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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설교·6/장죠셉목사님

[스크랩] (계15:5~8) - 구원을 받게 됨과 영벌을 받을 받게 되는 원인 -

구원을 받게 됨과 영벌을 받을 받게 되는 원인


또 이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15:5-8)


    이단원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첫 번째는 일곱 천사가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 두 번째는 네 생물중의 하나가 재앙이 담긴 대접 일곱을 전달하였다. 세 번째는 일곱 대접을 받은 천사의 사역을 보여준다. 요한에게 보이는 것은 하늘에 있는 성전의 장막이 열리면서 증거궤가 보인다. 이 단원에서 증거궤가 있는 증거 장막을 보여주는 원리는 앞에서 믿음을 이긴 자들이 무엇 때문에 대환난에 남겨져서 죽임을 당하였는가 하는데 있고, 다음은 하나님의 진노로 영벌을 받게 될 자들이 무엇 때문에 유황으로 가는 벌을 받게 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에 있다.


   증거(???-에두치)라는 말은 Evidence, Proof, Witness, Testimony 등으로 번역된다. 여기에서 증거는 ‘evidence’에 더 가깝다. 증거궤를 보이시는 원리는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침범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 과 ‘위임권위’ 와 ‘질서에 관한 법’을 침범했던 죄악상의 증거물로 보관되었던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율법의 돌 판이다. 증거물이 담겨진 법궤를 증거궤라 한다. 


   하늘의 성전이 열리면서 한편의 드라마가 연출되는데, 먼저는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온다. 두 번째로 네 생물이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었고, 가슴에 금으로 된 띠를 띠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영존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히 담겨진 금 대접을 일곱 천사에게 전달한다. 세 번째로 일곱 천사가 재앙이 담겨진 금 대접을 받을 때 성전 안에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과 연기로 가득 채워진다. 천사들이 맡겨진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는 누구도 성전에 들어갈 자가 없다는 내용에서 대지를 넷으로 나누어 보았다.


   ① 성전과 증거궤의 원리(5)

   ② 일곱 천사와 그들의 의복(6)

   ③ 네 생물과 진노가 담긴 금 대접(7)

   ④ 성전 안에 채워진 영광과 권능(8)

 

    또 이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5)


    요한이 설명하는 내용은 하늘에 증거궤가 있는 장막이란 성전이 열렸다는 뜻이다. 장막은 증거궤를 두는 곳이다(출38:21). ‘쉐케네(σκην? )’라는 장막은 ‘Tabernacle(????), 미쉬칸(???-샤칸)’이므로 성막이다. 장막이란 용어는 140여 번 언급되며 야웨의 장막(왕상2:28-), 하나님의 집 또는 장막(대상6:48), 등에서 나오고 있으나 모두 다 성막을 말한다. 성막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알려주신 순서와 규격대로 지어졌다. 성막에는 쓰이는 기구들이 많으며 이일을 전담했던 사람은 브사렐(?????)과 오홀리압(??????)이 모세의 명령대로 지었다.(출35:20-)


    성악에 쓰이는 기구들은 법궤(언약궤)가 있는 지성소에서부터 나오면 문을 향한 왼편(북향)에 진설상이 놓이며, 오른편(남향)에는 금 등대가 놓이고, 지성소 바로 앞에 분향단이 배치된다. 이 셋은 성소 안에 놓여진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면 문 앞에 번제단이 놓이며, 왼편에 물두멍이 놓인다. 이 기구는 성막바깥 뜰에 놓인다.

 

   성막은 후일에 교회로 발전되었으며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서 절대적인 필요성과 중요성이 내포되는 것이 성막이다. 신앙생활을 온전하게 하려면 성막의 원리를 알고 만들어진 순서와 그 법칙준수해야 축복을 받게 된다. 여기에서 성전이 열리면서 증거궤를 보여주는 것은 그 안에 들어있는 만나, 싹 난 지팡이, 십계명 돌판, 세 가지 증거물이 증거궤안에 있기에 그것에 비추어 보아서 그대로 지킨 사람만이 하늘나라 들어갈 수 있겠기 때문이다.(※믿음을 척량하라 참조)


   증거궤 안에는 40년 동안 광야생활에서 하나님이 먹여주신 하늘에서 내리신 만나가 있다. 광야생활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하나님의 판정을 보여주는 싹 난 아론의 지팡이가 있다. 시내산에서 모세가 받은 십계명의 돌 판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증거궤를 보여주시는 목적을 이 세 가지 증거물을 통하여서 왜 대환난에 남겨졌는지를 보여주시는 이유를 깨달아야 하늘의 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 받을 증거궤의 원리에 대하여서는 살피지 아니하고 다만 ‘성막을 증거궤는 율법과 법궤가 장막 안에 간직되어 있다’고 짤막하게 설명했을 뿐이므로 우리는 궤안에 있는 세 가지 증거물의 원리를 살펴보아야 된다.


1. 만나는 말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존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먹게 하신 식량이라.(출16:14~15)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μaννα)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요6:49~50)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μaννα)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에 먹이신 하늘의 양식이었다(출16:33). 이 만나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끝났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하였다(요6:50-51).


    그 후에 예수님은 하늘로 가시면서 사도들에게 당신의 사역을 위임하시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강단에서는 종들이 생명을 살리는 불변의 말씀을 전달한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하와를 미혹시키던 뱀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였다(창3:1).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하신 명령(ts? w?h)에 도전했던 것이 “먹지 말라 하시더냐?”하고 진리를 비진리로 바꾸었는데 이것을 “Touch"라 하게 된다. Touch는 하나님의 말씀을 ‘건드린다’ ‘손을 댄다’는 의미이다.


    뱀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건드려서 “먹지말라!”하신 명령을 “말라하시더냐?”로 바꾸었고, “정녕 죽으리라”하신 명령을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씀을 바꾸었는데 이것이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려는 속셈에서였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금식하던 때에, 마귀가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인류를 구원하시려 오신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죽이고 자기 하속을 만들려고 말할 때 “명하여(eipon)”라고 자기가 주권자인 것처럼 말씀에 도전했을 때, 예수님께서 마귀를 꾸짖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생명을 살리는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거부하는 행위는 뱀의 사상이 침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하늘나라 성전에 들어갈 수 없음을 알리기 위하여 증거궤를 보이시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증거궤를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다시 찾았던 다윗 때에 일이다. 하나님의 증거궤를 수레에 싣고 올 때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레를 모시는 역할을 담당하고, 나곤의 타작마당에 당도했을 때에 소가 뛰므로 인하여 증거궤가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웃사가 증거궤를 붙들었다가 즉사했는데, 접근하지 말아야 될 말씀이 들어있는 궤에 손을 댄 벌로 죽임을 당하였다고 성경은 교훈한다(삼하6:6-7).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말씀을 전달하였다. 그런데 잡류(애굽 민족과 이스라엘 민족 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모세가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일이 있었다. 말씀에 문제를 제기했던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고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성경은 교훈한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 일지라도 말씀을 문제를 삼거나 변질시키거나 비진리로 바꾼 행위를 보여주어서 환난에 남겨진 이유를 깨닫도록 증거궤 속에 있는 만나를 보여주시면서 깨달으라는 것이다.


2. 지팡이는 위임권위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의 지팡이(matteh)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 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할지니라.(민17:10)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위임권위에 도전한 일이 있었다.(마4:6)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모세와 아론의 위임권위에 반란을 일으켰던 도전행위의 증거물이다. 당시에 야곱의 장자는 루우벤 자손들이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셋째아들인 레위 자손들에게 위임되었다. 그런데 같은 레위 자손인 고핫의 후손인 고라 자손들이 힘든 잡일을 담당했을 때, 루우벤의 자손인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이 고라 자손들과 함께 당을 짓고 장자권을 빙자하여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위임권위에 도전하였다.(민16:1)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모든 족장들의 지팡이를 증거궤 앞에 두게 하였고, 다음 날에 모든 지팡이는 그대로였으나 아론의 지팡이에서는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열매가 열렸다”(민17:8). 이때 하나님께서 “패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내게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하라” 하시면서 아론의 지팡이를 증거궤에 넣었다(민17:10). 그때 모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 회중에서 너희를 구별하여 자기에게 가까이 하게하사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게 하시며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을 대신하여 섬기게 하심이 너희에게 작은 일이겠느냐”책망하였다(민16:9). 따라서 어떤 이유일지라도 교회의 직임에 불평하는 행위는 위임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직임의 자리를 주지 않는다고 문제를 삼거나, 그것으로 인하여 다른 교회로 떠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심을 이 증거궤를 보고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지 아니하고 직임에 도전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 올수 없다는 경고로서 증거궤를 보이시는데, 그것은 그 증거궤 안에 싹 난 지팡이가 위임권임을 증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기도 할 때, 마귀가 나타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위임권위에 도전한 일이 있었다(마4:6). 그때 예수님께서 마귀를 꾸짖었으므로 위임권위에 도전하면 안 된다고 교훈한다.


3. 증거판은 법질서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내가 네게 줄 증거판(?d?th)을 궤 속에 넣으라.(출25:21)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할 때도 마귀는 하나님의 질서를 무질서하게 하였다.(마4:9)


   “여호와께서 그 총회 날에 산위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십계명을 처음과 같이 그 판에 쓰시고 그것을 내게 주시기로 내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와서 여호와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그 판을 내가 만든 궤에 넣었더니 지금까지 있느니라.”(신10:4-5).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무사히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감사하는 찬양은 미리암을 선두로 시작되었다. 그들이 기쁨과 감사함에 찬양하며 뛰놀면서 수르 광야에까지 진군하는 동안에 질서가 무너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물을 쓰게 하신 일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한 나무를 지시하여 그 나무를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물맛이 쓴 것처럼 교회에서 질서가 무너지면 혼돈이 생기는 것이다(출15:25). 그래서 질서를 존중하라고 하나님께서 “법도와 율례로서 질서를 지키라”고 법을 정하셨다.(출15:25-26)


   십계명이 쓰인 증거판은 애굽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간이 맺은 선민으로서의 계약이다. 십계명은 곧 법이요, 법은 질서를 존중하도록 하는 장치이다. 그런데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금지한 우상숭배를 위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질서하게 만들었다(출32:17-19).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이유라도 질서를 파괴하면 하나님이 싫어한다는 교훈이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기도하실 때에, 마귀가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할 때도 마귀는 하나님의 질서를 무질서하게 하였다(마4:9). 그때도 예수님은 마귀를 꾸짖어 쫓으셨다. 또 창세기에서 하와를 미혹했던 뱀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을 하나님이 아심이라고 말씀을 바꾸려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질서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므로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올 수 없으므로 질서를 존중히 지키라고 증거판이 들어있는 증거궤를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천사들은 하나님의 율법이 안치된 곳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시위하며, 어떤 개인이나 국가나 하나님의 율법을 무질서하게 거역하고 지날 수 없음을 재앙으로서 입증시키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증거궤 안에 있는 증거물로서 마지막심판 때에 증거를 삼으면, 자신의 불순종을 시인하게 된다고 예수님은 이렇게 경고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12:36-37) 하시면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하셨다.(요5:29)


4. 천사와 그들의 의복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6)


   요한이 본 내용은 성전으로부터 일곱 천사가 나오는데 그들은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었으며 가슴에는 금으로 된 띠를 둘렀다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상고하려는 내용은 일곱 천사가 누구냐가 아니라, 그들이 입고 있는 맑고 빛나는 세마포와 금으로 된 띠에 관한 내용이다. 하늘나라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발사되는 맑고 깨끗한 빛으로 입혀진다. 그것은 하나님이 깨끗하고 티가 없이 거룩하심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앉아계시는 보좌에서 발사되는 빛으로 하늘나라가 밝고 빛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볼 산’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을 때에도 하늘로부터 왔던 두 사람은 맑고 깨끗하게 빛나는 옷을 입었고, 예수님도 죄와 악이 없으므로 그때 변화되었다(마17:2,9:3, 9:29). 예수님께서 부활하던 날 새벽에 무덤에 있었던 두 천사들도 하늘의 존재이기에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다(마28:3,16:5,24:4,20:12). 또한 주님께서 승천하던 날에도 하늘만 처다 보던 제자들에게 깨우침을 주던 두 사람도 하늘의 존재이기에 맑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다(행1:10). 고넬료의 가정에 와서 욥바에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알려주던 한 사람도 하늘의 존재이기에 빛나는 흰옷을 입고 있었다(행10:30). 마지막 심판을 하시러 오실 때에도 그리스도와 하늘의 군대들도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었다.(19:14)


   그러므로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된다. 누구든지 영적상태가 맑지 못하면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게 되고, 따라서 대환난에 남겨지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도 대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면서, 세마포는 하늘에 거하는 자의 의복이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세마포 옷은 천사들의 성결을 말하고 가슴에 금띠는 천사들의 권세라고 잘못 가르친다. 세마포는 하늘의 제사장과 왕과 하늘에서 내려온 자들의 옷이라고 잘못 가르치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흰 세마포 옷은 하늘에서의 존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순종하는 존재들에게 입혀지는 거룩함을 말한다. 하늘의 성전에서 나오는 일곱 천사들이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었다는 뜻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거룩하여서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은 자들만이 살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이 열리면서 깨끗함을 요구하기 위해서 증거궤를 보이셨다. 따라서 깨끗하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3:10)


   ②.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믿음을] 부요하게하고 흰[세마포] 옷을 사서

        입어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하고,.(계3:18)


  ③. 사데에 흰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

       당한 자인연고라.(계3:4) 


  ④.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기약  이 이르렀고 그 아내

       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계19:7-9)


  ⑤.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

       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2:11-13)


   이러한 말씀에 근거할 때, 사람은 누구나 다 출생될 때 영적으로 벌거벗은 상태로 태어났다. 따라서 믿음생활에서 열심히 없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행위를 나타내지 아니하면 벌거벗은 상태 그대로 있게 된다(계3:2). 그러나 믿음의 열심으로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된다(계3:4). 그러나 마지막 때에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상태라면 바깥 어두움에 던져짐을 받게 된다. 그곳이 심판대로 일컫는 연단(Bema)을 받으며 슬피 울며 이를 갈며 고통당하는 바깥 어두운 곳이다.(마22:11~13)


   천사들이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었고 또한 천사들의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다. 금띠를 띠었다는 뜻은 천사들의 속성을 알리는 내용이다. 하늘나라에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모든 존재들이 거룩하듯이, 천사들의 속성은 거룩하다. 그러므로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말한다.


5. 네 생물과 진노의 금 대접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천사에게 주니.(7)


   요한에게 보이는 이상한 이적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수레를 움직이는 네 생물이다. 각자의 사고(Consideration)에 따라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음을 알아야 된다. 어떤 이는 네 생물은 영적 피조물을 대표하는 가장 높은 제사장이라고 하고, 다른 이는 4장 6절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영적 피조물의 대표라 하는가하면, 어떤 이는 그룹들이나 자연계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빠름의 상징이라 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피조물의 대표가 아니라 전능자의 수레임을 에스겔은 분명하게 입증시키고 있다. 네 생물들을 그룹들의 ‘상징’이라는 해석은 설득을 얻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에스겔은 네 생물들의 모습에서 “얼굴이 있는데, 사람의 얼굴이요, 사자의 얼굴이요, 소의 얼굴이요, 독수리의 얼굴이라” 하였다(겔1:10). 그리고 네 생물들은 각기 날개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자기의 몸을 가리고, 서로 연결하여 전능자의 수레를 움직인다.


    그들의 발에는 무수히 많은 불이 번쩍이는 눈들이 가득하다. 생물들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같은데, 불이 생물들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 번개가 나며, 생물들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른 생물들은 전능자의 보좌를 움직이는 수레라고 하였으므로 피조물의 대표, 또는 피조물을 대표하는 제사장들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상징이라는 견해는 더더욱 아니다.


6. 전능자의 영광과 능력


하나님의 영광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8)


    전능자의 영광과 능력으로 인하여 성전 안에는 연기가 가득 채워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마칠 때까지는 누구도 성전 안으로 들어갈 자가 없다 한다. 여기에서 전능자의 ‘영광’과 ‘능력’으로 일곱 재앙을 끝낼 때까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내용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


    하나님의 영광: ‘영광(δ?ξη?-독샤스)’는 빛이요, 전능자의 광채를 말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의로운 빛이 성전 안에 가득하게 채워진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은 공의를 말한다. 하나님을 대적하였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하였던 죄 값의 심판은 받아 마땅하다. 심판받을 대상은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피조물인 적그리스도정부 통치자를 경배한 자들이다. 나아가서 영생의 말씀을 변질시켰거나, 받지 말라고 경고한 666표를 받은 자들에게 내리실 하나님의 진노는 보응의 ‘의’가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하나님의 능력: ‘능력(δυν?μεω?-두나메오스)’는 일을 감당해 내는 힘을 말한다. 이 능력은 일곱 대접의 재앙을 쏟으시는 전능자의 힘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진노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공의는 살았고 진실하시다. 그러므로 상줄 자들에게는 하늘나라로 끌어올려서 유리바다와 같은 바닷가에서 찬양하게 하셨다. 반대로 원수들에게는 진노로 보응하심이 남았는데, 그 일을 감당하시는 하나님의 힘을 말한다.


   성전안의 연기: ‘연기(καπνο?-카프노우)’는 어떤 물체가 태위 질 때 나는 기체가 아니다. 위에서 말한 두 가지로 인하여 성전 안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원수들에게 진노와, 그 일을 감당하시는 힘이 극치에 도달했음을 말한다.


   들어갈 자가 없다: 요한은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다”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학문이나 세상적인 지식으로 이런 저런 해석을 하겠지만, 성경은 그러한 해석을 용납하지 아니한다. 이 말씀을 기록한 요한은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21:22). 이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어린양의 신부들이 새 예루살렘 도성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주인이 될 어린양의 신부들도 아버지께 경배하려 들어가지 않았는데, 누가 먼저 들어가겠는가?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하시는 재앙이 끝난 후에야 어린양의 신부들이 성전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나기 이전에는 3층천에 거할 왕권 자들이나 선진들이나 장자총회 회원들이나 시온의 존재들일지라도 어린양의 신부들에 앞서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이 단원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두 번째는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으려면 세 가지 증거를 생각하고 ‘선악과를 만지지 말라’는 교훈이다. 선악과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금지 사항이다. 증거물로는 보관되어 온 ‘만 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 돌판’이다. 이 셋은 건드리면 곧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먹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맑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으려면 금지된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지 말아야 된다.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위임권위에 도전하면 안 된다. 교회에서 시행되는 직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임직하지 않는다고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은 위임권위에 도전하는 행위가 됨으로 그런 행위는 신자로서의 옳은 행실이 아니다. 또한 교회에서 질서를 무질서하게 하는 사람도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세마포 옷이 입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하고 벌거벗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대환난에 남겨진다는 교훈이다. 대환난에 남겨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의 진노로 심판하심을 받고 영원한 유황불 못으로 들어간다는 교훈이다.▦

 

 



출처 :churchofpraise 원문보기 글쓴이 : 장죠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