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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2/천국과지옥·3

[신부] 주의 날을 사모하면서!(산정현 교회)

 

 

 

 

주의 날을 사모하면서!산정현 교회 최상순 목사님     

   
 


☞ 주의 날을 사모하면서 벧후3:10-13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①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②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③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④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⑤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⑥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⑦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⑧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주의 날을 사모하면서 !


재림(reincarnation; a second coming--resurrection= 예수의 부활(최후의 심판일에 있어서의) 전(全)인류의 부활.)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마지막날에 지상에 다시 오시는 날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사회는 농경사회--산업사회--자본주의사회--정보사회--멀티미디어사회--나노사회로 발전해 왔습니다.
말세를 사는 성도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주의 재림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재림이 늦다고 생각하는 신앙심이 약한 성도들에게 주의 재림은 그렇게 늦은 것이 아니며 또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라.'
어떤 성직자는 설교할 때마다 그것이 그의 생애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어떤 왕은 신하의 편지를 받고도 그날 읽지 않고 내일로 미루었기 때문에 그날 밤에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I. 하나님은 시간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삶은 철저하게 시간에 의해 지배받 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인간의 시간 계산법에 의해 인생을 설계하기도 하고 또 매일의 삶을 계획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이런 인간이 세운 시간법이 맞지 않습니다. 베드로는'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말합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 사건이 하나님 앞에서는 천년, 이천년을 두고 계속 됩니다. 성도들이 주의 재림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지치고 낙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시간법을 자신의 시간법에 맞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의 시간법에 자신을 맞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길면 100년에 이르는 인간의 생명을(참조, 시 90:10) 가리켜 '너희 생명이 무엇 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시간법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 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 (시 84:10)라고 고백한 시편 기자처럼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II. 모든 사람이 다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1. 오래 참으십니다.
재림이 지연되었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재림을 잊어버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다 구원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면 좀더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재림의 지연은 지금 주께로 돌아와 회개하고 구원 얻기를 촉구하는 것입니다(참조, 고후 6:2).
2.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심판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 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인종, 언어, 성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당신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유보하고 계신 것입니다.


3. 마지막 시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1). 종말은 갑자기 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도 이 시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비유를 가르치면서 당신의 재림을 도둑이 주인 몰래 오는 것과 같다고 교훈하셨습니다(참조, 마 24:43 눅 12:39).
이런 생각은 여러 사도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 납니다(참조, 살전 5:2 계3:3; 6:15). 이처럼 주의 재림은 갑작스런 사간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더욱 깨어서 신앙의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베드로는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천체는 불에 타서 녹아 버릴 것이며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이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10절)라고 말합니다. 말세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은 온 우주 만물에게 다 적용이 됩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 어느 한 생명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자는 심판날에 주의 상급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이 늦는 것을 악용하여 방종한 삶을 산 자는 큰 형벌을 받게 됩니다.
성도들은 주의 날이 가까울수록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참조, 벧후 3:12).

III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죄악의 압제가 끝나고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새로운 역사의 서곡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포로된 자에게 는 자유가 선포되고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되었으며 눌린 자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참조, 눅 4:18).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절망과 고통의 날들이 끝나고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리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변화가 일순간의 감격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되는 것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속죄와 해방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변화된 모습으로 영원히 살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새로운 세상은 하늘이 새로 열리고 땅이 새로 이룩 되는 대변혁을 통해 실현될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은 이미 경험한 구원의 은혜를 통하여, 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참됨이 확인된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있기에 성도들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2. 사도들의 증거입니다
사도들이 선포한 말씀과 사도들이 보여 준 삶의 모습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소망하는 것이 결코 허황된 공상이나 막연한 기대가 아님을 믿을 수 있게 해줍니다.
사도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사도들은 온갖 고초를 감내하며 환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베드로의 증거와 계시록의 사도 요한의 증거와 사도 바울의 증거는 정의만이 넘치는 새로운 세상이 이룩될 것을 확신할 수 있게 하는 근거입니다.


3.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성도의 신앙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1) 경건한 신앙을 지키기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 자신이 직접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경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늘 애쓰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2) 거룩한 행실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경건한 신앙에 아울러 거룩한 행실을 지키라고 성도들에게 권고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총체적으로 판단하는 최후 심판이 있은 후에 이룩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믿음과 행위를 함께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거룩한 행실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1:27)이며, 온몸을 산제사로 드릴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경건한 신앙과 거룩한 행실을 모두 갖춘 자들만이 차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성도는 경건함과 거룩함이 삶의 원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① 무엇보다도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②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3:12)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③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3:12)고 말합니다.
④ “정의가 살아있는 본향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⑤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3:14)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피로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예화 : 1. '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인 '콘스탄티우스'가 황제에 즉위했을 때 주요 기관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많음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칙령을 내려 국가의 공직에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으면 믿음을 버리든가, 직위를 버리든가 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자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공직을 버리고 떠났다. 다만 몇몇 요직에 있는 사람만은 지위가 아깝고 권력을 못 잊어 예수를 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때 황제는 의외로 그리스도교를 버린 비겁자들을 모조리 해직시키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에게 진실하지 못한 자들은 결코 나에게도 진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2. 기다리는 마음


수년 전에 한 아버지가 먼 여행 집을 떠나야만 되었다. 떠나기 바로 전에 세 살 된 꼬마 녀석이 "아빠, 언제 돌아와?" 하고 묻는 것이다. 그러자 아빠는 자기가 9월말까지는 돌아올 수 없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놈에게 몇 월, 몇 일, 몇 시 무슨 계절하고 설명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니 이런 얘길 해도 소용없는 것을 깨닫고서 그는 애 옆에 앉아서 얘기를 꺼냈다. "자, 이거 봐. 저 나뭇잎 보이지? 저게 울긋불 긋해져서 저 잎들이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땐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거야." 다음날 아버지는 집을 떠났다. 7월과 8월 이 아이는 보모의 손을 잡고 산보를 다니곤 했다. 이렇게 산보하면서 그는 집에 안 계시는 아빠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서서히 날이 지나서 어느덧 9월 초 그리고 9월 중순에 접어들었다. 이 꼬마 소년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큰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숱하게 떨어져 온 길바닥과 도랑을 덮었다. 다음날 아침 이 꼬마 친구는 밖을 나오자마자 이 광경을 본 것이다. 그러자 보모의 손을 뿌리치고 낙엽을 발로 하늘 높이 좋아라 차며 "야! 신난다! 아빠가 곧 오시는 거야" 하고 이 꼬마아이는 소리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온 세상이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 차있다. 나뭇잎들은 단풍으로 물들어 한 잎 두 잎 낙엽으로 탈바꿈을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 시길 "너희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거든 매우 슬퍼하라? 아니다. 용기를 내어 기뻐하라" 고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의 위대한 아침이 동터오고 있으니 이는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 오기 때문이다.

3. 황금보다 귀중한 지식이 무엇입니까?


재림을 아는 지식이 귀중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황금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어느 때라도 오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일을 할 것이다. 무디는 그의 능력의 비밀을 묻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년 동안 설교할 때마다 이 설교가 끝나기 전에 그리스도가 오실 수도 있다고 생각해 왔다." 뛰어난 영국의 성경 주석가 캠벨 몰간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매일 밤 내일이 마지막 날 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들었다".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요 전도자인 R. A. 토레이는 이렇게 말했다. "재림의 진리는 성경의 진리 중 가장 귀중한 것이다."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뮐러는 "하나님께서 주 예수의 재림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을 때 자신의 심정이 어떠했는지를 말했다. 잠들어 있는 세상을 생각하니 내 속에서부터 죄인에 대한 사랑이 끓어 올랐다." 그리스도를 위해 중국에 들어갔던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의 재림은 나의 사역에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장로교의 강력한 전도자 윌버 채프만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주님의 재림을 설교하는 이유는 재림의 사실이 나의 사역 전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각성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실 것이다. 재림이 있기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할 일을 알려주신 것은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