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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2/천국과지옥·3

마지막 심판은 있을까?

마지막 심판은 있을까?



정용섭



이런 제목은 별로 신통치 않지만

그래도 방문객들의 호기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볼까 하는 속셈으로

이렇게 선정적으로 붙였다.

이런 질문 앞에서 대개는

그래 심판은 있다거나,

아니면 그런 건 있을 수 없다고 열을 올릴 것이다.

오늘 주일 설교가 ‘최후심판과 오늘’이라는 제목이래서

예배 후에 이 심판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주일학교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닌 사람은

옥황상제가 버티고 서 있는 그림으로 심판을 생각할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그림도 이와 비슷하다.

여러분은 최후의 심판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때 우리의 죄를 낱낱이 고해야 한다는 데

이런 것으로 인해서 좀 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려면 참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재림, 창조, 생명, 성만찬, 세례 같은 문제들도 모두 여기에 연결되며,

어쩌면 물리학과 생물학도 우리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말은 곧 이런 주변의 여려 개념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채

단순히 만화처럼 어떤 실체론적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결국 성서가 말하는 심판의 심층적 의미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

그냥 성서가 말하는 대로 믿으면 되지, 말하겠지만

성서가 말하는 대로 믿는다는 것 자체가 이런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우리는 사실 성서가 말하는 대로 믿지 않고 있다.

아니 성서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아니 성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

실제로는 아무 것도 모른 채 남이 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내 이야기는 다시 성서론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면 본론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못할 것 같으니까

그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자.

이 사이트를 꼼꼼히 읽어보신 분들은

아마 군데군데에 성서에 대한 진술을 발견했을 것이다.

성서는 해석되어야 한다든지,

성서는 완료되지 않았다든지,

성서는 역사라는 말이 다 그런 것들이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건 무엇일까?

심판의 핵심은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난다는 데에 있다.

그때는 아무도 자기를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대낮처럼 밝게 드러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인 드러난다는 것일까?

내가 거짓말 한 것이?

십일조 떼어먹은 것과 성수주일 못한 것이?

하나님은 완전히 권선징악의 주관자라는 말인가?

생각해보라.

무엇이 밝게 드러난다는 말은

그 무엇이 여전히 숨어 있다는 뜻이다.

지금 은폐되어 있는 게 무엇인가?

우선 하나님이 은폐되어 있다.

하나님은 아직 우리에게 자기를 드러내지, 계시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그분은 부분적으로만,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심판은 곧 하나님의 완전한 자기 노출이다.

그때가 되어야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듯이 알 수는 없다.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

이게 성서의 경고이다.

마지막에 완전히 밝혀지게 될 그 하나님은 누구인가?

성서는 하나님을 창조자라고 한다.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가 시작한 생명은 그에 의해서 유지되고,

결국 그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것이 성서의 창조론이다.

생명과 하나님이 이렇게 분리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은 그 생명으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최후에 하나님이 완전히 드러난다는 말은 곧

생명의 본질이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한다.

그 생명이 밝히 드러나게 되면

생명을 파괴하는 것들은 결국 심판을 면하지 못한다.

아니 생명 아닌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심판이다.

지옥불이라는 고대인들의 신화적 표상이 성서에 있긴 하지만

그건 지옥의 실체를 뜻하는 게 결코 아니다.

생명 아닌 것의 그 실체가 드러남으로써

생명의 완성으로부터 완전히 제외되는 사건이 곧

하나님이 마지막에 내리게 될 징벌이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의 부활을 믿고

그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면

지금 희미한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마지막 심판 때 확실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한 건 아무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야 모든 게 드러날 테니까 말이다.

성서는 왜 그걸 무시무시한 사건으로 묘사하고 있을까?

그 심판과 오늘의 우리의 삶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 이외에도 우리가 짚어야 할 대목은 많다.

타종교인들과 심판은 어떤 것인가, 등등.

오늘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나도 잘 모르는 게 많기도 하고,

아직 준비가 된 상태도 아니다.

곧 ‘인문학적 성서읽기’에 가야할 시간도 다가오고.

잠정적으로 이런 결론으로 끝내자.

최후 심판은 생명이 완성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기쁨으로 그 순간을 기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