..죽었으니....근절되었고,단절되었으니...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움 that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합니다.

섬기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성경문자와 그성경이 내게 알려준 의식에 따라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매일 매순간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삽니다...


성경이 계시하는 바에 의하면 천성 가는 여정은 초행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치만 매일,매순간...지도하시는 성령을 믿는 자의 안에 넣으사...그 지도하심을 따라 천국에 도착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눈먼 나의 백성을 내가 인도할 터인데, 그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로 인도하겠다.

내가 그들 앞에 서서, 암흑을 광명으로 바꾸고, 거친 곳을 평탄하게 만들겟다.

이것이 내가 하는 약속이다. 반드시 지키겠다."(사42:16)


믿음의 조상,아브라함이 유업을 얻을 땅을 향하여 나아가라고 지시하셨을 때..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것은 대략 방향성은 지정해 주셨지만, 세부적으로 오늘,내일,,하루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지시 받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바로 이 원칙은,,믿음으로 사는 삶이라고 성경에 표명되어 있는데...신약성경의 전체적인 조망에 의하면...믿음으로 사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 신자는. 성령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매일.성령님의 지시를 받아,,,산다는 것입니다..10년 전에 내게 허락한 계시...은혜. 감사..를 의지하여 사는 신앙인은 "의문에 묵은 것을 따라 신앙하는 신자입니다.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롬7:6절 하반)


여기서 in the oldness of the letter 은 원문의 '파라이오테티 그람마토스'입니다. 묵은 것이란, 고대,시대를 뒤짐.의 개념이고, 의문의..이란, 기록, 편지,책,학문,문서,기록된 성경인 그람마.서류..등을 가진 헬라어입니다.

이것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달달 외우고.해박하게 풀어 내어도,, 성령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지침이 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과거에 어느 한 순간,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던 것을 기억하고,,그 추억을 더듬어 신앙하는 사람들을 가르킵니다.

현재에 성령의 공급하시는 은혜가 아닌,, 과거의 주님을 붙들고 섬기고 있는 사람들은,의문으로 주를 섬기는 영혼들입니다. 즉 현재의 인도가 막힌 영혼은,지금 과거에 주님을 추억하고 섬기고 있습니다. 그 고정관념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모든 교리,교의를 수호한다는 보수주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과거에 성경학자에게 깨우치신 진리에 입각하여 신앙하고 있는 것입니다. 헬아어,그람마는 기본적 원칙을 제한하는 범위이기는 하나,,,현제에 새부적인 주님의 인도를 받는 지침은 되지 못합니다..


교회사는, 이 과거에 역사하신 주님에 대한 앎과 현재에 살아계시여 역사하셔서 깨우친 사역자들과의 견해 충돌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루터 당시에 거의 모든 정통 교리에 입각한 신학자들은 루터를 악령들린 사람으로 간주했습니다. 루터의 주장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입니다.  칼빈도 그런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저항에 평생을 부딧혀야 했습니다. 웨슬레도 마찬가지입니다..그당시 정통적 신앙관습,의례.방식을 주장하는 신앙가들에 의해 웨슬레는  추방하였습니다. 찰스피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에 대한 실상입니까? 견해충돌입니다..불가피하게 관점 충돌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부류는 그동안 자기들이 배우고 습득한 정통적 기독교의 신앙을 허물어 드리려는 새 부류에 대한 변호요,반박입니다. 변증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의 길을 알기에 무지합니다. 소셩이요,어둠입니다...이것이 우리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비통히 여기며,, 오직 주께서 하늘로부터 매일 은총의 자비를 베풀어 주기를 간구해야할 이유입니다. 낮아지고 겸비하여 하여져서 매일.매순간, 주님의 은총만 바라보는 참 신앙의 자세입니다

"내가 시온에 기호를 두노니 그를 바라보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하리라."


이 글을 읽는 독자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당신의 주장이 옳단 말인가?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 걸출한 성경학자의 견해를 송두리체 뒤엎는 당신의 견해를 내가 어떻게 신롸할 수 있단 말인가?" 옳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사실이 있습니다. 루터,칼빈, 존번연,웨슬레. 조나단 에드워즈, 죠지뮬러. 찰스피니.앤드류머레이..등의 신앙관에 대해서 배우기는 하였겠지만..100% 안 것은 아닙니다. 그가 전한 메시지의 뜻을 왜곡이해하고 해석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의 말한 것에 대한 진의를 이해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그의 말을 100% 인지하려면,,그의 신앙방식과 100% 동일시되어야 하고,,,당신도 그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앎이 곧 삶의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원천적 바탕이기 깨문입니다.그의 논설이 주장하는 견해를 100%이해하려면,,그를 체득하게 한 신앙의 삶에 동일시되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겉치레로 대충,,,그의 말만 인용하는 신학자들은 칼빈주의도 아니요,,웨슬리안도 아니요....루터주의자도 아닙니다. 그의 고난받는 삶, 부딧히는 저항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난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다,,,라고 자신있게 선언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고정관념, 견해, 이성,지성에 역사하는 귀신들의 활동이 얼만큼 심각한가?

예수께서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내 견해는 사탄이 준 생각이다..하셨듯이..

사도행전 5장에서 베드로 사도가 성령이 충만하여 "아나니아야 어찌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또는, 너희가 어찌 함께 꾀를 내어 하나님의 영을 시험하려하느냐" 라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제가 성령에 충만하여...대화하는 기독교인에게 "당신의 그 견해.그 주장은 귀신으로부터 나온 말이라오."하면 분개하고 욕설을 퍼부으며,,대항합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때. 제법 잘 믿어온 신앙인으로 여기고 있거든요...그런데 어찌 사단의 마음을 가득하게 품느냐? 질타하게 되면....분통을 터트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연유가 나타나는 이유는, 그가 아직 하나님의 성령의 움직이심을 경험하지 못했으며...과거에 일순간 경험했을지라도...현재 하나님의 영에 통제를 받고 있지 않는 삶이라서 그런겁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하나님의 영의 시야가 거기에까지 미칠 줄 상상을 못한 겁니다. 설마..거기까지,,내 맘 속 깊이 감추어진 그 동기까지..살필 수 있을까?  그들은 경험하지 못했으며...영적 세계에 눈먼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사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 지구상에 거주하는 모든 인류의 심사를 살피시는 광대한 지각의 역량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오늘도, 수십억의 인간들의 심사를 살피고 계십니다. 누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무얼 궁리하고 있는지 살피고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대화하시면서....사라가 어떤 맘을 품고 있는지,,아시고 책망하신 분이십니다. 진실로 우린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내 삶이 주님께서 열납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다른 인간들보다,,더 나빠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 실존 자체가 두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할지라도..옛 사람(육체) 와 새 사람(하나님의 생명)이 동시에 합햐져 있는 존재입니다., 세상을 하직할 때 즈음이면,...육체의 장막과 영의 장막이 분리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대 교의 중에는 "자기 부정"이라는 교의가 있는 것입니다. '나 I.AM'를 부인하고 성령의 주시는 견해를 따라야 합니다.

자기 부정에 어느 정도 성과에 이르게 된 영혼이 "지식에까지 새롭게 된 신자"입니다.

이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라고 하며..

생명의 새로움으로 사는 신앙생활의 반복에서 점차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의지.뜻하심에 저절로 순응하는 인간으로 재 탄생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바울은 고후3:18절에서 알려 줍니다."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화하여 거울을 보는 것처럼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이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어떤 요인에 의해서 주님의 형상,,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되어 갑니까? 그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입니다. 주의 영이 매일 매순간 이끄시는 깨닫게 하시는 생수같은 말씀으로 인하여...한번,,두번,,,오늘,,내일,,,십년 ,,,흐르면,,,,하나님의 형상에 이르게 됩니다.

생각하는 것이나...견해나...관점이....하늘 아버지와 일치된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버립니다.


변화는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으로 인해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마탄 로이드 존스 목사도 "현재 셩령의 생수같은 말씀이 공급되지 않는 신자는 , 비정상적이다."라고 설교한 것입니다. 성경에 예시된 그리스도인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졸개인 귀신들이 어디에 역사할까요? 공중에 붕붕 떠다니는 걸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사실은 인간 속에서 역사하고 활동합니다. 모든 인류는 귀신들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인간입니다. 그들의 정신과 마음, 생각,지능, 이성,지각,에 있어서 조종합니다.

청소된 마음 속에 입곱귀신을 데리고 와 안식을 찿았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피로 깔끔하게 청소했으나..빈,공간,무진공 상태에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도 아니고 저 곳에도 아니며..너희 속에 in you 있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은 통치영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번 청소되었으나...그 인간 속에 통치가 없습니다. 빈 집입니다. 자기 땅에 오나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다,,하지만,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를 주셨으니...라는 의미는 메시야 예수를 내 속에 통치자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께서 마음 속에 통치하시지 못하는 신자는 불신자와 같습니다. 모든 삶의 영역이 그분의 통치에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무엇을 사든지..무엇을 먹든지...무슨 일을 벌리든지...예수님의 의지.의도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메시야의 왕국이 그 마음 속에 이루어진 사람입니다.


가끔 귀신들린 자를 좇아 냅니다..하지만...그가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며..다시 자주,,귀신을 좇아내어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것을 전 압니다. 왜냐하면..예수가 주(왕)으로 그 마음을 아직 통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빈집이니,,,다시 인간의 지배자인 영이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메시야 예수님의 사역은 그가 주(왕)로 삼으며 확고히 뿌리를 내리기까지...성령으로 역사합니다. 그 전에는 온전히 치유된 영혼이 아닙니다. 언제든지...세상으로,,,마귀에게로 돌아간 여지가 남아 있는 영혼입니다."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임금)으로 받았으니...그 안에서 (통제를 받으며..) 행하되.....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세움을 입어....믿음에 굳게 서서..."(골:6-7)


옛 속담에 여자가 징금다리를 하나 건널 때마다 골 백번 갈등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이리할까...저리 할까...

신자라할지라도...이게 하나님의 뜻일까...저게 하나님의 뜻일까? 늘 궁리합니다.  이는 덜 변화되어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아무른 갈등이 없습니다..시도하는 일마다 성취를 이룹니다...성취되지 아니할 일은 아예 시도조차 안합니다...이것이 주의 뜻과 일치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실제적인 증명자가 죠지뮬러입니다..그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는 소원은 아예 구하지도 않습니다..


최소한 이 정도는 변화되어야..승천하신 후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기 양떼를 돌보시며,,인도하시며,,,내 자신이 그리스도의 지체로써...현존하게 하신 책무를 인지하게 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항상 그는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위임을 자각하고 살아갑니다.  모든 그리스도의 지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그렇게.그 방식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갈4:28-29에 보면..

육체를 따라 생성된  하나님의 자녀들과 성령을 따라 산출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드러납니다.

이 육체를 따라 난 하나님의 자녀란 어떤 신자들일까요? 그것은 앞서 로마서7:6절에 명시된 "의문..그람마.파라이오테오"에 의해서 신앙하게 된 신자들입니다. 즉 배워서 알게된 신앙인입니다. 육체의 구성요소는, 피,고기덩어리. 두뇌.정신,입니다. 이런 구성요소에 의해 영향을 미쳐서 알게된 신앙입니다.

바울은 그러하기에 다시 롬 8장에서 성령을 좇아 사는 신자와 육체대로 사는 신자들을 보여줍니다. 육체에서 나오는 생각을 좇아 행하는 신자는 사망이요, 영에서 솟구치는 생각대로 행하는 신자는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합니다.

사람의 견해,사상,관점은 평소 생각을 취합한 결정체입니다. 그것이 그의 인격이요, 성품입니다. 정체성이요,자기 자신의 존재성입니다. 무엇을 습득하고 살아왔을까요? 옛 사람이 살던 세계에서 배우고 체득한 결정체가 자신의 견해,관점.사상.사고방식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달라서..."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견해와 옛 사람을 통해 습득한 견해는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7 장에선 두 가지 견해 차이로 극명한 대립을 이룹니다. 한 신앙인은 스테판이라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무명설교가입니다.

대립의 촉각을 내세우는 신자들은 몇 백만명의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공동체에 속한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 이 무명의 설교자가 당신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사실은 귀신들을 섬기고 있다,,,설파한 것입니다..그리하여 마침내 대 공동체에 속한 주류들이 분개하여..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돌로 때려 죽어 버립니다.이들을 이렇게 격분하게 한 설교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할 논점은, 스테판을 돌로 쳐 죽일 수 밖에 없었던 그 무리의 입장을 고려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찬란한 신앙적 문화유산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이삭,야곱,모세, 다윗,솔로몬, 사무엘,다니엘..로 이어지는 신앙관례대로 배웠고.습득했고 고수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며..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사례며...다윗 왕국으로 이어진 전통을 가진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은혜도 많이 받았고 ..하나님으로 인해 이기기도 하고,,각자의 개인적인 삶에서 주님의 보호하심을 늘 체험하며 살아온 신앙인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그동안 마귀를 섬긴 것이며...당신들이 저렇게 위엄그럽게 세워서 섬기는 저 성전은 하나님은 없다..거기에 없다!...입술로 토해 낸 것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선 죽어 마땅한 놈입니다. 죽여 없어 버려야 합니다.


무엇의 차이에서 충돌한 것입니까? 견해차이 입니다..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이렇게 은총을 베푸시고...은혜를 주시던 분인데...니가 감히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평생을 헌신하고..헌금내고,,,죽도록 충성한 이 봉사가 마귀숭배란 말이냐? 분개할만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도 그 당시 전통적인 공동체를 향해 비난을 일관성있게 내 밷습니다. 어떤 날에는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그 교회지도자인 우리까지도 나쁜 신앙인으로 치부하는 셈이 아닙니까? 그러자 에수께서는 더 강도를 높여 살랄하게 비평해 버리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분개심을 억누르며,,,찬스가 오면 널 꼭 죽여버리리라..결심합니다. 마침내 찬스가 왔을 때..그들은 의기투합하여 십자가 형으로 몰고가 버립니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형을 내리기를 주저하는 정권자들에게 압박을 가합니다. "저를 못 박으소서,,,주를 죽이소서..빨리 판결을 내리소서...외쳐 댑니다.


도대체 그들의 입에서..나오는 말은 어디서 기인한 것입니까? 그들의 관점과 다르다는 신앙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배웠고, 알고. 체험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전적 부정하는,, 저 거짓 선지자를 죽여라는 것입니다. 많은 체험도 있고,.정통성도 공인된 신앙방식인데...정통성도 없는 나사렛 시골뜨기 주제에 감히 대다수의 학자가 옳다고 하는 신앙양식을 송두리째 말살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들의 이 관념,견해,이성.지각,에 후원자로 나섭니다. 백 배의 에너지가 발하도록 광분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지원사격이지요..미친놈들처럼 광분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은 그들이 소원하는대로 나사렛 예수는 십자가에서 유약한 한 인간처럼 피를 철철 흘리며...죽어 갑니다. 베드로나..그의 추종자들조차도...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엘리사가 자기에게 조롱하는 동네 아이들을 사자를 명하여 찟어 죽게 하였듯이...막바지에 가서는 예수도 십자가를 부러뜨려 버리고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든지,,하여 다 불살라 버릴 것이란,,상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끝내..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아니하였습니다...그래서 추종자들도 다 버리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확실시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무엇이 감지됩니까? 유대 신앙인들 뿐만아니라...추종자들까지도...그들이 상상하던 메시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그들의 상상이 무엇으로부터 발인된 것입니다. 그동안 성경을 배우고...모태로부터..평생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배워오고 습득한 지식입니다.


완전히 빗나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달달 외우다시피 한 산앙인들의 견해, 관점이 과격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을 아무리 알아도...이성 속에 가득채우고...논리적으로 강론할지라도...하나님의 품에 간직한 뜻하심을 만질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그 성경을 기록하실 때..그분이 다시 내 영혼의 지각에 영향을 미치사,...본래의 의미를 드러내 주셔야만 성경의 기록된 내포된 진의를 깨우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항 구절,한구절,,,성경 전체를 깨우쳐 주시기 전에는 어느누구라도...하나님의 뜻하심에 빗나갑니다. 어긋난 생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된 후..고백하기를 "

이제 다시는 그리스도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다,,합니다. 왜 그가 과거에 하나님의 메신져인 스테판을 죽이는데 선봉장이 되었드랬습니까? 자기가 이성으로 이해하고 습득한 메시야는 그런 분이 아니란 것입니다.. 눈이 감겨 알지 못하였습니다. 소경이요, 귀머거리였습니다.

제가 늘 강조하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이후 지금 이시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신들은 아느냐고요?

어떤 신앙인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땅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답합니다.. 그것은 2000년전에 기록된 성경에 나와있는 사실이며...당신의 이성으로 안 그리스도가 전부입니다. 죄로 오염된 지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고 합니다..2000년 전 갈릴리 바닷가를 거니시던 예수 그리스도,,,그분이 지금 이 시대에도 또 똑같이 그분의 메시야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다른 모습으로,다른 방식으로 섬세하고 완전하게 활동하십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메시야의 남은 사역을 성취해 가고 계십니다,.


육체로 안 예수 그리스도를 기반으로 섬기지 마십시오...2000년 전 죽었던 그리스도를 상상하며.섬기지 마십시오. 그분은 죽었고 부활하셨으며

승천하셨고,,교회의 머리(통치자)가 되셨습니다. 승천 후에 그리스도에 대해서 요한 사도는 계시받아 기록합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같고 눈 같으며,,그의 눈은 불꽃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처럼 우렁차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앞드려져 죽은 자 같이 되매..그가 오른손을 매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나는 알파와 오메가니..

곧 산자 라...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계1:13-19)


사도 요한은 성육신 하셨을 때에 줄곳 동고동락하던 자기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앞에 서자마자 곧 죽은 자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나 위엄찬 모습이어서 이 세상의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강력한 태양 광선 같은그의 얼굴,,,날카로운 면도날 같은 그의 음성,,,폭포수가 쏱아지는 것같은 음성에 위압감을 느껴 순간적으로 인간들은 졸도해 버립니다.

내가 과거에 죽었었노라,,,하지만 이제는 살아나서 이 모습을 줄곳 유지할 것이다..하십니다.


지금 현대 기독교에서 상상하느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마리아에 품에 안긴 아기 예수입니까? 인간의 육체를 덫입고 계신 갈릴리 나사렛 예수입니까?  전 세계에서 재림예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이랍니다.

무엇을 반증합니까? 제도권 정통기독교가 신자들에게 심어준 그리스도 예수..그들에게 각인된 예수는 초림 예수때의 그 모습을 각인시켜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때문에 인간 몸을 입은 예수라는 작자들을 재림예수로 섬기는 기성교인들이 늘어난 것입니다.

아직도 이런 관념,.,이성으로 안 예수를 전파하기에 그치지 아니하기에...가짜 재림 예수들이 활개치기 좋은 분위기가 한국기독교입니다,. 이런 종교 지도자들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 가짜들이 재림 예수라면..승천 후에 예수,,,다시 재림할 때의 모습으로 제게 나타내 보십시오...즉각 저는 굴복하여...주로 섬기겠습니다. 초림 예수의 모습은 영원토록 한번으로 끝납니다..구속할 백성들을 위하여..단 한번..육체를 입으신 그리스도로 지구상에 나타난 것입니다. 속죄사역은 단번에 영원히 끝났습니다.

이제 그분은 계시록 1장에 기록된 모습으로 영원 무궁히 계시며....일곱교회로 예표된 교회시대를 통치하고 계십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해야 합니다..내가 알고 믿고 있는 견해가 성령께서 매일 가르치시는 예수로 관념화되어있는지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그릇된 선입관념으로 신앙하지 마십시오..


남은 자들의 집에서....이 여호수아 목사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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