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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설교·6/장죠셉목사님

[스크랩] (성령 22회)ㅡ성령님과 관계에서 얻은 체험들ㅡ

22회로 "성령님과 나"라는 제목의 말씀이 오늘로서 끝납니다. 그동안 읽으시고 성령

  님과 관계를 잘 유지하여 칭찬받는 회원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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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정오 즈음에 그가 장막문에 앉았다가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몸을 땅에 굽혀 가로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소서.(창18:1~8)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의 특성과 성품이 은혜와 능력은 같은 차원으로 사는 자에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느끼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이러한 영적인 체험은 삶을 바르게 인식시켜 주고 성숙된 경우에는 신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함에 유익을 줍니다. 체험의 결과로 자신이 하나님을 인격적인 분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내 안에 계심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와의 관계요 ‘사랑의 교제’라 합니다. 이러한 교제는 현실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황홀감, 마음에 깊은 평화, 심령에서 생수가 넘치는 것처럼 기쁨이 올라옵니다. 웃음이 터지고, 자유함이 감사로 변하는 등, 4차원의 기도에서 체험하는 은사입니다.

 

1. 다니엘의 체험

 

정월 24일에 내가에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고, 그 몸은 황옥 같고, 그 얼굴은 번개 빛 같고 그 눈은 햇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단10:4~6)

 

다니엘의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은 보지못하고 다니엘만 하나님의 사자를 보았습니다. “인자와 같은 이를” 보았고(16)....보지못한 사람들은 “떨며 도망하여 숨었습니다(7). 다니엘은 ”내 몸에 힘이 빠졌다“ 하였으므로(8). 다니엘에게 온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장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다니엘은 그전에도 사자굴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의 천사들로 도움을 받았습니다(단6:22). 이러한 체험들은 다니엘은 하나님과 같은 차원의 삶으로 생활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단6:10)

 

2. 세 사람의 체험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단3:25~27)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셋은 평일보다 7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 가마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느브갓네살 왕이 결박되지 아니한 “넷째 사람이”....“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다”했습니다. 그러면 넷째는 누구입니까?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자요 다니엘에게 왔었던 것처럼 천사장 중의 하나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세 사람이 이러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들의 삶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1장에서 보면 왕궁에서 나오는 진미나 포도주를 피하고 채식과 물을 요청한 것으로 볼 때 그들은 하나님과 같은 차원의 삶을 살았기에 같은 차원에 있는 하늘의 사자들과 함께 불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3. 엘리야의 체험

 

엘리야가 50부장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너희 50인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로서 내려와서 저희 50인을 살랐더라.(왕하1:10,12)

 

엘리야의 입에서 말 한대로 하늘로서 불이 내려서 두 번이나 그들을 태웠다는 내용입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받은 영감으로 말할 때마다 그대로 되어졌습니다. 사르밧 과부의 가난을 면하게 하였고,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까마귀를 통하여 먹을 것을 공급받기도 했습니다. 또 갈멜산에서는 하늘로서 불이 내려게 하여 여호와가 살아계시는 하나님임을 입증시키고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을 죽이게 했습니다. 그러한 영적 사람이지만 이세벨이라는 독한 여인의 위협을 피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탄원한 탓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판단의 잘못으로 후계자 엘리사를 배출시키고 사역을 끝낼 때는 요단강물을 가르고 건너가서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도 하나님의 원하는 차원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4. 엘리사의 체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7)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였습니다. 다른 50명이 보는데서 강물을 가르는 특별한 능력을 체험한 사람입니다(왕하2:14). 결실치 못하게 하는 물의 근원을 바꾸는 체험을 했습니다(왕하2:22). 두 아들이 채무로 끌려갈 궁지에 빠진 가정에서 기름과 밀가루가 불어나는 체험을 했습니다(왕하4:1~).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체험도 했습니다(왕하4:34). 하루는 독채소를 끓은 국솥에 넣으므로 죽게 되었을 때도 해독시키는 체험을 했습니다(왕하4:29~). 아람 장군 나만의 문둥병을 치유했습니다(왕하5:14).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체험을 했습니다.(왕하6:17~)

 

5. 선진들의 체험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변명치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도다(히11:33~37). 그들의 영적체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기쁘시게 하는 하나님과 같은 차원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6시더라.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행10:9~10)

 

욥바의 피장이 집에서 베드로가 기도할 때에 일어났던 내용입니다. 영의 기도는 기도자에게 신비의 체험을 선물로 주십니다. 영의 세계는 기도자의 현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체험하게 합니다. 영의 기도는 기도자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중재역할입니다. 육체가 자신의 신경계통을 통해서 접촉한 음식이나 다른 사물의 맛을 전달해서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것처럼, 영혼도 접촉한 대상으로부터의 특성, 정보를 기도자에게 전달하여 줍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영의 기도는 자신과 하나님이 내면의 차원에서 하나가 되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하신 말씀에 비추어볼 때에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라면 이러한 체험을 할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약속을 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요15:7)

 

6. 베드로의 체험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거든 나를 명하여 물위로 오라하소서 한 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 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14:28~30)

 

베드로가 물위로 잘 걸어가다가 왜 빠지게 되었습니까? 걸어감과 빠지는 교훈은 이러합니다. “주시어든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하소서”라 할 때는 예수님이 물 위로 걸으시는 같은 차원이 되겠다는 말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라하고 베드로는 물 위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하셨음에도 베드로는 바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무섭지 않았는데 베드로는 무서웠다는 의미는 예수님과 같은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차원일 때는 물위로 걸었으나 바람을 보는 차원에서 빠져내려 갔습니다. 이러한 베드로가 성령으로 거듭난 후로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걸어가고 뛰어가게 하는 체험을 했습니다(행3:7~8).

 

거짓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능력으로서 속이는 아나니아 부부를 죽게하는 권능을 체험했습니다(행5:1~). 어떤 병자라도 베드로의 그림자가 덮쳐도 나음을 받는 체험도 했습니다(행5:15~16). 두 번이나 옥에 가두어졌을 때 천사가 이끌어내는 체험도 했습니다(행5:20,12:7~). 가이사랴 고넬료의 집으로 가기전에 영의 눈이 열려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려지고, 성령의 지시를 받는 체험도 차원이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7. 빌립의 체험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핼8:5~6)

 

일곱 집사중에 한 사람인 빌립은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사마리아로 피신했지만 자신을 숨기려하지 않았습니다. 니골라 같은 사람은 은둔자가 되었으나 빌립은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들어냈습니다. 한 성에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행8:8). 귀가 열리고 성령의 지시를 듣게 되었습니다(행8:16). 가사까지 가서 내시에게 그리스도를 알릴 때에도 성령의 음성을 듣는 체험을 하였고(행8:29), 공간 이동을 체험하는 기쁨도 있었습니다.(행8:39)

 

빌립이 이러한 영적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같은 차원의 삶이었다는 것은 그의 가족을 보아서 안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바울의 일행이 두아디라에서 돌레마이까지 배로 왔습니다. 돌레마이는 갈멜산 북쪽에 있는 항구도시입니다. 그리고 가이샤라는 갈멜산 남쪽에 있으며 당시 로마집정부의 도시입니다. “이튿날 떠나 가아샤라에 이르러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행21:8~9). 동료 스데반을 죽이는데 넘겨주고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성도들을 체포하려 다니던 원수인데도 빌립은 원수로 대하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동역자로 대하고 집에 머물게 하는 배례는 빌립의 삶이 예수님과 같은 차원임을 증명해 줍니다.

 

8. 바울의 체험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고후12:14)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고 기절했을 때에 그의 영은 셋째하늘 시온(Σίον) 까지, 그리고 연단장(βήμα)까지 체험한 바울의 경우는 대단했습니다. 구브로 섬 바보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로막던 바예수라는 사람의 눈을 멀게하는 체험을 했습니다(행13:11). 루스드라에서는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걸어가는 체험도 했습니다(행14:10). 눈이 열리면서 환상중에 유럽으로 오라는 체험도 했습니다(행16:9). 빌립보에서는 점치는 여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낸 일로 인하여 감옥에 갇히었으나 지진으로 옥터가 흔들리면서 착고가 풀려지는 체험도 했습니다(행16;26). 에베소에서는 희귀한 능력을 체험했습니다.(행19:11)

 

바울에게 이러한 능력이 나타나는 근원은 그가 주의 일에만 전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차원의 삶을 살았기에 성령님이 활동이 그의 몸 밖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에 대하여 “관제와 같이 벌써 부음이되고 나의 달려갈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그는 죽는 날까지 오직 복음만 전하는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같은 차원의 삶입니다.

 

9. 요한의 체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1:10~)

 

요한 사도는 겸손한 사도요 사랑의 사도로 전해집니다. 다른 사도들의 행적은 소상히 밝이면더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아니하고 항상 “다른 사도”라는 말로 자신을 들어내지 않는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그의 영적체험을 찾을 수 있으나 특별히 요한계시록만큼 특별한 체험은 못됩니다. 하늘문이 열리면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명령을 듣고 하나님의 보좌앞에까지 올라가는 체험을 했습니다.(계5:1~) 그 후로 계속해서 장차 지구상에서 되어질 대환난의 장면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영원한 축복은 물론이요, 예수님과 같은 차원으로 살았던 성도들이 들림 받아서 어린양의 신부가 되어지는 체험도 했습니다. 하늘의 장로들과 네 생물들, 그리고 천군 천사들의 찬양과 마지막 심판에서 만물이 어떻게 되어질 것까지의 큰 체험을 하였습니다.

 

요한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야?”(요21:22) 약속 한바가 있었습니다. 요한 사도가 이러한 약속과 함께 큰 영적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과 같은 차원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의 체험들은 모두 다 하나님과 같은 차원에서의 삶으로 생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체험들은 그들에게만 국한되지 아니하고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삶과 같은 차원의 삶을 살면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순서적으로 이루어지는 체험은 귀가 열리고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 후에 눈이 열려서 천사들을 보는 체험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특성대로 하나님의 은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 곧 예수님이 살았던 삶과 같은 차원으로 살아가는 성도라야 영적기도가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연합을 이루려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러한 삶은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중재자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그 사랑의 분량만큼 은사로 주십니다. 그 은사는 성령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아멘-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 장죠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