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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와 대환란/휴거와 대환란

[스크랩] 주기철 목사님의 주의 재림 설교



예수께서 재림하신다는 말씀은 성경 중에 많이 나타납니다.

그중 마태복음 24장 32절이나 사도행전 1장 11절이나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은
대표적 성구이니, 첫째는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요,
둘째는 예수 승천시 천사들이 예고한 것이요, 셋째는 사도 바울이 성신의 감동으로
예고한 것입니다.
이같이 예수님의 재림은 성경 중에 소상하고도 분명한 것이나
우리는 별로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도신경에 있는 여러 조목을 다 믿으나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러 오신다”는 말씀은 꼭 그대로 믿는 표가 적습니다.
노아 때 120년간 큰 홍수와 죄 회개를 외쳤지만 당시 사람 중에 그것을 믿은 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홍수는 예정대로 땅에 이르렀고, 롯의 때에 아브라함과 롯이
그 동리 사람들에게 소돔 멸망을 말했으나 그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사해死海는 우리에게 그 멸망이 참인 것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지나 본 다음에는 믿지만 이다음 될 일을 예고하는
그 당시에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의 이적과 불과 구름 기둥의 보호는 말하면서도
어려움을 당할 때는 일향一向(한결같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함과 같으니
그들은 지난 일은 믿었으나 앞의 일은 믿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의 초림初臨에 대하여 이미 구약에 기록된 대로 꼭 맞아 응한 것을 믿고 알지만
앞으로 이를 재림을 확실히 주의하는 이가 매우 적습니다.
보통은 그 일에 대하여 아주 무관심하며, 또 좀 신앙이 원만하다고 하는 이들도
성경에 그같이 기록되었으니 그같이 될 것이다 하는 정도의 믿음뿐으로
그날을 위하여 따끔히 준비하는 이는 보기가 매우 드물게 되었습니다.
계시록 중에 보면 말일末日에 이 땅 위에 사는 인명 3분의 1을 없이 할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과연 지금 세상은 인명을 얼마든지 살상할 수 있는
무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또 세계 도처에 거짓 선지자가 극성하여 진리를 붙잡기 힘든 것이나,
또 신앙생활에 핍박이 많아 땅 위에 있는 성도를 괴롭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들이요, 또 그 같은 일이 끝 날에는 매우 창궐할 것을 성경에 미리 예고하였으니
우리는 이 모든 사실들을 친히 목도하면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명료한 징조로써 끝 날의 상징이 나타나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
정신이 쏠리어 그것을 깨닫기 어려울 것을 짐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기도하라”는 부탁을 간곡히 하신 것입니다.
본문에 있는 사실 그대로를 가지고 생각하여 봅시다.

1. 말세에 기롱欺弄(속이어 농락함)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벧후 3:3). 이는 지금 세계 도처에 큰 세력을 잡고 있는 신신학新神學의 사조이니
그들은 우리의 성경 속에 있는 모든 초인간적 기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부인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심판은 엄연히 존재해 있는 것입니다.

2. 주의 날은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였습니다
(벧후 3:8). 주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이들 중에는 벌써부터 온다 온다 하는
주님이 아직 오시지 않았으니 결국 그 말은 거짓말이라고 조급하게 단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좁은 인간의 생각을 떠나
하나님의 영원성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하등생물의 일생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하루살이 같은 것을 본다면 그것이 하루 사이에도 몇 대代를 내려가고
상당히 많은 수로 증가하니 그 생물의 표준으로 한다면
상당히 긴 세월을 사는 듯할 것이며 또 상당히 번식하였다고도 생각하게 될 것이지만
인간이 그것을 볼 때는 우습기 짝이 없고, 또 그 일생이란 긴 것이 아니고
극히 짧은 것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써 우리 인간의 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찰은
그같이 짧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천 년이 하루 같다는 것은 과연 진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편협한 생각에 비추어 오랫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이제는 그만 안 올 것이라는 경솔한 판단을 갖지 말 것입니다.

3. 재림이 더딘 것은 인간의 득구得救(구원을 얻음)를 위해 참으시는 것이라 했습니다(벧후 3:9). 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사실 주님 재림이 온다 온다 하기만 하고 오지 않음으로 믿을 수 없다는 자들에게도
막상 주님이 빨리 오신다 하면 더욱더 준비할 기회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 자리에도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이 다행 될 신자가 많을 줄 압니다.
전도서 8장 11절에 “악한 일에 보응을 급히 받지 않으므로
인생들의 마음이 담대하여 악을 행한다”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급히 재앙을 내리시곤 하시면 감히 범죄할 이도 없고
살아남을 자도 없을 것이나, 하나님은 인간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 어찌 감사한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하감下瞰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 평양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추악한 범죄를 진행, 계획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며,
또 하나님은 그 사실을 하감하시지만 그러나 참으십니다.
계시록에 보면 주님을 위해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이 그 피를 신원해 달라고
애원하나 하나님은 그때가 되기를 기다리라 하십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모든 범행을 아시면서도 짐짓 회개를 위해 참으시는 것이지만
인간은 보응을 급히 받지 않으므로 그 마음이 담대하여 악을 줄곧 행하는 것입니다.

4.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이르리라 했습니다(벧후 3:10).
이는 주님도 일찍이 하신 말씀이니 곧 홀연히 그물같이 이른다는 말입니다.

5. 그날이 이르면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벧후 3:10).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친히 창조하시고 또 지으신 선미善美하다고
칭찬한 이 땅이 망할 리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이 땅이 저주를 받은 후로는 노아 홍수 같은 것으로도 온 땅을 멸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 대신으로 신의 존대를 받는 태양이나 별이나 이 땅의 만상萬象들을
여호와 하나님은 반드시 진노로써 임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에 어린 양의 진노로 인하여 땅에 있는 백성들이 피할 곳을 찾아
애탄다는 말이 있습니다. 온유,
겸손하신 예수께서 한번 노하실 때는 항상 노하여 있는 이보다
그 두려움이 심한 것은 가히 예상할 수 있는 일입니다.

6. 폭풍이 지나간 후 신천신지新天新地(새 하늘과 새 땅)의 전개를 말했습니다
(벧후 3:13). 이 신천신지의 영광에 관하여서는 계시록 21장에 기록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신천신지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영광 있는 곳은 우리의 구경究竟(마지막) 목적지입니다. 고
린도전서 4장 12절 말씀같이 신자는 세상에서 볼 것 없는 불행자로 지냈을지라도
이다음 신천신지에 들어갈 때에는 과거의 일을 생각하여
찬송과 감사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7.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는가 하였습니다
(벧후 3:11). 이 물질 문명이나 이 땅 위에 건설된 모든 시설도 굉장한 것입니다.
러나 때가 이를 때 이것들이 불에 타 없어질 것이요,
성도를 괴롭게 하는 자들이 모두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준비한
지옥에 들어갈 터이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습니까?
우리는 최후의 심판을 바라보고 미리부터 준비합시다.
거룩한 경건한 생활로써! 이는 이 세상일을 도무지 돌보지 말라는 것을 의미함은
아닙니다. 그러나 장차 불탈 것만을 위해 애쓰지 말고 먼저 영원한 나라를 위해
착실한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 홍수 전에 하늘나라로 들어갔습니다.
이는 우리 교회로도 상징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다음 7년 대환난 전에
주님에게 이끌리어 공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비록 오래 믿었다 하나 그중에 참여치 못하면 그 섭섭함이 얼마나 클 것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 도취되어 그날을 잊어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누가복음 21장 36절에 간곡히 부탁하신 대로 “항상 깨어 있어 기도하기를
우리로 능이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피하고 인자 앞에 서게 하옵소서”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요한일서 2장 28절 말씀같이 “주가 나타나사 강림하실 때에
굳세어 그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그 남편이 먼 곳에 가서 돈을 모으는 중 딴 남자와 정을 통하여
불의의 관계를 맺고 있을 때 홀연 그 남편이 큰 영광중에 집에 돌아오게 되면
그 부끄러움과 애석함이 어떠하겠습니까.
그같이 주님의 신부 된 우리는 어떤 어려운 역경이 있다 해도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을 잃지 말고 우리의 정절을 고이 지켜
주님을 부끄럼 없이 맞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과 한 몸 된 우리는 특별이 이 점을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이 성경구절들은 우리들이 보고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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