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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설교·6/장죠셉목사님

[대환란] 휴거되는 자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대환난에 남겨지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이유는 창세 이후로 이러한 큰 환난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또 어느 누구도 대환난에서 살아남을 자가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인자들은 심판주께서 오시는 그날에 들림받으려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신부가 되려고 열심을 내면 '광신자'라고 비방합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제정하셨고, 예수님께서 "너희는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라" 하시면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교훈대로 율법을 준행하면 '율법주의 자'라고 비방합니다. 주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하시면서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 하신 경고의 말씀을 깨닫고 대환난에 남겨지지 않으려고 준비하면 '종말론 자'라고 비방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행하라고 하십니까?

 

(마24:30~31)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방에서 모으리라.

 

위의 말씀에서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세상에는 두가지 부류를 보게 될 것이라 합니다. 첫번째는 복된 휴거라는 들림받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두번째는 대환난에 남겨져서 통곡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휴거되는 무리는 어느 특정지역이나 장소가 아니라 지구의 동서남북 4방에 천사들을 보내서 거룩하게 준비된 자들만 뽑아서 데려가는 신부를 택한자라 하였습니다. 준비된 자들에 대하여 슬기로운 처녀들이라 합니다.

 

대환난에 남겨지는 무리들 중에는 지구정부통치에서 죽임을 당하고 부끄럽게 구원되는 사람들과, 지구정부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될 사람들로 나누어집니다. 이들 두 부류에 대하여 스가랴선지는 2/3는 멸절된다 하였는데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게될 숫자입니다. 그리고 1/3은 구원은 받게되겠지만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을  대환난의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대환난에 남겨지는지를 스가랴선지가 설명하였으므로 들림받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대환난에 남겨지는 무리

 

(계7:9) 이 일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사도 요한은 스가랴선지가 말한 1/3을 인간의 능력으로 셀수 없다고 합니다. UN통계를 보면 지금 세계인구는 65억이 조금 넘는다 합니다. 미국남침례교단의 통계를 보면 구교와 개신교를 합한 기독교인은 20억이 조금 넘는다 합니다. 스가랴서의 말씀대로라면 1/3과 2/3를 합산하면 100%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가 대환난에 남겨집니다. 

 

(계7:14)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하늘의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인간의 능력으로 셀수 없는 큰 무리는 대환난에서 구원받는 사람이라고 알려줍니다. 이들이 부끄럽게나마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환난에 남겨지기 이전에 더럽기는 하였으나 이미 세마포 옷을 입고 있었기에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살지 못한 연고로 대환난에 남겨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주님만을 위했기에 깨끗하게 씻김을 받게된다고 교훈합니다. 그러면 왜 더럽게 살았으며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슥13:8~9)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온 땅에서 2/3는 멸절하고 1/3은 거기[대환난에] 남으리니, 내가 그 1/3을 불 가운데 [대환난에]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1/3이라는 숫자는 대환난에 남겨지기 이전에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다, 대환난에 남겨져서야 비로써 하나님을 찾는다고 합나다. 이들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니다.

 

(계7:15) 그러므로(오웬)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오웬'은 '결국' '그 때문'이라는 전환점을 나타내며, 영어는 Therefor 입니다. 원문대로 해석하면 대환난에 남겨지는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다 대환난에 남겨지고 그 기간중에 재산을 포기해야 했고, 자녀나 부부간의 정마져도 포기해야 했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하고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환난이라는 전환점이 그러므로 입니다.

 

사도 요한은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지 않았기에 주님이 강림하시는 때를 몰랐다" 했습니다(계3:3). 그러한 생활은 "마귀와의 결합이라는 음행이었고, 그 음행에서 돌이키지 않은 탓으로 대환난가운데 던짐을 받는다"고 경고합니다(계2:20~21). 이러한 사람들은 악함으로 말미암아 벌거벗은 탓으로 대환난에 남겨진 것입니다. 다른 2/3라는 숫자는 대환난에 남겨져서도 하나님을 찾지아니하고 자신을 위해 짐승의 표를 받게될 무리라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계9:20~21) 이 재앙에서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 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여기서 두 번씩이나 회개하라 합니다. 저들은 교회에 출석했고, 교회에서 시행하는 모든 예식에도 참여하고 직분도 받고 봉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대환난에 남겨졌습니다. 자기 믿음이 온전치 못해서 남겨진 것에 대하여 회개는 하지 아니하고 반대로 점쟁이를 찾아가고, 무당을 찾아가고, 불당을 찾아가는 불쌍한 무리들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다음은 사람을 죽였고,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한 사람들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복술로 표기된 '팔마케이아'는 영로로 Pharmacy이므로 제약, 약품, 또는 마약하는 사람입니다. 이들도 짐승의 표를 받는 무리에 속하게 됩니다.

 

대환난에 남겨지는 원인

 

(계3;2)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에 된 것을 굳게하라.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엘곤)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오웬)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앞에서 보았듯이 헬라어 '오웬'을 영어로 Therefor로 번역됩니다. 이는 '어떤 결과에 따라서' 그 때문'이라는 전환점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로 행한  온전한 행위가 없었기 때문에 대환난에 남겨집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떠한 행실로 살았기에 대환난에 남겨집니까? 여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5절에서 믿음이란 행위가 어정쩡하다고 경고했습니다. 이것이 대환난에 남겨지는 원인입니다. 그렇게 믿는 신자는 토해 내친다는 토한다는 '에메오' 는 '뱉다, 토한다' 입니다. 그리고 내친다는 '에크발로'는  '몰아내다, 내어쫓다' 등이므로 휴거에서 제외시키고 대환난으로 몰아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됩니까?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살전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너희라는 2인칭과 저희라는 3인칭에 주목해야 됩니다. 2인칭은 항상 준비하고 있었기에 주님이 강림하시는 때를 압니다. 그러나 3인칭은 준비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주님이 강림하시는 때를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영과 혼과 몸을 흠없게 보전시키지 않은 신자들입니다(살전5:23). 왜 자기 영과 혼과 몸을 보전시키지 아니합니까?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 직접 경고하셨는데도 주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회개, 곧 돌이키지 않은 탓이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행위 때문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행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설명하십니다.

 

(계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이세벨의 교훈은 많겠으나 한 가지만 성경에 근거하여 보겠습니다. 이세벨이 주의 종들을 꾀어내서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함과, 행음에 관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진군하던 때였습니다. 모압 왕 발락이 발람선지를 꾀어내어 브올 산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저주하게 했고, 이스라엘 방백들을 꾀어내서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였고, 모압 창기들을 이스라엘 방백들에게 붙여주어서 방백들로 음행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민22~)

 

히브리 음 브올은 헬라 음 바알 입니다. 뜻은 모압 신, 곧 마귀의 두목이므로 브올(바알)사단이란 뜻입니다. 아합 시대에 북조 이스라엘 주변에 시돈이라는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시돈 왕 엣바알이 이스라엘의 강대함에 위협을 느끼고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으면서 딸 이세벨을 아합과 결혼을 시켰습니다(왕상16:31). 그때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신당을 세우고 하나님의 제단과 선지자들을 다 죽이게 했던 여자가 이세벨입니다.(왕상16:32~33)

 

히브리 음 세붑은 헬라 음 세불입니다. 뜻은 가나안 신과 에그론 신을 말합니다(왕하1;2~3,6,16). 바알세불의 합성어가 바알세불입니다. 이세벨이라는 이름은 아버지 엣바알과 그녀의 이름 세벨의 합성어가 이세벨이며 뜻은 신의  두목, 곧 사단이라는 뜻입니다.(마10:25,12:24,27, 막3:22, 눅11:15,18:19)

 

주의 종들이 이세벨의 꾀임을 받는다는 뜻은, 주의 종들이 사단의 꾀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들이 이세벨과 행음한다는 뜻은, 주의 종들을 사단과 결합되었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들이 이세벨의 가르침을 따른다는 뜻은, 주의 종들이 사단의 가르침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들이 이세벨이 주는 우상제물을 먹다는 뜻은, 주의 종들이 사단이 주는 사상을 받는 다는 의미입니다. 이 교훈은 창세기에서 화와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뱀의 꾐을 받고 뱀의 가르침대도 선악과를 먹고 영이 죽게된 사건의 연속성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666은 짐승의 표요, 누구든지 받는 자는 다 유황불 못에 떨어져서 영원히 죽는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종들은 사단의 꾐을 받고 사단이 시키는 대로 666표는 상징이라 말하고 가르칩니다. 사단이 시키는 대로 짐승의 표를 받았어도 회개하면 된다고 지어낸 거짓말로 잘못 가르칩니다. 또는 뽑으면 된다고 지어내 거짓말로 가르치는 것이 마귀의 가르침을 받고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회개)하는 이들에게,

 

(계2:22) 볼 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엘곤)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환난 가운데 던지고.... 

 

주님께서 그러한 사단의 가르침에서 돌아서라고 회개를 촉구하는데도 주의 종들이 돌아서지 아니함을 회개치 않는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관한 경고이므로 마지막 때에 주의 종들이 실수하는 가장 큰 것이 짐승의 표 666을 상징으로 인식하고 오도하는 일입니다. 이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대환난에 남겨지는 가장 큰 원인이 주님의 경고를 받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않는 고집 때문이라 했습니다.(롬10:2~3)

 

(계2:23)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인줄 알지라. 내가 각 사람의 행위(엘곤)대로 갚아 주리라.

 

어느 특정교회에만 경고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All) 교회라 합니다. 주의 종들만 대환난에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가르침을 받고 낳은 자녀, 곧 자신이 전도로 얻어서 가르치는 성도들도 죽인다는 충격적인 경고입니다. 주님께서 심판하러 오시는 때를 준비시키지 아니하고 평안하다 안전하다고만 가르침만을 받은 신자들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666 짐승의 표를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대환난에 남겨지는 것입니다. 

 

자아를 일찍 죽였어야 했는데  

 

(계13:17~18)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666이니라.

 

짐승의 이름의 수에 대하여는 다 아는 사실이므로 여기서는 '사람의 수'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만 상고하겠습니다. 사람의 수라는 뜻에서 지난날에는 사람의 이름을 풀이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압니다. '사람의 수'를 원어 '아니트모스 갈 안트로포우'로 발음합니다. 컴푸터는 사람이 만든 기술입니다. 컴퓨터는 Digital과 Analog 둘로 분류하며, Digital은 숫자와 알파벳 등을 부호계산 프로그램으로 응용되고, Analog는 온도, 중량 등의 프로그램으로 응용된다고 합니다.

 

숫자를 계산하도록 만든 Digital은 사람이 고안하고 연구해서 작성한 Code 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짐승의 수는 사람의 수" 곧, '컴퓨터 수치법 666은 사람이 만든 수'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컴퓨터의 Digital 기능인 666을 만들었다는 뜻이라 합니다. 21세기에 나타난 VeriChip은 Digital 숫자로 Serial Code와 DNA-Code를 칩으로 작성해서 컴퓨터로 활용하기 때문에 VeriChip이 666 집승의 표가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추상적으로 666표을 생각하기 때문에 상징이라 하는 것입니다.

 

(계13:8)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경배로 표기된 헬라어 '프로스쿠네오'는 '프로'와 '스쿠네오'의 합성어입니다. 프로는 소유격일 때에는 '유리하게, __에서부터'이고, 목적격일 때는 '일치하게, __할 목적으로' 등입니다. 두 단어합성의 뜻은 '경의, 굴복, 부복, 집착함' 등입니다. 그러므로 원어적인 경배는 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목적으로 그것을 취함이 경배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만들어 놓은 [Digital Code가 들어있는 VeriChip을] 받는 행위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갖고자 함을 우리말로 경배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주님이시여 감사합니다

 

(계7:15)  그러므로(오웬)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않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대환난에 남겨지는 원인' 에서 "그러므로"를 참고하세요.

 

(계15: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세 가지를 벗어난 사람들만 부끄럽게라도 구원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이 하나로 생각하는데, 원전에서는 짐승을 이기고, 짐승의 우상을 이기고, 짐승의 표를 이기고, 셋을 따로따로 분류시키고 있습니다. 이 무리가 스가랴선지가 말한 1/3 이고 사도 요한이 말한 셀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유황불 못으로 떨어지는 무리

 

(계16:2) 째가 가서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한 자들에게 나더라.

 

스가랴의 예언대로라면 멸절되는 2/3가 짐승의 표를 받게 된다는 결론입니다. 16장 1절에서 하나님의 진노(메가레스)로 인하여 헌데가 납니다. 그런데 이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짐승의 표를 받는 일이 생기는지 계시록 13장에서 설명되어 있습니다.

 

진노라는 단어는 올게매가스구분됩니다. 올게는 회개할 기회가 주어지는 긍휼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메가스는 용서가 없으며 긍휼이나 자비를 베풀 가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를 받게되면 영원한 지옥의 저주가 있으므로 대환난에 남겨지지 않으려면 휴거준비를 해야 복을 받습니다.

 

휴거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앞에서 휴거되지 못하고 대환난에 남겨짐에 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내환난에 남겨진 자들중에서 부끄럽게 구원되는 내용과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두 부류의 내용도 보았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대환난에 남겨지지 아니하고 휴거로서 어린양의 신부가 되는 길입니다. 휴거되는 숫자는 1/3 이나 2/3에도 포함되지 아니하는 특권층입니다.  휴거되는 특권층은 하나님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영광을 받게 됩니다.(계21:26~27)

 

휴거의 영광은 뭇 존재들이 흠모하는 자리입니다(계19:7). 휴거되는 자는 장자총회 회원의 자격이 주어집니다(히12:23). 휴거의 자리는 예루살렘 도성의 주인이 됩니다(계21:9). 시온의 주인은 모든 자들에게 생명수를 나누어 줄 자격이 있습니다(계22:17). 휴가되는 자는 그들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계14:3). 휴거되는 자는 백보좌심판 때에 주님을 도와주는 검사의 자리가 주어집니다(계20:4). 휴거되는 자는 거룩한 휘장뒤로 들어갈 권세가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축복이 있습니다.ㅡ마라나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