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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체험/천국 간증

[스크랩] 이래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리에 속지마라!

이래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리에 속지마라!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교회들이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성령님을 말하면서도 우리 안에 살아계심과 그의 역사와 능력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교를 오기 전인 3년 전만 해도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부정적인 교회들이 은근히 많았습니다. 그래도 한국 교회에서 방언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린도 전서 14장의 방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책들이 참 비성경적이리고 보는 분들이 대세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젊은 신학생들을 중심으로 방언을 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글을 보면 참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 같지만 비합리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성경을 끌어들이는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비성경적인 해석을 성경적으로 믿게 만들기 위해 은사의 부정적인 사례만을 들춰내어서 사람들에게 은사가 나쁘다는 것을 각인시켜 왔습니다.  

 

오늘날 고린도전서 14장의 방언의 은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 등 이렇게 한국 교회 대표적인 이단들은 자신들만이 성경적이라고 말하면서 고전 14장의 방언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주장에 동참하고 있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고 습니다. 

 

교회가 성령의 역사를 거부하면 교회는 점점 생명력을 잃어갔음을 역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영을 분별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은사 중단론자들처럼 영이 끝났다, 영을 금해야 한다...... 또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은사를 부분적으로만 수용하라고는 성경 어디에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교회들은 앞 다투어 성령의 은사들을 재빠르게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을 믿고 있습니까? 특별히 여러분 내면 안에 살아계신 그 성령님을 믿고 있습니까? 

 

둘째로 윌리엄 부스는 교회의 위기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를 예언 했습니다.  

그가 지적한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는 주인을 잃어버린 교회의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장하며 교회의 행정이나 조직은 체계화되고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행정과 조직...그리고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려 합니다. 그러면서 교회의 주인되신 그리스도는 교회 문밖으로 쫒겨 나시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행정도 없었고 체계도 없고 프로그램도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 예수님 때문에 울고 웃으며 형제들간에 뜨거운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모든 것이 풍족하지만 그 분께 순수한 사랑을 고백하고, 또 그분을 뜨겁게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 간에도 거리를 두고 지냅니다. 

 

세번째, 윌리엄 부스의 지적은 거듭남이 없는 구원입니다.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습니다. 새사람으로 태어났다고 말하지만 삶은 그대로 옛사람입니다. 에이든 토저는 오늘날 교회가 무력해지는 이유로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목회자가 성령에 관해 설교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회개를 체험하지 못한 목회자들이 단순히 믿음만을 강조하고 기독교를 기복신앙으로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거듭남은 심리적인 동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한 영적 사건이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정말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거듭남은 우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수를 믿고 성령으로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여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이한 분들이 얼마나 되고 있습니까? 예전에 어떤 신문 기사를 보니까 거듭난 그리스쳔을 2%로 보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위기를 예언한 윌리엄 부스의 네번째 지적은 회개가 없는 죄사함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에 대하여 너무 쉽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은 이제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으니 안심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죄를 회개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죄사함도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을 받을 수도 없고 거듭날 수 없다고 전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죄를 지어서 죄책감이 있는 사람에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책망합니다. 그리고 억지로 확신을 심어줍니다. 우리는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우는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죄사함을 말하며 죄책감만을 심리적으로 지우려고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정으로 죄를 끊는 회개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섯번째로 윌리엄 부스는 교회가 지옥 없는 천국을 가르치므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 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왔습니다. 한동안은 사랑의 하나님과 천국에만 초점을 맞춰 전해 왔습니다. 오랜 시간 말씀을 편향적으로 전하다보니 솔직히 저는 제 자신의 죄에 관대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성령께서 저의 잘못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 책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먼저 제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자 저를 지배하던 죄의 습관들이 끊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그때부터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균형있게 전할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성경에 있는 천국과 지옥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지옥에 대하여 설교를 할 때마다 종종 사람들의 저항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두려워하고 놀라니 천국만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보다는 사랑만 전해 달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만을 전할 때는 아이들은 설교에 그다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면 아이들은 “또 지겹게 저 소리야..” 하는 식으로 설교에 전혀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과 공의를 설명할 때 아이들은 점점집중하고 경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배우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캠프나 성경학교를 하다보면 많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 은헤를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옥을 모르면 천국도 모르는 것입니다. 지옥이 있어야 천국이 있고 복음의 진리가 빛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를 알 때 그리스도의 사랑도 더 깊이 아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바르게 전할 때 우리들이 변화되고 거룩한 성령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동화로 만들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정서적인 도움을 얻고자 말씀을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장면들을 성경에서 삭제하고 전하려하지 않습니다. 윌리엄 부스가 죽기 직전에 한 예언이 오늘날 현대 교회에 그대로 적중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부스의 예언대로 진리가 변질되었을 때 유럽의 교회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졌습니다. 그 뒤를 미국의 교회들이 따라가며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한국의 교회가 맹렬하게 그 뒤를 따르며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를 보면 이것은 오늘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오늘날까지 늘 있어왔던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성경말씀의 진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교리가 사람들의 요구와 기준에 맞추어 변질될 때 교회가 진리를 떠나 생명력을 잃고 타락하게 됩니다. 

 

9절을 읽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기독교의 교리가 변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미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에서 “미혹을 받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혹을 받지 말라는 표현은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또는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불의를 행하고도 스스로 괜찮을 거라고 아무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지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의 내적인 음성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9절 10절은 예수를 믿는 다고 말하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동시에 불의를 싫어하시는 의로운 분이란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재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진리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내면에 죄를 짓고도 괜찮다고 말하는 육신의 음성입니까?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답해야 할 것입니다. 

 

9절에서 12절을 보면 그 당시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르쳤던 신자들의 교리를 알 수가 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9절과 10절에서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전의 불의한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다시는 이런 불의한 죄에 빠져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불의한 죄를 계속해서 지으면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우리 자신의 내적 음성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9절의 음행은 일반적인 성적 타락입니다. 또한 우상 숭배도 성적인 타락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간음은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성적 타락입니다. 남색과 탐색은 성적으로 몸을 파는 것과 동성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9절의 죄들은 성적 타락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는 새사람이 되었기에 다시는 이런 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반드시 이런 죄들을 끊고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죄를 지어도 괜찮을 거야! 이런 죄를 끊지 않아도 나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거짓된 음성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단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성적인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9절에 열거한 죄들이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라면 10절에 나오는 죄들은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죄들입니다.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고, 이웃의 것을 탐욕스런 마음으로 바라보고, 술에 취해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 이웃을 모욕하고 비방하여 피해를 입히고, 이웃을 속여 재산을 강탈하여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힙니다. 예수를 믿으니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는 불의를 지속적으로 행하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속을 때 믿음이 오해되고 교리가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면 이것도 반드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11절을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우리들 중에도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이렇게 불의를 행하며 살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씻어졌고 이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 졌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여기십니다. 더 이상 이런 불의를 행하며 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12절을 읽겠습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구호를 외쳤습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서 방종의 교리를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안에서의 자유와 방종을 혼돈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나는 복음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행동을 하기에 앞서서 나의 행동이 나를 해롭게 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과연 나를 유익하게 하는 것인가? 나의 행동이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인가 아니면 이웃을 유익하게 하는 행동인가? 나의 행동이 주님의 교회에 피해를 입히는 행동은 아닌가? 아니면 주님의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행동인가? 이런 것을 먼저 생각하고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복음안에서 자유라고 말하는 나의 행동이 나에게 유익이 없고 이웃들에게 성처를 입히고 교회에 해를 끼치는 행동이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몸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나의 몸은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아니면 죄의 지배를 받는 것인가? 항상 먼저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내가 복음 안에서 자유가 있다고 말하며 죄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복음 안에서의 자유란 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교회를 지키기 위해 성경은 먼저 자기 자신에게 속지 말아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죄 쯤이야 누구나 하는 건데...죄 안 짓는 사람이 어디있어? 이런 죄를 짓더라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천국가는 데 문제 없어!....지옥에는 절대가지 않아!.......이런 소리에 절대로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복음의 진리를 오염시키고 변질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이 지옥에 간다고 말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자신에게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따를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인격과 삶...그리고 우리 교회...모든 것이 바뀔 것입니다.  

 

 

글쓴이: 이제환 선교사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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