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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와 재림/휴거와 재림

대환란 통과론의 속임수

대환란 통과론의 속임수 (살후 2:1-5)

 

종말론에 관한한 현대 교회는 혼란, 혼동, 무지 그 자체입니다.

성경은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속이는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 ‘저 속이는 자’, ‘세상을 속이는 자’로 불립니다(계12:9).

주님은 일찍이 [...너희의 한가운데 있는 너희의 대언자들과 너희의 점쟁이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고 너희가 꾸고자 하여 꾼 너희의 꿈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지 니라.](렘29:8b)고 하셨습니다.

대환란에 대해 받은 환상과 계시라며 어떤 사람 의 책을 보았는데 성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들로 몇 백 페이지였습니다.

 

주님은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마24:4, 막13:5)고 거듭 경고 하십니다.

[어린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요일3:7a).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엡5:6).

어떤 사람은 구약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자칭 유대인들에게 속아서 어느 날 갑자기 안식일을 지키고, 돼지고기를 안 먹으면서 그것이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고, 순종을 표현함으로 거룩해지는 줄로 압니다. 속은 것입니다.

어떤 이는 종말이 가까우니어디 산 속으로 들어가 대환란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줄로 알고 학교나 직장까지 모두 정리해 버립니다. 속은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는 사람도 있고, 사람에게 속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께 속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들은 항상 진리를 배우나 결코 진리에 이르지 못하고(딤후3:7), 하나님께 속습니다.

 

대환란, 종말에 대한 진리를 배움으로 속이는 자들에게 속지 않도록 주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유혹하는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골2:4).

“속지 말라”는 성도들에게 주신 주님의 명령입니다. 진리의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속이는 자에게 속을 수 있고, 교리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은 “환란 통과론자들”의 애창곡이며, 사람들을 속이는데 가장 효과적인 본문입니다. 자,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1).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간청(탄원,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사적으로 부탁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by the coming of Lord Jesus Christ)과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our gathering unto the Lord)으로 말미암아(by) 간청했습니다.

첫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by), 둘째는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이는 것으로 말미암아(by)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에 뭔가를 명령할 때는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에게 명하노니”(살전5:27),

“내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선택 받은 천사들 앞에서 네게 명하노니”(딤전5:21),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내가 네게명하노니”(딤전6:13)와 같이 주로 주님 앞에서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데살로니가 형제들에게는 “형제들아....우리가 주님 앞에서 너희에게 간청하노

니”라고 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청 한다고 말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 간청의 근거임을 밝히고 있습 니다. *딤후4:1과 비교해 보라. 무엇을 간청했는지 그 내용은 2절에 나옵니다.

 

바울은 지금 주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생활 태도, 마음 자세에 대해 ‘간청’(beseech)하는 것입니다. 사도인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의 오심에 관해(about,concerning) 간청할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의 오심에 관해서는 간청할 수도 없습니다.

 

1절을 잘 보십시오. 성경은 콤마(,)와 그리고(and)로 연결된 두 가지를 근거로 형제들에게 간청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공중 재림(교회 성도의 부활과 휴거)과 지상 재림. 주님의 오심은 2중적임.

우리가 그분께로 함께 모임- 알곡(하늘의 창고)과 가라지(불태우기 위해 단으로 묶음). 주님의 모으심은 2중적임. 성도들은 알곡으로 주님께 모아지고, 불신자들은 가라지로 모아진다.

2절입니다.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2). 바울 사도가 교회 성도들에게 한 간청의 내용이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이란 복된 소망이 기쁨과 즐거움, 흥분이 아니라 잘못 전달될 때, 속게 될 때, 오류에 빠질 때 성도들 의 마음을 흔들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시한부 종말론은 언제나 불안과 공포

를 조장합니다. 대환란 통과론은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불안하게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모두 거짓 교리입니다.

 

건전한 성경적 진리는 믿는 자들의 마음에 평강과 기쁨과 자유를 줍니다.

확신과 능력을 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의 영’이 아닙니 다(딤후1:7).

사도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교회의 대환란 전(前) 휴거에 대한 진리를 써서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림 받아 주님을 만나 영원히 주와 함께 있게 된다는 복된 소망, 영광스런 소망, 산 소망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말씀을 통해 위로를 얻고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며 평안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데살로니가 교회에 스며든 속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2)란 말씀을 통해 속이는 자들의 3중 공격을 볼 수 있습니다.

“영으로나...” 이는 거짓 대언자들의 단골 메뉴입니다. 나는 환상을 보았다, 꿈을 꾸었다,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 등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합니다. “말로나...” 그냥 말쟁이들이 아니라 거짓말쟁이들로서 자기 말이 마치 권위 있는 자의 말이요, 계시 받은 자의 말이요, 신탁을 받은 말이요, 대언자의 말이나 되는 것처럼 떠벌이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란 부분입니다. 누군가는 바울의 편지를 위조하고 가장했음을 보여 주는데 절묘한 속임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바울에게 온편지다!” 이 말은 어떤 말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 당시에 가짜 서신, 거짓 성경이 교회에 나돌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바나바행전, 유다 복음, 도마복음 등등은 모두 이런 자들이 만들어 교회들에 퍼뜨린 것입니다. 말씀의 부패(고후2:17)는 사탄이 주님이 씨를 뿌리고간 밭에 자신의 씨앗(가라지)을 뿌리는 것입니다.

 

그럼 그들이 영이나 말이나 편지로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 왜 불안과 혼란,공포를 일으킵니까? 우리는 늘 설교나 성경 공부를 통해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을 듣고 선포하는데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소식입니다.

대환란 전 휴거를 믿는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언제나 흥분과 기쁨입니다. 반대로 환란 통과를 믿는 성도들에게 이 말은 불안과 염려, 공포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대환란 전 성도의 부활과 휴거의 진리가 아닌 [환란 통과를 전파하는 거짓 교사들]에 의해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부활이 없다”(고전15:12)는 주장과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딤후2:18)는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의 믿음을 뒤집어엎는 일이 많았습니다.

부활이 지나갔다면 이들은 지금 들림 받지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부활과 휴거는 영적인 것이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는 가르침 역시 성도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대환란 전에 들림 받는 것이 아니라 대환란 통과가 진리라면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왔다’ 는 말은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고 불안하게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지금 현재도 극심한 고난과 박해 중에 있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대환란이 곧 닥친다는 가르침은 그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환란 통과를 주장하고 믿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대환란이 가까이 왔다”는 말과 동의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고 해서(누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 하지말라”(2)고 위로합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대환란의 날이 아니며, 교회는 대환란 전에 모두 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부분 휴거란 없다(성경은 *다, 모두라고 말한다-고전15:51).

이를 통해 교회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쉽게 알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1,2절을 정확히 읽고 이해해야 합니다. 한단어, 한 글자라도 바꾸면 안 됩니다.

말씀에서 해석이 나오지 해석에 맞추어 본문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속은 자들입니다.

 

3절입니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속지 않으려면 진리의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믿고 확신한 것들에 꾸준히 거해야 합니다.

영으로나, 말로나, 편지로나 그 무엇으로 속지 마십시오.

환상이나 기적이나 표적이나 체험이나 그 무엇에도 속지 마십시오.

쉽고 정확하다고 광고하는 현대 역본들의 장사꾼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유명한 목사나 부흥사라는 사람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유대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전통이나 절기나 율법에 더 정통할 것이란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그리스어 학자들이 원문에 더정통하고 성경을 더 잘 알 것이란 생각에 속지 마십시오.

신학교 교수나 유명 학자들, 각종 주석서들에 속지 마십시오.

거짓 되이 과학이라 불리는 것들에 속지 말고 캐톨릭 교회에는 절대 속지 마십시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예언가들의 예언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들은 다 속이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제 “그 날”(THAT DAY)에 대해서 선포합니다.

[그 날]이란 바로 주의 날, 대환란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을 대환란의 날로 속이는 자들에

게 속아서 불안해하는 성도들에게 “그 날”이 언제 어떻게 오는지 보여 주는것입니다.

“그 날”(THAT DAY)이 오기 전에

첫째,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옵니다.

둘째, 저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납니다.

‘그 날’을 휴거의 날로 주장하는 분들은 1절에서 ‘그리스도의 오심’, 2절에서 ‘그리스도의 날’을

그대로 ‘그 날’에 적용해서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환란 전에 휴거가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들은 모두 성경 본문을 바꾸어서 멋대로 해석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그 날’은 휴거의 날이 아니라 ‘대환란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배교가 일어나고 적그리스도가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현재 교회가 겪고 있는 고난, 환난은 아무리 커도 그것은 대환란이 아니란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난 중에 있었지만결코 대환란 중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날’(that day)이라고 말하는 날을 살펴보십시오. 그 날(that day)란말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환란 전 휴거를 부정하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디모데후서 4:18,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at that day)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딤후4:8),

[주께서 그 날에(in that day) 그가 주의 긍휼을 얻게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에베소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나를 섬겼는지 네가 잘 아느니라.](딤후1:18).

바울 서신서에서 “그 날에”란 표현은 상시적으로 나오는 관용구입니다.

우리는 “그 날”(that day)이 언제인 줄 잘 압니다. 성도들은 들림 받은 날이요,

땅에는 대환란이 있는 주의 날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그 날”은 북 왕국이 아시라아에 멸망당하는 날,

예루살렘이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고 불타는 날,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론이 망하는 날,

예수님의 초림, 예수님의 지상 재림, 아마겟돈 전쟁의 날,

천년 왕국이 끝날 때 있을 심판의 날 이렇게 일곱 가지로 사용됩니다.

 

신약 성경에서 “그 날”은 ‘아마겟돈 전쟁의 날, 대환란의 날’(지상)과 ‘그리스도의 심판석의 날’(하늘)입니다. 자, 그럼 말씀을 적용해 보십시오. “그 날(thatday)은 오지 않는다”고 말할 때 죄의 사람,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전에는 대환란(아마겟돈 전쟁)이 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날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으로 적용하면 교회가 들림 받기 전에 ‘떨어져 나가는 일이 먼저’ 있기 전에 는 그 날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목해서 보십시오. 바울은 두 가지를 나누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떨어져 나가는 일이 먼저 있지 않고서는 오지 않으며, 그리고(콤마와 접속사 and)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리라고 말합니다. 콤마와 접속사로 두 사건은 동일한 사건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건으로 구분해 줍니다. 이 사이에 교회는 저 하늘로 들림을 받습니다.

떨어져 나가는 일(배교)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이미 과거의 일입 니다.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는 일은 대환란이란 미래의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의 날’(고전1:8, 빌2:16)이요 ‘주님이 오시는 날’(빌1:6,10)입니다. 지상에서는 대환란의 날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2절의 ‘그리스도의 날’을 3절에서 ‘그 날’(that day)이라고 함으로써 [대환란의 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 있던 데살로니가 교회는 지금대환란 중에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 것입니다. 그 날(that day)에 대한 오해로 말미암아 환란 통과론자들이 의기양양하게 이 구절을 물고 늘어지는 일이 허다합니다. 1절의 by, 2절의 그리스도의 날에 대한 오해, 3절의 그 날에 대해 이해하면 “교회는 대환란 전에 들림을 받는다”는 진리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4절입니다. [그는 대적하는 자요,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

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4).

4절은 죄의 사람 즉 멸망의 아들의 정체와 그가 하는 일을 보여 줍니다.

적그리스도의 정체를 아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멸망의 아들은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거짓 이적과 표적과 능력으로 온 세상에 입증해 보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전혀 믿지 않았던 지상의 수많은 불신자들이 그 날에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인 것은 쉽게 믿을 것입니다.

5절입니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이 일들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희가 기억하지 못하느냐?](5). 바울은 이미 전에 성도들과 함께 있었을 때에 부활과 휴거,대환란, 주님의 재림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편지로 쓰는 것은 이전에 이미 말했고, 가르쳤던 내용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 서신서를 읽음으로 바울이 깨달은 것들, 바울이 받은 계시, 바울을 통해 주신 교회의 규례들을 알 수 있고 그 말씀들이 모두 주의 명령들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줄을 압니다.

바울은 환란 전 성도의 부활과 휴거의 진리를 계속해서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믿으면 됩니다.

 

많은 이들이 본문을 잘못 읽고 이해한 후에 그 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을 자주봅니다.

성경을 고쳐가면서 자신의 주장을 되뇌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금이 시대는 이미 배교한 시대입니다. 교회는 성경을 버렸습니다.

세상의 영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고, 성도들의 마음 속에 깊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배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대환란)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는 자신의 때에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은 막는 이가 있지만 교회가 이 땅에서 옮겨지고 난 후에 이 땅에 자신을 나타낼 것입니다. 세상이 이 땅에서 적그리스도를 얼굴을 맞대고 맞이할 때 교회는 저 하늘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맞이할 것입니다.

이런 성경의 진리는 여러분에게 힘과 평강과 기쁨과 위로와 확신을 줍니다. 반면 데살로니가 교회를 속였던 ‘대환란 통과’의 거짓 교리는불안과 염려와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 줍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모두 주 안에서 복된 소망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Pastor. Peter Yoon-

출처 : 다음카페-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 러브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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