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나? - 데이빗리목사 요사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책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같으면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냐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눈빛을 줬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인기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사람들이 저마다 갖는 공통된 염려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입니다. 저희 국제성경연구원에서는 2-3개월이면 대부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일일이 면담을 통해서 점검을 해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성 듣는 것에 대한 점검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항이라서 그 점검 내용을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음성 듣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사항을 다음과 같이 공개할까 합니다. 1. 내게 말씀하시는 분은 어떤 하나님이신가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과 얘기를 해 보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아버지의 음성을 들었다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우리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때에 따라선 하나님아버지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음성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성령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음성을 전해 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예수님도 보혜사이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고 계셨습니다.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한계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은 육신의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예수님과 달리 모든 믿는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것과 주님에 대한 것 그리고 천국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바울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계심을 말하였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께서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죄로 인해 성전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 몸은 성전인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올라갈 때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아버지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으며 십자가에서 모든 원죄를 파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자범죄를 깨끗케 하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모든 죄는 주님의 보혈로 용서함을 받을 것이지만 주님의 보혈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당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은,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2. 지금 나는 어디에서 음성을 듣고 있나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속 마음을 다 아십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와 교제를 나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의 형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물론 우리 인간처럼 육신을 가지고 계시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비록 하나님께서 영으로 존재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공기나 연기처럼 그렇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상을 가지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일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사용하고 있는 성구 중 요한복음 4장 24절에 나온 내용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영은 잡히지 않는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이 육체라는 그릇 속에 들어가 있는 무형의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영이시니’라는 구절의 의미를 무형의 성질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여러 군데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등을 봤다고 하지 않습니까(출 33장). 에스겔이 주님의 형상을 봤고(겔 1장), 사도요한 역시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보았습니다(계 4장).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영으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 역시 영적인 기도를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영적인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헌신 역시 영적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모든 것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과 교통을 하는 방법은 우리의 영외에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영이 존재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은 사람의 영역보다는 하나님의 영역에 해당됩니다. 우리의 육신은 육신의 부모로부터 물려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친히 사람을 만들 것을 결정하셨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우리 인간을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하나님은 영으로 존재하십니다.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인 부부만 물려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물려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성령님의 음성은 영의 음성인가요?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가장 혼란스러운 것은, 성령님의 음성이 마치 자신의 목소리처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비슷하다는 말이 어느 정도를 의미할까요? 어쩌면 성령님의 목소리가 사람 목소리와 같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란 말을 사용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성령님의 음성을 천둥소리나 우뢰처럼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목소리가 마치 사람 목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에 마치 자기자신의 소리와 비슷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성령님의 음성을 마치 자기 자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짜로 당신의 목소리입니까?”라고 되물으면 한결같이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 목소리는 그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성령님의 목소리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성령님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그 사람은 보통사람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적어도 그 사람은 정결한 사람일 것이고 거룩한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집중을 매우 잘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영성을 보면 일반 성도들에 비해 훨씬 뛰어난 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의 영은 매우 깨끗하며 맑고 깊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만큼 저들의 영성이 뛰어난 것을 통해서 저들의 영은 성령님의 영에 비해 매우 비슷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처럼 되고자 합니다. 정결과 거룩을 통해서 점점 주님처럼 닮아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주님처럼 똑 같이는 되지 않을지 몰라도 영성훈련을 오래 하신 분들을 보면 주님처럼 사랑이 많고 능력이 많은 사람임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영성이 뛰어난 사람은 성령님의 속성을 매우 많이 닮습니다. 좀처럼 화를 내지도 않으며 쉽게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세상 것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영적인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보통 성도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영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성령님의 속성과 비슷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령님의 음성을 듣다 보면 너무나 자신의 목소리와 흡사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그 음성은 본인의 목소리는 아닙니다. 나는 성령님의 음성과 내 음성을 너무나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내 목소리처럼 낮은 톤이지만 감히 내가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의 깊고 차분한 음성이십니다. 성령님의 목소리 그 자체만으로 위엄이 있으며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 듭니다. 4. 성령님의 음성을 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처음 음성을 들을 때 들은 음성이 성령님의 음성인지 아니면 내 음성인지를 분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입니다. 일단 성령님의 음성이 들리면 그것이 나의 음성인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비슷하다란 생각이 들지라도 자세히 들어보면 분명히 다른 음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님의 음성이 들릴 때 내가 알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 여쭤 보십시오. 성경의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아무 구절을 선택하십시오. 당신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구절이라면 더 좋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구절에 대해서 성령님께 여쭤 보십시오. 그러면 성령님께서 답변해 주실 것입니다. 나는 주로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오는 12지파에 대한 구절을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그곳에 보면 12지파 중 단 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성경주석을 봐도 왜 단지파가 12지파에서 언급이 빠져 있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이유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함부로 이유를 설명하다가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성경주석은 그 이유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성경의 저자이시기 때문에 왜 단지파가 그곳에 빠져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사람들을 점검할 때 그 부분에 대해서 여쭤 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바로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합니다. 성령님께서 들려 주신 음성이라면 그것은 내 지식과 생각에서 만들어낸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내가 만들어 낸 음성은 ‘상상음성’에 불과한 것입니다. 마치 임신하지 않았어도 ‘상상임신’을 통해 임신한 것처럼 느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임신했는가를 점검해 보면 진짜로 임신했는지를 알 수 있듯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지도 그러한 점검을 통해 진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예언을 들어 보십시오. 나의 미래에 대해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몇 시간 후에 내가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들으십시오. 성령님의 음성을 보다 잘 듣는 사람의 경우엔 상당히 미래에 대해 잘 들을 수 있습니다. 나의 경우에도 성령님께서 미래에 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말씀한 내용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지 사건이든지 상관없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정확하게 들려지며 성령님의 음성을 통해 훨씬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다. 어느 주일 날이었습니다.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지금 누가 네 교회를 오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생김새와 나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예배처소는 수많은 상가가 놓여져 있는 한인타운 빌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예배당 앞에 왔더라도 그 사람이 우리 교회를 방문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어떤 사람이 찾아 왔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다 들은 후에 일어난 일이라서 나는 곧바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어서 들어오십시오”라고 말하면서 예배당으로 인도했습니다.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오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모르는 길을 갈 때에 성령님께 종종 묻곤 했습니다. 처음 음성을 들을 땐 잃어버린 물건이나 길을 찾을 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너무나 적중했습니다. 그래서 신바람이 났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은 너무나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예를 들면, “세 번째 신호등에서 오른쪽으로 돌거라. 그런 후에 10분 정도 곧장 가거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장소가 나올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그대로 말씀에 순종합니다. 실제적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할렐루야~ 5. 성령님의 음성을 잘못 들을 수도 있는가? 모르는 길을 척척 찾게 해 주시는 성령님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뭣이든 알려 주시는 성령님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령님의 말씀이 100% 다 맞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의 신발이 없어졌을 때 처음으로 내가 성령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령님은 어디에 가 보라고 하셨고 그곳에는 신발이 없었습니다. 그날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신발을 못 찾아 약속시간에 늦은 것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님께서 내게 틀린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 바로 기도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성령님께 따졌습니다. “성령님, 저는 분명히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왜 틀린 것이죠?”라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말로 내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는 있는 것인가요?”라고 의심이 가득 찬 소리까지 성령님께 들려 드렸습니다. 성령님은 나의 불만 가득한 불평소리에도 아랑곳 않으시고 차분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고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내가 하나님이고 성령님은 요술램프의 알라딘 정도로 취급할 뻔 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나의 불충을 이해하시고 차근차근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100%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님께 들은 내용 중 완전하지 않은 부분만큼 덜 완전한 음성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만큼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지 못한 것만큼 성령님의 음성을 덜 듣는다는 것입니다. 나의 선입견 때문에 정확한 성령님의 음성을 못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비록 내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어도 그 음성이 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님께 전해 들은 내용은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을 사람들에게 전해 줄 때 너무나 기뻐합니다. 물론 음성을 듣지 못한 사람은 함께 기쁨을 취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내게 들려주신 말씀으로 너무나 큰 위안을 받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언자 중에 밥 존슨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더 유명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덜 유명한 예언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분 역시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분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분의 예언은 다른 사람의 예언보다 훨씬 잘 맞추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나의 예언 중 80%만 맞아도 횡재한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갑니까?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서 100% 맞는 것이 아닌 이유를아시겠습니까? 성령님의 지식은 100%이며 완전하십니다. 지식뿐만이 아니라 능력 또한 100% 완전하십니다. 성령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며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성령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100% 음성을 듣지 못하고 100%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처럼 깨끗한 사람은 성령님의 100% 음성에 가까운 정확한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물론 100% 가까운 능력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난 성령님께서 왜 줄곧 나보고 “정결과 거룩, 그리고 집중이니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성령님, 어떻게 하면 큰 능력을 받습니까?”라고 여쭸던 것입니다. 그때마다 성령님은 “정결과 거룩과 집중밖에는 능력을 받을 길이 없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는 음성을 들었을 때였고 아주 초창기 때의 일이었기에 지금처럼 사역이 확장되거나 정리되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성령님께서 주신 말씀을 듣고 그대로 적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월이 지나서 성령님께서 쓰라고 명하신 글들을 보니 다 하나같이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내 입에선 “성령님께서 옳으셨습니다”란 고백만 나오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6. 성령님의 음성이 서로 다르게 들을 수 있나요? 성령사역자들을 훈련할 때 문제로 들어나는 부분은 서로 다른 음성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시키는 훈련 중에는 어떤 사람을 놓고 그 사람에 대한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하거나 환상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사람을 시킬 수도 있지만 훈련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음성을 듣게 합니다. 한번은 장모님에 대해서 여쭤 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훈련자들은 내가 장모님에 대해서 물어보라고 한 줄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도 내가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마치 ‘스무고개게임’과도 같은 것입니다. 20번의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 맞추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가 하는 훈련은 20개의 질문은 고사하고 단 한 개의 질문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성별도 모릅니다. 이름도 안 가르쳐줍니다. 직분도 모르고 성격도 모릅니다. 그냥 모른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자들은 그 어떠한 지식이나 감정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 여쭙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훈련을 시킵니다. 그런데 놀랍게 모든 사람이 공통된 내용을 받습니다. 일단 성별이 다 맞습니다. 직분도 다 맞습니다. 현재 그 사람의 영적상태도 다 맞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맞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내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습니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확하게 맞습니다. 한두 명이 맞았을까요? 아닙니다. 그곳엔 12명의 훈련자가 있었고 12명 모두가 다 같은 내용을 말했습니다. 그러한 훈련은 단 한번에 끝나지 않습니다.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발표를 합니다. 그러면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머리카락 수가 똑 같기를 원합니다. 키가 160센티미터로 똑 같아야 같은 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직분이 안수집사 몇 년째인 것이 똑 같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것은 혼적인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혼적인 개념으로 영적인 개념을 정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성령님의 음성이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좀처럼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부분은 이러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지금 그 사람이 좌절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나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당신은 아직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그만큼 당신은 세상에 쏙 빠져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눈으로 내 글을 읽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당신 머리로 내 말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당신 앞에는 향기나는 커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음악소리가 분위기를 잡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중단하시고 침묵 속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얼마나 세상에 깊게 빠져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것은 그러한 것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곳이 영적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영적인 세계입니다. 성령님의 음성 또한 세상적인 음성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영적입니다. 영적인 음성은 세상적인 수치나 개념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주택복권 번호를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사람들이 즐겨 하는 농담스런 소리도 아닙니다. 물론 세상적인 수치나 개념이 필요할 때는 언급해 주실 수 있지만 대부분의 성령님의 음성은 영적인 음성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때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 고통 속에 있습니다”라고 말을 했지만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지금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고통’이라는 단어와 ‘재정적인 어려움’은 분명히 틀린 단어이지만 영적으로 이해하면 같은 내용입니다. 아직도 이 개념이 정리가 안 된다면 분명 당신은 세상적인 사람입니다. 마음이 아픈 것을 마음에 상처가 있다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주님 없으면 나는 죽습니다’라는 극단적인 다른 표현으로도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른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단어가 틀리다는 이유로 성령님의 음성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저는 음성을 잘 못 듣는가 봐요”라고 좌절감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 “목사님, 저는 마귀의 음성을 듣는가 봐요”라며 자신을 마귀에게 내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다 세상적인 개념으로 영적인 것을 정리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혼적인 것이 영적인 것보다 위에 있을 수도 없으며 혼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대신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이 서로 다르게 들려지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방언통변을 할 때에도 통변자들의 통변내용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고 완전히 내용이 다른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바라볼 때 모두 같은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통변을 할 때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방을 위한 것입니다. 그 사람을 치유하기 위해서 방언통변을 하는 것이지 통변능력을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통변을 통해서 치유가 일어납니다. 보통 방언통변을 하고 치유의 과정을 밟으면 30분에서 1시간 이상 소요됩니다. 그 과정에서 상처나 질병이 치유되고 영적회복을 얻게 됩니다. 통변의 궁극적인 목표가 상대방에 대한 치유이기 때문에 통변의 내용은 양방통행으로 일어납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향한 말씀도 함께 드러납니다. 그러면서 그 사람의 현재 처한 영적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됩니다. 통변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통변은 그 사람의 긍정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어떤 통변은 그 사람의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도 합니다. 또한 그 사람의 상처부분이 주로 언급되는 것도 있고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죄에 대한 언급의 부분만 보더라도 너무나 광범위합니다.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 지은 죄에 대한 죄가 지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에게 지은 죄나 친구에게 지은 죄도 있지만 하나님께 지은 죄가 지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처에 대한 것만 살펴봐도 너무나 광범위해서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자꾸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좋아하고 귀에 들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것만 것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방언통변을 하면서 치유를 하다 보면 어느 한 사람도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너무나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들로 뒤얽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을 어린아이들 장남감처럼 간단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복잡하게 만들어졌고 복잡한 감정으로 뒤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 또한 복잡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10사람이 그 사람에 대한 음성을 들으면 각각 다른 부분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내용이 들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에 당신에게 성령님의 음성이 다르다는 것에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즉시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조차도 마귀가 가져다 주는 의심입니다. 오히려 이런 불편한 마음을 빨리 버려야만 더 깨끗하고 더 정확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7.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이신가? 성령님의 음성은 영적인 음성입니다. 성령님의 음성은 무당의 음성도 아니며 점쟁이처럼 정답을 가르쳐 주는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인격체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과 음성을 듣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성령님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많은 성령사역자들이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때 점쟁이에게 묻듯이 합니다. 자신에게 뭔가 필요할 때만 성령님께 묻습니다. “오늘 치유집회에서 몇 사람이나 나을까요?”라든지 아니면 “오늘 치유집회 때 어떤 환자들이 낫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물론 성령님의 대답을 듣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없습니다. 마치 부부가 밥을 먹고 잠자리에 같이 누워 자면서도 하루종일 인격적인 대화가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캐터린 쿨만 여사가 집회를 할 때 갑자기 침묵했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우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쿨만 여사는 모든 음악소리를 멈추라고 명했습니다. 합창단 소리도 없앴습니다. 오르갠 소리도 없앴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회중에서 “조용히 하십시오”라고 정중히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고요했습니다. 그런데 쿨만 여사는 “제발 조용히 하십시오”라고 간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제발,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쿨만 여사가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쿨만 여사는 성령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쿨만 여사는 성령님께서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은사를 사모하여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병을 치료받기 위해서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너무나 절실한 마음으로 원합니다. 그런데 정작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 자신이 얼마나 은사주의이고 비인격적인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나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한 사람이 제대로 성령님과 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을 좀처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을 찾기도 힘들지만 성령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기란 그야말로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하십시오.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한다고 당신에게 뭔가 뚝 떨어지는 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매우 기뻐하십니다. 당신이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에요… |
출처: 한국교회부흥운동본부 원문보기 글쓴이: 데이빗리 목사
'자유게시판(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대한민국반공청년단 == "긴급공지" 결자돌진 !! (0) | 2025.02.10 |
---|---|
[스크랩] 예수 믿어도 지옥 가는 이유들 (0) | 2025.02.10 |
666 보다 중요한 2가지 (0) | 2025.02.06 |
[스크랩] (자녀가 있다면 더욱, 꼭 읽어보세요) [사탄의 표] "제가 죽은 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너무나도 중요한 메세지" 외 (펌) (0) | 2025.02.06 |
나라를 망조로 몰고가는민주당의 행태......... (0) | 2025.0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