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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2/천국과지옥·3

예수님의 재림은 명백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명백합니다

 

<내게 남은 날이 일주일 밖에 없다면> 중에서
맥스 루케이도 지음/ 채경석 옮김/ 좋은씨앗 펴냄


예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첫째 단계, 즉 셔츠의 단추를 제대로 채우는 원리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설교의 주제였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24:42-43).

예수님은 그때가 언제인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 날이 어떠할 지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은 누구도 놓쳐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 마지막 자리에 다 나아올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심장이 뛸 것입니다. 그 날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일 것입니다. 거기에는 부자도 있을 것이고, 가난한 자도 있을 것이며, 유명한 자도, 왕도, 부랑자도, 업적을 세운 자도, 정신 이상자도 모두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들 모두 한 방향만 직시할 것입니다. 오직 그분만 바라볼 것입니다. “인자가 …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라(마25:31).

역사상 가장 거대한 이 자리에서 당신은 오직 한 분, 즉 인자에게만 눈을 고정시킬 것입니다. 그분은 영광에 둘러싸여 있으며 광휘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권세를 지닌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날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계십니다. 어떤 의심의 여지도 남기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올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분명히 다시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의 20분의 1이 그분의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300번 이상에 걸쳐 그 내용이 언급되어 있으며 신약 27권 중 23권이 그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확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24:44).

예수님의 재림은 명백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최종적입니다. 재림 때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마25:32-33)두실 것입니다.

‘분별하다’라는 말은 슬픈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머니와 딸이 나뉠 것이고, 아버지와 아들이, 남편과 아내가 나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백성들이 나누어진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있게 될 일을 생각하면 더 끔찍하지 않습니까?

특별히 한 그룹은 천국을 위해 예정되어 있고 다른 한 그룹은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에 대해 말하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적인 모임에서는 지옥에 관해 말하는 것은 원시적이고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실 리 없어”라며 그 사실을 깨끗이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을 망각하는 것은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대한 가르침은 바울이나 베드로, 혹은 요한이 발전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치신 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 자신을 사랑하라고 초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선택은 당신과 내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선택을 거두어간다면, 그래서 억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택으로 말미암는 유익을 설명하며 많은 약속들을 내어놓으십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그 결과들을 말씀하십니다. 종국에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십니다.

지옥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었습니다(마25:41). 따라서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간다면 하나님의 의도에 반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요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살전5:9). 지옥은 사람이 선택한 것이지 결코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다음 설명을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자들, 구세주보다 죄를 더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의 세계보다 이 세상을 더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선택된 장소입니다. 심판의 순간은 하나님께서 패역한 자들을 보시며 “네 선택은 존중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큰 흠집을 내는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패역한 자, 회개하지 않은 자를 너그럽게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세상의 기아와 죄에 대해 눈을 감으시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매 맞고 학살당하며 여자들이 강간당하고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돌아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공의도,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도, 더 나아가 사랑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악한 것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은 공의로우신 창조주의 궁극적인 표현입니다.
지혜로운 종과 충성스러운 종의 비유, 지혜로운 신부와 어리석은 신부의 비유, 그리고 충성스러운 종들과 악한 종들의 비유, 이 모든 것들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우리는 영원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심판이 있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 땅에서 할 일은 간단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처소를 택하는 것이죠. 이 땅에 사는 동안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잘못된 직업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도시나, 잘못된 집에서 살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잘못된 배우자와 함께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잘못 선택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메시지와 마지막 메시지가 똑같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 메시지인 산상수훈에서 당신과 나에게 반석과 모래(마7:24-27), 넓은 문과 좁은 문, 넓은 길과 좁은 길, 큰 무리와 적은 무리, 지옥과 천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청하십니다(마7:13-14).

마지막 설교에서도 똑같이 하십니다. 즉 우리에게 예비할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셔츠의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오늘 당신의 단추가 바르게 채워져 있는지 점검하십시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단추를 만지며 더듬거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시스트 장경애/ 빛과소금교회 최삼경 목사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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