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일 수 없는 짐승의 표!
요한계시록은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종말의 시대를 분별할 수 있게 해 주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그래서 때가 가까운 시대를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예언의 말씀(요한계시록)을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요한계시록에서 강력하게 경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짐승의 표가 상징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짐승의 표를 상징으로 해석 할 경우 성도들은 짐승의 표에 대하여 무장해제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짐승의 표를 상징으로 해석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설명하려 합니다.
1. 하나님의 인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짐승의 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징이다?
신양성경에서 하나님의 인을 말할 때 쓰인 헬라어 단어는 <습흐라기스>입니다. 모두 ‘인’으로 번역 되었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거나 영적인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에서 ‘표’로 사용 된 헬라어 단어는 <카라그마>입니다.
<카라그마>는 기능인이나 장인이 만든 수제품, 창작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과, 짐승의 표를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글 성경을 가지고 해석 할 경우, 인이나, 표 둘 사이에 별 의미의 차이가 없을 수 있지만, 헬라어 단어를 통해 볼 때 둘의 뜻은 다를 뿐 아니라, 신약 성경에서 확실하게 두 단어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2. 짐승의 표가 단수로 되어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짐승의 표가 성경에서 단수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든지 짐승의 표를 한 개 이상 받지 않습니다.
(손이나 이마에 받는 것이지, 손과 이마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짐승의 표가 상징이라면, 지옥 갈 정도의 것 이어야 하기 때문에 분명 죄와 연관 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죄를 말 할 때 항상 복수를 사용했습니다.
(마 1:21, 마 3:6, 마 6:12, 마 9:2, 등등)
그래서 짐승의 표를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없습니다.
3.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게 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인을 받는 곳은 이마입니다.
천사들을 통해 성도들이 받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표는 사단이나, 악한 영들, 즉 영적인 존재들을 통해 받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짐승(국가 조직)에 속한 사람을 통해 받게 됩니다.
사람이 상징적인 것을 줄 수는 없습니다.
또 그 위치가 손이나 이마가 되는 것을 정확하게 설명 할 수 없습니다.
4.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등장 하게 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교에서는 안식일에서 주일로 예배를 바꾼 것을 짐승의 표 받은 것으로 설명 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뀐 것은 초대교회 때부터였습니다.
인류 역사의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이 아닙니다.
그 외 짐승의 표가 상징이라고 해석 할 경우,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짐승의 표의 전면 시행은 대환난 후 삼년반에 들어간 이후가 될 것입니다.
5.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 매매를 못하게 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매매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표를 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매 하기 원하는 사람의 감각기관을 통해 식별 가능하거나, 인간의 과학 기술을 이용해 분명하게 식별 가능한 장치여야 합니다.
그래서 짐승의 표는 영적이거나, 상징일 수 없습니다.
또 헬라어에서 매매(사다, 팔다)라는 단어는 실제적으로 사고 팔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6. 짐승의 이름이며, 그 이름의 숫자이며, 한 사람의 수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계 13:17-18절을 한글 킹제임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번역 했습니다.
“ 그 표나 그 짐승의 이름이나 그의 이름의 숫자를 가진 자 외에는 아무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더라. 지혜가 여기에 있으니 지각(知覺)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볼지니라. 그 까닭은 그것이 어떤 사람의 수이기 때문이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7-18)
짐승의 표는 짐승의 이름이 될 것입니다.
또 짐승의 이름의 숫자가 될 것입니다.
또 그 숫자는 어떤(한) 사람의 숫자입니다.
그것이 666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숫자 666은 세군데 나옵니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육십육 금 달란트요"(대하 9:13)
이것은 사람의 숫자가 아닌 금의 숫자이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요"(라 2:13)
이것은 한 사람(어떤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숫자이기 때문에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에 등장 할 실제 짐승의 표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7. 모든 자가 받게 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는 어떤 것도, 모든 자를 받는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을 주일로 바꾼 것도 기독교, 카톨릭, 정교회, 성공회 등등 기독교와 카톨릭 관련 종교에서 뿐이지 모든 종교에 속한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닙니다.
8. 셀 수 있는 숫자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막연하게 근거 없이 상징이라 주장하시는 분들이 알아야 할 말씀입니다.
짐승의 표는 구체적인 실체이기 때문에 총명 있는 자는 충분히 셀 수 있습니다.(세어 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숫자는 666이며, 짐승, 짐승의 표, 한 사람(적그리스도)의 수와 일치하게 됩니다.
적그리스도가 등장하는 때가 되면 깨어있는 성도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9. 상징으로 해석할 적당한 대상이 없습니다.
상징이라 주장하시는 분들은 ‘짐승의 표는 이것을 상징한다’라고 정확하게 대상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계 14장의 고난을 받지 않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무엇을 상징하는지 자세히 성경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침묵해야 합니다.
짐승의 표를 상징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아직까지 성경적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자세히 설명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상징으로 해석할 성경적인 적당한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짐승의 표를 실재 존재하는 어떤 물건, 어떤 표식으로 해석할 경우 상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짐승의 표가 상징이라는 주장은 성도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신사참배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는 주장에 의해 많은 성도들이 우상숭배 했습니다.
이제는 짐승의 표는 상징이라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잘못알고 받았든지, 속아서 받았든지 그 책임은 개인 각자의 몫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두아디라 교회에 주신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사실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속지 맙시다!
짐승의 표는 상징이 아닙니다.
절대 상징일 수 없습니다.
그것의 정체는 적그리스도가 출현한 이후 확실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아주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우리 세대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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