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란과 666표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1. 인류에게 주실 하나님나라
①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②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7-28)
하나님은 인류에게 영원한 하늘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땅에 살되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릴 특권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고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 아니라 “되게”했다고 미래능동으로 표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원죄사함 받은 것은 영원한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인류의 배도
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
이것이 인류가 하나님의 축복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인류는 땀 흘리며 수고하지만 결국은 죽음이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들들이 되도록 약속하신 그 뜻을 이루시기 위해 독생자를 인류에게 보내셨습니다.
②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담 때 불순종으로 인하여 의지가 약해지고 그 약함은 항상 어두움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귀의 하속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 처한 인류에게 생명을 주기위해 빛으로 오셨는데도 죄 된 인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③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들어날까 함이요.(요3:19)
빛이 왔으되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이 자기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요, 그 악한 행위가 들어날까봐 예수를 믿지 않으려하고, 믿는다고 할지라도 형식적으로 믿는다는 이름만 걸어놓고 성전 뜰만 밟고 다니는 것입니다.
④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1-12)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만 주셨지 “자녀가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것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또는 ‘한번 얻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행위를 부정하고 믿기만 하면 다 구원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
①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하심이니라.(엡2:10)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선한일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되고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음도 이 말씀이 증거가 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면 예수를 믿어야 되고 믿음으로 좋은 일을 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저주가 따르는 것이요 어떤 이방종교도 구원이 없음이 설명되는 구절입니다.
4. 지음을 받은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
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μυστήριον)의 경륜(οίκονομία)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엡3:9)
비밀을 μυστήριον이라 했습니다. 뜻은 ‘숨은 힘, 숨은 원리, 숨은 뜻'등입니다. 의미는 지옥이라는 죽음에서 구원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계획이 됩니다. 경륜을 οίκονομία라 했습니다. 뜻은 ‘집안 관리, 청지기 직, 사명, 한패, 동아리’등으로서 의미는 집단이라는 교회요 Followship이라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원사업을 위해 모여서 예배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자신과 타인을 구원시키는 방법을 배우며 전하는 것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요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입니다.
②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하려 하심이니...(엡3:10)
구원사업에 참여하는 부류는 이방인도 아니요 유대교도 아닌 교회(ἐκκλησια)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예수를 믿어야 되며 교회로 모여서 예배에 참여해서 자신을 구원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아가서 타인을 예수 믿게 전도하여 그들로 구원받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책임을 망각하고 자신도 구원시키지 아니하고 남도 구원시키지 않으면 그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는 악한 자이기 때문에 대환난이라는 육신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③ 너희가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라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눅7:46)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을 만드신 주님의 목적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육신만을 위해 살기 때문에 물로 거듭나지 않았고 또한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평생을 교회에 출석할지라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는 것입니다.
④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 7-8)
이러한 결과는 환난을 통해서 자신을 포기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한 영혼이라도 더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이 과정을 환난을 통한 육신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의미는 만물이 하나님의 것이었는데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던 탐욕으로 인하여 인간의 의무를 준행하지 않은 육신은 환난이라는 벌은 받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지 아니하고 육신을 위하여 땅에만 쌓았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몸뚱어리만 남겨져야 비로써 세상의 것이 하나님의 것으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5. 죽음의 문제와 심판
①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9:27 -28)
사람들은 이 구절에서 오해를 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시는 것을 강림이라 합니다. 그때에 주님을 바라는 자, 곧 휴거되기를 갈망하면 죄와는 상관없이 다 휴거시킬 것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휴거되겠다고 바라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대로 준행한 사람이 영과 혼과 몸을 깨끗하게 보전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살전5:23). 이런 사람에게는 허물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원죄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십자가로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날마다의 삶에서 허물이라는 죄를 선한행위로 행하는 것이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하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②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거듭나는 순서도 먼저 물로 거듭나야 성령으로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뜻은 사람의 육신은 70%가 물로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나를 나타내는 자아요, 그 자아가 고집, 아집, 교만, 탐욕, 시기, 질투, 등 갈라디아서 5장에서 말하는 15가지 악을 생산하기 때문에 이것이 변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결코 흰 세마포 옷이 입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교회에 출석하고 방언한다고 다 흰 세마포 옷을 입은 줄로 착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 육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③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ϒαμο)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데(βήμα)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더라.(마22:12-13)
세마포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납니다. 이곳을 연단장(βήμα)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환난에서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출석하고 찬송할지라도 자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면 결코 세마포 옷이 입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④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1:7)
그 결과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찌른 자가 되었기 때문에 휴거에서 탈락되어 환난에 남겨집니다. 그리고 통곡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구원시키시려고 환난이라는 환경을 두시고 환난에 남겨져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왜 환난 전에 자신을 만드신 목적대로 살지 못했던가? 그렇게 살았던 결과가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요 자기 육신만을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깨달음은 육신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에 그 육신에게 환난이라는 환경으로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구하기 위하여 환난을 설정하셨지만 그러한 환경에 남겨지는 것은 사람인 자기가 자초한 것임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지으심을 받은 의무를 완수 하고 살면서 의로운 세마포(βύσσινοs)가 입혀져 있다면 대 환난에 남겨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환난에 남겨지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지 하나님이 환난을 설정해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6. 대환난을 통한 구원
①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환난의)끝이 오리라.(마24:14)
이 말씀이 하나님은 사랑으로 환난을 통하여 더 많은 영혼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환난이 없다면 극소수의 휴거 자들을 제외하고 다 유황불 못으로 떨어져야 됩니다. 그러나 환난이 있기 때문에 환난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는 많은 무리가 부끄럽게나마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대로 보면 환난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한 영혼에게까지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이 세상(사람)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요3:16)
※ 여기서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라, ‘얻게 하려’하심이라고 미래능동으로 표기되었기에 마지막 한 사람이 구원받을 때까지 환난을 정해진 기간까지 계속된다는 말입니다.
②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13:17)
믿는 자들이 환난에 남겨진 것은 자신의 의지적 결과로 인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의지적 결정이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주님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자신을 위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게 했고 나아가서 환난에 남겨지게 된 결과였습니다. 여기서 짐승의 표가 있어야 살게 된다는 환경이 대두됩니다. 사탄이 자기 사람들을 이용하여 이러한 제도(법)와 문화(표)를 만들 것을 예수님은 미리 아시고 요한 사도에게 받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③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계9:4)
먼저 단어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풀과 나무라는 수목은 행위를 말합니다. 그리고 푸름은 선이고 마름은 악입니다. 악한문화, 곧 짐승의 표라는 문화는 계속 진행되도록 그냥 두라는 뜻입니다. 또한 악법으로 시행되는 문화일지라도 그냥 두라는 말입니다. 다만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않은 사람, 곧 거듭나지 못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에게는 금지하였으니 환난과 666표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이십니다.
④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μέτωπον)에나 손(Χείρ)에 표(χάραϒμα)를 받으면...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계14:9-10)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으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유황불 못의 저주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마(μέτωπον)와 손(Χείρ)에 대하여 잘못알고 있습니다. μέτωπον(메토폰)은 문자대로입니다. 그리고 Χείρ(체일)은 어깨관절부터 손가락 끝까지 입니다. 표는 스프라기스(σφραϒίϛ)라 하며 뜻은 ‘도장, 자국, 자신의 것으로 표시함, 영접한 표식’ 등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하나님나라가 보장됩니다. 그러나 이마에 사단의 인을 받았으면 사단의 수유가 되어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먼저 이마에 표가 새겨지는 것부터 보겠습니다. 대부분이 사람의 이마에도 손에처럼 표를 받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들어난 VeriChip에 대하여 어두움의 사람들은 짐승의 표로 인정하지 않지만 건전하고 신실한 사람들 뿐 아니라 불신자들도 짐승의 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σφραϒίϛ)가 이마에 새겨집니다. 이것을 성령으로 인 쳤다고 합니다.(엡4:30,)
그렇다면 VeriChip이 나타나기 이전에 살다가 죽은 사람들은 무엇으로 표시를 하였겠습니까? 그때 사람들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시가 이마에 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했기에 사단이 자기 것이라는 소유권을 이마에만 표시하였고, 손에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VeriChip이 등장된 이후부터는 손에는 VeriChip이 들어가고, 이마에는 사단의 소유라는 표시가 새겨집니다.(계17:5)
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13:17)
지구정부가 실시되면 사회의 모든 거래는 VeriChip라는 짐승의 표가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다 표를 받게 됩니다. 또는 믿는 자들도 거듭나지 못했으면 다 표를 받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할지라도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받지 않으리라고 보장하겠습니까?
거듭나기는 했으나 흰 세마포 옷이 입혀져 있지 못한 신자들에게는 본인의 의지적 결정 에 따라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동산이나 부동산 같은 재산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은 받지 않을 것 같습니까? VeriChip이 짐승의 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받지 않는다고 보장하겠습니까? 짐승의 표를 상징으로 배우고 그렇게 인식하고 가르치는 사람이 안 받을 것 같습니까? VeriChip이 짐승의 표가 아닐 수도 있다고 중립입장을 취하는 사람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VeriChip을 뽑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받게 될 것입니다. VeriChip을 받았어도 회개하면 된다고 배우고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는 사람들도 VeriChip이 짐승의 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 받을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VeriChip이 짐승의 표이므로 받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이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⑥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9:14)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는 뜻은, 이들은 환난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자기만을 위하고 육신만을 위하고 물질만을 위해 땅에만 집착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환난에 남겨지고 나서 비로써 자신의 삶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찔렸던 잘못한 생활을 회개하게 됩니다. 그 회개가 자기를 위해 쌓았던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음으로써 육신까지 포기하고 죽임을 당하면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부끄럽게나마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⑦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셀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계7:9)
이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셀 수 없는 무리들이 환난을 통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이 불순종의 사람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자비를 베푸셨기에 환난을 통하여 구원시킬 숫자가 이토록 많습니다. 그렇다면 환난 전까지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의 얼마나 되겠습니까? 휴거될 자가 극소수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만드신 목적대로 살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7. 거짓 목자들에게 속은 신자들
⑧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계7:15)
이 구절은 중요하기 때문에 긴 설명이 요구됩니다. 저들도 예수를 믿었었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헌금생활도 하였습니다. 전도하며 교회에서 봉사도 하였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목사, 장로, 집사, 권사 등, 교회에서 시행되는 모든 직임을 담당하며 교회에 충성된 일군이란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를 믿기는 믿었는데 지식적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식적이라는 말은 배워서 알게 되면 수용하고, 배우지 못해서 모르면 수용하지 않는 것이 지식입니다.
저들은 성령께서 알려주는 경고 일지라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용과 또는 성경에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소속된 조직의 정책에 반대되면 배척하면서, 그 배척하는 것을 정통신앙이라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좋은 믿음인줄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짖고 예수 이름을 불렀으니 온전한 믿음인줄 알았습니다. 조직이란 제도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박해하고 주님의 택하신 같은 주의 종들을 배척하고 목회를 하지 못할 정도로 핍박하고 출교까지 시켰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로 알았지만, 그것은 교회를 박해하는 사탄의 사주를 받고 하는 짓을 깨닫지 못했던 것은 지식으로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을 착복하고 교권을 매수하려고 돈을 쓴 것이 지식적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러한 행위는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자신을 섬기다가 이제 대환난을 통하여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부터 육신을 떠난 영체가 하나님을 밤낮으로 섬기더라는 말입니다. 신자들도 같습니다.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를 하나님 이상으로 우상화시키면서 목사의 말이 아니면 어떤 진리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또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교인 숫자를 늘리기 위해서 온갖 거짓말로 이웃 교회를 험담하고 이웃 성도를 험담하고 이웃교회 목사를 험담하였습니다. 이러한 악행은 하나님을 섬기려는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인 건물을 섬기는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보다 자기교회 목사를 더 섬겼습니다. 이런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행하지 않아서 더렵혀졌다고 주님께서 책망하였습니다. 이런 행위 때문에 심판주가 언제 재림하는지 알지 못해서 대 환난에 남겨지는 원인입니다.(계3:3)
천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 앞에 왔을 때 장로가 ‘그러므로’ 라고 했는데, 이는 영어로 ‘Therefore’입니다. 이 단어가 지니는 뜻은....[어떤 결과에 따라서]....[그 때문에]....라는 ‘전환점’을 강조합니다. 장로가 강조하는 ‘그러므로’는 그들이 땅에 살 때에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육신을 위해서는 밤낮으로 수고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는 밤낮으로 수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하나님 앞에 서있지 않았습니다. 이제 죽임을 당하고 그의 영은 육신이 떠나서 하늘나라에 올라왔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 육신을 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온전한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를 사랑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저들이 환난전에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더라면 대환난에 남겨지지 않았을 것인데 그렇게 살지않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한 후에, 이제는 다만 밤낮으로 하나님만 ‘섬기기 때문에’ 그 위에 장막을 치신다 합니다. 장막을 친다는 뜻은 하나님의 자비가 그들 위에 임한다는 뜻입니다.
⑦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7:17)
저들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수 이름을 불렸을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예수 이름으로 기 도 했을 것입니다. 찬송할 때도 예수의 피를 부르면서 기쁨으로 하였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시행하는 세례식과 성찬식에도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로부터 성령으로 거듭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선포도 받았을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다 휴거된다는 목사의 가르침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환난에 남아서 죽임을 당했으니, 하늘의 장로가 거짓말을 하는가, 아니면 당신에게 말하는 목사가 거짓말로 가르쳤는가? 귀 있는 자라면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하십니다.
하늘의 장로가 말한 ‘그러므로’는 17절에서도 적용됩니다.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라는 의미는 그들이 땅에서는 예수를 자기의 목자로 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목자로 섬겼다는 말입니까? 인간인 목사를 예수보다 더 위에 올려놓고 목사의 말이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장로가 “그러므로 그들이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매”합니다. 그들은 밤낮으로 인간 목사를 목자로 섬겼을 뿐이지 예수를 목자로 섬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죽임을 당하고 육신은 땅에 두고 영만 하늘나라에 올라왔습니다.
따라서 육신적으로는 더 이상 목사를 섬기지 못합니다. 누구만을 섬겨야 합니까? 예수뿐입니다. 자신들이 목사만 밤낮으로 섬기고 예수는 밤낮으로 섬기지 못한 것을 대환난을 통하여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잘못 가르침을 받은데 대하여 회개하고 예수 이름을 붙잡고 죽임을 당할 때 저들의 영혼이 하늘나라로 끌어올려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진정한 목자를 찾은 것입니다. 그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너희들이 대 환난에 남지 않으려면 인간인 목사를 섬기지 말고 너희를 위하여 피를 흘려준 예수만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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