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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글)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가?

야곱이 사랑하는 부모님의 곁을 도망치듯 떠나 먼 이국땅의 외삼촌 라반의 집을 찾아 간 것은 십대의 어린 나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짊어져야 하는 운명의 시련이 얼마나 크고 두려웠든지, 가는 여정에 노숙을 하면서 무사히 고향과 부모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면 자신과 자손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맹세를 할 정도였다. 그 소망이 이루어진 것은 이십여 년의 무심한 세월이 흐른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였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인생도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그가 형들의 시기와 질투로 노예로 팔려 기구한 삶의 구렁텅이에 빠진 게 그의 나이 16세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국땅의 지하 감옥에서 하염없이 죽음을 기다리다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찬란한 반전의 인생을 열어젖힌 게 삼십세라고 하니 무려 15년의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의 자손 모세의 인생역전도 그의 조상의 상황과 엇비슷하다. 그가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에 지나쳐 애굽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친 게 40세였는데,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나이가 80세라고 하니, 무려 40여 년 동안을 고귀한 신분인 애굽의 왕자에서 한낱 이름 없는 목동으로 거친 광야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야 했다.


이들은 모두 누구인가? 하나님의 총애를 받아 놀라운 영적 능력으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드높은 이름을 알린 성경의 위인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의 인생은 하나같이 오랜 세월 이름 없는 목동으로 살거나 지하 감옥에서 죄수로 지내는 등, 형편없거나 그저 그런 사람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이들이 인생의 후반기에도 전반기와 비슷하게 지냈다면 성경에 이름이 오를 리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탁월한 종들은 하나같이 인생의 전반기를 고단하고 팍팍하게 살아야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 이유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이 죄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게 된 이유는 하나님의 치밀한 훈련프로그램에 의해서였다. 하나님은 그들을 빡세게 훈련시켜 당신이 원하는 성품과 믿음의 수준에 오르게 한 후에야 비로소 탁월한 영적 능력을 주어 그들을 폼 나게(?) 사용하셨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여정을 미리 알고 있었던 이들은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훈련 기간 동안에는, 왜 이리 자신의 인생이 고단하고 팍팍하며 불행의 연속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으려 하셨을까? 우리네 교회처럼 성경지식이나 예배습관, 봉사나 헌금, 기도회 참석이나 전도 등이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요구하였던 것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인내심이었음에 틀림없다. 부정적인 상황과 비관적인 환경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고통을 참고 견디는 능력을 다지고 계셨던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하심이요 일어나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30:18)


이는 신앙의 위인들에게만 요구하는 조건은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성품이다. 그렇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인내를 기르게 하시는가? 인생의 길에서 맞닥뜨린 고통과 역경을 통해서 참고 견디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고난이 올 때마다 하나님을 소망하며 기도하면서 참고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불행과 환란에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원망하며 신산한 삶의 빌미를 제공한 주변 사람들을 저주하며 있을 지도 모른다. 당연히 세상 사람들이라면 그렇게라도 하면서 분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날마다 술에 취해 현실을 잊고 싶은 사람들이 주변에 널린 이유이다. 그러나 세상을 지으시고 우주를 운행하시며 대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로 있는 자녀들이라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처럼 신세한탄만 하고 있으면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고 도움을 요청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렇게 하고 있는가? 당연히 그랬다고? 그런데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하다가 포기했다고?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작정기도도 하고 기도원에 가서 금식기도도 해보셨다고? 그런데 아무런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오시지 않으셨다고? 아마, 그런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어깨가 쳐진 채 손을 늘어뜨리고 다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런 분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얼마나 기도하며 기다려보셨는데요?


요셉이 어둡고 퀴퀴한 지하 감옥에서 십오 년의 세월동안 무얼 하며 지냈겠는가? 대부분의 죄수들이 병들고 영양실조에 걸려, 어느 날 아침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실려 나가는 것 보면서 밤이면 밤마다 낮이면 낮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부르며 눈물의 성을 쌓았을 게 분명한다. 아마 나오기 전날까지 기쁜 소식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인내의 성품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보고 계셨다. 모세가 광야에서 40여년을 보내며 호호백발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야 부르신 것도 그 이유이다. 그런데 당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얼마나 기다렸는가? 필자가 주택가 원룸을 빌려 십자가도, 교회간판도 없이 아내와 단둘이 예배를 드린 세월이 10년이었다. 하나님은 필자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면 침묵하셨을까? 역시 기도하며 참고 견디는 인내를 지켜보고 계셨음이 틀림없다.


당신이 기도하기만하면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그분이 존재감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시는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응답이 없고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그분은 당신의 자녀가 견고한 믿음이 있는지 측정하는 잣대로, 오랜 시간을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지를 지켜보시는 이유이다. 그런데 당신을 얼마나 기도했기에 그렇게 실망하며 낙담하고 계신가? 요셉처럼 15년인가, 아님 모세처럼 40년인가? 필자가 10여년의 훈련 끝에 성령이 영음으로 들려주시자 이 때다 싶어, 사역이 열리는 때를 여러 번 물어보았다. 그 때마다 그분은, 네 사역이 내 사역이고 내 사역이 네사역이라고 하시면서, 필자의 질문을 일축하시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나서 2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사역이 열렸다. 기도를 시작한 지 13년차가 되어서였다. 그 세월동안 필자부부는 기도의 강을 건너가는 법을 몸으로 체득했고, 기도하며 참고 기다리는 습관을 자동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예수님은 당신이 기도하면서 흘리는 눈물을 지켜보고 계신다. 당신이 소리 없이 흐느끼면서 부르짖는 모습을 보시며 같이 울고 계신다. 그렇다면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이미 해결된 것이나 진배없다. 당신이 간절히 찾고 혼신을 다해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외면하시지 않는다고 성경에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걱정 말고 기도하시면서 기다리고 계셔라. 때가 될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된다. 당신이 기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면 이미 응답받은 것이나 진배없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내심을 측정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에 오래 참음이 들어있고(갈5:22), 사랑의 조건이 오래 참음으로 시작되는 것(고전13:4)도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참고 기다리는 자를 믿음이 있다고 인정하신다. 아직 당신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은 믿음이 2% 부족했다는 것이고,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아마 그리 멀지 않은 때가 되면 필자의 말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날이 올 것이다. 물론 그 때까지 당신이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 말이다.




[출처] 주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가?|작성자 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