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계명: ‘함부로 부르지 말라’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함부로(망령되이) 부르는 자를 죄 없다하지 않는다.(출20:7)
셋째 계명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명시된 구양의 ‘Shāw’는 신약에서는 ‘βέβηλοs’를 -경건치 않은 자가 부르지 말라, 아무렇게나 부르지 말라, 더럽히지 말라, 모독하지, 말라 -등의 뜻으로 해석되어있습니다. 망령을 한글국어사전에서는 - 늙거나 정신이 흐려서 말과 행동이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는 사람 - 이라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의 소리라는 말인데, 평범하게 표현하면 “함부로”가 적절할 것입니다. 따라서 ‘함부로’는 - 생각 없이 마구잡이, 또는 사리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되는 대로 버릇없이 부른다는 뜻입니다. - 그렇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이름이나, 구주이신 예수님을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병을 치유받기 위해,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또는 어떤 유익을 구하게 위해 함부로 예수님, 주님, 부르면서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에 비해 항상 말없이 눈물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리가 멀거나 가깝거나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항상 자기 모습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 말입니다. 백성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것은,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름도 모르고 또한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내노라 하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과 헤롯당파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또 그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낳아준 부모와 형제자매와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날, 바로 그날,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군중들 앞으로 나아갔을 때, 젊은 사람이 눈물로 주님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그 사람을 보고 그토록 감격하게 외쳤겠습니까?
아름답고 건강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눈물로 주님을 바라보아서 그랬겠습니까? 아니면 미소 때문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 중에서 세 번째 것입니다. 우리는 십계명에 이 말씀이 있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모두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부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엄하고 단호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렀습니까? 또 누가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항변할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때에만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과 어울리지 않으면서 그 이름을 부를 때에는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려고 나오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 앞으로 나아오지 않으면서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지 않으면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누구이겠습니까? 불신자도 아니요, 이방종교를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함부로 부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신자들 속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위계약은 준행하지 않으면서 의로우신 예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믿는다는 사람들 말입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공경합니다.’고 말하고 나가서는 아비가 원하는 모든 것에 반대하고 행동한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뜻대로 따르지는 않으면서 ‘내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한다면, 그것이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말로 ‘아버지’하는 것만으로서 실제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고 부른다면 실제로 아버지가 원하는 것대로 행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하나님’ 부른다고, 예수님, 예수님을 부른다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속 은밀한 곳에는 많은 우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짓 찬양도 있습니다. 입술로는 소리 내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자신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찬양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사람의 경향도 있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죄는 많이 찾아냅니다. 그러면서 실제로 죄가 있는 곳에서는 그 죄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는 찾아내려고 하지 않는 경향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서는 허물을 잘도 찾아내면서 자기 속에 있는 허물은 찾아내지 아니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죄를 보면서 자기 속에 있는 죄는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마7:3.눅6:41)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불신자의 입술에서 오르내리면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불신자가 하나님께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일을 더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목자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는 일을 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바꾸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을 왜 막습니까? 우리들은 우리들이 정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고, 찾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이 누구를 찾고 무엇을 찾습니까?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창조하신 하나님,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 주신 그 예수님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상이나 교리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정죄하는 그 사람들이 정성을 다해서 창조주를 찾고 구속 주를 찾는다면, 항상 자기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기억하고 간직하고 있는 영혼이 제단을 찾는다면, 모세가 명령을 받고 성막을 세웠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던 것처럼, 그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을 차지하려고 애쓰며 찾는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때 운다면, 인간들이 정죄하는 사람이라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헌신을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인간들이 정죄하는 사람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다고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받아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네가 이제 잠에서 깨어났느냐, 오너라.”하고 부르실 것입니다. 이 부르심을 알고 “네 갑니다.”하고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 자기 영혼의 올바른 소원에서 생기게 된 그 사람의 행동이 죄가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까? 그가 “하나님 감사합니다.”하고 고백하는 말이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고 빈정대고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자기를 위해 향락을 즐기고 난 찌꺼기 같은 육신을 성전에 바치는 것이 거룩하다고 믿습니까? 죄가 벌레처럼 우글거리는 영혼과 육체가 하나님 앞에 들어가는 것이 거룩하다고 믿습니까? 지극히 깨끗하신 분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의 타락한 예배가 거룩하다고 믿습니까? 아닙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얼굴도 드러내지 못하는 양심, 고개를 들 수조차 부끄러워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로 하나님을 찾는 영혼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항상 주님을 따르는 사람, 어디에 사는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말하지 않으면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날씨도 상관하지 않고, 거리도 상관하지 않으면서 항상 주를 찾는 눈물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허물을 용서했을 때,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하늘에서 99천사들이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의 이름을 기쁘게 외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요,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외치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이렇게 외침으로서 그의 허물은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허물이라는 베일은 벗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부정한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모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영혼이 더럽고 불결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도 소용이 없을 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감추려고 외식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은 노한 얼굴로 보십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을 볼 때, “그렇다면 어른 안에는 더러움과 죄밖에 없으니, 아이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부를 수 없다” 하실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죄의 사슬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의식(儀式)이 아닙니다. 깨끗해지기를 원해야 한다. 용서를 받고 병 나음을 받기 위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유혹하는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하님께서 에덴을 지나가지 않으시던 시간에, 뱀이 하와를 유혹하였다는 말이 창세기에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에덴에 계셨더라면 사탄은 거기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하와가 하나님을 불렀더라면 사탄이 도망쳤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가져야 됩니다. 그리고 진실하게 하나님을 불러야 됩니다. 그의 이름은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중에서 많은 수가 깨끗해지려고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사랑으로 하나님이라는 말을 새기지 않는다면 깨끗해 질수 없습니다. 거짓기도나 관습적인 예배행위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행위와 자신의 전체로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이것이 시내 산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선행으로 변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란 이름을 부르면 함부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허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을 죄 없다 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왜 죄가 됩니까? 우리가 성경에는 ‘망령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망령이란 뜻은 오용(誤用)입니다. 오용은 잘못 쓴다는 뜻과, 그릇됨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망령이란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하는 죕니다. 이것을 ‘함부로’라고 말합니다. 함부로는 생각 없이 마구라는 말입니다. 사리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되는대로 또는 닥치는 대로라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가 없다고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시시각각으로 우리가 성실히 모든 행동 중에 심장이 뛸 때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필요할 때, 유혹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랑이 입술에서 나오도록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됩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소서. 나에게 오소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죄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람들은 항상 자기 입장에서만 남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대로 한 마디씩 말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며 따르는 내면은 보지 못하고 과거나 외면만 보고 남을 판단하는 존재야말로 구역질나게 하는 것입니다. 빈정대는 인품보다 존중하고 영혼을 아끼는 성품이라야 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남을 판단하는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합니까? 절대로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을 읽으십니다. 거짓말 하지않는 진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 편에서는 죄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정죄당하는 친척이라고 해서 하나님을 갈망할 수 없겠습니까? 또한 찾지 말아야 됩니까? 누구든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어느 왕과 왕들의 친척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미 알았건 알지 못했건 지금 이 시간부터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생명을 살리려고 말씀 앞에 나타나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주님을 따르며 ‘주님, 예수님’ 하면서 사람을 차별하고 업신여기고 으쓱해 하는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들은 얼마나 질투를 합니까? 우리는 질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못하도록 명령할 권한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가진 그 권리로 주님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백성이 임금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너희들의 시샘과 질투,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못된 행위와, 그리고 자아를 버려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옳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거라.’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님 세 번째 계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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