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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모습/예수그리스도

천국복음

천국복음

1. 기독교의 슬로우건

역사상에 새로 등장하는 모든 사상은 하나의 뜻깊은 슬로우건을 가지고 있다. 이슬람교의 표어는 [하나님의 하나님,모하멧은 그의 선지자이다] 불란서 혁명의 표어는 [자유,평등,우애]이며, 민주주의 표어는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이고 학생자원선교연합회의 표어는 [이 시대를 복음화하자]이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모든 새로운 사상은 마치 대오를 집합시킨 신병에게 군기를 표지로 삼는 것처럼 제각기 적절한 표어가 있다. 인류 역사에 전에 없었던 전연 새로운 사상은 기독교의 등장에서 비롯된다. 기독교의 사상을 가장 간단하게, 그리고 힘있게,또 장엄하게 존귀하게 나타내는 표어는 [천국 완성]이란 말이다.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극광이 비치는 그린랜드의 태양처럼 밤이나 낮이나 밝게 빛나는 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의 불멸],석가모니는[극기의 생] 나폴레옹은 [유럽통치],루터는 [개인의 자유]등, 이렇게 모든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자신에게서 끊으려해도 끊을 수 없는 주도적인 사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태어난 최고의 위인이며 위대한 지도자다. 이 위대한 지도자에게 자기 사상이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전세계를 일거에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세력의 감화력이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

복음서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100회 이상 언급되었다.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최초의 설교 제목이 바로 이 [천국]이었다. [때가 차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5).그의 마지막 설교도 사도행전 1장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했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선교의 시종이 이렇게 하늘나라에 집중되어 있을진대 그의 선교 전체가 이 말과 관계된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의 이유를 상기하자.[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으니라]한 말이 얼마나 많은가? 제자들을 지방으로 파송할 때 부탁하신 말씀을 읽어보라.[어느 동리에 들어가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이르렀다 하라](눅10:8)고 기록되었다. 여기에서 복음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독교를 우리의 생각대로 해석하고 설명하여 중대한 이 중심말씀을 종종 떼어버리기도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말이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바와 같이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느냐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우리가 이 중심을 어떤 말로 표현한다는 것보다 예수님이 이것을 어떠한 뜻으로 생각하고 계셨는지 알아보는 것이 보다 큰 관심사였다.

2. 유대교의 천국관

무엇보다 이 하늘나라에 대한 사상은 예수님의 창작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유대인의 귀에는 천국이라는 말이 매우 익숙한 말이며 그들의 고대문서에는 천국을 많이 언급하였다. 다니엘서의 한 곳에는 이 말이 이렇게 기록되었다. [그의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나라는 폐하지 아니하리라](단7:14)

이런 구약의 사상과 예수님과의 관계를 알기 위하여는 먼저 예수님 나시기 전의 유대교의 천국 사상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유대교의 천국 사상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다. 즉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천국관과 세속적인 천국관이다. 정치적인 천국관은 외세의 통치나 압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예컨대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의 목을 누르고 있는 것이 이 정치적 속박과 부자유로부터 해방 되는 길은 하루 빨리 하늘나라를 건설하는 희망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사상은 천국이 예기치 않은 때에 어느 나라도 항거할 수 없는 세력으로 갑자기 임하리라는 사상이다.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이 천국사상이 종교적인 의미나 성격은 상실되고 다만 물질적인 호화로움과 정치세력의 팽창,그리고 세속적인 유익을 소신껏 누릴 수 있는 세계로 알려졌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이 시대에 유행하는 세속적인 천국사상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그 사상을 시정한 일이 있다. 즉 야고보, 요한 형제가 예수님에게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다른 사람보다 일찌기 운동을 했고(마20:20),또 부활하신 후에도 제자들은 이 사상을 버리지 못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오니까](행1:16)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얼마나 지상적이고 정치적이고 비영적인 사실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던가를 엿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천국]이라는 말은 이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민족사상을 대표하는 한 슬로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역사에서 보는 바,민족주의 사상이란 것이 얼마나 강열하고 끌 수 없는 부로가 같은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태리의 마지니,중국의 손일선, 인도의 간디 등을 모두 그들의 민족주의 사상을 위하여 열렬하게 투쟁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상은 분명히 자기들의 민족을 새로이 발전시키는 혁명적인 요소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들을 하나님 편에서 생각해 볼때,민족주의 사상이 절대적인 최선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현세적이고 감상적인 민족주의 사상을 초월하여 그의 선민을 발전시켜 민족을 초월하여 전우주적 포용주의 사상으로 모든 백성과 민족이 다같이 사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다.

인류사상 우리는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던 유대교의 민족사상보다 더 강렬한 것을 본 일이 없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질문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복음서 기자들이 이 대목에는 특별히 주석을 달았다.[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라](요4:9).이것은 유대교 민족주의 사상의 대표적인 일례로 손색이 없다. 그런 색체가 일체 금지되어야 할 성전에서 조차 이 사상은 강조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 유대인들과 이방인의 바깥 마당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서 경계선을 만들었다. [이방인은 이 안으로 들어 오지 말라.누구든지 이 규칙을 위반하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

유대인들의 메시야 대망은 중간시대 유대독립의 영웅 유다스마카비우스가 헬라 정권으로부터 이탈하여 유대인 자주국가를 세우던 그런 인물의 기다림이었다. 유대인에게 있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그들 역사에 지대한 세력으로 전해지는 중요한 말이기도 했으나 그들의 강조하는 바는 지상의 정치적인 강한 국가에 관심을 모았고 하나님의 뜻을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빈약하였다. 이 천국사상의 정상적인 깨달음은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의 도를 깨닫고, 세례를 받아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상의 배경에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은 오셔서 그 이름에 해당한 나라를 선포하시고 세우셨다. 그는 재래의 메시야 사상을 대폭 시정하여 그의 설교 중심을 선교에 두셨다. 예수님은 이 점을 넘칠 정도로 강조하시고 여러가지로 다양성 있게 가르치셔서 그 가르침을 간단하게 정의한다거나 단순한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 분명하고 중요한 선이 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통치력과 세계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력이다. 이제 이 두가지 점에서 천국사상을 생각해보자.

마음속의 하나님의 통치로서의 그 나라

예수님이 천국을 선포하여 복음의 초석을 놓았을 때, 그가 뜻하는 바를 세가지 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한다면 첫째, 하늘나라는 민족주의적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며, 둘째,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며, 세째,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1) 도덕적인 성격.
천국사상은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친구들에게 어느 것이 사람의 원수인가를 모른다고 지적하신다. 그들은 자기의 땅에서 마음대로 활보하는 외국 군대 로마가 원수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참 원수는 로마나 그 군대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을 활보하는 악마와 그의 군대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거듭 이 말씀을 강조했다. [어떻게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서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 강한 자를 절박한 후에라야 그집을 늑탈하리라]고 (마12:19).

여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강한 자는 누구인가? 로마의 가이사가 아니라 사탄이다.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시기를 [유대 온 땅을 다니면서 상한 심령을 치료하고 악마들을 축출하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가 이땅에 임하여 세상의 강자 사탄을 결박하는 것이며 사탄왕국 파괴는 하나님 나라의 왕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는 중에서 이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말씀하신 곳은 빌라도 앞에서였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지 아니하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 속한 것이 아니다](요18:36)고 하셨다.

인류사상 가장 큰 모순은 이 땅위에 건설된 나라에 대하여 정치적인 야욕이 조금도 없는 예수님을 로마 정부의 대행자 빌라도가 그 로마와 싸우는 선동자라고 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다. 그리고 또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은 이 지상국가가 로마의 기반으로부터 벗어나 독립국가로 세워지기를 열망하였는데 예수님의 언행 중에는 자기들의 욕망을 이루어주고자 하는 뜻은 전혀 비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이 그런 일을 의식적으로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하지 아니했다]이것이 바로 유대 민족주의 입장에서 볼 때 사형에 해당하는 발언이다.

[우리를 장차 다스리지 아니할 저런 자를 물리쳐라]고 군중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전하는 그리스도의 통치세계는 이 땅위의 어느 영토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 속이다. 사람의 가장 깊은 곳,즉 우리의 도덕세게를 통치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성격을 가진다.

(2) 영적인 성격 천국사상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마음속에 바라던 나라는 오직 지상에 세워진 국가 뿐이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핍과 곤고를 물리치고 저들에게 윤택한 환경, 생활의 평안을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실은 이미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생각할때 언급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 일로서 자신들을 물질생활에서 여유있게 지내기를 바란다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생각은 사탄이 바라는 방법이다.[먼저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 여유가 생긴 다음에 영적인 높은 문제를 생각하라]는 것이라든지, [먼저 평안을 누린 다음에 복음을 들으라]는 방법 등은 사탄의 방법이지 예수님이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그의 예수님께서는 이 방법에 대하여 단연코 [노우]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롬14;17)고 가르치셨다.

오늘날에 와서 천국 사상은 지상천국의 연장과 같이 생각하여 먼저 이 땅위의 생활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가져야 한다는 사회주의 사상적 경향으로 복음을 합리화 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사회주의 사상이 중요시하는 물질적인 요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회가 등장하고 생활 환경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아름다운 환경을 이룬다해도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새롭게 지음을 받고 그들의 인격이 썩어져가는 죄에서 심령을 돌이켜 구원 받지 않으면 아름다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회개하고 새로 지음 받은 사람만이 누리는 축복이다. 심령이 새로워지지 않은 사회의 유토피아는 가장 불행한 고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 문제를 무시해 버리는 것은 아니다. 참종교는 언제나 사회 문제에 대하여 강한 발언권을 가지며 따라서 지도 이념을 가진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발견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과 불공평을 시정하여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며,또 그것을 자기들의 신성한 의무로 생각한다. 진실로 영적 문제에서 새로워진 사람은 사회를 개혁하는 십자군 편에 언제나 가담한다. 먼저 할 일은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다. 영적인 문제가 바로 이루어진 그곳에는 언제나 물질적인 문제도 바로 잡혀진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는 물질세계에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영이다.

(3) 제적인 성격 천국사상은 또한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천국을 공상적으로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그 천국이 미래의 어느 시기에나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 옛날 선조들이 바라던 그 천국이 지금와서 이 땅위에 실현되어 있다고 했다. 어느 날, 그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 모인 무리 앞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복스러운 내림은 미래에 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큰 음성으로 읽으셨다. 그 내용은 [마음이 상한 자는 위로를 얻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그리고 그는 책을 덮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나니라](눅4:17).

또 다른날 그는 제자들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보는 눈이 복이 있나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지나간 세대의 모든 왕들과 선지자들이 그들이 듣는 바를 듣고저해도 듣지 못했고 보고 싶어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찬란한 하늘나라의 영광을 볼 수 있게된 그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하다(눅 10;23).예수님은 거듭 거듭 저희 선조들과 그들이 이미 꿈꾸고 있던 하늘나라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눈이 열리고 그들의 영적 환상이 깨끗해지기를 강조하여 권고하셨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의 이상이다. 꿈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온 것이라고 한다.

스콧틀랜드 신도들이 박해를 받아 사방으로 이산 당하여 황무지와 토굴 속으로 숨어다닐 때 용감한 스칼취 맹약자 한사람은 [스콧틀랜드의 모교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당신에게 그 소재를 밝혀주리라. 스콧틀랜드의 어느 깊은 산골에서 기도하는 남녀 젊은이들이 모인 곳, 그곳이 바로 스콧틀랜드의 교회다]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복음도 이렇게 대답한다.[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모시고 그 마음에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들이는 남녀 신도가 있는 곳, 그곳이 하늘나라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 돌연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바른 설명이다. 그 나라는 이 나라와 다른 나라로서 영원한 세계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인간의 표면적인 모든 생활을 초월하여 그 중심에 임하는 나라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

4. 하나님의 세계에서의 하나님의 통치자로서의 그 나라 통치

그리스도가 말하는 하늘 나라의 둘째 성격은 그 나라 사람의 마음만 통치할 뿐 아니라 그 세계도 통치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하여서도 예수는 세가지 원리를 설명하신다. 첫째, 그 나라는 사회적이며 개인적이아니다. 둘째, 그 나라는 우주적이요 지역적인 것이 아니다. 세째, 그 나라의 완성은 최후의 결정이지 현재 완성된 것이 아니다.

(1) 사회적 성격
하나님의 나라가 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라는 그 단어에 벌써 그 뜻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연대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 구원을 받은 영혼들이 한데 엉키어진 것이다.(종교는 항상 이런데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구원 받은 자의 사회, 인간 사회의 새로운 질서. 가족적인 교제,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한집(한울)이라는 뜻 외에 아무런 읨도 표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마랗는 천국의 프로그램이며 성명서이다. 고로 요한복음이 특별히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바대로 어떤 의견이든지 단순히 하나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하여 있다는 개인적인 성격이 강조되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종교와는 거리가 먼 종교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교는 개인주의를 강하게 고취한다거나 자아구원 중심의 편협을 장려하지 않는다. 만일 한 개인의 심령구원만을 강조하는 점이 기독교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런 점으로 해석할 것이다.

나는 나의 정신전쟁을 쉬지 않으리라
내 검을 내 손에서 녹슬게 하지 않으리라
이 영구히 푸르고 아름다운 땅에 우리 손으로 예루살렘을
건설하기 까지는.

어느 시인의 노래와 같이 기독교에서의 개인의 위치는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한 용사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을 통치한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을 가진 것이다.

(2) 우주적 성격
하나님 나라의 성격은 우주적이지 결코 지역적인 것이 아니다.[밭은 복음의 씨가 자랄 곳이다](마13:38)라고 말씀하셨다. 밭이란 사람의 마음을 가르친 말이다.신자의 책임감의 귀중성을 말하는 중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5:13)고 표현하셨다. 무엇을 위한 소금인가?한 교회나 그들의 가정이나 어느 계급이나 어떤 당파를 위한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같은 맛으로 스며드는 소금이라는 말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매력이 있어 전세계적으로 모여 오리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라](눅 13:29).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느티나무 그늘처럼 폭양을 피할 수 있는 단 몇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 가운데서 몇사람의 영혼만 뽑아 구원의 전당에서 행복스럽게 살게 하시려는 분이 아니다. 어느 특수한 사람만 골라서 안락의 항구로 인도하시려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 세계 인류를 위하여 임하였다. 그것은 결코 지방적인 것이 아니라 전우주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3) 최후의 완성을 기다린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 최후의 날에 주어진다.여기에 하늘 나라의 파라독스가 있다. 즉 현재를 의식하면서 미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에 나를 완전히 항복시킨 사람은 그 나라를 알기 때문에 현재 그 나라를 맛보고 있으며, 그 사람이 받을 영광은 미래에 준비되어 있다. [인자가 그의 영광으로 임하실 때는..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라](마25:31).예수님의 재림은 사랑이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행한 모든 행위의 상급을 받는 때로서 그 날은 하나님의 때이며 천국을 완성하시는 날이다. 우리의 현재의 이해를 초월하는 방법으로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날이며, 선과 악의 긴 역사적인 싸움은 드디어 종지부를 찍고 하나님의 승리가 전 우주를 통치하여 그리스도의 발앞에 모든 원수들이 무릎을 꿇는 때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미래 하늘나라가 완성할 때의 광경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주신 바 세계의 영원한 소망이며 이 소망은 그의 이름과 영광으로 보증해 주신 확실한 것이다. 계시록 기자가 위대한 환상 중에서 천사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기뻐하는 소리가 이렇게 들리리라고 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라](계11:15).

매일 성경

 미가서 4:1-8  유대인의 기대 및 대망
 누가복음 10:17-24  그 나라가 이미 도래함 17:20-21 
 마태복음 13:44-46  그 나라를 찾음
 요한복음 3:1-8    그 나라의 입문
 마태복음 13:24-33  그 나라의 성장
 마태복음 25:1-13   그 나라의 완성
 마태복음 5:1-12  그나라의 성격
 

토론을 위한 문제

1. 구약성경의 어떤 요소가 신약성경의 그나라 교리의 기초를 이루었는가?

2. 예수는 유대인의 그 나라 개념을 어떤 방법으로 변화시키셨는가?

3. 예수의 어떤 말씀은 그 나라를 현재로, 어떤 말씀은 미래에 도래할 것으로 말씀했다. 이 두가지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하는가?

4.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출처 : home Study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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