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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모습/예수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와 성격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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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와 성격에 관한 연구

 

1.들어가는


속죄는 기독교신앙의 중심이다. 그리스도는 이를 이루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을 포기하고 이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 또한 모든 성도들은 속죄에 참여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를 다루시는 방법이요, 인간들을 그에게 화해시키려는 하나님의 준비와 관계된 것이다. 따라서 루이스 벌콥 교수가 말한 것처럼 속죄의 교리는 '신학의 정수'가 되며 성경의 다른 위대한 교리들을 열어주기도 하고 연결시키기도 하는 열쇠의 구실을 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믿음의 닻', 어떤자는 '희망의 피난처'라고 부르지만 모든 보수적인 사상가들은 이 속죄의 교리를 '복음의 핵심' 또는 '기독교의 근본원리'로 인정하고 있다. 1)속죄의 특출성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성경자체가 속죄나 또한 그것의 본질적인 요인과 요소를 강조하고 있는데 있다. 성경은 이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유형, 상징, 예언, 포고 그리고 권고등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 논고에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의미와 성격에 관하여 고찰하여 봄으로서 그처럼 신비스럽고 결정적인 주제의 실체를 보고자 한다.

2.

1>. 그리스도의 속죄사역

 

(1)속죄에 관한 성경적 용어

 

A.히브리어의 용어

 

구약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일치하는 바는 구약에서 사용된 가장 중요한 원어가 -보통 "속(贖)하다"(to make atonement)로 번역되는-동사 카파르(Kaphar)라는 사실이다. 구약에 100회 이상 사용된 이동사는 "덮는다"라는 주요한 개념을 전한다 .그 파생어인 코페르(Kopher)라는 명사는 "덮개", 혹은 은폐물 또는 보호물을 뜻한다. 후자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은 창세기 6장 14절에 사용되었으며 거기서 노아는 방주를 역청으로 덮도록(Kaphar)명령받았다. 하나님의 안목에서 인간의 죄를 "덮는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레위기 16장이 그 현저한 실 예가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덮는다는 행위는 덮는 물건과 떼어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덮는 데 필요한 희생동물의 '피'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레16장 참조)이것은 신약성서에서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과 같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성취되었다. (벧전1:19) '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금 화목을 얻었도다"(롬5:11)

이 카파르란 말은 명시된 중요한 骕 외에도 제2의적인 또는 암시적인 뜻이 있다. 영어성경에 번역된 것으로 '제거되다(purged)' '깨끗해지다(cleansed)' '용서함받다(forgive 사6:7)' '무효화된(annuled)' '취소된(disannuled)' '폐지된 (abolished)' '달래다(pacified)' '가라앉히다(appeased 겔16:63)' '방어하다(keep off)' '물리치다(put off)' 그리고 '화해하다(make reconciliation, 겔45:15)' 등의 동사가 있다. 이외에 실재를 나타내는 명사로서 "총액(sum of money)", "가격(price, 출21:30)" "속전(ransom, 출30:12), 그리고 "배상금(satesfaction,민 35:31-32) 등이 있으며 이것은 코페르란 명사와 상관관계가 있다.

B. 헬라어 용어

 

구약의 카파르를 대신할 최초의 헬라어는 신약의 카알랏소(ՊՁՔՁՋՋՁՓՓՙ)로서 그뜻은 '화해하다' 또는 '다른 사람의 호의를 되찾다'의 뜻이다. 그러므로 롬5:10에서 사용된 것처럼 그것은 죄인이 그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되찾는다는 뜻이다. 즉 아들을 통하여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셨다(롬5:11)는 것이다. 그러나 흠정역에서 '속죄(atonement)라고 번역된 헬라어의 명사가 최근의 번역에서는 보다 정확하게 '화해(reconciliation)'라는 말로 번역된 것을 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구약성서에서는 '화해(reconciliation)'라는 말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반면 '속죄(atonement)'라는 말이 신약에서는 여기에서만 사용된 것으로 보아 구약성서에서의 완전한 "화해"란 것이 지나친 표현이 되며 단순히 죄를 '덮는다'라는 개념이 신약 성서에서는 미흡한 표현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환언하면 신약 성서에서 이용어에 구속적 내용을 붙임으로 기독교 사상의 현저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화해"란 말이 구약성서의 용어가 아니 것처럼 "덮는다"라는 말은 속죄에 관한 신약성서적 의미가 아닌 것이다.

속죄와 밀접하게 관련된 둘째 헬라어의 용어는 힐라스코마이Ԉ(ԿԼՓՊՏՕՁԠ)로서 달랜다, 속죄하다, 자비를 베풀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비교:눅18:13)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이 동사와 상관된 것은 힐라스테이리온(ԿՋՁՓՔՇՑՉՏՍ)란 명사인데 히브리어의 카포렉(Kapporeth), 즉 속죄소(히9:5)를 표시하는 헬라어이다. 둘째로 가까운 관련어는 힐라스모스(ԿՋՁՓՌՏՒ)ԉ란 동사로서 몸값을 받고 해방한다(벧전1:18)는 뜻의 낱말이다. 그 현저한 개념은 포로된 상태에서 "되사다"이므로 그 파생명사인 루트로우시스(ՋՀՒՑՙՓՉs)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유래된 '구속' 혹은 '해방'의 전체사업을 암시한다(눅1:68, 2:38)이 구속의 개념은그 계획을 완성하개 위하여 두분 새로운 담당자가 필요했다. 한 분은 인간성을 초월한 구속자, 즉 대가를 치르신 루트로테스(ՋՕՉՑՙՉՇs)였다.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다른 한 분은 인간의 능력이상이신 해방의 영이시었다 (롬8:2)

 

C, 영어의 동의어

 

1.Atonement

Oxford University Dictionary에 의하면 신학용어로서 이단어는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우호관계회복"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1526년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신약성경적 의미로 '화해(reconciliation)'이란 말이 '속죄(atonement)'란 말에 포섭되기 위하여 거의 1500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다시 거의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달램(propitiation)'또는 '보상(expiation)' 등의 개념이 첨가되어 1611년경(흠정역 초판)에는 신학자들이 속죄를 '죄를 속함으로 하나님을 달램(화해)'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흠정역 번역자들이 그들의 사업을 완성했을 무렵에는 'atonement(속죄)'라는 말은 신학자들에게 '화해', '달램', '보상'이라는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롬5:11의 '화해'란 말이 '속죄'로 번역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대용어는 신약성서의 어떤 고대판에도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이 경우에는 '화해'라는 개정역이 더 정확하다.

그러나 이 낱말(atonement)이 내포하는 뜻은 원래의 의미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at-one-ment란 말의 근본 사상은 이산된 사람들 사이에 조화가 회복된 것을 시사하는데 화해란 어휘는 언제나 이 사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2 Reconciliation

이 용어에 포함된 사상에는 개인적, 그리고 사법적 암시가 있다. 개인적인 적은 이미 지적한 대로 죄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존재하는 소외된 관계를 철폐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가 현재 조정이 되었다해도 범법자로서의 우리의 기록은 우리를 책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의로운 재판관으로서의 하나님은 그런 기록에 대하여 무언가 하시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이것을 은혜스럽게 직접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책망하는 죄과의 기록을 말소하신 것이다. 여기에 내포된 진리를 H, 오튼 와일리가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화해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적의를 버리는 것 이상의 것이다. 그관계는 사법적인 것으로 화해라는 개념에 언급된 것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사법적인 변화이다. 더욱이 화해는 우리가 적의를 버림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지 않으심으로 hel는 것이다. 그의 아들이 죽음으로 이미 세상에 자신에게 화해시키심(롬5:10)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고후5:18-19)과는 또한 구별되어져야 하는 것인데 그 말씀은 whlcordT는 자들에게 마땅히 선포되어야 할 말씀이고 또 그 말씀에 의해서 그들은 화목케 되기를 간청받고 있는 것이다. "

 

3.Propitiation 과 Expiation

이 Propitiation이란 말에는 '호의를 베푼다'라는 라틴어의 표현 Propitiare가 도입되었으며 그것은 영어의 Propitiation이란 말과 극서의 어원인 헬라어와 히브리어사이에 개입된다. 다른 문맥에서 낱말이 채택되었을 때에는 자주 생기는 일이지만 어느정도 신학적인 "침투"가 생긴다. 이 사실을 윌리엄 카-바는 다음과 같이 지적을 하고 있다.: 이 낱말은 라틴어로서 그것을 영어에서 사용할때에는 호의를 산다든가 혹은 신들의 노여움을 돌리기 위한 이방인의 의식적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기독교적 개념은 부당한 호의를 얻기 위하여 또는 복수심에 불타는 신의 노여움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을 매수한다'는 식이 이교도적 개념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신약성서에서 Propitiation이란 말이 사용되었을 때에는 언제나 자비를 나타내는 행위나 그렇지 않으면 자비가 베풀어진 장소 즉"속죄소"(the mercy seat)를 언급할 때에 사용되는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다. (롬3:25, 요일 2:2,4, 4:10)그리고 하나님이 자진해서 호의를 베풀려고 하시는 데 대하여 의심의 흔적을 전적으로 털어버리려는 듯이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롬5:8)라고 말씀하고 이와같이 하나님은 그아들을 우리의 화목제물로 세우심으로 선수를 쓰신 것이다(롬3:24-25)

그러나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로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를 경감시키지 않는다. 이 증오의 절정은 갈보리에서의 그의 아들의 고난에서 보는 것처럼 이것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한 특성에서 나오는 순수한 반발이시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죄의 희생자인 인간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 만나는 장소가 되신 그리수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며 우리만 위할 뿐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한(요일2:2)'진정한 제물이 발견되게끔 되어 있다.

화목제물이 신성의 요구에 응하는 것처럼 보상은 신적 율법의 요구에 응한다. 죄는 그 율법을 위반하고 따라서 죄책과 그것에 상당한 형벌을 초래하는 것으로 그 보응을 받아야 하며 그 죄책은 기록으로부터 도말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입법자 자신의 요구는 충족된다. 그러므로 17세기초의 신학자들은 '보상을 통한 화해(Propitiation through expiation)'를 말하기 시작했고 이 두가지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4. Redemption(구속)

인간을 향한 측면으로부터 본 속죄(atonement)는 화해라는 개념뿐아니라 또한 구속(redemption)의 개념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중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을 뿐 아니라 그는 "죄룰 범한 자마다 죄의 종"(요8:34) 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죄에 의하여 외부의 힘의 종이 된 것이다. 이처럼 죄는 인간에게 상상 이상의 나쁜 결과를 그로 하여금 그를 사랑하시는 분과 원수가 되게 하며 그를 미워하는 자의 포로가 되게 한다. 화해가 적의를 제거하는가하면 구속은 반면에 포로를 해방한다.

"Redemption"의 어원은 라틴어redemptio이며 "되사다(repurchase)"의 뜻을 가진 redimere란 동사에서 온 것이다. 이 라틴어에 앞서 헬라어의 명사 ԼՐՏՋՀՒՑՙՓՉs가 있다. 그것은 "으로부터(out of)"라는 전치사와 "석방하다."또는 "자유케 한다"의 骕을 가진 동사고 구성된다. 그것들은 속박이나 예 속의 상태에서 석방 또는 해방을 표시한다. 이 해방은 헬라어의 세가지 특이한 동사에 의하여 표시된 삼중적 구 속의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 첫째는 ԼՃՏՑԼՎՙ로서 "시장에서 구입하다"의 骕이다. 시장이라 신약시대에 잘 알려진 노예시장으로서 노예들이 거기서 공개적으로 경매되었다. 이 하나님의 구속에 참여하는 자득인 "죄 아래 팔려(롬7:14)" 죄중에 살고(요8:34) 율법에서 규정된 (갈3:10)대로 죽음의 저주를 면할 수 없는 자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구속주는 율법 아래있는 그들의 입장을 취하시고 그들 대신에 "저주(갈3:130"가 되시고 "대속물(마20:28, 딤전2:6)로서 그의 피를 흘리사 죄책에서 그리고 율법의 형벌과 죽음의 공포(히2:14-15)에서 그들을 자유케 하신다.

그 듈째 동사는 'ՅՆՁՃՏՑԼՎՙ로서 '시장에서 구입하다'의 뜻이다. W.E.바인은 이 용어가 노예를 자유케 할 목적으로 노예를 사는 것을 특히 표시하고 자 할 때에 사용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바울은 이 아름다운 용어를 4번 사용했다. (갈3:13, 4:5, 엡5:16, 골4:5-마지막 두 번은 신도의 시간 사용에 대한 언급이다. )

그 셋째 낱말은 ՋՕՔՑ՜ՙ이며 "풀다"라든가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케 한다"의 骕을 갖고 있으며 구속주가 이렇게 해서 구입한 노예에게 완전한 자유인의 자격을 주는 것을 표시한다. 그리스도는 노예의 상징이 아닌 것처럼 노예를 소유하거나 "노예의 혹사자"도 아니고 도리어 반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고 말씀하신 분이시다. 전에는 노예였으나 완전한 시민권이 주어짐으로 해서 그는 이제 정부로부터 원만한 피보호권과 재산 상속권이 주어지며 국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된다. 그와 같이 구속은 사형판결을 받은 노예를 감옥에서 구출하여 아들처럼 자유케 하고 하나님의 후사 곧 위대하신 해방자 예수 그리수도와 함께 한 후사로 삼게 된다. (롬8:17)

레운 모리스는 신약성서에 있어서의 구속에 대하여 철저히 연구한 후 언제나 구속의 범주가 거론 될 때에는 속죄에 관한 3가지 국면중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을 특히 고려하게 된다. :(a)인간이 마땅히 그것으로부터 구속되어야 할 상태 또는 조건, 즉 죄의 노예 또는 포로된 상태에서 인간은 타자의 도움없이 스스로 자신을 해방할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b)구속주의 대가, 이일은 언제나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구속은 단순한 석방과 동일시되어서도 안된다 (c) 신도가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를 향유할 때에 결과적으로 생기는 상태, 이 자유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예속이라고 불려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구속에 관한 총계는 죄가 디시는 지배하지 못하며 구속된 자는 주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구원된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

2>.속죄의 의미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지니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그 대속적 성격에 있다.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사 그들에게 자유를 사주셨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으며 이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1)속죄의 원인

a.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에 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죄하여 주시는 동안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있다. (갈1:4, 골1:19-20) 속죄의 동인을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동정하고 사랑하여 그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생명을 버리심으로 그들의 형벌을 갗고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신 그리스도의 희생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무자비한 하나님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의 사랑이 동기가 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랑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움직이고 있다.

속죄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으로 삼위가 모두 관계하신다. 그러므로 속죄의 동인은 어느 한 위에게만 독점적을 발견될 것이 아니다.

b. 속죄는 하나님의 도모와 섭리에 의하여 계획된 거이며 상황에 따라서 된 것이 아니다.

c.속죄는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 기초한다.

i.하나님의 공의에 기초한다. (요구)

ii 하나님의 자비에 기초한다. (롬3:24-25)

하나님의 공의는 피의 희생을 통한 속죄를 요구하시고 하나님의 자비는 속죄의 용 서를 마련 하여 주신다.

(2)속죄의 필요성에 관한 역사상의 견해들

a.속죄는 필요하지 않았다.

소시너스는 속죄의 불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하나님안에 가차없이 죄의 형벌을 요구하시는 공의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여 속죄의 필요성이 부정한 것이다. 펠라기안파에서도 속죄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하나님의 속죄를 요구함 없이도 죄를 용서하실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근대 신학에서도 역시 부정하며 자유주의 신학도 속죄는 단순히 죄인의 도덕적 상태가 변한 결과로 하나님과 화목되는 것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질은 죄에 대한 형벌의 요구나 진노가 없으며 따라서 인류 위에 머무는 객관적 정죄도 없다고 한다.

b.상대적으로 필요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속죄없이도 능히 죄를 사하시고 택자들을 구원하실 수있다는 견해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사가 다 가능하시니 속죄없이도 다른 구 속의 방법으로 구원하실 수 있었으나 그의 아들의 대리적 제사를 통하여 속죄하는 것이 보다 놀랍게 은혜가 나타나기 때문에 자기의 주권적 은혜와 지혜로 이 방법을 택한 것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능히 속죄없이도 택자들을 구원하실수 있었으나 다른 조건으로는 죄를 사하시지 않기로 주권적으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속죄없이는 구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속죄의 절대적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작정과 도모에 의하면 구속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의하면 속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상대적 필요성만 인정하는 것이다 .칼빈주의자들 중에도 이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

c.속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속죄의 절대적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개혁교회의 입장이며 성경의 교훈에 가장 잘 조화된다.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기쁘신 뜻에 의한다. 그러나 그의 주권적인 기쁘신 뜻으로 이미 구원을 계획하셨다면 속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다른 방도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가 둘 다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속죄의 절대적 필요성에 대한 증명

a. 하나님의 공의의 입장에서

성경에 모든 죄는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여 반드시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교훈한다. (출34:7, 민14:18,나1:3, 시5:4-6, 롬1:18, 3:25-26)

b. 하나님의 의지적 법의 불변성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의 표현인 율법은 왜곡되거나 좌절 될 수 없다. (마15:18, 갈3:13, 신27:26)

c. 하나님의 진실성에 관계에서

속죄의 필요성은 식언치 않으시며 거짓이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의 진실성에 따라온다. (민23:19, 롬3:4)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더불어 행위언약을 맺으실 때 불순종하면 형벌이 임한다고 말씀하셨다. (창2:17, 겔18:4, 롬6:23)

d. 죄의 성질에서

죄는 죄책을 동반하기 때문에 형벌을 피할 수 없으며 마침내 속죄를 필요로 한다.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과오뿐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니 죄책이 따라오며 (요일 3:4, 롬 2:25-27) 또한 죄책은 범죄자를 율법에 빚진 자로 만들어 자신적 혹은 대신적 속죄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e.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 확증이므로 필요하였다. (롬5:8)

(4).속죄의 진정한 의미

예언자 이사야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영혼을 속전 제물로 삼으셨다고 선언했을때에 진리의 핵심을 우리에게 준 것이다. (사53:10)

이 진술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속죄를 더 잘 이해한다면 속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리적 죽음이다. Hodge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대리적 고난은 갑(甲)이 을(乙)대신에 당하는 고난이다. 따라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갑의 상대자인 을은 고난에서 제외됨을 필연적인 전제로 한다. 대리자(a vicar)는 다른 사람의 자리를 취해서 그 대신에 행동하는 대행자이다. 조직신학II.475

이제 그리스도는 자기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시지는 아니하셨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요8:46, 벧전2:22, 히4:15) 어디서나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다른 사람 의 죄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행하여 각기 제갈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5-6)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15:3)"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친히 나무에 달려 그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벧전2:24). "그리스도께서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받전3:18) 예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10:45)" 그리스도는 참된 유월절 양으로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셨다. (출12, 고전5:7) 그리스도는 진정한 속건제물로서 (사53:10) 그것은 구약시대의 많은 제사의 단순한 모형이다. (레6:24-30: 히10:1-4)

 

B. 그리스도의 죽음은 만족스러운 죽음이다.

거룩성은 하나님의 기복적인 속성인 만큼 죄의 불법을 제거시키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럴만한 어떤 만족을 반드시 가지셔야 한다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그런 만족을 제공했다.

가).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해5서 하나님의 불쾌와 정죄를 유발시켰다. 하나님은 지극히 당연하게 침범된 율법에 상당한 형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공의의 요구가 만족되기 전까지는 죄인을 해방시킬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이런 요구를 온전히 만족시켰다. 국가의 범죄자의 경우에도 범죄자가 법에 규정한 형벌을 치루고 나면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는다. 범죄에 대해 더 이상 어떤 형벌을 가할 수 엇다. 이것이 소위 그리스도의 만족의 온전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 가치로 인해 온전히 공의의 요구를 만족시민 때문이다. Hodge 전인용서II,482 우리는 공의의 의미는 인격의 일반적 공정 그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우리가 의미하는 공의는 "하나님의 지배하에서 보상과 형벌을 정당하게 분배하기를 요구하는 도덕적 미의 형태로서 순종은 보상을 받고 범죄는 형벌을 받는 것을 뜻하는 바 죄와 관련할때는 옹호적 공의라고 적절히 호칭되는데 그것은 자기에게 속한 당연한 권리를 옹호하고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서II, 489 우리는 형벌적 만족과 과료지불적 만족 사이를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형벌즉 만족의 죽음이다.

형벌적 만족에 있어서는 어떤 특수한 정도나 종류의 고난을 다시 요구하지 않는다. (이미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료지불적 만족은 가치는 과료를 지불한 당사자의 신분이나 위엄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이 과료금의 가치뿐이지만 형벌적 만족의 경우에는 형벌을 받는 당사자 자신의 위엄에 모든 것이 의존한다. Hodge, 전인용서II487

"하나님의 죽음, 하나님의 피, 하나님의 고통(Dei morsm Dei samguis Dei passio)라는 표현은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음은 물론 성경이 인정하는 바 다."동서 483

나).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킨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히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율법에도 만족이 된다. Hodge의 말은 다음과 같다.

율법은 죄에 대한 형벌이상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율법에 대한 만족은 겨우 권리를 지키는 옹호적 공의의 만족 이상을 포함한다. 율법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이중적이니, 곧 연대적이며 도덕적이다. 우리는 율법에 대한 연대적 관계에서부터 구출 받았는데 그것은 복음아래서이다. 우리는 더 이상 모든 죄에서 해방받아야 할 의무와 또 구원의 조건으로서 율법에 완전히 순종해야 할 위무등은 없다... 율법에서부터의 해방은 율법을 폐기하거나 또는 율법의 요구를 저하시킴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적으로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행적이야말로 율법의 요구에 대한 만족의 본질이 된다. 그리스도가 순종하고 고난받는 사실과 능동적 수동적인 그의 모든 전체적인 의로 말미암아 우리의 대표자이며 대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행하셨고 감당하셨다. 이젠 믿음으로 이런 의를 받고 이에 근거해서 칭의를 얻은 자는 구원을 받았다. 그들의 모든 성품이 새롭게 됨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한다. 하나님의 이런 의를 거절하고 자기들의 의를 세우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율법의 요구 아래 놓여 있다. 그들은 아직도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또는 범죄하고 있는 만큼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동서,II 493이하

다).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를 포함한다.

"하나님의 만족"이란 사상 속에는 흔히 성경에서 발견되는 기타 다수의 용어들이 포함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속죄며 회유이다. 레위기 6:2-7에서 개인의 범죄에 대한 개인의 속죄가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 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 레4:13-20에서는 국가적인 범죄에 대한 국가적인 속죄가 있다. "만일 이스라엘 은 회중이 그릇 범하여 허물이 있으며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이 그것으로 회중을 위하여 속죄한 즉 그들이 사람을 얻으리라" 이 귀절에서 볼 때 수송아지나 수양이 반드시 죽어야 하며 사죄는 대속자의 죽음에 근거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이 명백하다. 여기서와 기타 유사한 구절에서 속죄에 대한 히브리어 단어는 kaphar인데 piel동사형에서 번역되기로는 "속죄가 된다."로 되어있다. 이것의 문자적인 의미는 "... 위를 덮는다"는 것으로 그 내부에 있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라).그리스도의 죽음은 회유를 포함한다.

70인역에서는 이 히브리어가 다른 의미를 지니니 희랍어로 번역되어 있다. 라는 말은 "달랜다." 또는 "어루만져 누르다."라는 의미를 지닌 kaphar exilaskomai로 번역되었다. Shedd의 말은 다음과 같다.

희랍번역에 나타난 사상의 관련성은 이렇게 되었다. 죄인의 대속자의 고난으로 인해 죄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는 달래어 졌다. (누그러워졌다. )이 회유의 결과로써 마땅히 돌아갈 죄에 대한 형벌이 면제되었다. 또는 범죄자 위에 고통이 가해지지않게 되었다. 이 면죄 또는 형벌적 고통제건, 성경의 표현으로는 '사죄'이다. 동서II 391

마).그리스도의 죽음은 화목을 포함하고 있다.

회유(propitiation)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화목(reconciliation)의 사상이다. 이 두 사상은 피차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을 '회유'했으며 (롬5:10 고후5:18, 엡2:16) katallasso라는 동사는 신약에 6회나 나온다. (롬5:10 두 번, 고전7:11, 고후5:18,19,20) diallassomae는 단 한 번 있다. (마5:24)이 모든 구절에서 나타난 사상은 화목사상이다.

 

C.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의 대속물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값의 지불, 또는 속전으로 제시된다. 스데반은 모세를 '속량하는 자'로 말한다. (행7:35 희랍어,lutrotes) 그러나 대속물의 사상은 다른 사람을 속박에서 풀어주기 위해 값을 지불하는 사상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도 많은 사람을위하여 자기 생명을 대속물(lutron)f 주시려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마20:28 막10:45)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의 구속으로 언급되었다. (눅1:68, 2:38, 히9:12)


3>. 속죄의 성격

속죄 행위가 그 당사자인 그리스도와 그 대상자인 하나님, 그리고 수혜자인 인간에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는 하나이나 그 근본 성질은 다면적으로 나타난다.

(1)제사로서의 성격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제사장직의 선제 사역에서 보여진 바와 같이 제사적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의 제사는 구약의 제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것은 사실이나 그이상의 특별한 의미도 내포되어 있으며 그 세부적 사항은 다음과 같다.

① 속상적 제사(贖償的祭祀)

구약의 희생 제사의 목적은 인간의 죄와 죄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 즉 인간의 죄를 희생으로 드릴 동물에 전가시켜 대신 죽게 함으로써 제사드린 자는 죽음의 형벌에서 벗어난 함으로써 제사드린 자는 죽음의 형벌에서 벗어난 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도 이와 같이 인간의 죽음도 이와 같이 인간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기 위한 것이므로 속죄와 보상의 의미를 지닌다. (사53:5-6)

② 원형적 제사(原形的祭祀)

인간이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제물로 한 속죄가 필요하나 구약시대에는 방편적으로 동물 희생으로 대신했다. 그러나 완전한 신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신 사실은 그 제물과 범죄자 사이의 불균형을 없앤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은 구약제사의 원형이다. 즉 구약의 제사는 모형적, 일시적, 잠정적, 예비적, 부분적인 반면 그리스도의 제사는 원형적, 영원적, 불변적, 최종적, 완전적인 것이다. (히9:11-12, 23)

③자기희생제사(自身犧牲祭祀)

구약의 제사는 제사드리는 자와 제물이 완전히 구분되나 그리스도의 제사는 양자가 일치한다. 이는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제사장이며 흠이 없는 완전한 제물임을 보여준다. (히9:13-14)

(2)유화(宥和)로서의 성격

유화(propitiation)란 죄를 가리워 이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은 이와 같이 인간의 죄를 덮어 깨끗케 함으로써 하나님의 죄사함이란 결과에 이르게 된다.

① 신적 사랑과 유화교리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유화와 관계된다면 성부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며 성자 하나님은 성부의 진노로 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분이란 편견을 낳게 된다. 즉 삼위 하나님간에 내면적 알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진노가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화는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된 신적 본성의 표현이다. 또한 양자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관계된 것이므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②신적 진노와 유화교리

앞서 살펴본 대로 신적 진노는 범죄에 대한 하나님 공의의 발로이며 유화는 사랑의 표현이다. 신적 진노가 없으면 유화는 필요없게 된다. 또한 유화가 없으면 모든 인간은 영원한 형벌가운데 머물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신적 진노를 통해 인간의 지속적 타락을 막으며 유화를 통해 인간이 다시 하나님 은혜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둘은 모두 공의와 사랑이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계획의 구현이란 측면에서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과 보완성을 갖는다.

(3)화목으로서의 성격

화목이란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발생한 하나님과의 '멀어짐'과 '적대관계'를 해소시켜 다시 교통하며 하나될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적대감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죄를 지은 자를 멀리하려는 '거룩한 적대감'이고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이질감에서 비롯된 '죄악된 적대감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이 둘 가운데 어느쪽에 치중햇는가에 대하여는 상반된 견해가 있다.

①인간 적대감의 제거

성경가운데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적대감이 실재하며 그리스도께서 적극적으로 이를 해소하는 듯한 표현이 자주 나온다.(롬5:10, 고후5:8, 예2:16, 골120) 그러나 이에 대하여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고 더 본질적인 요소는 오히려 하나님 편에 있다는 다음의 주장이 보다 신빙성을 갖는다;

② 하나님 적대감 제거

일차적인 적대감의 원인은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이다. 따라서 화목의 일차적 대상은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의 입증을 위해서는 인간 적대감의 제거를 지지하는 듯한 성구가 적대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멀어짐의 감정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여야 한다. 한편 직접적으로 화목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암시하는 성구도 많다. (롬5:8-11, 고후5:8-21)

(4)구속으로서의 성격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은 결국 인간을 죄가운데서 구원하는 행위인 구속(redemption)으로 마무리된다. 한편 여기서 구속은 인간 구원 전반이란 의미보다는 좁은 의미인 속량, 즉 값을 지불함으로써 갇힌 자리에서 해방되는 것을 가리킨다. 성경에서는 인간이 범죄함으로 구금된 그 상태를 여러 가지로 묘사하는데 이는 구속 역시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①율법의 저주로부터의 구속

율법을 어김으로 받게 되는 형벌로부터 벗어난다. (갈3:13}

②의식적 율법으로부터의 구속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으로 구약의 모든 제사는 종결되었다. 이는 인간이 더 이상 희생 제물을 통한 제사나 의식적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게 됨을 보여준다. (갈4:4-5)

③행위언약으로부터의 구속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었던 과거의 규정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은혜언약으로 대치됨으로써 공로적 율법 준수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④죄책으로부터의 구속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의롭게 됨으로 죄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은 그리스도에게 전가된다. (롬3:24)

⑤사단의 세력으로부터의 구속

사단은 이세상의 임금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받지 못한 자들 위에 왕노릇하였으나(요12:31) 그리스도의 희생 죽음과 부활은 사단의 세력을 격파하였다.

(5)속죄의 완전성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에 인간의 공로가 호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그리스도 속죄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죄가 택한 자의 모든 죄를 최종적으로 종결시킬 수 있음을 다음의 사실로 확인된다.

①객관성

속죄는 현재의 성도가 바라거나 동의함 없이 이루어진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다. 즉 이는 수혜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미 과거에 일어났고 오늘날에는 그 효과가 각자에게 적용될 뿐이다. 이와 같이 속죄가 역사적 객관성을 지닌다는 사실은 인간의 공로와 같은 외부적 요인과는 관계없는 완전성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②종격성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 즉 수난과 십자가의 죽으심 그리고 부활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단 일회적 속죄행위의 완전성을 보여준다. 이는 그리스도의 한 번의 죽으심으로 속죄의 효력이 영원히 미친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불완전했다면 계속적으로 메시야가 출현하여 구속 사역을 행하여야 했을 것이다.

③ 독특성

속죄 사역은 유일하게 신이며 인간인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결과 역사적으로 성도들에게 속죄가 계속 경험되어 왔기에 그리스도의 속죄는 완전성을 지녔다고 볼 수 밖에 없다.

④효능성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 공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였고 인간 전체가 범한 죄값에 상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속죄가 요청되지 않는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로서만 하나님 자녀의 영원한 자유가 보장되므로 이는 완전하다.



3.주제에 대한 Review

1>핵심용어

 

(1)속죄((atonement)

 

'속죄한다'는 영어 'atone'은 at one(하나가 되어, 일치하여)라는 명사구에서 유래한다. 어떤 사람과 '하나가 되어'있다는 것은 그와 인격적으로 조화관계에 있음을 뜻한다. 이와 유사하게 '속죄'는 원래 '하나됨'이나 '화해'를 의미하였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이말은 보다 제한된 의미로 쓰이게 되어 화해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달성되는 결말을 뜻하기보다 오히려 그런 방해물이 제거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어떤 잘못에 대해 '속죄한다'는 것은 모종의 조치를 취하여 그 잘못이 가져온 나쁜 결과를 없앤다는 뜻이다.

 

A.구약성서

보통 '속죄'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동사는 ࠃࠓࠊ(카파르)다. 일부학자는 이 단어의 원래 의미가 '씻어버린다'였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마 아마'덮는다'는 것이 원래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의 용법이 발전되면서 희생제사의 효과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속죄염소(scapegoat)의 효과에 대해서도 사용될 수 있었으므로 이말을 사용하는 자들이 원래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는 애매하다. 희생제사는 죄를 '덮어주는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반면에 이 은유는 속죄염소와 걸맞지는 않는다. 속죄염소는 죄를 대신 '지고갔기'때문이다. 그러므모 속죄라는 단어는 죄의 결과를 제거해준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B.신약성서

'속죄'라는 단어가 비록 신약성서에 나오지는 않지만 이 낱말의 배후에 있는 의미는 줄곧 나타난다. 하지만 신약성서에서는 이 말이 더 이상 성전 희생제사와 결부되지 않으며 속전의 지불, 향 또는 심지어 기도와는 더욱 관련되지 않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그의 세상에 오심,. 그리소 특히 그의 십자가 이에서의 죽음(->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소외를 해결해 주는 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선언할 수 있는 말들이 탐색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러한 말들이 유대인과 친숙한 희생 제사와 관습으로부터 추출된 것은 불가피하였다. 이 희생제도에는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들어 있었던 것이 부분적인 한 이유였고 또 십자가에 못박혀 실제로 피를 흘리면서 죽어간 그의 죽음이 사실상 희생제사 행위와 아주 많은 유사성을 명백히 나타냈다는 것도 부분적인 한 이유였다. 신약성서는 인간이 자기 죄를 용서받고 자기 생명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그의 죽음 속에 들어있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께는 죄악의 악업을 도말시키고 인간을 죄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시키고 인간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 구약에는 '속죄'라는 말이 빈번히 나타나며 심지어 RSV의 구약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신약 성서에는 이 단어가 잘 나오지 않는다. KJV에서도 이 단어는 단 한번 나타나며 그나마도 롬5:11에서 ՊՁՔՁՋՋՁՃՇ(카탈라게)의 영어로 나오며 RSV에서는 이것을 '화해(reconciliation)로 바꾸어 놓고 있어서 보다 현대역 신약성서에선 遁atonement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고 잇다. 실제로 KJV되 다른 모든 문맥에서는 ՊՁՔՁՋՋՁՃՇ가 화해로 번역되어 왔다. 그러나 이 단어 자체는 신약성서에 나오지 않지만 이 단어가 표현하려고 하는 개념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전체로서의 성서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올바로 되려면 모종의 '속죄행동'이 필요함을 가정하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되어 있으며 이 소외의 책임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한 것 -즉 죄-이 인간을 하나님께로부터 소외시켰고 만약 올바른 관계가 회복되려면 이 소외가 제일 먼저 치유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이 과거에 범한 죄로 말미암아 생겨난 장벽이 제거되지 않으면 안된다.

 

(2)대속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대속적인 것이었다. 다시말해 그는 죄인들을 위해 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 이를 영어로 '바이케어리어스(vicarious)'라고 하는데 이는 '대리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바이카리우스(vicarious)에서 온 말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그가 징벌을 받아 마땅히 죄인들의 벌을 대신 받으신 대리인이 되셨으므로 대속적이라 부른다. 그들의 죄가 그리스도께 전가됨으로써 그는 그들의 징벌을 대신 담당하시게 된 것이다."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해 대속적 속죄를 이루셨음을 강조하는 성경구절은 지극히 많다.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죄가 되심으로써 그들의 대속자가 되셨다. (고후5:21)그는 십자가에서 그의 육체에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하셨다. (벧전2:24) 그는 다른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단번에 고난을 당하셨다. (히9:28) 그리고 그는 죄인을 대신하여 무시무시한 고난과 채찍질과 죽음을 당하셨다. (사53:4-6)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지니는 대속적 성질을 잘 표현해 주는 두 개의 헬라어 전치사가 있다. 흔히"...을 위하여"로 번역되는 전치사 안티(anti)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 "대신에"죽으셨음을 나타낸다.(마20:28, 막10:45)또는 전치사 후페르(huper)는 "...의 자리에서"를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는 죄인들의 "위치에서" 그들을 대신해 죽으셨다는 뜻이다. (갈3:13, 딤전2:6, 고수5:21, 벧전3:18) 빌레몬서13절에서 후페르가 반드시"...의 자리에서"를 의미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대속의 교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요구들이 충족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죄문제를 해결하신 합법적 처리방법이었다.. 그는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 되셨다.

 

(3)구속

 

"구속(redemption)"이란 말은 "시장에서 구매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아고라조(agorazo)에서 유래하였다. 이 단어는 시장에서 노예를 사는일에 종종 상용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죄의 노예시장으로부터 신자들을 사서 죄의 속박에서 그들을 풀어 주신다는 의미가 된다. 신자들을 죄에서 풀어주는 구매대금이 곧 예수 그리스도으 죽으심이었다. (고전6:20, 7:23, 계5:9, 14:3-4)

신자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구매되었으므로 그리스도께 속하며 그의 종이 된다. "구속받은 자들은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다시 노예가 된다. 곧 하나님의 노예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값이 치러지고 구매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 그리스도께서 신자들을 사주신 이유는 그들에게 이기적 자유를 주시기를 원함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시기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 그의 뜻을 행해야 마땅하다.

신자의 구속과 관련된 두 번째 용어는 엑사고라조(exagorazo)인데 이단어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와 속박에서부터 신자들을 건져내셨음을 의미한다. 신자들은 노예시장에서 구매되어(agorazo)거기서부터 완전히 옮겨졌다.. (ex-) 그리스도는 율법의 구속과 그 저주로부터 신자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하셨다. (갈3:13, 4:5)

"율법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그 저주를 담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저주받아 마땅한 자들이 이제 자유로이 풀려났다. ...(뿐만 아니라)이는 합법적으로 얻어진 자유이다. "

구속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세 번째 용어는 루트루(lutroo)인데 이는 "대가를 치름으로써 놓임을 얻다"라는 의미이다. 이 단어에는 배상금을 지불하고 자유롭게 된다는 사상이 강하게 들어있다. (눅24:21)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아(벧전1:18)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 (딛2:14) 구속은 죄를 중심으로 한 개념이다 .인류는 죄에 속박되어 있었으며 누군가 그 노예상태에서 인간을 놓아 주어야만 했다.

 

(4)속죄의 해석에 사용된 언어와 상징

① 희생제사적 용어 :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오는 속죄의 능력이 흔히 유대교의 희생제사 관습에서 따온 술어로 표현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대교의 희생제사에서는 속죄가 희생 짐승의 피흘림 및 그로인한 짐승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히10:12에서 "죄를 위한 희생제사(sacrifice)'로 표현되고 엡5:2에서는 '하나님께 드린 생출(희생)'으로 지칭된다. 그리스도의 피는 왕왕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언급된다. 이것은 신체의 혈액을 의미할 리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여 그에게 내어준 바 된 그리스도의 생명을 의미할 것이다. 이것은 "생명이... 피속에 있음이니라"라는 구약 신앙(레67:11;참조 창9:4)과 일치한다.

히브리서는 아주 정확히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을 주저하지 않고 자기 아버지의 뜻에 따른 그리스도의 복종과 관련짓는다. (히10:7-9;참조 막14:36)바울 역시 십자가의 이런 요소를 특별히 언급한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 "(빌2:8) 하나님의 목적에 완전히 순종한 이같은 전적인 자기포기가 그가 하신 일의 완전한 효력의 한 요소를 이룬다.

②하나님의 어린양:보통 '희생제사적'은유로 이해되는 또 다른 표현은 신약에서 예수께 돌리는 칭호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바울은 희생이 되신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곧 그리스도'를 언급한다. (고전5:7) 그리고 요1:29,36에서는 예수가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표현된다.

③대속물:"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는 막10:45말씀은 비록 대속물을 바친 대상이 분명하진 않지만 마치 그리스도의 생명이 실제로 사탄으 예속으로부터 인간은 자유를 확보하는 데 지불하기로 합의된 가격이기라도 한 듯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 유명한 속죄이론 (대속적)이 여기서 명칭을 제공받고 있다.

④구속:ԼՐՏՋՀՒՑՙՓՉs란 단어는 보통 '구속'으로 번역된다. 어원을 따지면 이말은 분명히 ՋՀՒՑՏՕ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미는 '보석금의 지불에 의한 석방'이다. 확실히 이 단어의으 의미에서는 '예속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개념이 두드러지지만 값어치의 지불이 이단어의 의미에서 한 요소로 남아있는지는 의심스럽다. 하여튼 엡1:7과 골1:14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단순히 '죄사함'이라고 설명된다. 이들 문맥에서는 이 죄사함(구속)이 이미 주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밖의 성경구절(예 롬8:23)에서는 구속이 아직 미래의 일로 남아있다.

⑤화목이냐 속죄냐:모두 동일한 동사 어른에서 유래하는 ԒԠՋԼՓՊՏՌՁՉ(눅18:13, 히2:17) ԠՋՁՓՒՇՑՉՏՕ (롬3:25) 그리고 ԠՋՁՓՌՏՆ(요일2:2, 4:10)는 고전 희랍어에서 '화목시킨다', '달랜다'는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RSV는 위의 마지막 두 단어를 '속죄'(propitiation)로 바꾸고 있다.

⑥샀다:Ԉ(ՅՎ) ԼՃՏՑԼՎՙ (엑스-아고라조)는 '산다'는 것을 의미하며 "값을 치르는 것"을 암시한다. 이낱말은 고전6:20, 7둁:28, 갈3:13, 4:5에 나온다. 이것은 보석금(속전)의 지불과 동일한 사고맥락에 속한다. 하지만 이 은유는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보다는 도달된 목적을 선언하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경우에 강조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이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것이 아니니라)

2>Chapter Summary

 

(1)인간에 대한 속죄의 필요성:

신약성서는 인간이 하나님과의관계를 바로잡을 필요성이 있으며 인간 자신은 이일에 속수무책이라고 가정한다.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소외된 상태에 있다. 사람들은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고 (골1:21)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는 자이며(엡2:12)' '하나님의 생명에서 멀리 떠나 있다(엡4;18)' 그들은 '하나님의 원수(롬5:10)'이며 '하나님을 적대한다(롬8:7) 이방인은 명백히 그러하였다. 그러나 유대인 역시 그들의 크나큰 특권에도 불고하고 똑같이 긴박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주장된다. (롬3:23)

 

(2)속죄 필요의 원인 :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된 것은 인간의 죄, 하나님의 뜻에 집요하게 불순종한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의 크신 사랑과 무한하신 자비에도 불구하고 죄를 마치 아무 문제도 아닌 것처럼 다룰수는 없다. 왜냐하면 죄는 인간의 생명을 부패시키고 타락시키며 인간의 행복을 위한 하나님으 모든 목적을 훼방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죄인에 대해서는 기다리다 기꺼이 용서하고 치유해 주지만 인간이 고의로 그리고 반항하는 투로 악행을 계속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성질상 그 일에 만족하고 있을 수 없으며 관대히 묵과할 수도 없다 .죄의 결과로 두려운 형벌이 정해져 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이 보복의 법칙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뜻하는 것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진노는 회개하지 않는 죄인 위에 머물며 (롬1:18) "죄의 삯은 사망이라(롬6:23)"는 엄숙한 경고로 표현된다 .참으로 죄인은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엡2:1)이다.

 

(3)속죄의 수단:

신약성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끊임없으신 반대와 죄에 수반될 두려운 결과, 즉 하나님이 정하신 가공할 결과를 솔직하게 그리고 완강하게 선언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싸늘한 시선으로 멸시하며 그로부터 초연히 서 있거나 풀 길없는 감정을 품으시고 죄인으로부터 돌아서지 않는다. 그는 몇번이고 인간에게 오셔서 인간을 파멸시키고 잇는 그리고 인간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이악에서 그를 건지려고 노력하신다 특별히 그는 자기 아들 예수를 통하여 사랑과 자비의 마지막 손짓을 하시며 오셨다. 그가 오신 목적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이목적을 성취하는 가운데 그는 '죄인의 친구'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땅위에 오사 겸손히 사람들 사이에서 비천하게 사시며 선행과 악에게 억눌림 당하는 모든 자의 치료에 열중하셨다. 그는 인간을 위하여 죄많은 사람들의 손에 죽으셨다 그리고 이모든 일은 여전히 죄인이던 사람들을 위하여 행해졌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롬5:8)그리스도의 속죄사업은 특히 십자가 위에서의 죽으심과 관련되고 있다. "그가 온 것은 자기목슴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4) "우리는 그아들이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다(롬5:10)'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엡2:13)'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벧전2:24)'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진노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다(히9:28)' 이주제에 관해서는 신약 성서 기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 자신이 선언하셨듯이 새언약 곧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새로운 관계형성 가능성은 그으 피에 있다. 즉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내어주신 것에서 시작되고 성취된다(고전11:25) 심지어 죽기까지 하신 그리스도의 이런 완전한 자기제공은 인간을 하나님께 돌아가게 하는 수단이다. 그는 하나님께 이르는 새롭고 산 길이다 (히10:20)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된다. (엡2:18)

하지만 우리는 오직 '그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다(엡3:12) 우리는 하나님이 제공하신 것을 믿음에 의해 자기것으로 만들어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그리스도를)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화목제물로 세워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셨다"(롬3:25)

 

(4)속죄의근원:

인간은 구약성서의 희생제사 제도에 의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되었는데 이 구약 희생제도는 인간의 속죄 필요성을 충족시키기위해 하나님이 제정하신 귀례로 간주되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새로운 속죄 수단이 인간에게 대한 하나님의 선물로서 이구동성으로 줄기차게 선포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도사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신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구상하시고 계획을 시작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엄격하신 아버지 스스로는 용서하지 않으시려는 것을 억지로 권유하여 마지못해 용서하시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듯이 그리스도와 아버지를 대비시키는 속죄이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하신 일을 그리스도안에서 친히 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서 친히 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느니라"(고후5:19) "그리스도 예수...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오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3:24-25) "그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셨느니라(롬8:32)

 

(5)속죄의 결과:

속죄의 직접적인 결과는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화해하게 된다. 이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관계를 깨뜨린 것이 죄고 죄는 사탄의 승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해서이다. (요일3:8) "그리스도께서 ...죽으사...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3:18) 하나님앞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히10:20) 우리는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으며(롬5:9) 그의 죽으심을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된다(10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우리로 하여금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다"(살전5:20)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회복된 것으로부터 다른 온갖 종류의 좋은 것들이 나온다 .죄인은 양심이 깨끗하게 되며 새로운 도덕적 힘으로 무장된다(벧전1:18) 인간은 폭군처럼 군림하던 자아로부터 해방되며 그의 생활에서 그리스도가 왕노릇하심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고후5:15 롬14:9) 그리스도의 속죄사업이 가져다 주는 이 모든 선한 결과는 '구원이란 말에 집약된다.


4.Review Question and Answers

1> 제목의 논의에서 사용된 상이한 용어들이 용법과 참된 의미를 정의하라

(1).십자가위에서의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제사의 사역에 대한 분명한 성질을 나타내는데 사용 된 오늘날의 단어는 '속죄(atonement)'이다. 구약에서는 이 단어는 종종 히브리어ࠃࠓࠒ(카파르), "대속적인 희생제사로 덮다) 을 번역하는데 사용되고 있다.영어 신약성경에서 그것은 단1회(롬5:11)나오고 있으며 거기에서는 헬라어 ՌՁՔՁՋՋԼՃՇ 화목(reconciliation)룰 번역하고 있다.

그 본래의 의미는 잘못이나 손상에 대해 도덕적 혹은 법적인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그 구약 적인 그리고 본래적인 신학적 용어법에 있어서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해 초래된 화목을 나타내고 있다. 그 의미는 너무 제한되어 있으므로 우리의 대속자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의 완전한 성질을 충분히 설명치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래 죄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야기된 허물(범죄)의 속죄를 나타내지만 그리스도께서 역시우리를 위하여 그의 능동적 순종에 의한 영생의 적극적 보상을 얻으셨다는 사실을 전혀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2). 17세기의 신학자들에 의해 사용된 옛 단어는 "만족"(satisfaction)이었다. 그것은 정확하고 충분하게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바를 나타내고 있다. 둘째 아담으로서의 그는 첫째 아담에 의해 남겨진 깨어진 행위 언약의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키셨다. (a)그는 범죄의 형벌을 받으셨다. (b)그는 "생명"의 조건이었던 순종을 하셨다.

(3)."형벌적 만족"과 "보상적(벌금을 물어야 하는)만족" 사이의 구별. 전자는 죄와 사람, 후자는 빚과 일들에 관계되고 있다. 그것들은 차이가 있다. (a)범죄에 있어서 그 요구는 범죄한 사람에게서 끝나며, 빚에 있어서는 해당되는 물건에게서 끝난다. (b)범죄에 있어서 그 요구는 계명된 이성이 공의에 의해 요구되는 것으로 사려되는 고난의 종류, 정도, 기간에 대한 것이다. 빚에 있어서 그 요구는 분명히 그리고 유일하게 해당되는 사물, 즉 정확한 대상물(quid proquo)에 대한 것이다. (c) 범죄에 있어서 형벌의 대속적 고난은 주권자의절대적 분별 시에만 허용될 수있다. 그리고 범죄자의 결과적인 해방은 은혜의 문제이다. 빚에 있어서 여하한 사람에 의해 행해진 해당된 일의 지불은 사실상 면제되고 있으며 그것의 수납과 채무자의 방면은 은혜의 문제가 아니다.(Turretin L. 14 제10문)

(4). "형벌"이란 용어의 의미와 "재난"(calamies), "응징"(chastisements), 형벌적 악"(penal evils) 사이의구별. 재난은 그것들이 형벌되거나 허용되는 목표외의 어떤 연관이 없이 간주된 고난이다.응징은 고난자의 도덕적 개선을 위해 의도된 고난이다. "형벌"은 최고의 입법자와 재판관이 어떤 특별한 범죄에 있어서 법적으로 그리고 동정하게 합당한 것이라고 결정하는 고난의 종류와 정도이다. 만일 이 고난이 대용물에 의해 경험된다면,그것은 사실상 율법을 만족시키지만 율법은 형벌이 아니다. 고난의 성질과 정도는 당연히 고난받는 사람의 변화에의해 변화될 수 있지만 형벌로서의 고난의 성격은 남아있거나 혹은 대용물이 실패한다.

(5).'대용물'(substitution)과 '대리적'(vicarious)이란 용어의 의미. 대용물은 묶여있지 않은 사람으로 하여금 봉사를 실행하거나 혹은 묶여있는 사람대신에 형벌을 받도록 허용하는데 있어서의 주권 자의 은혜스러운 행동이다. 그봉사의 실행과 대용물에 의한 그 형벌을 받는 것 , 따라서 봉사 와 고난들 자체는 엄격히 '대리적'인데 그것은 약대신에 그리고 사람을 위하여 원래적으로 묶여 져 있다.

(6). '속죄(보상expiation)'와 '화해(propitiation). 이두단어는 헬라어 ՆՋԼՓՌՅՓՈՁՉ를 표현하고 있다. 언제나 고전어에서처럼 Ճ՜Ս ՈՅ՜Օ과 ՃՏ՞Ւ ՈՅ՜ՕՒ를 취할때 이 단어는 제사적인 속죄에 의한 죄를 화해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에서 그것은 ՃԼՒ ԼՌՁՑՔԿՁՒ(히2:17)를 취하며 범죄를 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는 죄와 죄인에 대해 만족이 가지는 관계와 연관되어 있다.

(7).'탄원(impjetration)'과 '적용(application)' 탄원은 하나님께서 그자신이 백성을 위해 마련하시는 구원의 제사에 의한 공로적인 획득이나 구입을 의미하며 적용은 치유와 중생으로 시작하고 영화로 마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그것이 후속적으로 적용되는것을 의미한다.

(8).'속죄(atonement)'와 '구속(redemption)에 관한 용어법.

A)16-17세기 동안에 속죄와 구속이라는 단어들은 박스터(Baxter)와 이삭 바로우(Drm Isaac Barrow)의 저서에서처럼 칼빈주의자와 알미니안파에 의해 동등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Dr. Cunningham`s "Hist Thea." Vol.2 p356과 357) 역시 "Conf. of Faith" ch8 §1과 "L.Cat.," Q.59

B)현대에 일정치 않은 속죄에 대한 몇몇 칼빈주의적 옹호자들은 그와 같이 용어들 사이를 구분하고 있다 .그들은 속죄 혹은 구원의 제사적 탄원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일정치 않게 행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들이 의도된 적용과 탄원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구속이 선택받은 자에게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Dr. W.B.Weeds, in "PJard's Atonement" p579)

C)성경속에서 속죄는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한 poena vicaria의 방편에 의한 속죄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구속의 성경적 어법은 덜 유한적이고 더 포괄적이다. 그것은 우리의 대용물(대체물)에 의한 우리를 위한 속전의 지불에 의하여 상실이나 파멸에서부터 구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a)그것이 속죄와 정확하게 동등할때 그 속전을 지불하는데 있어서의 대용물의 행동을 의미한다. (갈3:13) 혹은 b)그것은 '죽음'이나 '마귀'같이 우리의 상실된 조건의 어떤 특별한 요소로부터 우리가 구속에 의해 획득된 완전구원으로 완전히 옷입혀 지는 것을 의미 한다(엡1:14, 4:30 롬8:23)

(9). '공로'(meretum)와 '만족'(satisfacteo) 이구별은 최초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74년에 사망 "Summa Thiologiae' Pars iii, Q48,49) 둘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깨어진 행위 언약의 모든 조건들을 성취시킨다. '만족(Satisfactio)는 그 백성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형벌의 고난으로 간주된 죽음에까지도 순종을 하시는 그의 전적인 지상적 역사의 특성과 결과를 나타낸다. '공로'는 그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조건이었던 그 순종의 이행으로서 간주된 동일한 역사의 특성과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개신교 신학에서 이 구별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혹은 1)형벌적 악들의 고난들과 2)언약적 요구사항들에 대한 순종으로 고찰된 그리스도의 하나의 대속적 역사라는 용어들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2>.그리스도의 만족의 참된 교리를 진술하라

(1).소극적으로

(A)그리스도의 고난들은 율법의 형벌을 죄인들에게 부과하는 것에 대한 대용물이 아니라 그것들은 그 대용물에 대해 수행된 형벌 그자체이다.

(B)그것은 벌금을 물어야 할 (금전상의)지불. 정확한 대상물(quid pre quo)의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엄격한 형벌적 만족이었고 고난받는 사람은 하나의 대용물이었다.

(C)그것은 단순한 형벌의 모본이 아니었다 4)그것은 사랑이나 영웅저거 봉헌의 단순한 현시가 아니었다.

(2).적극적으로

(A)그동기는 선택받은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요10:15 갈2:20)

(B)그 성질에 있어서① 신적인격으로서 그는 인간의 조건들 하에서 그의 백성의 법적 책임들을 떠 맡으셨다. ② 그는 그들의 대용물로서 순종하셨고 고난을 받으셨다. 그의 순종과 고난은 대리적이었다. ③ 죄책(범죄)혹은 우리의 죄에 대한 당연한 법적 책임이 그에게 전가되었다. 즉 그에게 돌려지고 그안에서 형벌되었다. ④ 그는 그들에게 부과될 종류나 정도나 기간에 있어서 동일한 고난들을 당하지 않으셨으며 신적 공의가 그들을 대신하는 그의 인격에게서 요구된 그 고난을 정확히 당하지 않으셨다. ⑤그의 고난들은 인성안에 있는 신적 인격의 그것들이었다.

(C)그결과들에 있어서①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원인이 아니고 그 결과였다. 그것은그의 공의를 만족시켰고 그의 사랑의 수행을 그의 의와 일치케 하였다. ② 그것은 죄의 허물을 속하였고 의로우신 지배자이신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시켰다. ③ 그것은 그가 위하여 죽으신 자들의 구원을 확보하였으며 은혜의 방편인 성령의 은사와 또한 구원의 적용과 완성을 획득하였다. ④그것은 '실제로'금전상의 만족으로 해방된 것이 아니라 대리적인 형벌적 만족으로서 그 혜택들이 때때로 그리고 성부와 성자사이의 언약에 의해 규정된 상황들하에서 사람들에게 생기는 것이다. 그것의 적용은 그리스도에게는 의의 문제요 우리들에게는 은혜의 문제이다. ⑤대리적 형벌의 엄격한 공의에 있어서의 수행임으로 그것은 도덕적 우수에 대한 형벌의 가장 유효적이고 실제적인 본보기이다. ⑥놀라운 사랑이 수행임으로 그것은 합법적으로 가장 심오한 도덕적 인상을 산출하는데 마음을 녹이고 반역을 가라앉히며 확신하고 있는 죄인들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한다.


3>.속죄의 의도(Design) 관한 칼빈주의적 교리가 근거하고 있는 성경적 증거를 제시하라

(1).그것은 이 교리만이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주권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영생과 그것의 모든 방편들에로 선택하셨다는 성경적 교리와일치한다는 사실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특히 선택한 자를 위한 만족의 제공은 선택의 작성을 시행하기 위한 합리적 방편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어떤 사람을 신앙과 회개에로 선택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합리적 준비가 아니다. 왓슨(R. Watson,"Institutes'Vol II., 411)은 말하기를 박스터등의 견해는 "칼빈주의를 수정하려는 시도들이 생겨난 가장 모순적 이론이다"라고 하였다. 명백한 것은 만일 하나님이 선택받은 자는 분명히 구원을 받게 되고 그밖의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죄의 당연한 결과에로 방치되도록 의도하셨다면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차별없이 그의 죽음의 혜택들을 의도하실 수 없으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

(2).그 의도는 위에서 입증된 속죄의 "성질"자체에서 보여지고 있다. 1)그리스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의 대속물로서 우리의 죄들을 사하셨다. 그러나 하나의 대속물이시므로 실제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언약의 모든 요구들을 "만족시키셨다"그 경우에 언약의 조건들 그 자체는 그것이 위하여 만족되는 자들이 그 보상을 누려야만 한다는 사실을 마련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가능성이 아니라"약속되는 "생명 그자체이다.

(3).성경은 그리스도의 행위의 의도와 법적 결과가 구원을 가능케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구원하고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며 또한 그와 화목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곳에서나 선언하고 있다. (마18:11,롬5:10, 로후5:21, 갈1:4, 3:13, 엡1:7, 2:16)

(4).성경은 그리스도가 그의 죽으심과 순종에 의하여 신앙과 회개 그리고 성령의 영향력을 획득하셨다고 어느곳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그는 국가 위하여 고난을 바독 순종하신 자들을 위해 그것들을 얻으셨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그의 죽으심의 혜택들의 향유가 의거되는 조건들이 될 수 없다 .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 성령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어졌다"(딛3:5-6, 갈3:13, 빌1:29, 딛2:14, 엡5:25-27 고전1:30)

(5).그리스도는 성부와 그 자신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조건들을 수행하심으로써 죽으셨다. 이것이 확실한 것은 (A)지성적인 영원한 삼위들이 언제나 그들의 모든 행위들을 포함하고 거기에 있는 그들의 몇가지 부분들을 규정하는 상호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셨음에 틀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B)겅경은 종종 이언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시89:3-4, 사42:6-7, 53:10,12)

(C)그리스도는 그것을 수행하시면서 언제나 그것에 대해 언급하셨다 (눅22:29, 요76:38, 10:18)

(D)그리스도는 그 보상으로 공언하신다. (요17:4-9)

(E)그리고 그 그의 성부에 의해 그에게 이전에 주어진 자들에 대해 말씀하신다.낟. (요10:15-26) 그다음에 그는 특별히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신' 자들을 위해 죽으셨음에 특림이 없다.

(6).그의 자기 휘생의 동기는 언제나 '인격적 사강'의 최고 형식으로 선언되고 있다.(요15:13, 롬5:8, 8:32, 갈2:20 엡3:18-19 요일3:16, 4:9-10)

(7).그리스도가 특히 선택받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교리는 성경 어느곳에서나 진술되고 있다. (요10:11, 15, 행20:28, 롬8:32-35, 엡5:25-27)

5.속죄 교리의 ()이론들

1> C.Hodge 조직 신학 강론 P524

(1).그리스도는 선택받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일차적으로 선택받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고 가르친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20:28) "재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요17: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걸룻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하라(엡5: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삼으셨으니 이는 하나님게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다. (롬3:25) (참고, 계13:8) 그리스도는 선택받은 자에게 구원을 가능케 하셨을뿐만 아니라 또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실제로 그들을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에게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2).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

성경은 또한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고도 가르친다. 딤전 4:10절을 보라(위에 말한 바 있음 )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1:29)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다(딤전2:6)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딛2:11)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둁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라(벧후2:1)"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저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히2:9) "저는 우리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죌르 위하심이라(요일2:2) 인간의 구원에는 필요한 순서가 있다. 사람은 그리스동 죽음의 유익을 자기자신에게 결부시켜 취득하기 이전에 그리스도가 자기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부터 먼저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세상에 대해 화목시킨다는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음이 사실이지만 실제상으로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실제적인 구원은 그들 자신들이 하나님고 화목되어야 하는 사실 위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고후5:18-20) Hodge는 이 귀절둁르 이렇게 의역하기도 해'끁다. "그리스도안에 계신 하나님이 화목하셨고 또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뒤대한 진리를 알리도록 하는 책임을 주셨은 즉 이제 우리는 복음전파자로서 그리스도의 사신이 된 것이다."Chas. Hodge, 전인용서, P146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주시라는 의미는 다음고 葡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죄에 대한 집행언도를 연기시켜 주며 회개할 기회를 주며 범죄로 인해 상실당한 생활의 일반적인 축복을 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심정으로부터 회개자를 용서하고 죄인을 회복시키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되는 것이 없도록 깨끗이 정리해 준다. 단지 예외가 있다면 인간이 고집을 피우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를 반대하는 경우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불신자에게 십자가에 제시되어진 회개에 대해 강력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바 그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종들이 말씀전파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유아때 죽은 사람의 구원을 마련해 주며 구원의 적용을 그들에게 보증해준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창조세계 자체의 최종적인 회복을 가능케 한다. Strong 전인용서 P 772이하

2>박형룡 박사'신론'

속죄의 성질의 논의는 형벌 대속론 (Penal substitutionary doctrine) 혹 창 만족론(satesfaction doctrine)의 진술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가르치는 속죄의 성질의 묘사는 대속론 혹 만족론을 구성하는 때문이다. 그리소 대속론은 교회의 정통적 속죄론으로 되어왔다느 사실을 우리는 중요시 하지 않을 수 어蓵다 .쉐드는 그으 저서'교리사' (Shedd, "History of Doctrines", vol II, P335-336)에서 이 정통속죄론이 사도시대로부터 간단없이 전래 되었다는 것을 말하되 '이처럼 근원을 하나님의 게시에서 발한 대속의 진리의 조류는 여거 세기를 통하여 혹시는 가없는 바다와 같이 빛났으며 혹시는 지하철같이 조용히 보이지 않게 적은 수효의 신자란 곧 옛날 사도들이 가졌던 바른 신앙을 그대로 마음속에 품어 살게하며 비록 외적 계속은 중단되고 파괴되었을지라도 나타나지 않는 참 교회으 계속선을 보전하기 위하여 섭리가 택한 소수의 사람들이다'

속죄의 성질을 구명함에 있어서 성경이 그리스도의 이 사역을 묘사람에 사용한 주요 명사들으 함의들을 해설하는 것이 한가지 방식이다. 죤. 머리는 이방식을 취하여 제사, 유화蝡 화모그 구속을 해설함으로 속죄의 다면적 성격을 제시하였다(John Murray, "Redemption Accomplished and Applied" ch II)

루이스 벌얼 교수는 다른 방식을 취하여 이 다면적 성격에 내재한 원리 혹 요의들을 들어 객관성, 대리성, 순종성들을 논술하므로 속죄의 근본적 성질을 천명하였다(Louis Berkhof,"Systematec Theology" p373-382)

(1) 속죄; 그리스도의 죄인 구출을 위한 자기 희생의 사역의 성질을 지시하기 위하여 현금에 사용되는 명사는 '속죄(Atonement)다. 구약에서 이 말은 '속상적(expiatory)제사로 가리움'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파르를 역술함에 자주 사용되었다. 영문 신약에서는 이말이 롬5:11에서 오직 한번 나타나 '화목'을 의미하는 헬라어 카탈라게(ՊՁՔՁՋՋՁՃԾ)를 역술한다 .이말의 정당한 의미는 과실이나 손해를 위하여 도덕적 혹은 법적인 수복을 행함을 가리킨다. 이말의 구약적 또는 신학적 요업버에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결과하신 화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화목의 근거인 법적 만족을 표현한다

. 이말의 의미가 우리의 대속(Substitute)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사역의 충분한 성질을 적당히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제한 되어 있다. 이 말은 죄의 형벌을 받음으로 결과된 죄책의 속상을 적당히 지시하나 그리스도는 또한 그의 능동적 순종에 의하여 영생의 적극적 상을 받도록 공을 세우셨다는 사실을 표현하지 못한다.

(2)만족; 17세기 신학자들이 사용하던 구용어는 만족이었다. 이말은 그리스도의 하신 바를 정확히 표현한다 .제이 아담으로서의 그는 제일 아담이 남겨둔 위범된 행위언약의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키셨다. A)그는 범죄의 형벌을 받으셨다 . B)그는 생명의 조건인 순종을 행하셨다 .만족은 형벌적과 금전적의 두 종류가 있으니 그하나는 법과 인신에 관한 것이요 기타는 부채와 물건에 관한 것이다. 이두가지는 서로 다르다 .①범과에는 요구가 범과자의 인신에 종국(終局)하고 부채에는 요구가 물건을 목표로 한다. ②범과에는 요구가 계몽되니 이성이 공의의 요구로 판정하는 수난의 종류, 정도, 기간을 위하고 부채에는 요구가 당연히 갚을 물건을 위한다. ③범과에서 형벌을 대신 받는 것이 주권자의 절대적 재단(絶對的裁斷)에 의해서만 허용될 수 있고 그결과인 석방은 은혜의 사건이다 .부채의 경우에 당연히 갚을 물건의 보상은 주가 행하든지 사실 자체가 해방을 행하고 그것의 수납과 채무자의 석방은 은혜의 사건이 아니다 .(Turretin L. XV, QS. 10;A.A.Hodge, "Outlines of Theology" p401,402)


3>B.B Warfield. 'Studies in Theology' p267-273

① Theories which conceive the work of Christ as terminating upon Satan, so affecting him as to secure the release of the souls held in bondage by him. These theories, which have been described as emphasezing the "triumphantorial" aspect of Christ`s work

② Theories which conceive the work oj Christ as terminating physically on man, so affecting him as to bring him by an interior and hidden working upon him into participation with the one life of Christ; the so-called "mystical theories."

③ Theories whimg conceive the work of Christ as terminatiog on man in the way of bringint to bear on him inducements to action; so affecting man as to lead him to a better knowledge of God, or to a more lively sense of his real relation to God, or to a revolutionary change of heart and life with reference to God' the so-called "moral influence theories."

④ Theories which conceive the work of Christ as terminating on both man andGod, but on man primarily and on God only semondarily. The outstanding instance of thes class of theories is supplied by the so-called "rectoral or governmental theories." These suppose that the work of Christ so affects man by the spectacle of the sufferings borne b7 Him as to deter men from sin

4>C.Hodge 'Systematic Theologe , Vol II'

① Redemption

Tedemption sometimes means simple deliverance;but properly and always in its application to the work of Christ, ey means deliverance by purchase. This is plain becarse it is a deliverance not by authority, or power, or teaching, or moral influencem but by bloodm by the paymint of a ransom. This is the etymological signification of the word ԼՐՏՋՀՔՑՙՓՋՒ, which is from ՋՀՔՑՏՕ, a ransom, and that from ՋՀՙ, to purchase, e,g., the freedom of a slave or captive.

② Expiation and Propitiation.

Expiation and propitiation are correlative terms. The sinner, or his guilt is expiated; God, or justice, is propitiated. Guilt mustm from the nature of God, be visited with punishment, which is the expression‍‍‍ of God's disapprobation of sim. Guilt is expiated, in the Scriptural representation, covered, by satisfaction, I. e., it is now consistent with his nature to pardon and bless the sinner. Propitious and loving are not convertible terms. God is lobe. He lobed us while sinners, and before satesfaction was rendered.

5>Berkhof 'Systematic Theology' P373

① THE ATONEMENT IS OBJECTIVE.

This means that the atonement makes is primary impression on the person to whom it is made. If a man does wrong and renders satesfaction, this satisfaction is intended to influence the perlon wronged and not the offending party. In the case under consideration it means that the atonement was intended to propitiate God and to reconcile Him to the sinner. This is undoubtedly the primary ideam but does not imply that we can not also speak of the sinner's being reconciled to God. Scripture does this in more than one place, Tom. 5:10;II cOR. 5:`19,20. but it should be borne in sind that this is not equivalent to saying that the sinner is atoned, which would mean that God made amends or reparation, that He rindered satesfaction to the understood as something that is secondary. The remonciled God justifies the sinner who accepts the reconciliation, and wo operates in his heart by the Holy Spiritm that the sinner also lays aside his wicked alienation from God, and thus ters into the fruits of the perfect atonement of Christ. In other words, the fact that Christ reconciles God to the sinner results in a reflex action on the sinnerm in vertue of which the sinner mat be said to be reconciled to God. Since the objective atonement by Christ is an accomplished factm and it is now the duty of the ambassadors of Christ to induce sinners to accept the atonement and to teminate their hostility to God. it is no wonder that the secondart and subjective side of the remonciliation is someshat prominent in Scripture. This astement of the objemctive character of the atonement is placed in the foreground, because it represents the main difference betwiin those who accept the satisfaction doctrine of the atonement and all those who prefer some other theory.

 

6>H, Bavick 'Our Reasonable Faith' P357

The Work of Christ in His Exaltation

the benefits which Chrest has achieved for us by His great love are so rich that they simply cannot be calculated or estimated at their just value. They comprehend no less than a whole and perfect salvation. They consist of misery and death, and of the franting of the highest good, namely, the fellowhip with God and all its blessings. Later there will be opportunith to discuss those benefits in detail. But they must be mentioned in passing here if we are to understand the work of Christ in its diip significance.

Among all the benefits which we owe to Christ's profound humiliation, atonement is the principal one. It is expressed in the New Testament b7y two words of the original which are variously translated in the English as propitiation, reconciliation or atonement. The first word- or, strectly speakingm several words, but of the same root- is found in Romans 3:25, Hebrews 2:17 , 1 John 2:2 and 4:10 and it is a word which originally means to cover and so designates the atonement effected by the sacrifece. The thorght is that the sacrifice, or rather the blood of the sacrifice- for the blood is the seat of life, and when it is poured out and sprinkled it is the atoning element proper- covers the sin(guilt, pollrtion) of the person caking the offer from the face of God, and thrs in consequence of its effect, removes the provocation of God's wrath. Because of the pouring out and sprinkling of the blood, in which the life, the

soul, of an innocent and unblemished animal is spent, God lays aside His wrath changes His disposition towards the sinner, forgives hes transgression, and admits him again to His presence and fellowship. And the forgiveness which rakes place after the atonement is then so perfect that it can be called a blotting ort(Isa 43:25 and 44:22)a casting behind one's baci(Isa38:17) or a casting of the sins into the depths of the sea(Micag7:19) The atonement obliterates the sins so completely that it is as if they never were committed. It Banishes wrath and causes God's face to shine upon His people in Fatherly favor and good will.

7)고전적이고 신앙고백적인 권위서들

오리겐(Origin,'Homil. ad Levit'I)은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여 말하기를 '그는 그의 손을 송아지 머리위에 얹으셨다. 즉 그는 인류의 죄를 그 자신의 머리에 얹으셨으니 이는 그가 신체 즉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아다나시우스(ATHANASIUS, 373년 사망, "CONTRA ARIANOS")-"성육신하신 로고스의 죽음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속전이며 죽음중의 죽음이었다. "..."죄의 짐을 진 세상은 율법에 이해 정죄되었지만 로고스는 정죄를 담당하셨고 육신으로 고난을 당하심으로소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셨다.

 

대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 604년 사망, 'Moraliain Jobum' P17, 46)

"죄책은 공의에 대한 형벌적 제공물에 의해서만 소멸될 수 있다..., 따라서 죄없는 사람이 제공되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에게 태어나셔야만 하며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셔야만 한다. 그는 우리의 부패성(culpa)없이 우리의 성질을 취하셨다. 그는 친히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고 죄인들을 위하여 죄없으신 희생물이신 자신의 몸을 나타내 보이셨으며 그 인간성의 효능에 의하여 죽으실 수 있고 또한 공의에 근거하여 허물을 깨끗케 하실 수 있다."

 

버나드(Bervard of Clairvaux. 1153년 사망, 'Tract, contr. Err. Abaelardi' cap. 6. 15)

만일 한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었다면 그때에 모든 사람은 죽은 것이다. (고후5:14) 즉 한 사람의 만족(대속)은 그 한사람이 모든 사람의 죄를 담당했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전가되는데 범죄한 자는 한 사람이고 만족시킨 자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그 머리와 몸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머리는 그의 지체들을 위해 만족케 하셨다.

 

위클리프(Wycliffe, 1324-1384, 'De Incarn. et Mort. Christi')

그리고 세 번째 가정에 의해 죄에 대하여 필수적으로 만족이 행해져야만 하였으므로 사람의 동족이 필수적으로 만일 그葢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사람이 되지 않았던 한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범죄를 첫 조상에서 그가 저질렀던 것 만큼 크게 만족시켜야만 하였다.

 

발렌파(The Valenses of Piedmont)는 1542년에 대주교 사돌렛을 통하여 불란서의 후란시스에게 신앙고백서를 제출하였다.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즉 "이 신앙고백서는 모든 시대에 그들의 전임자들이 가르치고 제시한대로 우리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대대로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값없이는 사죄가 우리의 죄를 위해 단번에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즉 불의한 자를 위한 의로우신 자의 자비와 단순한 선하심에서 방출된다는 사실을 믿고 고백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을 그 자신의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셨으며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대언자이시요 그 자신이 우리의 화해의 속전이시며 오직 그만이 믿는 자들을 위해 만족(대속)을 시키셨는데 믿는 자들에게는 죄들이 불신자들과 유기자들에게 대해서와 같이 전가되지 않는다.

 

죤 웨셀(John Wessel 1419-1489, 'De Causis Incarnationis')

참으로 하나님 자신, 제사장 자신, 희생물 자신이신 그가 친히 스스로 만족을 행하셨다.

"Exempla Scalae Meditationis, Ex. 1.P. 544)-우리의 사랑하시는 성부는 그자신의 사랑하시는 성자로 하여금 나으 보편적 실패와 불찰을 위하여 공평한 보증에 근거하여 충분한 행동과 충분한 고난과 연관된 보증인, 후견인, 담보물이 되게 하셨다. ""공교회적이며 사도적인 동방교회의 정통적 신앙고백서"(Petrus Mogilas, Metropolitan of Kiew, 1642년에 작성되고 Jerusalim 대회 1672에 의해 재가됨 p 85)

루터파 신앙고백서들((Hase`s 'Collection"P 684 "Formula Concordiae')

하나님 앞에서 신앙이나 혹은 믿는 자에게 전가된 단순한 은혜에 속한 의는 그리스도으 순종과 고난 그리고 부활이며 이것들에 의하여 그는 우리를 위하여 율법을 만족시키고 우리의 조를 속하셨다. 그리스도는 사람이실 분 아니라 하나의 불분리적인 인격안에 있는 신인이셨으므로 그는 율법에 예속되셨거나 혹은 그자신 때문에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율법의 주인이셨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의 순종(그가 그의 고난과 죽음에서 성부를 순종하신 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진하여 친히 율법에 예속되셨고 그의 순종에 의해 그것을 성취하셨다.) 이 우리에게 전가되며 따라서 하나님은 그 전체 순종(그리스도는 그의 행동과 그의 고난에 의해 그의 생애와 죽음에 있어서 우리를 위해 하늘에 계신 그의 성부에게 그것을 돌리셨다.)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선하고 의롭다고 간주하시며 또한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신다.

 

개혁파 교리(Thirty nine Articles, Arts,11과 31)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제물은 온 세상의 원죄와 실죄에 대해 완전한 구속과 화목 그리소 만족이다 오직 이것 외에는 죄에 대한 다른 만족이 없다. (Homily 3d.'on Salvation' )- 하나님께서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위해 율법을 성취하시고 그의 가장 고귀하신 피를 흘리심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의 아버지께 제물과 만족을 이루려고 하심이셨다. 'Jeidelverg Cat. 제12과 18과 40문 .' 'West Conf. Faith, 제8장 §5와 제11장§3'Form. Cons. Jelvetica, can 13-15 Cocceius(De Faed, et Testam. Dei, cap5.92) 이와 같이 그위대한 신비(성부와 성자 사이의 영원한 언약)는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구원을 받으며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보증인으로 행동하시며 그리하여 그 자신의 심판을 받으시고 용서하시고 중재하시며 보내시고 보냄을 받으시는 자가 되실 수 있는가가 계시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자신의 피로서 친히 만족시킨 방식이다.

 

항론파 교리(Simborch, Apol. Thes. 3,22,5)

어떻게 한 사람의 희생 제사가 수 많은 사람들의 무수한 죄를 능히 사할 수 있고 또 실제로 충분히 사하셨는가가 여기에서 의문시될 수 있다 그 답변은 다음과 같다. 즉 그것은 두가지 점에서 충족시켰다. 1)인류의 해방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다만 이 한제사에 만족되었던 신적 의지와 연관하여 2)예수 그리스도의 위엄과 관련하여 .... 21,6 그리스도의 만족은 그것이 우리의 죄들에 합당한 모든 형벌들에서 해방시키고 또한 그것들을 뜨고 배출시킴으로써 신적 공의를 만족케 하시는 한에 있어서 그렇게 불리운다 그러나 이생각은 성경에서 아무런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해 희생제사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희생제사들은 빚들에 대한 지불이 아니며 죄들에 대한 완전한 만족들도 아니다 .그러나 값없는 사죄는 그것들이 드려질 때 수여되는 것이다.

"Reconstrantia"등 . 5개 조목들이 보편적 구원설을 주장하는 화란 신학자들에 의해 마련되었다. (1610, 2조) "그러므로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 각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며 따라서 그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의 죽으심을 통해 화목과 사죄를 획득하셨다. 그렇지만 그가 믿는 자가 아니라면 또한 복음에 의하지 않고서는 이 조건에 근거해서도 그 누구든지 그 화해의 실제적인 열매를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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