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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반도2/위기의 한반도·5

[스크랩] 오랜 역사를 가진 북한의 땅굴 전략

김일성&김정일의 특명!

 

▽서울을 한밤중에 기습,새벽에 점령사실을 인민들에게 알리도록하라 귀순자 이철수 대위가 폭로. 김정일의 호언장담에 숨겨진 비수는 그것은 바로 땅굴이다.

 

▽전쟁발발시 남조선 4천만을 학살하라? 1994년도 귀순한 김충국이 일본에서 발간된 김정일의 핵과 군대에서 폭로

 

▽김정일은 1994년 4월 인민무력부 간부들에게 군부는 평화통일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우리 인민이 잠자고 있을 동안에 공격해서 아침에는 통일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속전속결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방북한 한국언론사 대표들을 만난자리에서 통일은 내가 마음먹었을 때 한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는 모든 땅굴이 완성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1968년 1월 미정보함 푸에블로호가 동해에서 나포되어 승무원 1명이 살해되었고 다른 승무원은 포로가 되었다. 잡힌 포로는 후에 석방되었지만 함선은 지금도 억류되어 반미의 구경거리로 되어 있다. 이 사건이 지난 얼마 후 김일성은 당군 사위원회에서 "적의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해서는 방위전과 함께 후방종심에 제 2전선을 형성하여 배후를 쳐야한다. 이번의 푸에블로호 사건을 보면 미국 놈들은 죽는 것을 가장 무서워하는 비겁한 자들이다. 미군부대를 인질로 잡아두는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전쟁이 이외로 빨리 종결될 수 있다고 생각 한다"라고 말했다 .

 

▽땅굴이 갖는 공격용 무기로서의 위력은 대부대가 발각되지 않게 적후방에 침투, 적의 배후를 침으로써 기습효과를 달성한다는 것이다. 이 때 기습은 실제 병력의 3?5배 병력이 공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된다. 이제까지 알려진 북한 땅굴 작전의 뿌리는 71년 9월 25일 김일성이 중앙당 1호청사 소회의실에서 했다는 군사분계선 지하관통 전투(땅굴작업 )명령이다. 이 명령은 땅굴작업의 기본 개념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1971년 9월 25일 김일성은 적 후방에 준비된 경보병부대 3개만 침투시켜도 원자탄 10개를 떨군 것보다 더 큰 위력과 효과를 거둘 수 있소, 이건 내래 지난 69년 1월 인민군 당 4기 4차 확 대 전원회의에서두 강조한 말이오. 전쟁발발과 함께 요새 진지로 강화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서 적 후방을 강습,교란하는 것은 전쟁에서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주요 요인들 가운데 하나 요‥‥유형은 세 가지루 하는 게 좋갔소.

 

첫째, 경보병부대를 대거 침투시킬 수 있는 형태

 

둘째, 대남공작원을 침투시키기 위한 형태,

 

셋째 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절충 형태래 괜찮을 것이오.

 

늦어두 우리「당 창건 30주년(1973년 10월 10일)」안으로 다 완공해야갔소. 이건 내 바람이구, 동시에 동무들한테 주는 전투명령이오.」

 

 

전략적 땅굴의 가공할 위력

 

정명환장군과 월간조선 조갑제씨와의 인터뷰

 

조갑제: 장거리 땅굴의 전략적 가치에 대해서

 

정명환:「서울 근교에 진출한 땅굴을 통해서 한룻밤 사이에 북한 특수부대 10만, 그 중 8만이 경보병여단인데, 이 정예부대가 서울에 나타나면 전쟁에서 진다고 보아야 한다. 북한의 정규 군대병력이 어떤 폭격으로 부터도 안전한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한국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것과 동시에 전면 남침이 시작되면 우리 전방병력은 서울과 차단돼 협공을 당한 채 순식간에 궤멸될 수도 있다. 적이 땅굴 출구 부근의 교두보를 하루만 확보해도 게임은 끝나는 것이다.

 

유일한 대책은 평양에 원폭을 투하하는 것인데 한국 안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다는 지금, 미국이 그런 결정을 단시간에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배후에 적이 나타난다는 것은 등과 뒤통수가 노출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런 전쟁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 수많은 전사(戰史)가 배후에 나타난 소규모 기습병력에 의해 대규모 부대가 붕괴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

 

조갑제: 경보병여단이 땅굴을 통해 나오더라도 차량이 없어 기동하기가 어려울 텐데

 

정명환: 흔한 것이 차량인데 현지 조달하면 될 것 아닌가. 더구나 그들은 틀림없이 국군복장을 하고 나와 처음에 쿠데타군으로 위장할 것이다. 내가 민사군정감을 할 때 곰곰히 검토해 보니 전쟁이 나면 서울의 인파와 차량홍수 때문에 우리가 도저히 작전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전쟁이 나면 서울시민들은 집안에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 질서가 유지될 것인지‥‥도로가 피난차량으로 뒤덮이면 우리 군은 탱크로 그냥 깔아뭉개면서 작전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과연 그럴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6.25 때는 서울을 잃고도 버틸 수 있었지만 오늘의 한국은 그렇게 할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장거리 굴착은 결정적인 위협요인이다. 내가 김일성이라면 자신만만할 것이다. 김일성이 1995년에 꼭 통일하겠다는 말을 땅굴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전율이 온다.

 

◆정승화(鄭昇和)장군의 견해◆

 

장거리 땅굴을 통해서 대병력을 서울 근교에 기습적으로 집중 투입하면 우리 군은 분산돼 있으므로 이를 막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적군은 땅굴 출구에서 교두보를 확보, 사단 규모의 정예 병력을 쏟아 붓는데 우리는 분산된 병력을 소집하고 집중시키는 데 개전 초기의 결정적인 시간을 허비해 버릴 것이다. 더구나 적은 야간에 국군복장을 하고 나와 통신 지휘체계를 혼란시키고 미리 설정한 목표물을 신속히 점령할 것이므로,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6.25때는 한국이 서울을 빼앗기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지금의 한국은 그럴 수가 없다. 배후에서 소규모의 적이 나타나도 전방의 병사들은 사기가 떨어진다. 기습의 공포감 때문에 순식간에 지휘체제가 마비되고 조직이 해체되면서 군대가 군중으로 변해 제멋대로 도주하기 시작한다. 배후의 적은 이처럼 무섭다. 북한이 조기에 서울을 점령해 버리면 미군이 개입할 명분도 약화될 것이다. 분단국가가 상호간의 힘 겨루기를 통해 민족통일을 이룩했는데 미국이 개입해서 다시 분단시킬 수 있겠는가. 북한은 남한을 정복하자마자 대대적인 통일축제를 벌이고 미국에 대해서는 추파를 던질 것인데 ‥우리 대통령도 몇 년 안에 통일이 된다고 하고 김일성은 1995년에 반드시 통일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단기간 내의 통일은 무력 통일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앞으로 몇 년을 잘 버티면 통일에의 결정적인 주도권을 쥐게 되는데 이 결정적 시기에 해이해지면 오히려 먹힐 수가 있다. 이런 때의 국가 지도자는 문제를 직시할 줄 아는 현실주의자여야 한다.

 

◇◇군전략부서에 근무하는 한 장성의 견해 ◇◇

 

김포 방어가 잘못되면 한국의 아르덴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2차세계대전 때 프랑스 육군은 독일과의 국경선을 따라 주력을 배치했는데 오른쪽의 마지노 선과 왼쪽의 베네룩스 3국 국경선에 중점을 두었고 그 사이에 있는 프랑스 아르덴느 지방은 숲지대로서 독일 기갑부대가 통과할 수 없으리라는 안이한 판단하에서 방비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독일은 이 아르덴느 지역에 기갑부대를 집중 투입, 순식간에 전선을 돌파한 뒤 무서운 속도로 도버해협 쪽으로 진격,그 오른쪽의 프랑스 육군 주력을 파리와 차단,고립시켜 버렸습니다. 프랑스는 파리주변에는 예비병력을 갖고 있지 못했고 진격하는 독일 기갑부대를 막을 수가 없어 대병력을 북쪽에 고스란히 두고도 손을 들어 버린 것입니다.

 

만약 북한 인민군이 김포반도 깊숙이 장거리 땅굴을 파 놓고 있다가 기습을 벌이면 우리가 프랑스처럼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땅굴을 통해 나온 경보병 여단 병력이 주저항선(한강 하류)의 배후를 치고 한강 남쪽으로 돌진하는 사이에 적 주력이 한강 하류를 도하, 흔란에 빠진 우리의 방어선을 돌파한 뒤 김포반도로 쏟아져 들어온다면 이것은 파국입니다. 이 작전에서 적은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남진 할때를 기준으로 하면 오른쪽은 서해안, 왼쪽은 한강으로서 측면 방어가 쉽습니다. 평야지대로서 기동에도 유리하지요, 단기간의 전격작전으로서 김포공항, 인천항을 무력화시키고 한강 남쪽을 점령, 서울을 배후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세를 결정지을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김포로 장거리땅굴이 뚫려 있다면 그것은 심장을 향해 꽃 히는 비수입니다.

 

◇홍성태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의 견해◇

 

김포반도에 땅굴이 뚫렸다면 북한군은 이 땅굴로 침투, 경인고속도로→1번 국도(서울?부산) →경부고속도로의 순서로 차단을 시도할 것입니다. 한미군은 북한의 주공(主攻)이 문산, 철원 방면으로 향할 것으로 보고 이 지역에 몇겹의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는데 이렇게 김포 쪽으로 침투한다면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는 꼴입니다. 결국 김포지역 땅굴로 북한군이 침투한다면 서울은 3면에서 포위되는 셈입니다.

 

한국군 군복 30만벌의 실체

 

"2003년 1월 19일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반미운동 자제와 주한미군철수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과 대규모 기도회에서 김홍도 목사가"북한이 우리 군복30만벌을 홍콩을 통해 구인해갔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폭로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인민군을 국군으로 위장시켜 일시에 땅굴로 침투하여 교란시키려는 것이 분명.

 

▼월남전에서 자만했던 미군측의 월맹군의 땅굴규모를 과소평가 함으로써 한 나라가 망했다. 우리나라도 똑같은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현재 문제시되는 땅굴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때 종말에 가서 우리 국민들이 오열하고 원망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될 것이다. 원망을 할 대상이 없어진, 즉 나라가 망했기 때문이다.

 

제2땅굴 발견자 예비역 육군소장 정명환

 

▼북한군은 땅굴의 전술적 효율성을 높이고 보수유지를 위해 일정거리마다 각종 광장을 설치해 놓았으며, 공격 개시전에 이 같은 광장에서 대기 또는 취침도 가능할 것이다. 땅굴을 통해 남한에 투입시킬 수 있는 특수부대 병력 10여만 명을 이미 배치, 이들을 국군으로 위장시킬 수 있는 한국 특전사 전투복을 10여만벌 이상 확보해 놓고 있다.

 

전 국방부 군사전문가 김철수 박사

 

장거리 땅굴을 증언한 사람들(남한 주민 제외)

 

1.인민군 6사단 탈북 장교 김남준 증언(월간조선 92년 5월호에 기고) 북한 화곡광산에 출발한 땅굴은 서울행 땅굴김포로 들어왔다.

 

2.제1땅굴 목격자인 인민군 민경대 준위 안걸일씨 증언

땅굴공사 부대에 근무하는 간부가 친구였는데 이런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땅굴 속으로 들여보낼 때는 한국군 복장을 하도록 하고 말씨도 국군말투를 교육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남한 측에 붙들리는 일이 생길 때에 위장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3.1980년 6월에 월남 귀순한 이영우씨 증언

76~77년경 부터는 광산이 폐쇄되고 군부대(6사단 1연대)가 광산본부를 인수하면서 민간인 출입이 일체 금지되었던바 그것이 제일 의구심나는 점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알고 있기에는 북한에서도 내노라하는 광석(금, 아연,연)이 채취되고 그 규모 또한 한 두 손가락에 곱힐 만큼 큰 1급 기업소였고(노동자 4000여명) 광산 작업시 수입이 왜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폐갱시켜서 군인들을 배치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광산 당위원장 사무실에 들어갔던 일이 있던 바 그 때 벽에 걸린 지도 에서 본 기본진도 현황은 한강중심, 즉 군사분계선까지 전진한 것이었다.

 

기본갱이 화곡광산에서 남쪽으로 직선으로 뻗어 있는 바 높이, 너비가 2.5t 화물트럭 2대가 어길 수(왕복1차선) 있고 기본갱에서 좌우로 수십개의곁가지 광석채취굴이 있다. 그 굴의 너비,높이는 일반 갱차가 서로 어길 수 있는 정도이다. 

출처 : 하늘향연
글쓴이 : 복있는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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