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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소식/이스라엘소식·2

이스라엘은 타협안을 철저히 거부한다

ⓒEPA 11월9일 제네바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란 핵 문제 회담이 열렸다.


"이스라엘은 타협안을 철저히 거부하며 구애받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필요하면 이스라엘은 자국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모든 행동을 취할 것이다." 최근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을 포함한 이른바 'P+1' 협상국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핵 개발 의혹을 받아온 이란과의 협상에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내뱉은 독설이다. 그의 발언은 얼핏 'P+1' 협상국 전체를 겨냥한 것 같지만 실은 맹방인 미국을 정조준한 경고다. 5년 전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뒤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내내 불편한 관계를 빚어온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번에는 이란 문제로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0월 중순의 1차 회담에 이어 스위스 제네바에서 11월7일부터 사흘간 열린 2차 회담에서는 이란이 향후 6개월간 핵 활동을 중단하는 대가로 약 500억 달러에 이르는 이란의 동결자산을 해제하는 등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내용의 잠정 합의안이 나올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협상국 일원인 프랑스가 막판 합의안에 우려를 표시하고, 이스라엘이 협상안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결국 타협안은 도출되지 못했다.

사실 이번 2차 회담은 내용적으로는 앞서 1차 회담 때 이란이 제시한 3단계 해법과 맥이 닿아 있다. BBC 방송에 따르면 당시 회담에서 이란은 1단계로 향후 6개월 안에 핵 활동을 동결하되 협상 상대국들은 경제 제재를 풀고, 2단계로는 이란의 핵 개발 의혹 해소를 위한 신뢰를 구축하며, 3단계로 핵 프로그램의 평화적 용도를 확증하자는 안을 내놓았다.

회담 결렬 직후 신속히 재개 약속

이번 2차 회담은 막판에 결렬됐지만 양쪽이 11월20일 협상을 재개하기로 신속히 합의한 것은 기존 핵 협상이 지난 10년간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며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타협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신호다. 실제로 이번 제네바 협상이 실패로 끝난 직후인 11월11일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현재 이라크 중부에 건설 중인 중수로와 남부의 우라늄 광산 등에 대한 사찰을 허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6개 항에 합의한 것도 향후 협상의 전망을 밝게 해준다. 특히 내년 말 완공될 예정인 중수로의 경우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어서 우려 대상이었다.

향후 협상의 최대 장애물은 우라늄 농축권리를 인정해달라는 이란의 일관된 요구다.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으로서 이란은 당연히 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의료 연구 등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우라늄 농축이 필요하다는 이란의 주장을 어떤 식으로 절충할지도 관심사다.

문제는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P+1'의 주도국이라 할 미국은 물론이고 이란도 국내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친이스라엘 세력이 대세를 형성한 의회의 강력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실제로 미국을 향한 네타냐후의 결사 저지 발언이 나온 직후 이미 친이스라엘계 의원들이 타협안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의회의 분위기는 민주당이 장악한 상원에서는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법안의 추진을 놓고 의견이 엇갈린 상태다. 공화당은 되도록 빨리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법안을 만들자고 아우성이지만, 민주당은 11월20일 재개되는 협상 결과를 지켜본 뒤 추진하자는 의견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은 매우 강경하다. 이미 지난 7월 하원에서 이란 제재 추가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는 공화당의 중진 의원들은 상원 지도부에 11월12일 공식 서한을 보내 상원 차원의 대이란 제재법을 만들라고 촉구했다.

ⓒAP Photo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11월6일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오른쪽)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이끄는 이란의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8월 대통령에 당선된 로하니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면서 최우선 과제로 자국의 핵 개발 문제로 야기된 경제 제재를 푸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국내의 강경파와 이란 혁명수비대 등은 이번 핵 협상은 물론 미국과의 어떤 관계 개선도 반대한다며 강력히 저항한다.

미국 처지에서 보면 가장 큰 걸림돌은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스라엘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핵협상이 타결 직전에 들어간 11월9일 밤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유대계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당 정부가 타협안에 서명하지 말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은 유사시 미국의 동의 없이도 이란의 핵시설에 대해 군사공격을 감행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스라엘은 핵 개발이 전력 생산과 의료 연구 등 평화적 목적용이라는 이란의 주장을 거짓으로 간주해왔다. 따라서 'P+1' 협상국의 목표를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거에 두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그런데도 미국이 주도한 협상국이 핵 프로그램 제거와 거리가 먼 우라늄 농축활동 중단에 타협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스라엘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기술이 20%에 도달했고, 마음만 먹으면 "수주일 안에 핵무기 생산이 가능한 90%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라며 극도의 경계심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카드 꺼낼 수도

외교 전문가들은 끝내 타협안이 도출될 경우 네타냐후가 극단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그는 미국 의회 내 상당수 친이스라엘계 의원들에게 오바마 행정부를 막아달라고 직접 호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우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임기 4년 내내 불편한 관계를 감수해야 하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 바로 이런 이유로 네타냐후는 오히려 미국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팔레스타인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팔레스타인 국가의 창설을 궁극적 목표로 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험난한 평화협상은 케리 국무장관의 힘겨운 중재 외교로 지난 7월 어렵사리 재개돼 내년 중반 타결을 목표로 현재 진행 중이다. 하지만 네타냐후는 이란 핵협상 타결안에 불만을 품고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을 지연하거나 보이콧할 가능성이 있다.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이타마르 라비노비치가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에 불쾌하면 할수록 팔레스타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그 문제는 그가 가진 지렛대 가운데 하나다"라고 밝힌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아무튼 이스라엘이 향후 타협안에 극렬 저항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ㆍ민주당 가릴 것 없이 친이스라엘계 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의회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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