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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체험/지옥 간증

[스크랩] 끔찍한 지옥

끔찍한 지옥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배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6:19-31)






우리는 본문을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유가 아니라 실화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일례로 존 웨슬리는 본문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하나의 비유인가? 혹은 실제적 사실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비유로 생각한다. 특히 지옥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낙원에 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었는가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인정하더라도 '한 부자가 있었다'




직설적인 주님의 주장을 뒤엎을 것인가? 부자가 없었는가? 이런 사람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있었다.' 




있었는가? 없었는가? 우리의 복되신 주님이 적극적으로 주장하신 것을




적극적으로 부인하다니 당돌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이야기의




사실성을 의심할 수 없고 이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믿는다."






고대 성경 주석가 중의 한 사람인 데오피라크트(Theophylact)는 




"유대인들의 전설에 의하면 나사로가 예루살렘에 살았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전승에 의하면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이름은 




니네베(Nineve) 이거나 피에네스(Phinees)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실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문이 실화가 아니라 비유라 할지라도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말씀하신 분은 사후 세계의 실상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실화가 아닐 경우 유리한 점마저 있습니다.




왜냐하면 실화일 경우에는 사후세계의 한 단면이 되지만 이것이 비유일




경우 사후세계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1.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의 시작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 때 무책임하게 살고, 심지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은 존재의 끝이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 9:27). 




그리고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것이 본문에 나타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입니다.






안식일 교회에서는 영혼 불멸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혼멸절설을 주장합니다.




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도 죽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마찬가지로 지옥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실제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이집트 민속 설화' 중 하나를 예수님이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실화든 비유든 그것을 떠나서 본문은 실재적인 이야기입니다.




본문뿐 아니라 성경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은




모두 실재적인 진리입니다.




이 사실이 놀랍게도 성경뿐 아니라 현대 의학으로도 증명이 됩니다.








수년 전 모리스 롤링스(Maurice Rawlings)박사가 죽음에 관한 책을 




몇 권 내놓았습니다.




모리스 롤링스는 한때 아이젠하워의 개인 담당 의사였고,




현제 테네시주 다이아그나스틱(Diagnostic)병원의 내과 특히 심장혈관질환의 




전문의이자 응급 소생술의 국제적인 권위자입니다.




그는 [죽음의 문을 넘어](Beyond Death's Door)라는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개인 소유의 비행기와 호상 가옥을 가지고 있는 갑부입니다.






모리스 롤링스는 평생을 의사로 일해 왔고 거의 매일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죽음 이후의 경험에 대해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꿈이거나 환상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조지아주 라파옛에 사는 48세 된 우체부 




찰리 멕케익이라는 사람이 입원했습니다.




동료 의사 팸 찰스워드가 그 환자의 심전도 검사를 하는 도중




갑자기 찰리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찰리는 자기 심장이 멎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렇게 4-5초가 지나자 찰리는 갑자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마치 뭘 몰라서 질문이라도 하나 하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눈을 뒤집고 




그대로 까무러쳤습니다.




즉시 간호사 하나가 달려들어 '생명의 키스'라 불리는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을 실시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간호사는 정맥주사를 준비했습니다.




모리스 롤링스는 그의 심장을 정상으로 뛰게 하기 위하여 




심장조율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찰리가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습니다.






"멈추지 말아! 난 지금 지옥에 있어! 지옥에 있다고!"






모리스 롤링스는 환자가 환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받아넘겼습니다.








"당신은 계속 지옥과 씨름하시오.




나는 지금 당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바쁘오!"








그런데 이런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대개 환자들은 고통 때문에 "그만 눌러요. 갈비뼈를 부러뜨릴 참이오?"하고 




의사에게 항의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흉부압박 맛사지는 때론 환자의 갈비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 사람은 필사적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롤링스 박사가 그의 가슴을 두드리면서




"당신은 어째서 내가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지옥에 있소."라고 소리쳤습니다.




"지옥으로 가게 될까 봐 무서워한다는 뜻이군." 박사의 말에 그는




"아니오. 나는 지금 지옥에 있소. 나를 가게 하지 마시오.




제발 나를 보내지 마시오. 내 말 이해 못하겠소? 나는 지옥에 있소.




당신이 소생법을 멈출 때마다 나는 다시 지옥에 간단 말이오.




제발 나를 다시 지옥에 보내지 말아 주시오!"고 소리쳤습니다.






모리스 롤링스는 지금까지 죽음에 다가가는 많은 환자들의 항변을 




무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그 환자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25년 동안 사람의 얼굴에서 그토록 무서워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평생 그토록 무서워하는 얼굴 모습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그렇게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서둘러 환자를 살리려는 노력을 계속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환자가




"내가 어떻게 하면 지옥에서 나갈 수 있소?"하고 공포에 질려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기도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당황한 박사는 "나는 목사가 아니오."라고 투덜대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다가 간호사들의 따가운 눈총에 밀려 그는 마지못해 




기도문을 선창했습니다.






"따라서 해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저를 지옥에서 구해 주십시오."




"만약 제가 다시 산다면 당신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그 환자는 이 기도를 필사적으로 따라했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진정되었고 곧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 환자의 방에 갔을 때 그 환자는 성경을 구입해서 




읽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실화이며, 모리스 롤링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에 관하여 의사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죽음에 관해 연구하였습니다.






첫째로. 병원에서 임상적인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경험담을 듣고 이들을 서로 비교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그들의 경험이 서로 매우 유사하고 일정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두세 사람이 유사한 꿈을 꾸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에서 살아난 많은 환자들이 본질적으로 같고 연속적인 꿈을 




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환자들은 우리와 똑같이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로서,




모두가 자신들의 경험을 꿈이 아닌 현실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경험이 꿈이 아니라 실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로, 세계 여러 종교들의 경전을 구해서 서로 읽고 




비교해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유대교의 율법과 탈무드, 회도교의 경전 코란, 옛 인도의 성전 베다, 




우파니샤드, 힌두교의 브라만, 조로아스터교의 경전과 주석서인 젠드아베스타,




공자의 어록, 자이나교의 아가마, 불교의 불경, 일본의 신도 고지키,




노자가 제창한 도교, 논어를 포함한 많은 종교의 신성한 책들의




많은 이론들을 열심히 비교하고 분석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한 책이 죽었다 살아난 환자들의 죽음 후의 경험을 




가장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책은 바로 기독교의 성경이었습니다.






이처럼 연구한 결과 그는 기독교가 유일한 




된 종교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아니었던 그는 연구가 끝난 후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로 보건대 성경에 나오는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비실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을 묘사한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일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무신론자이며 도박꾼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사람들은 그의 비문에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여기에 한 도박꾼이 누워 있다. 죽음이 영혼을 죽이는지 어떤지 




오래 의심하며, 여기서 그의 의심은 끝났다. 드디어 확신했다.




- 그러나 아, 주사위는 던져졌다."






트라이언 에드워드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은 너무 늦게 본 진실이다. 제 때에 할 일을 경홀히 여기고




후회하는 곳이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옥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지금 이 글을 읽고 죽음은 끝이 아니며, 천국과 지옥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지옥을 면하고 




천국을 기업으로 받게 되시길 바랍니다.










2. 다른 곳은 몰라도 절대로 지옥만은 가지 마십시오.






성경은 천국보다도 지옥에 대해 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천국에 갈 사람보다 지옥에 갈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성경에서 지옥에 관해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옥에 관한 언급은 대부분 예수님이 말씀한 것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지옥에 관하여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가장 원치 않는 분도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1747년 존 웨슬리는 이런 글을 썼습니다.






"나는... 내 눈앞에 항상 천국과 지옥 둘 다를 있게 하고 싶다. 




매일 이 둘을 생각해 본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이성적이고




신앙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이 지옥에 대해서 침묵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지옥에 대해 자주 설교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런 




설교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옥에 관한 설교처럼 사람들에게 필요한 설교도 많지 않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지옥을 설교할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자들이 거룩한 율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반복해서 설교하고, 지옥의 불구덩이에 대해 자꾸 설교함으로써




결국 사람들에게 겁만 주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영원히




고통받는 장소인 지옥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빠질 위험천만한 상태에 놓여 있다면, 그 사실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사람들에게 지옥에 대해 선포해야 한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 역시 우리 설교자들이 사람의 눈치를 그만 보고 지옥에 대해




더 많이 설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교자들이 지옥에 대해서 설교할 때 제일 먼저 다뤄야 할 주제는




지옥의 실존입니다.




그 다음 다뤄야 할 주제는 "지옥은 어떤 곳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일까요?






토마스 아 켐피스는 지옥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옥에서 한 시간 받는 고통이 이 세상에서 100년 동안 받는




가장 심한 고통보다 더 견디기 힘들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함으로써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가공할 만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 16:24)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8-49)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사람에게 가장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불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처 중에 제일 두려운 것은 화상입니다.




화상은 치료의 과정이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옥은 불구덩이 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지옥이 "불 못"(계 20:15) 혹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계21:8)으로 정의되고 있습니다.






지옥의 불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주는 충격적인 간증이 하나 있습니다.




1948년 캐나다 앨버타에 사는 조지 고드킨이라는 사람이 오랜 중병을




앓다가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때 그는 잠시 동안 지옥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나는 지옥이라 부르는 영계로 인도되었다. 이곳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처벌의 장소였다. 나는 지옥을 보았을뿐만




아니라 거기 들어갈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맛보았다. 지옥의 어두움은




얼마나 두껍던지 평당 압력을 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지옥은




컴컴하고 끔찍했으며, 적막하고 묵직한 어두움이었다. 어둠 속에 있는 




각 사람을 짓누르고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그런 어두움이었다.






물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게 하는 열 기운이 그곳에 있었다.




눈알이 어찌나 건조하게 느껴지는지 눈구멍 안에 빨갛게 단 석탄




두 개가 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입술과 혀가 고열로 바짝 말라붙어




쩍쩍 소리가 나게 갈라졌다. 콧김이 마치 용광로에서 뿜어 나오는




바람처럼 후끈후끈했다. 몸 바깥쪽은 무슨 난로 안에 갇힌 것처럼 




뜨거웠고 몸 안쪽도 밖에서 들어오는 뜨거운 김으로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이 지옥이 인간 영혼에 주는 고통과 고독의 처절함은 정말이지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그저 겪어 봐야만 알 수 있을 뿐!"






이처럼 지옥의 불이 주는 고통은 끔찍합니다.




온 우주에서 가장 끔찍한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지옥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지옥은 끝이 없는 영원한 곳입니다.






지옥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지옥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지옥의 고통은 영원합니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아내와 헤어지고 생활고로 비관하다




분신자살을 기도한 남자에 관한 뉴스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령 분신자살을 기도한 사람에게서 불도 꺼지지 않고




그 사람도 계속 죽지 않고 뒹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그런데 지옥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지옥의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큰 구렁이 있어 탈출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자살도 불가능합니다.




성경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0-11)






유명한 청교도 설교자인 리차드 백스터는 지옥의 고통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이 고통이 가장 심한 것은 그 고통이 영원하다는 점이다.




수천만 세대가 지났을 때, 그 고통은 첫날처럼 새롭게 시작될 것이다.




만일 고통이 끝날 소망이 있다면, 정죄 받은 자는 그날을 바라봄으로 




마음이 누구러질 것이다. 그러나 영원함으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죄를 짓는 데 결코 지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처벌하시는 데 결코 지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결코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보고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그러므로 영원한 형벌을 당할 것이다."






저는 지옥의 끝없는 고통을 엘렌 하프만의 간증처럼 리얼하게 묘사한




것을 읽어 본 일이 없습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거실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히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이 느껴졌습니다.




곧 그녀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보아라! 지옥을 주시하여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앞에 불타는 벽이 나타났습니다.




뜨거운 청색 불꽃이 갈색으로 보이는 바닥으로부터 불기둥처럼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불 한 가운데는 젤리 같은 어떤 실체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쳐다보고 있을 때 그것은 떨면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곧 흐느낌이 섞인 절규가 새어 나왔습니다.






"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절 도와주소서!"






그것은 계속 그렇게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네가 보고 있는 불꽃 속의 이 영혼은 지옥에 온지 




천팔백 년이나 된 남자로 지금까지도 나에게 이렇게 울부짖고 있단다."






여러분, 왜 놀라십니까? 천팔백 년이 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길지 않습니다. 천년은 지옥의 1초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옥은 영원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고대 작가가 영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실감나는 설명을 했습니다.






"한 마리의 새가 천 년에 한 번씩 이 지구로 날아와서 모래 한 알을




물어가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고 가정하자. 그 가련한 새는 한 알의 




모래알을 물고 멀고 먼 길을 날아갔다가 천 년이 지나면 다시 




날아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 새가 다시 날아올 것인가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천 년이 지나서 이 새는 헐떡이면서 또 한 알의 




모래를 물어가려고 다시 올 것이다. 이리하여 이 지구의 무한한 모래알




중에서 또 한 알이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일을 계속하는 동안 무한한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이 작은 새는 마지막 한 알의 모래알을 물고 가




자신이 맡은 과업을 다 끝내게 된다. 그러나 영원이란 바로 그 순간에도




계속되는 것이다."






수년 전 할아버지 집의 마당에 모닥불을 놓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뜰에 있던 거대한 통나무를 통째로 불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 통나무는 온종일 탔습니다. 그런데도 겨우 겉만 탔을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저는 지옥을 연상했습니다.




그 통나무가 마치 사람의 넓적다리같이 보였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영원히 불꽃 속에 있으면서도 타 없어지지 않을 




영혼들을 생각하고 두려움에 몸서리를 친 일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할 것 같지만 사실은 끝이 있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 같은 천국과 지옥은 실제로 존재하고, 영원합니다.




지옥은 영원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지옥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3. 교회에 다니고 세례를 받았다고 안심하지 말고 


죄를 회개하십시오.






부자는 왜 음부에 떨어졌을까요?




여러분은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30) 이 말씀에 암시되어 있듯이,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회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옥에 던져진 이유는 앞으로 지옥에 오게 될 




그의 다섯 형제들이 지옥에 오는 이유와 같습니다.




바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분들에게 




"당신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였습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회개가 없는 믿음은 가짜 믿음이며 그런 믿음은 사람을




지옥에서 건져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벧후 3:8-9).




그러면 회개할 때 어떤 죄들을 회개해야 할까요?




회개햐야 할 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제가 어떤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은 "모든 죄에서!" 라고 대답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에스겔 18장 30-32절에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거나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끊는 것입니다.




동시에 회개는 "모든 죄"(30)를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토마스 왓슨의 말대로




"참다운 회개는 보류하는 것도 동거자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에 있어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이 점에 무지한 자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에 관한 대표적인 명언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인간이 무서워해야 할 적은 단지 사자나 표범이나 구렁이와 같은 




큰 동물뿐이 아니다. 현미경에 의해서만 볼 수 있는 미미한 균이 




식품, 음료수, 공기를 통해서 체내에 들어갈 때 더욱 위험하며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꼭 그처럼 큰 죄만이 영혼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죄의 기원이 되는 숨은 악념이 더욱 파괴력을 지닌다.




가장 작은 하나의 죄라도, 또 나쁜 한 가지 생각이라도 우리의 희망을




멸하며 하늘나라 밖에 있게 하기에 충분하다." -썬다 싱-






"사람이 계속 한 가지의 죄 속에서 생활하며 그 죄를 버리지 않는 한, 




결코 참 회개는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뜻보다 이 죄를




더 좋아 선택하였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이 특별한 감각의




만족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죄를 




완전히 버리지 않는 한 진정한 회개는 있을 수 없다." -찰스 피니-






"죄 중에 하나라도 보류시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용납치 않으실




것이다. 그대의 죄들을 송두리째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대신 죽어야 한다. 단 하나의 아주 작은 은밀한 죄일지라도 그대가




그것을 용납한다면 그대의 영혼은 그 죄를 살려 준 대가로 죽어야한다.




비록 그대가 그 죄에 대하여 수백 가지 구실을 대고 변명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조셉 얼라인-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단 한 가지 죄라도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멋진 악을 선택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나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내 마음을 드릴 거야. 그러나 이 악만은




남겨두어야지.' 여러분은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여러분이 건방진 




욕망을 가지고 탐닉하는 죄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소유가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방자하게 또 고의적으로 한 가지 




악이라도 품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아니다." -찰스 스펄전-






무엇보다도 우리주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막 9:43-49)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이 지금 말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관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여기서 손, 발, 눈 즉 여러가지 죄를 지어야만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끊지 못한 죄가 있으면




그 죄와 함께 지옥에 던져진다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또 회개를 가르치시기 위한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과거에 저는 "하늘에서는"이라는 말 때문에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천국에 가 있는 성도들로 착각했습니다.




어쩌면 "회개할 것이 없다"는 말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은 천국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상에서 살고 있는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4절에 보면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 두 종류의 집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우리 안에 든 회개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밖에 있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는 천국에 갈 사람이고 하나는 지옥에 갈 사람입니다.






그런데 회개한 사람에 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려면 이 말씀 그대로 회개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단 한 가지라도 회개할 죄가 남아 있으면 안됩니다.




모든 죄를 다 회개했어야만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참으로 회개한 사람이요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소화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회개와 자백을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자백은 다릅니다. 




회개는 습관적인 죄를 대상으로 하고 




자백은 우발적인 범죄를 대상으로 합니다.




원칙적으로 회개는 불신자가 하는 것이고 자백은 신자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말은 자백할 죄가 있다고 해서 그가 회개하지 않은 자이며




지옥에 갈 자라는 말이 아닙니다. 




회개해야 할 습관적인 죄가 있다면 다시 말해서 아직도 끊어 버리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사람은 회개치 않은 사람이요 지옥에 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어느날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인 T. L. 오스본 목사님이 항구에서




배가 떠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 거리를 이리저리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돼지 떼들이 줄줄히 열을 지어서 몰이꾼을 따라가는데 




한 놈도 길을 벗어남이 없이 곧장 그 사람만 따라갔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원래 돼지는 여간 다루기 힘든 존재가 아닙니다.




왼쪽으로 가라고 막대기를 들어 후려치면 오른쪽으로 툴툴거리며 갑니다.




오른쪽으로 가라고 막대기를 들이대면 왼쪽으로 곧장 벗어납니다.




아무리 때려도 들은 척도 않고 제 볼일을 다 보는 놈들입니다.






오스본 목사님은 돼지꼬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잡아당기는 몰이꾼과 나 몰라라는 듯 죽어라고 앞으로 네 발을 




허우적거리는 돼지는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여러 마리의 돼지가




고분고분 몰이꾼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그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언가에 홀린 듯이 몰이꾼을 따르던 돼지들이 




도착한 곳은 도살장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돼지들은 거침없이 도살장에 큰 쇠창살을 한 문으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우습기도 하고 미련하기도 한 돼지 떼의 그러한 거동에 넋을 잃은 듯




우두커니 보고 있던 목사님은 그 몰이꾼이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몰이꾼이 나오자 목사님은 그의 신기한 기술에 대하여 탄복하면서




비결을 물었습니다.






"간단합니다. 그 놈들은 콩을 좋아하거든요. 가면서 콩을 한 움큼씩




길바닥에 뿌려주면 그 놈들은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니라 콩을 따라




오는 거에요. 정신없이 콩만 주워 먹고 가다가 제 죽을 곳으로 가는




것도 모르지요."






"정신없이 콩만 주워 먹고 가다가 제 죽을 곳으로 가는 것도 모른다."




이 말에 목사님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목전의 이익과 쾌락에만 심취되어 살다가 지옥으로 다가가고 




있는 사람들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돼지는 콩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사탄이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사용하는 미끼인 사탄의 콩입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 




'나는 이것을 특별히 좋아하기 때문에 쉽게 끊을 수 없을 뿐이야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돼지가 콩을 쫓아간 것은 콩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자기를 사지로 인도하는




몰이꾼을 좇은 것이듯이, 우리가 자기가 특별히 좋아하는 죄를 끊어 




버리지 못하고 그 죄를 좇는 것은 결국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인 마귀를 좇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종착지는 예수님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된 영원한 불"이라고 말씀하신 지옥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에 눈을 뜨시고 




지금 즉시 그 죄를 끊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4. 우리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요청했습니다.




먼저 그는 자신을 위하여 물 한 방울을 애걸하였고, 




다음으로 그는 지상의 남아 있는 형제들을 위하여 나사로를 파송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지옥에 관한 책 중 가장 압권은 메리 백스터 목사님의 간증 책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입니다.




그 책은 30일 동안 지옥을 보고 온 것을 그대로 기록한 책인데,




그 책을 보면 본문과 아주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다음 불가마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첫 번째 크기와 같은




불가마 속에는 다른 해골 형체가 있었다. 그것은 한 남자의 목소리로 말했다.




'주여 저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들이 말을 할 때 비로소 나는 그 영혼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가 흐느끼면서 말했다. '주님... 제가 너무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하옵소서... 이곳에서 내보내 주소서. 저는 여러 해 동안이나... 




고통이 있는 이 곳에 있습니다. 간청하오니 저를 밖으로 나가게 하옵소서!' 




그가 호소하는 동안 그의 해골 형체는 격렬한 흐느낌으로 흔들렸다.




나는 예수님을 쳐다보았고 그분 역시 우시는 것을 보았다. 그분이 위로




쳐다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나의 아버지여 나의 아버지여 긍휼을 베푸소서!'




'주 예수여, 이제 제가 지은 죄의 값으로 충분히 고통당하지 않았나요?'




간절한 목소리로 타는 불 속에서 그가 말했다. 




'저는 죽은 지 40년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네가 죄의 대가를 치름으로 너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에 나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어 구원에 이르느니라.




너는 진리를 믿지 않았다. 나의 백성이 너에게 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보내졌을 때에도 너는 나의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다. 너는 그들을




비웃었고 또 복음을 거절했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죽기까지 했어도...




너는 나를 조롱했고 또 너의 죄를 회개치 않았다. 나의 아버지께서도




네가 구원받게 하시려고 많은 기회를 주셨다. 만일 그때, 네가 들었더라면...'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압니다. 주여, 압니다!' 그 남자가 울부짖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개하고 있습니다.'




'너무 늦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심판은 끝났느니라.'




남자가 이어서 울부짖었다.




'주님, 지금도 회개하지 않은 세상 사람들이 이 곳에 오고 있습니다.




제발 그들에게 가서 지상에 있을 때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도록 허락해 주소서. 저는 그들이 여기에 오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처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만약 자신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복음을 전할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습니다.




구세군의 창시자인 부스 대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사관들이 신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하지만




내가 가장 행하고 싶은 일은, 사관생들을 10분 동안만 지옥에 데리고




갔다 와서 4년간의 피땀 흘린 공부의 필요성보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불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론에 지나지 않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지옥을 보면 전도열에 불타게 됩니다.




한신목회개발원 원장 이중표 목사님은 이런 간증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이 중학교 때 둘도 없이 친한 친구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




읽어 보라고 주었습니다.




그 책을 읽어 보니 석가, 공자, 노자, 장자, 소크라테스 등이 했던




명언들이 가득했는데, 그 가운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예수님 말씀만 기록된 책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신약 성경을 주었습니다.




신약을 읽는 중 목사님은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예수님을 믿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어느 날 아침, 기침을 하는데 




피가 쏟아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보았더니 폐결핵으로 폐 오른쪽에




구멍이 뚫려 피가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약을 주는데 전혀 치료가 되지 않았습니다.




절망한 그는 약국을 돌면서 수면제를 샀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 수면제를 손에 들고 잠시 눈을 감았는데




갑자기 지옥이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해골 떼들이 소리치면서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떴는데도 얼마동안 그 환상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눈을 감으면 또 지옥의 환상이 보였습니다.




결국 두려워서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께 메달려서 고침을 받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중표 목사님은 지옥의 환상이 자기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지옥의 환상을 봤기에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이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 지역사회를 품에 안고




'예수 믿으시오!'라고 외치며 간절히 전도했습니다."






저는 안양에서 군복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군에서 신병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습관처럼 꼭 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옥만 없어도 여러분에게 이렇게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실제로 있습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지옥에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22)






후기 유대교 사상에 의하면 "의로운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을 




선한 천사들이 받들어 모셔 가고, 악한 자가 죽으면 악귀들이 




데려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이야기에는 검은 옷을 입고 무시무시한 




모습을 한 저승사자는 있어도 죽을 때 나타나는 저승천사 이야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없는 곳에는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곧 유교와 불교가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모두 지옥으로 보냈다는 말이 됩니다.






위대한 복음 전도자 찰스 피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의인들이 죽으면 그를 천사들이




받들어 간다면 많은 의인들이 임종할 때에 눈에 무엇인가가 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어떤 신자들은 임종시에 하늘나라의 




음악 소리를 듣거나 혹은 천사들이 자기 주위에 둘러서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은 자기를 




시중들 천사들이 이미 자기 주위에 와 있는 것을 본다. 




'당신의 귀에는 저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당신의 눈에는 저 빛나는 천사들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지금




나에게로 오고 있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의인들의 임종시에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든다면, 




악인들의 임종시에 악령들이 그를 음부로 끌고 가도록 




허락을 받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악인이 임종할 때에 무서운 형상을 보거나




두려운 소리를 듣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아, 저기서 울고 통곡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귀에 신음소리가




들리는구나. 누군가가 무서운 고통 속에서 울고 있어. 




아 저 무서운것! 저 사람을 데리고 나가. 데리고 나가! 그가 나를




붙잡고 끌고 가려고 해! 그를 이 방에서 내보내 줘.' 이처럼 악인들은




임종할 때에 겁에 질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실제적인 예도 수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간 관계상 각각의 경우를 한 가지씩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안 웨스터 엔더슨이 지은 [천사를 만난 사람들]이라는 첵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1세 된 예수 믿는 소년이 복막염으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엄마! 우리 주위에 천사들이 있어요. 그 중 한 천사가 




나머지 천사보다 더 예뻐요."




엄마는 "내 눈에는 안 보이는 걸" 하고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아들이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끝까지 말했습니다. 




"보세요. 천사들이 바로 여기에 있어요. 하도 가까워서 만질 수도 있어요."




비로서 그 부모는 아이가 보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 의사인 낼슨 박사는 불신앙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이 겪는 일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믿음을 갖기 이 전에 의사로서 관찰했던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어 가는 불신자들은 "아, 저 무서운 사람! 제발 그를




이 방에서 내보내 주세요. 왜 그를 내보내지 않습니까?"라고 




소리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회개한 사람이 죽을 때는 천사가 마중 나오고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죽을 때는 귀신들이 그를 잡아가려고 옵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지금 죽는다면 누가 여러분을 




마중 나올 것 같습니까?




나아가서 여러분은 누가 마중 나오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천사가 마중 나오기를 원하시겠지요.




그렇다면 지금 즉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펌)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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