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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세계와 분별/영의 세계와 분별

[스크랩] 마귀와 귀신은 우리의 영적 삶의 원수이지요.

마귀와 귀신은 우리의 영적 삶의 원수이지요.  

 

 


마귀와 귀신은 우리의 영적 삶의 원수이지요.

그런데 귀신은 마귀와 달리 우리 몸에 침투해서 정신과 육신을 점령하고

자기들의 소유로 삼는데, 마귀는 그렇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신의 영향 아래 두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우리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그 사람을 자신의 영향 아래 두려고 시험하게 됩니다.

귀신은 우리의 약점을 틈타서 교묘하게 들어와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마침내는 육신을 점령하지만 마귀는 우리의 의식이 자신의 영향 속에 놓여지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을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도록 교묘하게 속이는 것입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접근하여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할 때 그가 사용한 방법처럼

지금도 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그가 제시하는 것을 받아들여만 그 사람을 자신의 영향 속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주장을 소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지 못한 사람은

마귀가 제시하는 말에 대해서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럴듯한 말에 속아서 그 말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그 마귀의 영향 속에 갇히게 되고

그 이후로부터 마귀의 조종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일단 마귀의 영향 속에 자신을 들여놓으면 지속적으로 그 마귀로부터 조정을 받게 되고

마귀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마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회개하기 전까지

그는 마귀의 영형 속에 놓여지게 되고 마귀의 도구가 되어 마귀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미 마귀의 영향 속에 들어간 사람은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마귀는 속임수에 능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그 사람을 속여 자신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제안하는 바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마귀의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그 진실을 분별하지 못하고 받아들이면 그 순간 올무에 걸리는 것입니다.

한 번 걸리면 그 다음에는 연이어 걸려들게 되어 그 늪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귀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가 하나님의 말씀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분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칫 속기 쉬운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속아 넘어간 경우나,

베드로가 아무런 경계도 없이 마음에 들어온 말을 그대로 했던 경우처럼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마귀의 조정을 허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귀가 자신을 일시적으로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려고 자신의 생각 속에

마귀의 생각을 불어넣는 경우 예민하지 못하면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런 실수를 자주 하면 마귀는 그 사람을 자주 사용하여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실족하게 하는 악한 영이므로 이런 일에 자주 쓰여지는 사람으로 인해서 다툼이 생깁니다.

자신의 마음을 단속하지 못하고 아무에게나 열어놓는 사람은 실수를 많이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인간적인 약점으로 인해서 하는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그 배경에는 마귀가 있는 것입니다.

거듭되는 동일한 실수를 자신도 모르게 하는 사람은 그 일을 하고 난 후에 후회합니다.

그러면서 거듭 같은 잘못을 아차 하는 순간에 하게 되어 비참함을 느끼고 자신을 경멸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이 마귀의 영향 속에 자신이 놓여있기 때문이며, 이 영향 속에서 벗어나는 일은

철저한 회개를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하여 주님의 보호하심을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이 주장하는 바에 동의하게 되면

그 사람의 영과 유대를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영적 유대(soul tie)라고 부릅니다.

같은 생각 같은 주의를 소유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영적 유대가 형성되고

그 관계로 인해서 서로의 영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영적 유대는 아름답지만

마귀에게 속아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되면 악한 영적 유대가 생기게 되고

그런 관계는 자신의 의지로는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해도 영적 유대로 인한 영향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어 생각하지 못한 나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한 때 이단에 속했다가 그곳에서 나온 사람의 경우 외면적으로는 이단집단에서 벗어난 것같이 보이지만

온전한 회개와 치유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마귀의 영향 속에 있는 것이며,

이것은 병의 잠복처럼 자신의 내면 깊숙이 스며들어 수시로 영향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한 번 마귀의 영향 속에 들어간 사람은 마귀의 유혹에 매우 취약할 수 있습니다.

마귀가 제안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런 부분에 약점이 있기 때문에

다른 형태의 속임수에 말려들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자신의 영향 속에 넣는 수단이 우리가 마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습니다.

마귀의 생각에 동의할 때 마귀는 그 사람을 자신의 소유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와 주장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에게 하나님의 다림줄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 즉 분명한 소명의식이 있어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 기준을 적용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대한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유혹을 받았을 때 그들이 사용했어야 할 다림줄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오늘날에는 각자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 즉 소명입니다.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다림줄입니다.

이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은 아무리 그럴 듯해도 그것은 자신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던 것 역시 주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고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마귀의 유혹을

즉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주님에게 주어진 소명의 다림줄이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이고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마귀의 유혹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확실한 신앙고백이 있고 분명한 자기 정체성이 있다면 우리는 마귀의 속임수를 겁낼 것이 없습니다.

신앙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확실한 교리가 없고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마귀의 속임수에 쉽게 결려듭니다.

사기꾼은 터무니없이 욕심을 부리는 사람에게 사기를 칠 수 있듯이 욕심은 마귀의 올무에 걸리는 지름길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모르는 사람 즉 주제파악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 쉽게 걸리는 것이지요.

마귀의 유혹은 매우 지능적이고 교묘해서 쉽게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하고

자신의 직임(office)이 무엇이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으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면

우리는 마귀를 겁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교묘함은 늘 경계해야 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우리를 자신의 영향 아래 두려고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영분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영적 경찰입니다.

범죄자를 찾아내 사회를 건강하게 지키듯이 마귀의 일을 들어내어

그리스도 공동체를 건강하게 지켜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장봉운 목사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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