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적 요소 버리고 뼈저리게 회개하라
우리는 흔히 자신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면 한이 맺혔다고 한다. 맺힌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나쁜 것이다.
한이 맺혀다는 것은 운수가 나쁜 것이고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삶에 있어 한을 풀 수가 없으면 그 한을 체념하고 삭이려고 애써온 것이 우리네 정서이다.
그러니 한을 풀어 준다는 것은 그 평생의 소원을 풀어 주는 것이요, 이 맺힌 것을 풀어 주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말하는 한풀이다.
이 한을 풀어야 사람은 죽어도 눈을 감고 죽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맺힌 한을 풀지 못하고 죽으면 죽은 자의 영혼은 저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원을 풀려고 한다.
옛 조상들은 영혼은 저승으로 들어가야 안식을 얻고 조상으로 숭배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에서 자기의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욕망을 이루지 못하고,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죽으면 그 영혼은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수비니 영산이니 하는 귀신들이다.
원래 사람이 자신의 수명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 영혼은 저승에 들어가 그 후손을 보살필 능력이 생겨 후손에게 제사를 받으며 추앙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승에서 비명횡사 하거나 원통하게 죽으면 그 영혼은 저승에 들지 못하고 이승에 남아서 그 후손을 돕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하여 나타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귀신이다. 대략 우리나라의 귀신들을 살펴보면 물에 빠져 죽으면 수살귀, 불에 타 죽으면 화살귀, 총 맞고 피 흘리며 죽은 수비, 애났다가 간 해산수비, 처녀가 죽으면 손각시, 총각이 죽으면 몽달귀, 비명횡사하면 영산, 죽어서 떠도는 상문, 말명, 어찌 보면 모두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채우지 못하고 죽은 가엾은 영혼인 것이다.
한이 맺히다는 것은 이처럼 가엾은 것이요, 슬픈 것이다. 이 맺힌 것을 삭이며 풀어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 우리의 민속신앙인 무속이며 굿판이다. 한을 푸는 것은 삭이는 것이요, 소원을 풀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 이면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망자를 위한 한풀이야말로 바로 자신의 안녕과 기복을 위한 셈이다. 이것이 바로 무속신앙의 본질이다.
일제의 철저한 말살정책으로 스스로 우리 문화를 천하게 여겼다. 그 결과 조국 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새마을운동이라는 경제성장위주의, 근시안적인 정책은 고유문화와 전통의 맥을 단절시켰다.
무속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였고 혹세무민의 대명사로 지목함에 따라 무속신앙은 이 땅에서 그 맥이 단절되었다. 마을마다 동제가 사라지고 사당이나 성황당이 헐렸다.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이 풍요로워지면서 사람들은 빠르게 서구의 문화에 휩쓸려 들었다. 우리의 교육 또한 동양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보다는 무분별한 서구 사상의 주입으로 오히려 우리 것이 더 낯설고 어색해졌다. 한마디로 말하여 구심점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재물·권력을 탐하는 한국교회
어찌 보면 이런 사회적인 격동기에 새로운 구심점으로 발전하고 부흥한 것이 바로 기독교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인의 한의 정서는 초기 기독교가 이 땅에 정착하는데 있어 도전과 응전의 양상이었다. 기독교가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고 그 한을 같이 공유하며 떡을 함께 나눌 때 한국교회는 고난의 십자가 아래 결속하여 출애굽의 행진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교회는 진정 이 땅의 빛과 소금이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권력을 좋아하고 권력에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것과 손을 잡고 정치적으로 협상하며 신사참배를 결정하고 위정자와 결탁하는 순간 교회는 분열하고 부패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교회가 가진 자와 부리는 자의 입장에 서서 가난하고 눌린 자를 위하기보단 세속적이고 재물을 탐하여 어리석은 기복 신앙으로 옷을 갈아입은 무당 종교로 변질되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전락하였다. 외적인 성장이 놀랍도록 증가하였으나 초기 순수했던 기독교의 복음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식물이 토양과 기후에 따라 이화될 수 있듯이 문화나 사상 종교의 전파에도 마찬가지로 일정한 토양과 기후가 필요하다. 다른 나라와 비해 독특한 새벽기도라든가 금주, 금연, 열성적인 신앙의 모습은 독특한 우리만의 기독교 신앙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열성이 이기적인 데 목적을 둔다면 무당 종교로 흐르는 것이요, 산기도, 부흥회, 병 고침 같은 무속적인 요소에다 재물의 복만 강조하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변질할 것이다.
기복 신앙은 원래 무당에게 복을 비는 데서 출발한다. 신으로부터 물질적으로 자기가 축복을 받고 무병장수하고 아들, 딸 많이 나아 행복하게 살고자하는 염원이 바로 무속 신앙이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는 무속 신앙과 무엇이 다른 건가?
기독교는 무속 신앙과 정반대로 신이 인간의 요청을 부정하면서 부정한 그 자리에 다른 의미의 축복을 주는 종교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병이 없어지고 고난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성서가 증거하는 신앙의 참 뜻은 십자가와 함께 세속적인 기복 신앙이 부서지면서 부활과 함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말한다면 기독교는 인간의 뜻이 꺾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기복 신앙이 아니라 계시 종교인 것이다
인간이 요청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써 허락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축복이 바로 기독교다. 인간의 물질적인 요구가 충족되지 않고, 현실적으로 고통이 해결이 되지 않아 고난이 따른다 하여도 차원 높은 기쁨이라는 정신적인 욕구의 만족이 바로 축복인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 갈릴리에서 복음을 선포하였을 때 사람들은 그를 세속적인 메시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맥없이 죽어갈 때 그들의 기복 신앙은 무참하게 깨져버렸다.
샤머니즘적 한국 기독교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한마디로 말하여 십자가 이전의 신앙이요, 무속적이며 샤머니즘의 신앙이다. 노래와 춤과 축제와 흥겨움은 방언과 손뼉 치는 찬송과 자유롭게 아멘을 말하고 할렐루야를 소리 지를 수 있는 생동감이 있어 좋으나 결국엔 병 고침과 재물의 복을 비는 재수굿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신오순절 교회운동은 성령을 성부와 성자로부터 때어내어 무속적인 종교화를 가져왔다. 결국 이들이 지향하는 삼박자 축복은 무제한적인 물질적 축복으로 지향되었고 가난하고 무기력한 민중들에게 새로운 성공의 꿈을 불어넣는 무속적인 기복 신앙으로 변질된 것이다. 성령운동이 물질적 세속주의와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기복 신앙으로의 변질된 것이다. 성령의 힘으로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힘의 과시이다.
삼위일체의 올바른 이해의 문제와 함께 십자가를 통한 올바른 성령의 이해 없이 무속적인 성령운동은 지양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빛 아래에서만 올바르게 성령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기복 신앙으로, 성령을 도깨비 방망이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복 주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었고 교회란 무진장 복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놓았다
유독 국내에서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범람하고 신도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너무나 손쉽게 값싼 축복을 바라는 싸구려 신앙 때문이다. 혈육의 축복, 개인의 안위를 찾아 무당의 축복을 따라가는 무당의 제자들 때문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양적으로 팽창하고 부흥하였다지만 내면적으로 종교적인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무속신앙과 별반 달라진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입술로는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현실적인 축복을 바라는 모습이 바로 오늘 한국 기독인의 본 모습이다. 역설적으로 종말론적이고 하나님나라를 전파해야 할 목회자들이 현실적인 축복에만 매달리고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하여 복을 비는 무당의 모습으로 전락하였다.
사실 한국의 대형 교회나 중상류층의 교회는 예수의 말씀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신자들에게 있어 종교적인 신앙은 그들에게 있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종교란 하나의 액세서리이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시켜주는 자리일 뿐이지 십자가의 고난이나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무관한 뿐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현실의 복을 구가하며, 죽지 않는다면 천당보다는 이승에서의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왜냐하면 과연 사후에 천국이 존재하는 야의 문제는 믿음만큼이나 불완전하기에 신이 허락한다면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에 살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이나 가난한 이웃과의 동참은 참으로 괴로움이다. 이들은 서로 유유상종할 수 있는 인맥들로 형성하여 자신의 범위 안에서만 서로 사랑할 뿐이다. 이들에게 있어 이웃이란 교회 태두리 안에서의 문제일 뿐이지 거창하게 인류애와 사회구원이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세속적인 목회자들이 가장 큰 문제
그러나 사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세속적인 목회자들이다. 오늘날도 가난과 압제로 고달픈 삶을 살고, 부하고 세력 있는 사람이 걸어가는 강포의 길을 걷지 않으며, 주의 공정한 판단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아니하고 주의 길에 굳게 서서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목회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윤리 부재와 소명의식이 사라진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진리와 생명의 증거를 보여주며, 항상 교만을 경계하고 겸손과 순종으로 일관하는 목회자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천하고 상스러운 말로 강단을 더럽히거나 성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었음에도 오히려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오만 방자하게 하나님의 종을 자처하며 신자들을 질책하고 있다.
신사참배로 하나님을 부정할 때 한국의 기독교는 그 영성을 소멸하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 하나님 대신 일본의 태양신을 모시던 후예들이 이제는 권력과 야합하여 초대형 교회를 세우고 그 자리에 하나님 대신 재물을 채우고 있다. 영구적인 집권을 꿈꾸는 독재자처럼 담임목사 연장이나 일삼고 교회를 사유물인 양 자식에게 세습하려는 잘못된 지도자들의 작태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양들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교회를 사수한다는 명목으로 신사참배를 드렸던 배교자들이 이제는 성조기 밑으로 숨어 들어와 반공을 부르짖는다. 권력자의 조찬기도나 드려주더니 이제는 수구 세력과 연합하여 권력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물론 그들도 초창기엔 누구보다도 열성이었고 열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시퍼가 타락하여 사탄이 되듯이 이들이 본연의 자리에서 벗어나 점차 하나님의 자리로 이동함으로써 한국의 기독교는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어쩌면 이들이야 말로 기독교의 탈을 쓴 박수무당이다. 기독교의 옷으로 갈아입은 무속들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는 무속적인 기복 신앙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뿌리로부터 썩어 들어갈 것이다. 값싼 축복을 값싸게 바라는 신앙의 풍토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로 전락할 것이다. 말씀을 외면하고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고 물질을 추구하는 교인들의 요구에 잽싸게 응해주는 목회자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교회는 이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뼈저리게 회개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 교회의 풍토와 제도가 얼마나 잘못되었으며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회개하고 각성하지 못한다면 한국의 기독교는 점차 사람들로부터 배척과 멸시를 당할 것이다. 너희가 사랑하는 사람만을 너희가 사랑하면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물며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하셨다. 과연 우리는 예수의 말대로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고난당하는 자들의 이웃이 될 수가 있을까. 강도를 만나서 얻어맞고 빼앗기고 사경에 처해 도움을 청할 때 과연 사마리아인처럼 한국의 기독교인은 그 역할을 담당할 수가 있을까.
오늘날 우리 한국의 기독교는 한마디로 말한다면 너무 배부른 모습이다. 너무나 안락하고 너무나 기뻐하며 너무나 웃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기뻐하고 웃고 있음을 회개하지 못한다면 주님의 저주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의 머리에 떨어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선 분명하게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너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너희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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