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사회]“10대가 시작한 촛불집회가 순수성을 잃고 어른들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장이 돼가고 있습니다. 왜곡된 불길을 바로잡기 위해 10대가 다시 나섰습니다.”
촛불집회를 반대하는 인터넷 카페인 ‘또다른 여론의 시작’의 운영자 김모(18·고3)군은 2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학생들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10대들이 점화한 촛불집회의 막을 내리기 위해 또다른 10대들이 반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 셈이다.
김군은 지난 20일 보수단체 주도의 MBC 규탄집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MBC 본사 앞에서 카페 회원들과 함께 유인물을 나눠주며 처음으로 거리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배포한 유인물에는 ‘정치적 선동적 촛불집회를 절대 반대한다!’ ‘美 쇠고기 수입을 비롯한 국정운영의 무조건적 반대를 반대한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지나가다 유인물을 받아 든 시민 정모(59·여)씨는 “10대 아이들은 전부 촛불만 드는 줄 알았는데 이런 학생들이 있다니 뜻밖이다”고 말했다. 한모(67)씨는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말되 정당한 방식으로 의견을 펴달라”고 김군을 격려했다.
김군이 ‘또다른 여론’이라는 아이디로 미디어다음에 촛불집회 반대 카페 개설을 결심한 건 자신이 다니는 학교의 일부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촛불을 들고 나가라. 너희가 앞장서야 한다”면서 학생들을 부추기는 것을 본 뒤다. 그는 “일부 선생님들이 부추기다 보니 학생들이 감정적으로, 무비판적으로 따라간다”며 “그러다 보니 반대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데도 제 목소리를 못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심 끝에 김군은 지난 5일 친구 4명과 뜻을 모아 카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들은 미디어다음 아고라 코너에 카페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가 네티즌들로부터 ‘알바’로 내몰리며 거친 욕과 협박을 들어야 했다. 김군은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무조건 공격하는 태도에 실망스러웠다”며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털어놨다. 학교에서도 촛불집회를 찬성하는 친구들과 종종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
카페에는 23일 현재 3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활동 중이다.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1인 시위’로 유명해진 한양대생 이세진(25)씨도 가입했다. “기특하다” “대견하다” 등 지지 목소리도 많이 들려오고 동조하는 학생들의 메일도 매일 20, 30통씩 쌓이고 있다.
하지만 카페가 차츰 알려지면서 김군에겐 걱정도 생겼다. 기성 정치단체나 보수단체 인사들이 카페에 가입해 정치적인 글을 남기며 순수성을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카페엔 ‘좌파척결’이나 ‘김정일을 몰아내자’ 등의 극단적 발언이 올라오고 있다. 김군은 이러한 게시글에 대해 “저희는 좌파니 우파니 야당이니 여당이니 하는 거 모릅니다. 저희가 바라는 건 견제와 균형이 있는 올바른 여론입니다”라는 항의 답글을 달아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김군은 다음달 기말고사가 끝나면 중·고교생들을 중심으로 촛불시위 반대 캠페인과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