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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설교/추억의 설교

고 이중표 목사의 나의 고향 나의 어머니

고 이중표 목사의 나의 고향 나의 어머니

 

출처 = http://cafe.daum.net/dkups.co.kr/OxCQ/4


 나의 고향 나의 어머니

 

저의 어머니 백분순 성도님은 1912년 전북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 백씨 가문에서 막내딸로 출생하여 1978년, 66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16세에 출가하여 50년 동안 한 가정의 어머니로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생각하면 저의 어머니는 한많은 일생을 사셨습니다. 아홉 자녀를 낳았으나 셋은 일찍 죽었고, 아들 셋, 딸 셋을 잘 길러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에 비교적 부요한 농촌 가정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러나 목에 혹이 있다는 이유로 가문에 맞는 배우자를 만나지 못하고 가난한 우리 집에 출가하여 일생 동안 고생하면서 사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의하면 어머니의 생애는 여인으로서는 참으로 고달픈 삶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 때문에 눈물로 하루하루를 사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땀흘려 농사를 지어도 겨울이면 아버지께서 도박으로 탕진하여 버렸기 때문에 봄이면 먹을 양식이 없어 어린 자녀들이 배고파 주리게 되니 그것을 무척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밤마다 탄식하시는 어머니의 한숨소리는 제 가슴을 울렸고 저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이런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자라게 된 것이 운명인가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나중에 창세 전에 미리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음을 깨닫고 눈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이신 어머니

 

저의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사신 목적이 있다면 다만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낙은 이것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삶의 유일한 취미가 술과 도박뿐인 아버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했고, 그날 그날 먹고 사는 것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이런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나는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내가 사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너희들 때문이다.”

 

어머니는 저를 낳아 길러 결국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기 위해 살아야 했던 하나님의 대리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이 세상에 보내기 전에 어머니를 먼저 보냈습니다. 어머니가 저희 아버지를 만난 것도 저를 낳기 위한 절대적인 섭리였습니다.


술로 벗삼아 사신 아버지
눈물과 한숨으로 고생하신 어머니
한 생명을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만남이니
오늘의 나 된 것이 더더욱 가이 없어라
빚진 자의 심령으로 어버이를 생각하니
갚을 길이 전혀 없어 눈물만 짓노라

 

어머니가 저를 이 세상에 낳아준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서 저는 어머니에게 엎드려 절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부자가 되어 어머니를 기쁘시게 해주는 아들이 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드리지 못한 불효 자식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목회자의 길로 나섰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가난하게 자라난 제가 일생 동안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목사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께는 불효자가 되었으나 하나님께 효자가 되려는 사명감으로 나아갔으니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용서하실 것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따라 외갓집에 가곤 했습니다. 힘든 생활 중에 외갓집에 가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기쁨이었습니다. 가난한 생활에서 잠시라도 안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친정에 가면 밤이 깊도록 살아가기 힘든 사연들을 숨김 없이 털어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참고 살라고 위로하여 주셨고 할머니께서는 눈물을 흘리며 그 이야기를 들어 주셨습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와 제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아무도 몰래 많은 것들을 싸 주셨습니다. 많은 것을 싸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어머니의 발걸음은 생기가 넘쳤습니다. 우리들에게 먹일 것을 생각하며 기뻐하셨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외갓집에 자주 다녀오셨고 그때마다 우리들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가난했던 저에게는 교회가 꼭 친정집같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울고 있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많은 축복을 약속하셨고 어머니 같으신 성령님은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스승이신 어머니

 

어머니는 저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위대한 스승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과 목회의 원리를 어머니에게서 배웠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가르치시기 위해 하늘이 보내 주신 천사였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효자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순종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아들이 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단 둘이 있는 시간이면 “나는 너하고 살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 기뻐하는 아들이다.”라고 하시면서 등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예수를 믿게 되었을 때 이 어머니의 그 음성이 큰 감동으로 제 가슴속에 메아리쳤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효자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너는 내 기뻐하는 자가 되어라.” 하나님의 효자가 되려고 할 때마다 “너와 함께 살련다.” 하시던 어머니와 같으신 보혜사 성령님이 제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저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위대한 스승이셨습니다.

 

어머니는 형제 중에서 저를 가장 많이 사랑해 주셔서 학교 갔다 돌아오면 맛있는 것을 감추어 두셨다가 저에게만 몰래 몰래 주셨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따로 감추어 두었다가 주시는 은혜의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따로 주시는 은혜가 있었으니 그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별세의 은혜였습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저의 어머니를 스승으로 보내사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게 하셨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살림의 어머니

 

저의 어머니는 살림 잘하기로 소문난 어머니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집안 살림에 전혀 신경쓰시지 않았지만 여섯 남매를 소리없이 먹이시고 길러주셨으며, 잘 자라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흉년에 영양실조에 걸렸으나, 저희들은 죽으로 연명할지언정 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지혜로운 어머니의 근검하신 살림 덕분이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밭에 나가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셨습니다. 봄이면 쑥을 많이 뜯어 말리셨고, 산나물을 캐어 말려 겨울의 양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음 해 춘궁기가 올 때 우리를 먹여 살릴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길가에 빈 땅이 있으면 콩을 심어 가을에 그것으로 우리를 먹이셨습니다.

 

어느 봄날에는 양식이 떨어져 먹을 것을 준비할 수 없으셨습니다. 가까스로 친척 집에 가서 양식을 구해다가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배가 고팠던 자식들은 어머니의 것을 조금도 남기지 않은 채 다 먹어버렸습니다. 어머니는 빈 그릇에 물을 부어 마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부잣집 아이들로 태어났으면 잘 먹고 살 것을 가난한 부모 만나 배곯고 사는구나!” 어머니의 눈물은 자식들에게 더 줄 것이 없어 가슴 아파 흘리는 눈물이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프던 어린 시절
뒷동산에 올라가 두 팔 벌려 누워보니
높고 높은 저 하늘이 나를 달래 주는구나
허기진 배는 물로 채우고 가슴은 하늘로 채우니
이제는 하늘도 땅도 모두 내 것이 되었네


그때 흘린 어머니의 눈물이 이제는 저의 눈물이 되었습니다. 목자가 되어 강단에 설 때마다 그 어머니의 마음이 제 가슴을 울립니다. 능력 있고 은혜스러운 목자를 만났으면 영적으로 배부르게 살아갈 하나님의 자녀들이 못난 목사 만나서 굶주린다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어머니는 늦은 밤까지 주무시지 못하고 일을 하셨습니다. 밤이면 물레를 돌리고 길쌈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손수 모시를 짜느라 손톱이 달아서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 베를 짜면서 부르시던 그 한맺힌 노래는 달밤의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어린 제 가슴을 더욱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손수 짜신 옷감으로 저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고는 “우리 아들 인물나네.” 하시면서 기뻐하셨습니다.

 

어느 여름철 짐을 나르는데 저는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웃옷을 벗고 알몸으로 짐을 졌습니다. 어머니께서 고생하여 만든 옷이 해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피멍이 든 제 등을 만지면서 또 한 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옷은 눈물 없이는 입을 수 없는 사랑의 옷임을 알았기에 그후로도 소중하게 아끼며 입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옷을 통하여 큰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었을 때 양을 잡아 피를 흘려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신(창 3:21)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로 옷 입혀(갈 3:27)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사랑도 알게 되었습니다.

 

살림 잘하시는 저의 어머니는 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셨습니다. 따뜻한 방에 누울 때마다 추위에 떨며 고생하셨던 어머니 생각에 “불효스런 이 자식을 용서하소서.” 하며 베개를 적십니다.

 


나의 고향 나의 어머니

 

제가 살던 옛집은 초가지붕과 흙담으로 지은 두 칸 집이었습니다. 비바람이 치고 눈보라가 치면 문까지 다 젖었습니다. 방바닥에는 돗자리를 깔았고, 벼룩이 물고 빈대가 괴롭혀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사랑의 손이 우리를 어루만져 주었기에 어머니 품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추운 밤이면 어머니는 자신의 이불까지 덮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가 웅크린 채 주무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사랑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문풍지 밤새 울던 밤, 검불같은 이불이라도
이 내 자식 발시려울라 덮고 또 덮어 주시건만
문틈 사이 파고드는 한겨울 추운 바람은
어머니의 손길을 더욱 시리게만 하였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슴은 사랑의 보금자리요, 피난처요, 놀이 동산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평화의 요람이었습니다. 저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에 한 걸음에 달려오곤 했습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집으로 왔습니다. 한시라도 어머니와 떨어져서는 세상을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후 객지에 나가 있으면서도 자주 고향에 갔던 것은 어머니를 보고 싶어서 였습니다. 고향은 어머니가 계신 곳이요, 저를 낳으신 어머니가 곧 저의 고향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문밖에 나오셔서 밤새도록 기다리셨습니다. 늦은 밤 버스에서 내리면 “우리 아들 오는가?” 하시면서 반겨 맞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는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그곳은 더 이상 제게 고향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저를 반겨 맞아줄 이 없기에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께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에 이 세상의 고향은 없어졌습니다. 이제 저의 고향은 오직 하늘에만 있습니다. 어머니는 땅의 고향을 하늘 고향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먼 훗날 천국 문에서 저를 기다리실, 어머니같으신 주님께서 “아들아, 어서 오너라. 내 너를 기다렸노라. 내가 너를 한국 땅 객지에 보내놓고 수십 년 동안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노라.”라고 말씀하실 것을 상상해 봅니다.

 

저는 어머니의 가슴속에서 하늘의 신비를 보았고, 어머니를 찾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대리자였고, 저를 길러준 살림의 천사였으며, 하나님을 가르쳐 주신 스승이셨습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셔서 제가 속히 그곳으로 오기를 고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참으로 어머니는 이 땅에서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는 유일한 보혜사이십니다. 12세기 캔터베리 주교였던 안셀무스는 주님을 어머니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사랑의 주님 예수여,
당신은 또한 어머니 아니십니까?
진정으로 당신은 어머니이십니다.
모든 어머니들의 어머니시요,
당신의 자녀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죽음을 경험하신 어머니십니다.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일생은 눈물의 생애였습니다. 그 삶이 서럽고 한이 많았기에 어머니는 너무도 많이 우셨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많은 형제 중 저에게 상속이 되었고, 저는 눈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빚진 자 되니 하늘을 보나 땅을 보나 눈물뿐입니다. 어머니의 눈물로 잉태된 제가 그 눈물을 먹고 자랐기에 어머니의 눈물이 저에게 유전되어 제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는가 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한 많은 눈물을 이제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나오는 눈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저는 눈물의 목자가 되어 땅을 적시어 울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골 교회 전도사 시절, 새벽종을 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 고을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소서. 잠든 이 백성들을 잠에서 깨우시고 복음의 새벽을 알려주소서.” 순간 눈물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면서 제 앞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주님의 모습이 환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저는 종 줄을 놓고 땅에 엎드려 “주님 왜 우시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내 종아, 지금까지 네가 흘린 많은 눈물은 내가 네 안에서 흘린 눈물이었다.”라는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이 비천한 종을 통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주님의 영은 그토록 울었던 것입니다.

 

양을 사랑하는 목자의 이 눈물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니 어머니는 아들에게 너무도 큰 선물을 물려 주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마음이요, 그 눈물이 어머니께서 주셨던 눈물이었으니 어머니는 저에게 참으로 큰 유산을 남겨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 한평생에 흘리셨던 눈물이
흐르고 흘러서 내 가슴에 스며들었네
목마를 때마다 어머니의 눈물을 마시고 자랐기에
눈물이 샘물처럼 솟아오르네
어머니의 눈물과 내 눈물이 하나가 되었으니
삼라만상을 적시며 마를 날이 없다네

 

이런 어머니의 은혜를 받은 것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섭리였기에 그 오묘한 신비에 감탄하고 감탄할 뿐입니다. 이토록 고마운 어머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물려받은 유산인 그 소중한 마음과 눈물을 그대로 주의 병에 담아 하늘나라의 우리 주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아낌없이 이 자식에게 주시고 빈 몸으로 가셨으니, 나도 다 바치고 어머니 계신 주님 곁으로 빈 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어머니, 이 시간 눈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어머니께 생명을 받고 눈물과 그지없는 사랑을 먹고 자란 자식이 어머니를 생각하니 그 은혜가 신비할 뿐입니다. 어머니께서 한 많은 일생을 사신 것은 오직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으니, 이제 어머니의 삶을 복되게 하려는 저의 이 마음이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께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신교회 담임목사 이중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