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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2/666짐승의 표·4

베리칩 미래

베리칩 미래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TV를 보다가 다른 방송을 보고 싶으면 TV 앞으로 가서 채널을 ‘돌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전화를 걸 때도 누르지 않고 돌렸죠. 소풍 사진을 찍은 필름을 사진관에 맡겨놓고는 ‘사진이 잘 나왔을까, 초점은 잘 맞았을까’ 이리저리 생각하며 며칠씩 기다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주말에 라디오 순위 프로그램에 마이크나 녹음기를 가져다 대고 테이프에 녹음해 듣는 게 흔한 일이었죠. 뭐 그렇다고 제가 시골에 산 것도 아닙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서울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리모컨 하나만 있으면 편하게 누워서 모든 전자기기를 움직일 수 있고, 사진도 찍는 동시에 볼 수 있고 뽑을 수 있죠. 노래나 영화는 MP3 파일로 내려받아 언제 어디서든 선명한 음질과 화질로 즐길 수 있죠. 예전의 ‘기다림’은 이제 정말 먼 나라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기술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처음 컬러TV가 나왔을 때, 그리고 ‘비디오’가 나왔을 때 느꼈던 신기함이나 감동(?)을 말하면 이미 노인 취급을 받는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먼 얘기도 아닙니다. 기껏해야 30년도 안 된 일이니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이러한 기술 발달의 든든한 후원자는 반도체입니다. 좁쌀만한 크기의 반도체 하나에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엄청난 양의 기능을 넣을 수 있습니다. 어떤 기술이 어떻게 발달하고 있는지 일일이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들 잘 아시는 내용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은 그러한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어떤 기술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 베리칩(VeriChip)을 아십니까? 정보기술(IT)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은 많이 아실 걸로 믿습니다. 베리칩은 사람의 피부에 이식하는 생체칩을 말합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4년 정식으로 승인한 인체 이식용 칩이죠. 이 칩을 만드는 회사 이름이 베리칩이죠. 베리칩은 주사기를 통해 몸 안에 이식할 정도 작지만 그 안에 메모리와 무선 송수신 장치가 들어있습니다. 주로 의학 분야에 활용되는데, 예를 들면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이식해 놓으면 환자가 집을 못 찾고 길을 헤매고 있어도 무선 송수신 장치를 통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몸속에서 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를 정기적으로 체크해 위험을 알려주기도 하죠. 애완견에게 이식해 놓으면 애완견이 집을 잃어도 주인을 찾아올 수 있죠. 뭐 당연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성범죄나 아동학대 전과자 등과 같은 전과자들에게도 이 칩이 이용된다고 합니다. 칩을 통해 이들의 움직임을 파악해 제2, 제3의 범죄를 막기 위한 것이죠. 멕시코에서는 기밀 정보 접근권을 가진 법무부 직원들에게 이러한 생체칩을 의무적으로 이식했다고 합니다. 이 역시 혹시 있을지 모르는 기밀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한 목적입니다.

이렇게 생체칩의 활용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나 남용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위치 추적이 가능해지고, 개인의 정보(이름과 주소 혹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등등)를 단말기 하나로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개인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은 물론 이를 이용한 범죄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경제주간 비즈니스위크는 최근 베리칩 논란에 대한 데이비드 홀츠만의 글을 실었는데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서구 네티즌 사이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홀츠만은 미래학자이자 안보전문가로, 이 글에서 생체칩 이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 간략하게 홀츠만의 기고문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베리칩은 손쉽게 인체에 이식할 수 있고 거기에 담긴 정보를 식별해낼 목적으로 주로 쓰인다. 또 그렇게 많은 정보가 담기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칩은 상당한 위험성을 갖고 있다. 먼저 건강 문제다. 사생활이나 보안 문제는 놔두고라도,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생체칩을 이식한 실험실의 동물에게서 종양이 발생했다. 사람에게도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사생활 침해 문제다. 베리칩사에서는 16자리 숫자 수준의 정보만 담긴 칩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주장하지만, 충분히 위험하다. 이게 확대되면 미국인들에 대한 ‘인식표’ 정보가 베리칩사에 저장돼서 마치 ID 카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누구나 무선 판독기로 이런 정보를 읽을 수 있다. 해킹이나 오용 문제도 있다. 베리칩사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조심성 없는 직원의 실수로 정보가 유출될 수 있고 본래 용도와 관계없이 정보가 악용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사회적 동의 문제다. 멕시코 법무부 관계자들의 경우 ‘의무적’으로 칩을 이식해야 했다. 칩 이식이 초기 단계인데도 이런 경우가 벌써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일부 병원의 신생아들, 군입대자들, 이민자들에게도 생체칩을 의무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라식 수술이라든지, 레이저나 초정밀 수술기구를 이용한 국부 심장수술과 같은 것들은 처음에 부자와 권력자들에서부터 그 혜택이 시작됐다. 그런데 생체칩은 그 반대다.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 약자들을 상대로 시술이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근본적으로, 이 기술이 원래의 순수한 목적으로만 쓰일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이유로든 이 칩이 사람들에게 퍼지고 나면, 이렇게 해서 모아진 인간정보가 최악의 상황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생체칩 이식은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지 ‘의무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위스콘신 주가 지난해 의무적인 칩 이식을 법률적으로 금지한 것처럼 말이다. 생체칩처럼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기술을 도입할 때는, 반드시 그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나를 믿어도 돼”하는 말을 믿고, 무조건 도입할 수는 없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