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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혼수상태/북한·소식·선교

[스크랩] 김정일 17명 각료 죽이고 17일에 죽었다

김정일 17명 각료 죽이고 17일에 죽었다
<칼럼>김정일 사망 1년 되돌아본 그의 생애는 끔찍한 독재자 반열
영 이코노미스트지 "주변국들이 김정일 살인정권 연장을 도왔다"

김영명 칼럼니스트 | 2012.12.16 09:03:10

옛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그러나 남겨진 이름도 이름 나름이다. 선행자는 ‘거룩한 이름’으로 남지만 악행자는 ‘더러운 이름’으로 남는다.

인류역사상 ‘더러운 이름’으로 남은 자는 부지기수다. 포악무도한 독재자들이 특히 그 범주에 속한다. 멀게는 로마제국의 네로와 나치독일의 히틀러를 비롯해 파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꼽힌다. 가까이는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와 유고의 밀로셰비치, 우간다의 이디 아민 등이 뒤따른다. 북한의 김일성 부자도 그 무리의 반열에 들어있음은 물론이다.

김정일은 1974년 공식 후계자 지위를 얻으며 권력 전면으로 등장한 이후 37년간 봉건시대를 능가하는 절대군주로 군림했다. 그리고 1994년 김일성 사후 17년간 김정일 시대를 열면서 북한을 ‘세계 최악의 나라’로 만든 죄업을 남기고 한생애를 마감했다.

북한은 37년 김정일 통치기간 내내 ‘세계 최악'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최악의 인권탄압국’ ‘최악의 정치탄압국’ ‘최악의 언론탄압국’ ‘최악의 종교탄압국‘ 등등. 김정일이 생전에 저지른 모든 죄과는 이들 단어 하나하나에 압축돼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일생 동안 저지른 죄상을 편의상 대내와 대외로 나눠 단죄한다. 김정일이 안으로 민족 앞에 저지른 죄과는 실로 엄청나다. 그는 실권을 장악한 1974년부터 잔인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북한을 다스렸다.

김정일은 한반도 절반 땅을 ‘창살 없는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고 자신의 권력행사에 걸림돌로 되는 무고한 주민들을 가차 없이 가두고 주살했다. 김정일이 저지른 반인류적 범죄는 일일이 거론하기조차 숨이 찰 지경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피의 제물로 삼았다. 제물은 반드시 권력 장악 과정의 걸림돌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국가정책 실패에 따른 자신의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관련 부문 일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제거하기도 했다.

그리고 숙청은 잔인했다. 노동당 재정부장 박남기는 평양의 간부들 앞에서 공개 총살됐다. 그의 7촌 이내 친척들 38명은 정치범수용소로 보내져 죽임을 당했다. 김정일은 평생 몸 바쳐 충성한 측근들도 이런 식으로 없앴다.

김정일은 집권 기간 동안 전체주의적 독재체제와 유일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 공안기관의 철저한 감시·통제 속에 북한 주민들을 독재 권력의 도구로 삼았다.

김정일은 북한 주민들을 굶겨서 300만 명, 강제수용소에 가둬 100만 명 등 400만 명을 죽였다. 특별독재대상구역으로 불리는 인권탄압의 상징 정치범수용소엔 지금 이 시각에도 20여만 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일상적인 굶주림과 가혹한 폭력 속에 개나 돼지만도 못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일의 잔악한 범죄행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 6·25전쟁을 일으킨 그의 아버지 후예답게 김정일은 1970년대 이후 대남 테러와 도발을 일상화했다.

김정일은 대한민국 장·차관 17명의 목숨을 빼앗고 대통령의 생명까지 노린 1983년 아웅산테러의 주범이었다. 승무원과 탑승객 등 115명 전원의 목숨을 앗아간 1987년 KAL기 공중폭파사건의 정범이었다. 김정일은 사망 직전까지 만행을 일삼았다. 그는 남쪽의 금강산 관광객을 살해하고 대한민국 해군 병사 46명을 수장시킨 천안함 폭침사건의 최종 책임자였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1주기를 맞아 국가우표발행국에서 발행한 기념우표. ⓒ연합뉴스


이 같은 대남 테러와 도발 외에도 김정일 통치가 시작된 1970년대 이후 그는 큰 사건만 간추려 판문점도끼만행을 필두로 두 차례의 연평해전에 이은 대청해전과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등을 일으켰다.

김정일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우리 민족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국제범죄도 수두룩하다. 김정일은 국제사회의 감시망을 피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는 한편,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기술과 부품들을 암거래했다. 통치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국영으로 마약을 재배하고 밀거래했으며 초정밀 위조달러를 제작, 유통하여 국제 금융시장을 교란시켰다.

1976년 김정일은 “북한 스파이 활동 교육을 개선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더 조직적으로 활용하라”는 ‘스파이 교육 현지화' 지령을 내리고 외국인들을 납치해가는 국제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는 지난해 6월 12일 ‘북한의 외국인 납치 범죄 보고서’를 통해 전 세계 12개 나라로부터 18만여 명을 납치한 북한을 ‘현대사회 최악의 범죄 국가’로 규정했다.

김정일이 천추에 씻지 못할 범죄는 경제정책 실패로 300만 명의 북한 주민을 굶겨 죽인 ‘대량아사사건’이다. 김정일은 1980년대 들어 자신에 대한 1인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평양현대화 및 우상화 작업에 착수했다.

특히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샘해 1989년 개최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준비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다. 이를 계기로 북한경제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으로 북한경제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비틀거리던 북한경제는 1990년대 초반 구 공산권 국가가 붕괴되면서 빈사상태로 들어갔다. 그러다가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약 4년 동안 극심한 식량난을 가져왔다. 이 기간 동안 적게는 200만 명에서 많게는 300만 명 정도의 주민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갔다.

그러나 김정일은 오불관언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가는 데도 그는 주지육림 속에 향락을 즐겼다. 주민들이 주린 배를 움켜잡고 피를 토하며 죽어갈 때도 김정일은 산해진미를 즐겼다. 한 끼 식사에 2백만 원을 호가하는 뱀장어와 캐비아를 비롯해 새끼돼지 통구이, 샥스핀 등 고가의 요리들로 입을 즐겼다.

김정일은 기아에 허덕이는 주민들을 구제하려는 생각은 눈곱만치도 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김 씨 왕조’ 우상화 놀음에 국고를 탕진했다. 김일성 시신 영구 보존과 금수산기념궁전 증축 등에 당시 국제 곡물가로 옥수수 6백만 톤을 구입할 수 있는 8억 9천여 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시거든 떫지나 말아야’ 하는데, 김정일은 ‘김 씨 왕조’ 우상화 놀음과 함께 북한 전역에 걸쳐 경치 좋은 곳을 골라 개인 별장을 지어놓고 철따라 번갈아가며 휴양을 즐겼다. 두께 10센티미터 이상의 특수유리로 바닥을 만들어 수심 100m 바다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설계된 해저별장까지 마련했다.

김정일의 죄업을 들춰내자면 한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시해야 할 것은 김정일의 죽음과 함께 끝났어야 할 이런 죄행들이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계승돼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막을 방도는 없는가?

지난 1월 영국의 권위 있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사설에서 “개탄해야 할 진실이 있다. 그것은 주변국들이 김정일 살인정권을 지탱해주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사설은 “중국뿐 아니라 미국은 세계적인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하여, 한국은 북한을 흡수할 때의 비용을 겁내어, 일본은 통일된 한국을 경계하여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설은 “지상 최악의 나라의 정권교체를 바라기만 해선 안 되고 계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썼다. 사설은 “김 씨 정권은 영원히 버틸 순 없다. 어떻게 하면 정권을 교체할 것인가의 논의를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하여서 뿐 아니라 북한의 잊히고 짓밟힌 인민들을 위하여 그러하다”고 썼다.

‘이코노미스트’ 사설의 지적과 주장은 백 번 옳다. 문제는 ‘누가 이 일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 주민들의 몫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북한 주민들이 질곡의 쇠사슬을 끊겠다고 분연히 일어설 때 하늘은 그들을 도울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사설은 북한 주민과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암시해주고 있다.

글/김영명 칼럼니스트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318245&kind=menu_code&keys=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