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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문 기자 |
[통곡의 땅 필리핀 타클로반 - 이기문 기자 르포 2信]
전기 끊긴 암흑도시… 물 구하려 송수관까지 파내
"3~4일내 식량 공급 못하면 큰 소요 사태 일어날 수도"
정부 비축미 창고 털려… 탈옥 죄수·정부군 총격전도
초강력 태풍 하이옌(Haiyan·바다제비)이 남기고 간 고통은 이제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최대 피해지인 필리핀 레이테섬의 타클로반은 해가 떨어지자 암흑천지로 변했다. 자체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군부대와 경찰서 등 공공기관을 빼고는 전기 공급이 모두 끊겼다. 밤거리는 고요했다. 폭력 사태를 우려한 군경이 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풍이 지나간 지 닷새째인 13일. 날이 밝자 거리는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먹을 것을 찾아나선 사람들로 가득 찼다. 타클로반은 여전히 시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모든 게 무너져버린 폐허였다. 어린이들은 길에서 구걸을 했다. 일부 주민은 식수를 구해 보려고 땅속에 묻혀 있는 송수관까지 파내고 있다.
시청에는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전자기기를 충전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수십m씩 줄을 섰다. 친구들과 한 시간을 걸어왔다는 제릭 엘 세브라뇨(10)군은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5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에게 허용된 충전 시간은 10분뿐이다.
한 여성이 기자에게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제럴린 제이 크루즈(35)씨는 한국인 남편을 찾고 있었다. 기자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남편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다. 남편이 이날 새벽 "돈과 필요한 물건을 챙겨오겠다"며 걸어서 30분 거리인 자신의 사무실로 갔는데 반나절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마음이 급하기는 현지에 파견된 구호 요원도 마찬가지다. 국제사회가 지원에 나섰지만 아직 이곳까지 도움의 손길이 충분히 닿지 않고 있다. 상당수 구호물품은 마닐라나 세부에 발이 묶여 있다.
구호물품이 타클로반 공항에 반입됐더라도 도로와 운송체계가 파괴돼 피해 지역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서상록 단원은 이날 새벽 일찍 짐을 꾸려 떠났다. 타클로반에서 차로 왕복 4시간 거리인 오르목에서 식량과 물을 구해오기 위해서였다. 오르목도 태풍 피해를 봤지만 타클로반보다는 상황이 좋다. 기아대책은 이재민 1000여명이 모여 있는 대피소에 구호품을 전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서씨는 이날 오후 빈손으로 돌아왔다. 물품을 싣고 올 차량을 구하지 못한 것이다. 또 이날 저녁 배편으로 구호물품을 싣고 오기로 했던 선교사 2명도 태풍 피해로 현지 은행 업무가 마비돼 필요한 물품을 사지 못했다고 했다. 현지 구호활동을 총괄하는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은 이날 오전 10여개 구호 기관과 가진 회의에서 "3~4일 내로 식량이 공급되지 못한다면 타클로반 일대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타클로반과 인근 사마르 지역을 잇는 검문소 앞에서는 취재진이 있는 가운데 정부군과 탈옥 죄수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 전날에는 굶주린 이재민 수천명이 타클로반의 정부 식량 창고를 습격해 비축미를 약탈했다. 당시 창고 주변에는 군과 경찰이 배치돼 있었으나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속수무책이었다고 현지 목격자들이 전했다.
김용상 119국제구조대원은 "도로에 동물과 사람 시체가 뒤엉킨 채 방치돼 있어 전염병이 돌 수 있다"며 "방역 활동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12일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중앙정부 집계로는 사망자가 2000~2500명 정도"라고 말했다. 현지에 도착한 유엔 관계자와 지방관리들이 사망·실종자를 1만2000여명으로 추산한 것과는 큰 차이다. 하지만 도로와 통신 상태가 두절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집계하는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구호단체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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