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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설교·6/장죠셉목사님

[스크랩] 구원이나 신부가 되는 조건은 엄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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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우리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되 한없이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의 심오한 신비를 아는 사람이 복되다고 하겠습니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뿐인 독생자를 우리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죄 된 우리와 하나로 결합시켜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결합은 훗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려는 아버지의 소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신비한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 사랑의 깊은 뜻 앞에서 자신이 떨게 되는 것입니다.

 

그 떨림은 우리가 자금 사랑받고 있다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으로 전신이 떨리는 느끼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깊이 묵상하는 영혼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은 두려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진지하고 생명을 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무한한 생명을 내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려면 받아드리는 자도 참되고 진지하게 자신의 생명전부를 걸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어중간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눌려서 쓸모없게 되어버리고 퇴짜 맞고 맙니다.

 

물론 인간의 사랑이 아무리 강렬하고, 아무리 참되다 해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비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사l랑을 바로 받아들여서 불꽃 튀기는 하나로 결합시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무한한 사랑을 알고 기쁨으로 외침과 함께 사랑의 실천으로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 실천은 열매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멀지않은 곳에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무화과 열매가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으나 열매가 열려 있는지 보려고 가까이 접근하였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없었습니다. 고작 잎사귀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열매를 맺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교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열매가 열려 있었으면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는 것은 오직 열매였습니다. 물론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잎도 무성해야 하고 꽃도 아름답게 피어야 됩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아십니다. 그래도 예수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열매였습니다.

 

열매 맺을 시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화과나무에 열매를 열려있기를 바라는 이상한 주님의 행위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문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행위로써 우리에게 한 가지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시기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나 열매를 맺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사랑한 것은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를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우리가 우리 생명 안에서 열매를 맺고 가지도 무성하게 자라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매마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주여! 주여!”하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나라에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주여! 주여!”하고 부른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는 자신을 아버지 앞에 자랑스럽게 바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 뜻대로 실천하는 사람”, 그들뿐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데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라”(계3:2) 왜입니까?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또는 주여! 주여! 부르는 것만으로 구원받았다는 잘못된 가르침 때문입니다. 이것이 죽은 믿음이기에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믿음이)죽은 자로다.” 믿음이 죽었다는 뜻은 믿는다고 떠벌리는 잎사귀만 무성하고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알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만을 알리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것이 새 계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대로 잘 준행합니다. 아버지께서 이런 사람을 사랑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성경에 남기신 말씀, 정신 차려서 잘 준행해야 합니다. “주여! 주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남김없이 잘 준행하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고, 그런 사람만을 어린양의 신부로 불러주실 것입니다.▨

출처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원문보기 글쓴이 : 장죠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