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서 깨어나 영원한 삶으로 2
지은이 : 영성 신학자겸 신비가 Swedenborg (천계비의 중 445-452, 491-498 / 본문) 그는 천박한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천천히 끝까지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453. 앞의 여러 장에 걸쳐서 다룬 것들로부터 사람의 영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곧 영은 그 모습에 있어서까지도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보여왔다. 특히 모든 하나 하나의 천사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 있는 것(73-77번)을, 모든 하나 하나의 사람은 그의 내면들에 있어서 영인이라는 것(432-444번)을 그리고 하늘나라에 있는 천사들은 인류로부터 있다는 것(311-317번)을 보여왔다.
「2」 이것을 사람은 육체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사람이라는 것과, 육체의 모습은 영의 모습에 따라서 그 영에 덧붙여진 것이고 그 반대가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더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이는 영이 영의 모습에 일치하는 몸으로 옷 입혀지는 까닭이다. 이것이 왜 사람의 영이 육체의 어느 부분에도 활동하지 않는 곳이 없이, 육체의 세세한 부분 속에서, 가장 작은 미세한 부분 속에서까지도 활동하는가 하는 이유이다. 영이 육체 안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육체는 살지 못한다. 생각과 의지는 온 육체에서 그리고 그 모든 부분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협력하는 완전한 지배 가운데서 작용한다는 사실로부터 누구나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것이든 협력하지 않는 것은 육체의 부분이 아니다. 그것은 그 안에 생명의 요소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밀쳐 내진다. 생각과 의지는 사람의 영에 속한 것이지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
[3] 왜 영은 육체에서 떠난 뒤든, 또는 다른 사람 안에 있든 사람에게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질 않는가. 그것은 시각의 육체적 기관인 눈이 그 보는 것을 세상 안에서 활동해야 하므로 물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질적 본질은 물질적인 것만을 보고 영적 본질은 영적인 것만을 본다. 그러므로 물질의 눈이 어두어지고 영의 눈과 함께 일하는 능력을 잃으면 그 때 영인들이 그들 본연의 모습, 곧 인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것은 영계에 있는 영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아직 육체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의 영에 있어서도 그렇다.
454. 왜 영인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인가, 그의 영에 관한 한 사람은 하늘나라의 모습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하늘나라의 모든 요소들과 그 질서가 사람 마음을 이루는 요소들 안으로 함께 들어오는 까닭이다.1) 그리고 이것에서 총명과 지혜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능력이 있게 된다. 이것은 총명과 지혜를 받는 능력이라 하든지 또는 하늘나라를 받는 능력이라 하든지 같은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것들을 다룬 데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바와 같으니, 곧 하늘나라의 빛과 볕(126-140번), 하늘나라의 모습(200-212번), 천사의 지혜(265-275번)에 대하여 다룬 것에서, 그리고 온 하늘나라의 모습이 또한 그 부분적 모습에 있어서도 한 사람을 닮았음(59번-77번)을 다룬 것에서, 그리고 이것은 하늘나라와 하늘나라 모습의 근원이 되는 주님의 신성-인성에 의한 것(78-86번)에 대하여 다룬 데에서 확신 할 수 있다.
455. 합리적인 사람은 지금 말한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그가 원인과 연관지어서 그리고 그들의 질서 안에 있는 진리에서 그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리적이 아닌 사람은 그것들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많은 이유가 있다. 그 주된 하나는 자기의 '진리들'로서 자리를 잡아 온 거짓 관념들에 그 일들이 반대가 되는 까닭에 그것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바램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까닭에 이해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합리적 능력에 하늘나라에로의 길을 닫아 버린다. 이 길은 다만 그의 의지가 거슬리지 않으면 여전히 열릴 수 있는 길이다(위 424번 참조).
만일 사람이 원하기만 한다면 참된 것을 이해할 수도 있고 합리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내게 보이기 위하여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신성과 교회의 참된 요소들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것들에 거슬려 자신들을 굳혀온 것으로 인하여 비합리적이 된 악한 영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여러 번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참된 빛 안에 있는 영인들 쪽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 때 그들은 천사들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것들이 모두 참되고 그것들 모두를 이해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고 그들 자신의 의지에 속하는 사랑을 향하여 돌아서는 순간, 그들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정 반대가 되는 것들을 확신하였다.
[2] 지옥에 사는 어떤 자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악하고 자신들의 생각이 거짓됨을 알기도 하고 보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사랑 곧 자신들의 의지의 기쁨을 물리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까지도 나는 들었다. 그들의 의지가 그들의 생각으로 하여금 악을 선으로 거짓을 참으로 보게 한다고 그들은 말하였다. 그러므로 악으로부터 거짓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고 그래서 합리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았고, 그들이 빠진 악한 것들과 어울리므로 거짓된 것들을 참된 것들 보다 더 사랑한 까닭에 그들은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 뚜렷하였다. 사랑하는 것과 뜻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사람은 그가 뜻하는 것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3] 사람은 그가 원하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상태에 있으므로, 나는 교회와 하늘나라에 속한 영적 진리들을 합리적 생각들로서도 확증하게 되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의 합리적 능력을 닫아온 거짓된 것들을 합리적인 생각들로 흩어버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정도 눈이 열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참된 것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합리적 추리로 영적 사물들을 확증하는 것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밝아진 합리적 능력으로 말씀 안에 담겨있는 진리들을 보지 않는다면 누가 말씀을 그 글자의 뜻으로부터 옳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같은 말씀에서 그렇게도 많은 이설들이 나오는 근원이 아닌가?2)
456. 사람의 영이 육체로부터 벗어난 뒤에도 여전히 사람이며 같은 모습으로 있다는 것이 나에게 많은 해를 거듭한 나날의 경험에서 증명되어 왔다. 나는 천 번도 더 그 영인들을 보았으며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영들을 사람들이라고 믿지 않으며, 사람이라고 믿는 자들을 학자들은 단순한 사람들로 여긴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들과 이야기하였다. 영인들은 이러한 무지가 세상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 안에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몹시 슬퍼한다.
[2] 그러나 이 신앙은 주로 육체적 감각에 근거하여 영혼에 대하여 생각한 학자들로부터 퍼져 나갔다고 영인들은 말했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들로부터 영혼에 대하여 그들이 형성한 유일한 개념은 영혼이 그저 사고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고를 그것이 생기고 근원이 되는 어떤 주체로부터 동떨어져 검토하면 그것은 마치 육체가 죽으면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순수한 에텔에 속한 날아가는 호흡으로 여긴다. 그러나 교회가 말씀으로부터 영혼의 불멸을 믿기 때문에 학자들은 사고가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어떤 생기가 영혼에 있다고 어쩔 수 없이 말한다. 그러나 영혼이 육체와 다시 결합이 되기 전 까지는 사람에게 있는 감각의 어떤 능력도 영혼에는 있지 않다고 한다.
이 견해는 부활에 관한 교리와 마지막 심판 때에 영혼과 육체의 재결합이 일어날 것이라는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까닭에 누군가 영혼에 대하여 이 교리와 이런 이론에 따라 생각을 하면, 영혼이 영이고 그 영은 사람 모습으로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무엇이 영적인 것인지 거의 모른다. 더욱이 영으로 있는 사람들은 모든 천사들이나 영인들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더 더욱 모른다.
[3] 그러므로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오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이전에처럼 사람과 꼭 같이 자기들이 보고 듣고 말하고, 무엇이나 다름없이 전에처럼 자기들 몸이 감각의 능력을 즐긴다는 것에 크게 놀라 마지않는다 (참조. 위 74번). 그러나 그 자신들이 놀라고 난 다음, 사실상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은 저 세상에서 사람으로서 살고 있음에도, 사람이 죽은 다음의 상태에 대해서, 따라서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교회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에 대하여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 신앙의 본질적 요소인데도 환상으로 사람에게 왜 밝혀지지 않았는지 의아해 했다. 그래서 천국으로부터 그들에게 알려왔다. 곧, 주님께서 그것을 선히 여기시면 그 보다 더 쉬운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반대가 되는 거짓을 스스로 확신해온 사람들은 그 환상을 보게 된다 할 지라도 믿지 않을 것이며, 또한 사람이 거짓 가운데 있을 때 환상으로 어떤 것을 확신하면 위험이 따르니, 이는 처음에는 믿고 다음에는 부인하여 진리 바로 그것을 모독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믿고 다음에 부인하는 것이 모독하는 것이며, 진리를 모독하는 사람들은 가장 낮은 지옥에 떨어져 모든 지옥들 가운데서도 가장 고통스럽기 때문이라 하였다.3)
[4]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 뜻하는 위험이니,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요12: 40) 또 거짓 가운에 있는 사람이 환상을 보여줄 지라도 믿지 아니할 것을 이 말씀들이 뜻하니,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눅16: 29-31).
457. 사람의 영이 영인들의 세계로 처음 들어가는 것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죽음에서 깨어난 뒤 얼마 안되어 일어난다. 그 때 그의 얼굴과 음성은 세상에서 가졌었던 것을 닮는다. 이는 그 때 그는 그의 외면의 상태에 있고 그의 내면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이 죽은 다음의 첫 번째 상태이다.
그러나 후에 그의 얼굴 모습은 변하여 아주 다르게 된다. 세상에 있을 때 그래서 그의 영이 육체에 있는 동안 마음의 내면들이 어울려 온, 그의 주동적 애정 또는 주동적 사랑을 얼굴이 닮는다. 이는 사람의 영의 얼굴이 그의 육체의 얼굴과는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육체의 얼굴은 어버이로부터 오나 영의 얼굴은 그의 애정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애정의 형상이다. 육체 안에서의 영의 삶이 끝나고 그의 외면들이 밀어젖혀지고 그의 내면들이 드러나면 영은 이 애정의 상태로 나온다. 이것이 사람의 둘째 상태이다.
나는 세상에서 갓 들어 온 몇 몇 사람들을 보고 그들의 얼굴과 음성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 그들을 보았을 때 알아보지 못하였다. 선한 애정 가운데 있었던 사람들은 아름다운 얼굴들이었다. 반면에 악한 애정 가운에 있었던 자들은 보기 흉한 얼굴이었다. 이는 사람의 영을 그 자체로 보면 그의 애정일 뿐이며 그 얼굴은 그 애정의 겉모습이기 때문이다.
얼굴이 바뀌는 또다른 이유는 저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애정을 가장하지 못하므로 자기 사랑에 반대가 되는 얼굴을 쓰도록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 세상 삶에서는 모든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자기 의도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자기의 표정과 몸짓에 나타내는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왜 모든 사람의 얼굴이 자기 애정들의 형상과 모양이 되는 이유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서로 알아 왔던 모든 사람들은 영인들의 세계에서는 서로 알아보나, 천국이나 지옥에서는 위 427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알아보지 못한다.
458. 위선자들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보다 늦게 바뀐다. 이는 그들의 내면들이 선한 애정들을 가장하는 습관을 행동으로 형성해 왔기 대문이다. 그 결과 오랫동안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한 것들이 점차적으로 벗겨지고, 마음의 내면들이 자기 애정의 모습과 일치하게 되면 얼마 있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보기 흉측하게 된다. 위선자들은 천사들처럼 말하는데 익숙한 자들이지만, 속으로는 자연만을 인정하고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천국과 교회에 속한 것들을 부인해 온 사람들이다.4)
459. 죽은 다음 모든 사람의 모습은 그가 내면적으로 신성진리들을 더 사랑하고 그것들에 따라서 살아 온 정도만큼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사람의 내면들은 자기의 사랑과 삶에 따라서 열리고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애정이 더 내적일수록 그 애정은 더 천국과 같이 된다. 그 결과 그 얼굴은 더 아름답게 된다.
이것이 왜 가장 내면의 천국 천사들이 가장 아름다운가의 이유이다. 그러나 신성 진리를 더 외적으로 사랑해 온 사람들은 그리고 더 외적인 방법으로 그 진리들에 따라서 살아 온 사람들은 덜 아름답다. 이는 외적 애정들은 다만 그들의 얼굴로부터 빛나기 때문이다. 이 얼굴을 거쳐 내면의 천국적 사랑이 빛나지 않고, 따라서 그 본연의 특성대로 있는 천국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 얼굴에는 내적 생명을 거쳐 빛나는 것으로 생기 있게 되지 못한 어떤 어두움이 보인다. 한 마디로 모든 완전함은 내면을 향하여 갈수록 더하고 외면을 향하여 갈수록 덜하다. 그리고 완전함이 더하고 덜 함에 따라 아름다움도 그러하다. 나는 삼층 천국 천사들의 얼굴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빛나는 광채는 어떤 화가도 자기의 모든 기술로도 그들 얼굴에서 빛나는 밝음과 생명의 천 분의 일의 빛깔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낮은 천국 천사들의 얼굴은 어느 정도 같게 그릴 수 있을 것이다.
460. 결론으로,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아니한 신비, 곧 주님으로부터 나와 천국을 만드는 모든 선과 진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이것은 전체적으로 그리고 가장 큰 것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부분적이고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또한 이 모습은 주님으로부터 선과 진리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가 선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따라서 사람 모습으로 있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 결과로 천국은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한결같다. 그래서 사람의 모습은 전체의 모습에, 각 사회의 모습에, 그리고 각 천사의 모습에 적용된다. 이는 위의 넷째 가름 59에서 86번에 걸쳐 보인 바와 같다. 이에 덧붙일 것은, 그 사람의 모습은 천사들 안에 있는 천국적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사고의 세부적인 것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도 이 신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으나, 천사들은 뚜렷이 깨닫는다. 그들은 천국의 빛 안에 있기 때문이다.
1. 사람은 그 속으로 신적 질서의 모든 것들이 들어오는 존재이며, 창조에 의하여 그는 그 모습에 있어서 신적 질서이다 (천비4219, 4222, 4223, 4523, 4524, 5114, 6013, 6057, 6605, 6626, 9706, 10156, 10472번). 사람이 신적 질서에 따라서 사는 한 죽은 다음에 완전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보인다 (천비4839, 6605, 6626번).
2. 말씀으로부터 이끌어낸 교회 교리의 진리들은 출발점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진리들은 첫 번째로 인정 되야 하며, 그 다음에 지식을 참고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 (천비6047번). 그러므로 신앙의 진리에 대하여 지식들로서 합리적으로 그것들을 확증하는 긍정적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식을 참고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나 부정적인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허용할 수 없다 (천비2568, 2588, 4760, 6047번). 영적 진리들로부터 합리적으로 지식들 곧 자연적 진리들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적 질서에 따르는 것이나, 자연적 진리로부터 영적 진리로 들어가는 것은 그렇지 않다. 이는 자연적인 것들 속으로 영적인 것들이 입류 하는 것은 가능하나, 자연적 또는 물리적인 것이 영적인 것들 속으로 입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비3219, 5119, 5259, 5427, 5428, 5478, 6322, 9109, 9110번).
3. 모독(더럽힘)은 사람 안에서 선과 악을 그리고 진리와 거짓을 섞음질 하는 것이다 (천비6348번). 처음에 진리와 선, 또는 말씀과 교회의 거룩한 것들을 인정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에 따라서 살고 다음에 그 믿음을 떠나고 그것을 거부하며, 자신들과 세상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만이 그것들을 모독할 수 있다 (천비593, 1008, 1010, 1059, 3398, 3399, 3898, 4289, 4601, 10284, 10287번). 사람이 가슴속으로 회개한 다음에 이전의 악들로 다시 빠지면 그는 모독한다. 그 때 그의 나중 상태는 이전 상태보다 더 나쁘다 (천비8394번). 거룩한 것들을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 더욱이 거룩한 것들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독할 수 없다 (천비1008, 1010, 1059, 9188, 10284번). 교회 밖에 있는 말씀을 갖고 있지 않는 이교도들은 말씀을 모독할 수 없다 (천비1327, 1328,2051, 2844번). 이 까닭에 내적 진리들이 유대인들에게 밝혀지지 않았다. 만일 밝혀지고 인정하였다면 그것들을 모독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천비3398, 4289, 6963번). 모독하는 사람들의 운명은 저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나쁘다. 이는 선과 진리를 그들이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악과 거짓들이 남아 있어서 이들이 서로 달라붙어 있어서, 그 삶을 분열시키기 때문이다.(천비571, 582, 6348번).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독을 막기 위하여 가장 세심한 대비를 하신다 (천비2426, 10287번).
4. 얼굴은 내면들에 상응하도록 모습을 짓는다 (4791-4805, 5695번). 얼굴의 상응과 마음의 애정에 따른 그 표정들 (1568, 2988, 2989, 3631, 4796, 4797, 4800, 5165, 5168, 5695,9306번). 천국 천사들의 얼굴은 마음에 속한 내면들과 하나를 이룬다 (4796-4799, 5695, 8250번). 그러므로 말씀에서 얼굴은 마음, 곧 애정과 사고에 속하는 내면들을 뜻한다 (1999, 2434, 3527, 4066, 4796, 5102, 9306, 9546번). 뇌로부터 얼굴 속으로의 입류와 그리고 그 입류와 더불어 얼굴 자체가 내면과의 상응의 측면에서 어떤 식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되어 왔는가 (4326, 8250번).
461. 사람은 죽을 때, 자연계에서 영계로 옮겨 갈 때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을 가지고 간다. 이승의 육체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이것이 여러 가지의 경험들로 내게 입증되었다. 이는 영계에 들어가면, 또는 죽은 뒤의 삶에서는 세상에 있었을 때와 같이 뚜렷한 다름이 없이 몸 안에 있어서와 마찬가지요 보거나 느끼는 데 있어서 어떤 다름이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그 때 그의 몸은 영(靈)이다. 따라서 땅에 속한 모든 것에서 떠나 깨끗하게 된다. 또 영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만지고 볼 때 그것은 자연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을 만지고 보는 것과 꼭 같다. 그런 까닭에 영인이 되었을 때 이승에서 가졌던 같은 몸 안에 있는 것으로만 알므로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모른다.
「2」 더욱이 영인은 그가 이승에서 즐겼던 속과 겉의 모든 감각을 즐긴다. 앞서와 같이 본다. 앞서와 같이 듣고, 말하고, 냄새 맡고, 맛본다. 누가 건드리면 그 건드림을 앞서와 같이 느낀다. 앞서와 같이 그리워하고, 바라고, 갈망하고, 생각하고, 숙고하고, 감동하고, 사랑하고, 뜻한다. 학문적 일들을 즐긴 사람들은 앞서와 같이 읽고 글을 쓴다. 한 마디로, 이 삶에서 저 삶으로 가면, 또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면, 그것은 마치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에 고유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지상 육체의 죽음 뿐이요, 진정 자기 자신에 속한 어떠한 것도 잃었다고 말할 수 없다.
「3」 더욱이 자기의 자연적 기억을 가지고 간다. 이는 그가 이승에서 가장 어린 때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듣고, 보고, 읽고, 배우고 생각한 모든 것을 간직함이다. 그러나 기억 안에 담겨 있는 자연적 내용들은 영계에서는 다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것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때와 같이 잠잠히 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뜻하시면 다시 나타나게 된다. 이 기억에 대하여 그리고 죽은 다음의 상태에 대하여 곧 다룰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상태가 이러한 것을 감각적인 사람은 믿기가 아주 어렵다. 그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사람은 영적인 것까지도 자연적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어떠한 것이 감각에 들어오지 않으면, 곧 육체의 눈으로 보지 않고 손으로 만져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그 영적인 것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요한복음 20장 25, 27, 29의 도마의 말과 같이). (감각적인 사람이 어떠한가를 위 267번에서 볼 수 있다.
462. 「가」 그러나 영계에서의 삶과 자연계에서의 삶 사이에는 겉 감각과 그 애정 그리고 속 감각과 그 애정 모두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훨씬 더 섬세한 감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훨씬 더 정확하게 보고 듣는다. 이승에 있었을 때 보다 더 슬기롭게 생각한다. 그들이 이 세상의 빛 보다 많은 등차가 뛰어난 하늘나라의 빛으로 보고(위 126번 참조), 또한 지상의 대기 보다 많은 등차가 뛰어난 영적 대기로 듣기 때문이다 (위 235번 참조).
이 겉 감각의 차이는 세상의 밝은 햇살과 어두운 구름 사이의 차이 또는 한 낮의 빛과 저녁 어스름의 차이와 같다. 하늘나라의 빛은 신적 진리이기 때문에 천사들의 시각에 가장 작은 것들을 알아차리고 분별하는 능력을 준다. 「2」 더욱이 겉 시각은 속 시각 또는 이해성에 상응한다. 이는 천사에게 있어 겉 시각은 속 시각으로 흘러 들어가서 그것과 더불어 하나로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예리한 시각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그들의 청각은 지각에 상응한다. 그 지각은 이해성과 의지 모두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는 이의 음색과 말들에서 그 사람의 애정과 생각의 가장 작은 것까지도 지각한다. 음색에서는 그의 애정에 속한 것을, 말들에서는 그의 생각에 속한 것을 지각한다 (234-245번 참조).
그러나 천사들의 다른 감각들은 시각과 청각만큼 예리하지 않다. 시각과 청각은 다른 감각들 보다 뛰어나므로 그들의 총명과 지혜에 이바지한다. 만일 다른 감각들이 같은 수준으로 예리하다면 그들의 지혜의 빛과 기쁨을 떨어뜨릴 것이며 몸의 여러 가지 욕망을 즐기는 기쁨으로 이끌 것이다. 이것이 지나치면 이해성을 가리고 약하게 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바와 같다. 사람이 미각에 빠지고, 촉각의 유혹에 넘어가는 만큼 영적 진리에 대하여 무디고 흐린 것이다.
「3」 하늘나라 천사들의 지혜에 대한 가름(265-275번)에서 보인 것으로부터, 천사들의 생각과 애정에 속한 더 안에 있는 감각들은 세상에 있을 때 가졌던 감각들 보다 더 예리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옥에 있는 자의 상태와 그들의 세상에서의 상태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있다. 이는 하늘나라 천사들의 속과 겉 감각들이 완전하고 뛰어남이 큰 만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의 불완전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태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룬다.
462 「나」.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자기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간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나에게 보여 주셔 왔다. 내가 보고 들어온 많은 것들이 알릴 가치가 있는 것들이며 그 가운데 몇몇을 차례로 말한다. 세상에서 지은 죄와 악행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들을 무죄라고 믿지 않도록 그들 기억에서 가장 어린 때로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것들이 순서에 따라 드러나고 다시 보여졌다. 이것들은 주로 간음과 매춘에 관한 것들이었다.
「2」 악한 술책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도둑질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속임수와 도둑질이 하나 하나씩 다시 헤아려졌다. 그것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그들만 아는 것이었고 세상 어떤 사람들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이었다. 이 행위들을 그들은 고백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그 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모든 생각과 의도와 즐김과 두려움과 함께 대낮처럼 뚜렷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3」 뇌물을 취하고 돈으로 좌우된 재판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비슷한 방법으로 이 사람들에게서 그들 기억이 드러났다. 그 기억으로부터 그들 직무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행한 모든 것들이 다시 보여졌다. 무엇을 얼마나 그들이 취했는지 또한 그 때의 그들 마음과 의도의 상태에 대한 세세한 것들이 그들 기억에서 모두 상기되고, 시각 속으로 옮겨져 수백 개가 드러났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일어났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같은 것들을 써 놓은 비망록이 다른 사람들 바로 앞에서 한 쪽 한 쪽씩 펴져서 읽혀지던 것이었다.
「4」 처녀를 꾀어 욕을 보이고 정조를 빼앗은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비슷한 재판에 부쳐졌다. 그들의 상세한 죄상이 그들 기억에서 나와 다시 보여졌다. 그 처녀들과 다른 여인들의 실제 얼굴들이 마치 그들이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그 장소 그 음성 그 분위기와 함께 나타났다. 이것은 한 장면이 눈에 보일 때처럼 아주 즉각적인 것이었다. 때때로 이 실증들은 몇 시간이나 이어졌다.
「5」 남을 헐뜯는 것을 아무 것도 아닌 양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헐뜯음이 그리고 명예훼손도 그 실제 말들과 함께 순서에 따라 자세히 나오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가 헐뜯고 명예훼손 시킨 사람들을, 또 누구 앞에서 그것을 하였는지 밝히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는 비록 세상에 살 때 그 모든 것들을 가장 주의 깊게 숨겼으나, 생생하게 드러나 보여졌다.
「6」 교활한 방법으로 친척의 유산을 빼앗은 자가 있었다. 그 역시 잘못이 증명되었고 같은 식으로 심판을 받았다. 신기하여라 그들 사이에 오고 간 편지와 문서들을 내가 듣는 가운데 읽었는데 그들은 말하길 한 마디도 빠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7」 바로 이 사람이 죽기 직전에 이웃을 몰래 독살시켰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식으로 밝혀졌다. 그의 발 밑에 도랑이 하나 파지는 듯 보였다. 그것이 파진 다음에 한 사람이 마치 무덤에서 나오듯 나와 그에게 외쳤다. '네가 내게 어떻게 해 왔냐?' 그 때에 모든 것은 드러났다. 독약을 먹인 자가 친구처럼 어떻게 그와 말을 하고 잔을 권했는지, 또 그 앞에는 무엇을 생각하였으며 그 뒤에는 무엇이 일어났는지 드러났다. 이 모든 것이 드러나자 그는 지옥으로 가는 심판을 받았다.
「8」 한 마디로 하나 하나의 악한 영인에게 모든 그의 악한 행위들, 범죄들, 도둑질, 속임수, 사기가 밝히 드러났다. 이것들은 그 자신의 기억에서 나왔고 입증되었다. 또 모든 그 일을 둘러싼 상황이 함께 보여지기 때문에 부인할 여지가 없다. 천사들이 사람의 기억에서 한달 동안 생각한 것을 하루도 착오 없이 보고 조사한 것, 그리고 그 생각들은 마치 그것이 일어났을 때와 꼭 같이 회상되었다는 것까지도 나는 들었다.
「9」 이러한 보기에서, 사람은 자기의 모든 기억을 지니고 가며, 죽은 다음에 드러나지 않도록 이 세상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이것은 주님의 말씀대로 공개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 (눅 12: 2, 3).
463.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의 행위를 드러내게 될 때, 그를 조사할 직무를 받는 천사들은 그 의 얼굴을 주의 깊게 본다. 다음에 그의 온 몸에 걸쳐, 이 손과 저 손의 손가락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런 식으로 온 몸으로 조사가 이어진다. 내가 이것에 대하여 이상히 여겼더니, 다음과 같이 밝혀졌다. 생각과 의도의 상세한 것들이, 그 근원이 뇌에 있으므로 뇌에 새겨지는 것과 같이 그것들은 온 몸에도 새겨진다. 이는 생각과 의도의 모든 요소들이 그 근원에서 온 몸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그들 마지막 모양새로 있도록 굳어지는 까닭이다. 이것이 왜 의도와 그에 따른 생각에서 나와 기억에 새겨지는 것은 뇌에 뿐만이 아니라 사람 전체에 새겨지며, 거기서 몸의 각 부위의 꼴을 닮은꼴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이유이다. 이로서 사람 전체의 특질은 그의 의지와 그에 따른 생각의 특질과 꼭 같으며, 악한 사람은 그 자신의 '악'이며 선한 사람은 그 자신의 '선'이라는 것까지도 분명하게 되었다.1)
이러한 고찰로부터 말씀에 나오는 사람의 「생명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진정 행위와 생각의 모든 것이 사람 전체에 새겨지며, 그것들을 기억에서 불러일으키면 책을 읽는 듯 보이고, 또 그 영을 천국의 빛으로 조사하면 그 모든 것들은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나는 죽은 뒤에도 기억이 계속 남아 있는 것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몇 가지 것을 더하려 한다. 기억에 들어간 일반적인 것뿐만 아니라 가장 작은 것도 남아 있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였다.
거기에는 이 세상의 책처럼 글을 담고 있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은 글쓴이의 기억에서 나온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그 책들에는 같은 저자가 세상에서 쓴 책 안에 있는 단 하나의 낱말도 빠진 것이 없었다. 이와 같이 모든 지극히 작은 것들을 기억에서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사람이 세상에서 잊어버린 것까지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밝혀졌다. 사람은 속과 겉 기억을 갖고 있으며, 겉 기억은 그의 자연적 사람에 속하는 것이요 속 기억은 그의 영적 사람에 속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생각하고 의도하고 말하고 행한 세부적인 것들이, 그가 듣고 본 것까지도 그의 속 또는 영의 기억에 새겨진다.2) 거기에 있는 것들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이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영 자체에 또 그 몸과 팔 다리에 곧바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그 영은 그 의지의 생각과 행동을 보존하는 것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일들이 아주 이상하게 보이고 또 그 까닭에 믿기 어려울 줄 안다. 그러나 진실이다. 그러니 죽은 뒤에도 자기 속에 생각해 온 또는 자기가 행한 어떤 것이 비밀로 감추어져 있으리라 믿는 사람이 있어서는 아니 되리라. 차라리 낱낱이 또 모든 것이 그 때 가서는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알아야 하리라.
464. 겉기억 또는 자연적 기억이 죽은 뒤에도 남는다 하여도 그것이 담고 있는 단순히 자연적 요소들은 저 세상 삶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게 되고 상응에 의하여 자연적인 것에 연결되어 있는 영적인 요소들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영적인 요소들이 눈앞에 나타날 때는 자연계에서 나타났던 것과 꼭 같은 모양새로 보인다. 이는 천국 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비록 그것들이 본질적으로 자연의 것이 아니고 영의 것이지만 이 세상 안에 있는 것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천국 안의 표상물과 겉모양에 대한 가름(170-176번)에서 보인 바와 같다.
「2」 그러나 물질적인 것에서, 시간과 공간에서 그리고 자연에 고유한 그 밖의 것들에서 나온 겉기억 또는 자연적 기억은 이 세상에 있을 때 수행했던 것 같은 기능으로는 그 영인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는 이 세상에서는 겉감각 수준의 굴림에서 생각하면서 아울러 속 또는 "이지적" 감각 수준의 굴림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연적으로 생각한 것이요 영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승에서 그가 한 영인으로서 영계에 있을 때 그는 자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적으로 생각한다.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지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까닭에 물질적인 것들에 관한 한 겉 또는 자연적 기억은 휴면 상태가 되고, 오로지 세상에 있는 동안 물질적인 요소들로부터 합리적으로 만든 것들만이 쓰이게 된다. 물질적 요소에 대한 겉기억은 왜 휴면 상태가 되는가, 이러한 것들을 그 때 다시 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영인들과 천사들은 그들 마음에 속한 애정과 거기서 나온 생각으로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들과 맞지 않는 것을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천국의 천사들의 말과, 그들과 사람들과의 말에 대하여 234-257번에 써 놓은 것에서 알 수 있다.
「3」 이것이 왜 이 세상에서 사람이 언어와 학문에 숙달된 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그것들을 수단으로 합리적으로 된 정도에 따라서 죽은 뒤에는 합리적으로 되는가 하는 이유이다. 히브리어, 그리스어, 라틴어 같은 옛 말에 숙달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학자라 믿어졌던 많은 사람들과 나는 말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 말들로 쓰여 있는 것들로 자신들의 합리적 능력을 닦지 아니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이 말들을 모르는 아주 단순한 사람처럼 보였고, 몇 사람은 어리석게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남보다 더 지혜로운 자들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4」 사람의 지혜란 그 사람의 기억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느냐 하는 정도에 따른다고 세상에서 믿었던 사람들과 말했다. 이 사람들은 그들 기억에 많은 것을 담아 두고 거의 그것만을 굴림으로 말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 자신을 중심으로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것에서 말하고, 자신들의 기억에 있는 것들로 어떤 합리적 능력도 온전하게 하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어리석었고, 몇 몇은 바보 같았다. 그들은 자칭 학자라는 자들이 진리라고 내놓은 모든 거짓에 사로잡혀, 어떤 진리가 있으면 참인지 아닌지 몰라서, 참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사실상, 그들 자신으로는 어떠한 것이 참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들을 때에 어떠한 것을 합리적으로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5」 세상에서 많은 종류의 학문적 주제들로 많은 글을 썼고, 그로 인해 세상에 널리 학자라는 명성을 떨친 사람들과도 말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진리에 관하여,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몇 사람은 그들이 진리의 빛 가운데 있는 사람들과 말할 때에는 그 진리들이 참되다는 것을 실로 이해하였으나, 그런데도 그것들을 이해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그들 자신들의 거짓들과 그 거짓을 따르며 자기 자신들 안에 있을 때에는 습관적으로 진리에 관한 것들을 부인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무식자 같이 지혜가 없었다. 이와 같이 각 사람은 그 자신의 합리적 능력을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가 저술하고 본뜬 학문을 수단으로 개발한 것에 따라 서로가 달랐다.
그러나 교회의 진리를 반대하였고, 단순한 지식으로 생각하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거짓을 확고히 해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합리적 능력을 개발하지 않았다. 그들은 추리의 방법을 사용하는 능력만을, 세상에서 사람들이 합리성이라고 믿는 능력만을 개발했다. 그러나 이 능력은 합리성과는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무엇이나 증명하는 능력이요, 선입관과 오류를 굴림으로 참된 것보다는 거짓된 것을 보는 능력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참된 것을 결코 인식할 수 없다. 참된 것으로부터는 거짓된 것을 알 수 있어도, 거짓된 것으로부터는 참된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6」사람의 합리적 능력은 정원과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과 같거나 땅을 갈아 놓은 밭과 같다. 기억은 흙이요, 그가 알고 있는 진리와 지식은 씨앗이다. 하늘의 빛과 볕은 그것들을 자라게 한다. 볕과 빛이 없으면 싹트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 신적 진리인 천국의 빛과 신적 사랑인 하늘나라의 볕이 들어오지 않으면 싹트지 않는다. 합리성은 오로지 이 둘에서 온다. 천사들은 대부분의 배운 사람들이 모든 사물을 자연에 돌리고, 그것으로 하늘나라의 빛인 진리의 빛에 비추어 진리에 속한 어떠한 것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내면을 닫아 버린 것을 크게 슬퍼한다. 이 결과로 저승에서 이러한 사람들이 단순히 선한 사람들에게 거짓들을 심어 잘못된 길로 이끌지 못하게, 그들에게서 추리하는 능력이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는 광야로 보내진다.
465. 어떤 영인은 분개했다. 그가 육체를 입고 살았을 때 알았던 많은 것들을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도 즐겼던 쾌락을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슬퍼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다는 것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알았던 낱낱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나 지금 와있는 세상에서는 아무도 기억에서 이러한 것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허락되지 않으며 이전보다 더 잘 그리고 온전하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합리적 능력이 이제는 이전처럼 심한 혼돈에, 물질적인 데에, 육체적인 데에 빠져들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이제 그가 와 있는 나라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그가 영원한 삶의 쓰임새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복을 받고 행복하게 되는 단 하나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 기억에 있는 물질적인 것들이 떠나고 잠자는 상태가 되므로 총명이 없어진다고 믿는 것은 이러한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은 마음이 겉사람 또는 육체에 속한 감각적인 것에서 떠날 수 있는 만큼 영적이고 천국적인 것들에로 마음이 올리어지기 때문이다.
466. 저 세상에서는 이 두 기억들의 특성이 어떠한지 때때로 그곳에서만 보일 수 있는 모양새로 나타난다. 사람이 관념적으로만 모양을 지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그 세계에서는 눈에 보이게 나타난다. 그곳에서 겉기억은 굳어진 피부 같은, 속기억은 사람 뇌 안에 골수질 같은 모양새로 보인다. 이러한 것으로 그것들이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육체의 생활을 할 때에 기억만을 육성하는데 노력하고, 그들의 합리적 능력을 육성하지 않은 사람은 속에 어떤 실 모양의 힘줄들 같은 것이 있는 굳은 피부처럼 보인다. 기억을 허위들로 채워 온 사람들은 헝클어진 머리털처럼 그것이 보인다. 기억 안에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와 세속 사랑을 목적으로 기억을 배양해 온 사람들에게는 서로 들러붙어 뼈로 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외적 자료들로, 특히 철학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비밀한 것들을 꿰뚫어 보기를 원하고, 이러한 방법으로 확신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믿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은 어두운 덩어리처럼 보이는 기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빛을 빨아들이어 어두움으로 바꾸는 특질이 있다. 속임질을 하는 위선적인 사람의 기억은 어떤 딱딱한 뼈처럼, 빛을 반사하는 상아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 가운데 있어 왔던 자들에게는 이렇게 피부가 딱딱하게 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들의 속기억이 겉기억을 거쳐서 빛줄기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은 겉기억의 목적물이나 관념을 그들의 기초나 굴림으로 삼는다. 겉기억은 순서에 있어서 맨 겉에 있기 때문에, 선과 진리가 거기 있으면 영적 천국적인 것들은 그들의 자리를 발견하고 부드럽게 정착한다.
467. 세상에 살 때 주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인애 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들 안에 천사적 총명과 지혜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속기억의 가장 깊은 데에 넣어 두게 된다. 이 총명과 지혜가 육체적인 것을 벗어버리기까지는 그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 때 자연적 기억은 잠들게 되고 그들의 속기억으로 깨어나게 된다. 그리고는 그 때 점진적으로 실제의 천사 기억으로 깨어나게 된다.
468. 어떻게 합리적 능력이 닦아지는지 간략히 말한다. 참 합리성은 거짓들이 아닌 진리들로 만들어진다. 거짓된 것들로 만들어진 것은 합리적이 아니다. 세 가지의 진리들이 있으니, 시민적, 도덕적, 영적인 것이다. 시민적 진리는 나라의 법률적 결정과 통치에 관련된 것들로, 일반적으로 이 일들에 있어서 무엇이 바르고 공정한가에 관한 것들이다. 도덕적 진리는 동료들과 사회적 유대 관계에 있는 개개인 생활에 관련된 것들로, 일반적으로는 정직함과 올바른 것에 관련된 것이고, 특수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덕에 관련된 것이다. 영적 진리들은 천국과 교회에 속한 일들에 관련된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사랑의 선과 신앙의 진리에 관련된다.
「2」 모든 사람 안에는 생명의 세 등차들이 있다 (267번 참조). 합리적 능력은 시민적 진리들에 의하여 그 첫째 등차가 열리고, 도덕적 진리들에 의하여는 그 둘째 등차가, 그리고 영적 진리들에 의하여는 그 셋째 등차가 열린다. 그러나 이것을 꼭 깨달아야 하니 곧 이 진리들로 이루어지는 합리적 능력은 사람이 그 진리들을 아는 것으로 꼴을 짓거나 열리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들에 따라서 그가 살아 내는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 진리들에 따라서 살아 내는 것은 영적 애정으로부터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적 애정으로부터 진리들을 사랑하는 것은 정당하고 공평한 것을 그것이 정당하고 공평한 까닭에 사랑하는 것이요, 정직하고 올바른 것을 그것이 정직하고 올바른 까닭에 사랑하는 것이요, 또 선하고 참된 것을 그것이 선하고 참된 까닭에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적 애정으로부터 그 진리들을 살아 내고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명성과, 명예와, 이익을 위하여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이 어떤 육적 애정으로 이 진리들을 사랑하는 한 그는 합리적으로 되는데 실패한다. 이는 그가 그 진리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함이다. 마치 종들이 저들의 주인을 섬기듯이 그 진리들이 자기를 섬기게 만듦이다. 그래서 진리들이 종들이 될 때 그것들은 사람에게 들어가지도 않고, 그 안에 어떤 생명의 등차도 열지 않는다. 그 첫째 등차조차도 열지 못하고, 그저 물질적 꼴 아래 지식처럼 기억에 머무른다. 거기서 그것들은 육적 사랑인 나만의 사랑과 결합하는 것이다.
「3」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이 어떻게 합리적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니, 곧 천국과 교회에 속한 선과 진리의 영적 사랑으로 셋째 등차의 합리성에 이르고, 정직하고 옳은 것을 사랑하므로 둘째 등차의 합리성에 이르고, 옳고 공정한 것을 사랑하므로 첫째 등차의 합리성에 이른다. 더욱이 뒤의 이 두 사랑들은 영적으로 되는 바 이는 선하고 참된 영적 사랑이 그것들 속으로 흘러 들어와 그것들과 결합하고, 그 자신의 모양새를 그것들 안에서 꼴을 짓기 때문이다.
469. 영인들과 천사들은 사람이 갖는 기억과 꼭 같은 만큼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들이 듣고 보고 생각하고 의도하고 행동한 것들이 그들에게 남아 있다. 그것으로 그들의 합리적 능력은 끊임없이 영원토록 개발된다. 이와 같이 영인들과 천사들은 사람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참이고 선인가를 앎으로써 총명과 지혜에 있어서 완전하게 되어 간다.
영인들과 천사들이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을 많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영인들과 천사들이 겉으로 그리고 속으로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이 다른 영인들과 더불어 있을 때에 그들의 기억에서 나오는 것을 나는 실제로 보아 왔다. 나는 또한 단순히 선한 동기에서 어떤 특별한 참된 일에 관여했던 사람이 통찰력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으로 총명하게 되었으며, 다음에 천국으로 인도되었음을 보았다.
그러나 이것을 꼭 알아야 하니,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갖게 되는 선과 진리에 대한 애정의 수준을 넘어서서 통찰력과 그것에 따른 총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수준(등차)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영인과 천사는 이 세상에서 그가 가졌던 크기와 특질의 애정을 간직한다. 이 애정이 다음에 채워짐으로써 완전하게 되어 간다. 그리고 이것이 영원히 이어간다. 이는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것은 그 나름대로 무한한 방법으로 다양하게 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다른 요소들에 의하여 풍요하게 될 수 있으며, 또 그것에 의하여 번성하고 열매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한 것도 끝이 없음이여, 무한하신 분에게서 옴이 아닌가.
영인들과 천사들은 무엇이 선하고 참된 것인가에 대한 통찰력으로 총명과 지혜에 있어서 끊임없이 완전해 간다. 이것에 대하여 천국 천사들의 지혜에 관한 가름 (265-275번)을, 천국 안에 있는 이방인과 교회 밖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가름(318-328번)을, 그리고 천국의 어린이에 대한 가름(329- 345번)을 보시기를. 그리고 이승에서 그들이 끌어들인 선과 진리에 대한 애정의 수준에서 완전해 가고 그 수준을 넘지 않음은 349번을 보시기를.
1. 선한 사람, 영인, 또는 천사는 그 자신의 선이요 그 자신의 진리이다. 곧 그는 전적으로 자기의 선과 진리와 같은 것이다 (천계비의 10298, 10367). 이것은 선이 의지를 만드는 것이요, 진리가 이해성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지와 이해성은 사람과 영인과 천사 안에 있는 생명의 모든 것을 만든다 (3332, 3623, 6065). 이것은 사람이나, 영인이나, 천사나 그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6872, 10177, 10284).
2. 사람은 속과 겉 또는 자연적 기억과 영적 기억의 두 기억을 갖고 있다 (2469-2494). 사람은 자기가 속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을 모른다 (2470, 2471). 속 기억이 겉 기억보다 얼마나 뛰어난가 (2473). 겉 기억에 담겨 있는 것들은 세상 빛 안에 있으나 속 기억에 담겨 있는 것들은 천국의 빛 안에 있다 (5212). 사람이 이지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속 기억으로부터 있다 (9394).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고 또 보고들은 모든 것과 낱낱의 것은 속 기억에 새겨진다 (2474, 7398). 기억은 그 사람의 생명책이다 (2474, 9386, 9841, 10505). 신앙의 진리로 만든 진리와 사랑의 선으로 만든 선은 속 기억에 있다 (5212, 8067). 습관이 되어 오고 그래서 삶에 속한 것이 되고 이렇게 하여 겉 기억에서 사라져 버린 것은 속 기억에 있다 (9394, 9723, 9841). 영인들과 천사들은 속 기억으로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공통어를 가지고 있다 (2472, 2476, 2490,2493). 세상의 언어는 겉 기억에 속한다 (2472, 2476).
'천국과지옥2 > 천국과지옥·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의 왼편다리 (0) | 2009.03.13 |
---|---|
지옥의 오른편 다리 (0) | 2009.03.13 |
02월 24일 < 천국과 지옥 > 초등부 - 염태인형제 (0) | 2009.03.13 |
천국에는 민족,인종,성차별이 없다 (0) | 2009.03.13 |
천국에서 본 휴거의 환상 (0) | 2009.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