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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와 대환란/휴거·2

[스크랩] 휴거를 기다리는 마음을 점검합시다.

 

우리 모두 휴거를 기다리는 마음을

점검해 보았으면 합니다.

 

 

 

 

1. 나는 천국을 소망하며 어린양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휴거를 기다리는가?

2. 나는 적그리스도의 통치 하에서 겪을 엄청난 고난과 핍박, 목베임을 회피하기 위해 휴거를 기다리는가?

3. 나는 단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휴거를 기다리는가?

4.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소망이 없으며 인생의 실패자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이 환경을 벗어날 목적으로 휴거를 기다리는가?

 

여러분이 다 아시다시피 휴거의 문은 어린양 예수님의 신부인 정결하고 거룩한 교회들에게만 열려있습니다.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독생자이신 예수님의 신부될 자격을 갖춘 교회를 이 땅에서 찾고 계셨습니다. 이미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여기서 교회란 건물이 아닌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 자를 뜻합니다) 

 

그 조건이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백성들에게 말씀과 행하심으로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을 모르신다고 하실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말씀을 믿고 실천해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머리요, 우리는 지체입니다. 성경말씀 중 분명하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붙어 있는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지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찍어서 불에 던지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포도나무가 건강하고 좋은 품종이라고 하더라도 그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포도를 맺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포도나무 주인은 가지를 잘라낼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절 말씀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만일 아무 것도 않하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에 열매가 알아서 열립니까? 알아서 열매가 열린다면 예수님께서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를 쳐내서 불에 던진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디도서 3장 14절입니다.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1)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약 2:24)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잘 아시다시피, 주후 쓰여진 성경말씀은 이방인이나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현대 크리스찬들보다 훨씬 그리스도의 도와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던 초대 교회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거룩해지고 의로워지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은 값없이 주시는 아버지의 은혜와 로마서 6장 6-7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의 구절만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오는 오류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구절에 있는 말씀을 본다면 그런 해석이 얼마나 엄청난 실수인 지 알 수 있습니다.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은 믿노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세주이심을 마음 속으로만 믿는 믿음으로 능히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만으로 거룩함을 입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당신이 믿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How do you know that you believe?)"라고 묻는 폴 워셔 목사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폴 워셔 목사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고 그 분의 설교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이런 것을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것만으로 우리가 거룩함과 의로움을 얻는다면 눈물 흘리며 하는 회개하는 헛된 수고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큰 문제는 이미 거룩한 크리스찬들에게 회개하고 거룩하라고 주의 종들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헛된 일이라고 결론짓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과 대속제물되심을 믿는 것만으로 거룩함을 입을 수 있고, 아무런 수고도 애씀도 없이 거룩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엄청난 사탄의 미혹입니다. 이러니 죄를 짓고도 회개도 않하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믿는다 하면서도 순종도 않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입으로만 예수님을 믿거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4복음서의 분부하심이 실천하기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믿음이 있어서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면 4복음서에 나온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말씀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안 계시고 머리와 입으로만 믿는 사람들은 4복음서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 당연히 벅차고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인간적인 마음으로 애둘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님도 없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어찌 그것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실천하라고 하신 내용들은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난과 질고, 핍박과 멸시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치르신 피흘림에 비하면 오히려 쉬운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4복음서를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입니다. 행하지도 못할 것들을 분부하셨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행함이 동반되지도 않는 믿음으로 그렇게 쉽게 거룩함을 입을 수 있는 일이라면 바울의 사역은 헛된 것이라는 논리가 됩니다.

 

바울의 서신을 잘못 해석하여 값싼 은혜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쉽게 마귀의 시험에 걸린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바울 서신을 잘못 해석하여 아무런 수고와 행함도 없이 거룩함을 입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분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율법적 행위자라고 공격합니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거룩해지거나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이용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는 아무 감정도 없는 로보트에게 영광을 받는 게 아니라 자유의지가 있는 피조물에게 영광을 받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분부하신 것들을 믿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 분의 은혜로 기름을 부어 주시고, 우리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예수님과 같은 완전한 분량의 믿음을 얻도록 채워주사 우리로 정결한 교회가 되어 어린양의 신부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만들면 안 됩니다.

 

다시 휴거를 기다리는 크리스천의 마음으로 돌아와, 우리는 예수님께서 왜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셨는 지와 그 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핏값으로 우리를 사신 그 분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라면 그 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모든 것을 바쳐서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루도 그 분을 뵙지 못하거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몸살이 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다윗이 죄를 짓고 난 후에 회개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버리지 말아달라고 매달린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다윗은 그가 누리고 있었던 왕권, 부와 권세보다도 하나님과의 교통/교제가 훨씬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런 마음으로 곧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신부가 신랑오심을 기다리는데, 신랑에 대한 사랑은 없고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탈출하기를 기대하거나 신랑이 자신의 빚을 갚아주는 해결사가 될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신랑은 "내가 그대를 알지 못하노라"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휴거를 기다리는 마음 속에 우선순위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향한 조건없는 순결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부터 주님을 향한 열망과 순결한 사랑으로 휴거를 기다리는 마음을 채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랑별파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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