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라.(마13:25)
교회는 두 부류의 교인이 있게 됩니다. 양과 염소, 알곡과 쭉정이,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못한 자, 성도와 신자, 이렇게 두 부류가 상존하게 됩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알곡인가 가라지인가? 성경에서 말하는 가라지와 덧뿌림은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①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예수님이요, ②씨가 떨어질 밭은 세상이라는 사람입니다. ③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④가라지는 악한 자(사탄)의 아들입니다. ⑤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입니다. ⑥추수 때는 세상이 끝나는 종말이요, ⑦추수군은 천사들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해석하신 정론이므로 이외 다른 설을 수용하면 문제가 따르게 됩니다.
가라지: 명사 ‘찌짜니온(ξιάνικον)’은 독보리, 가라지, 곰팡이로 변한 보리 등입니다. 원전에는 주격복수 ‘찌짜니아(ξιξάνια)’는 과거형입니다.
덧뿌림: 수동태 ‘에페스페이렌(ἐπέσπειρεν)’는 씨 뿌린다, 파종함입니다. 씨 뿌림이란 수동태 ‘스페이라우(σπείραω)’ 앞에 전치사 소유격 ‘에페(ἐπέ)’는 앞의 일에 뒤따라, 후에가 붙었으므로 씨를 뿌린 후에 덧뿌렸다는 말입니다.
잘 때: 동사 ‘카테우도(καθιεύδω)는 자다, 깊이 잠들다 입니다. 부정사 ’카테우데인(καθεύδειν)‘은 깊이 잠들므로 인해 몰랐다 입니다. 무엇을 몰랐습니까?
종합하여 연결지우면, 첫 번째 해석은 ‘믿음이 잠든 신자는 마귀가 미혹을 뿌려서 믿음이 변질됨을 몰랐다’는 해석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복음을 받았으나 믿음이 깊이 잠든 신자에게 마귀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을 마음에 덧뿌려서 영혼이 곰팡이로 변질되었음을 몰랐다’는 해석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두 부류의 무리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1. 두 부류의 교인
교회는 성령을 통해서 교인을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으며,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기는 이유를 가라지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곡식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렸다는 말씀으로 성도와 교인을 구분할 수 있는 좋은 교훈입니다.
교회에는 곡식이 아닌 가라지가 썩여있듯이 양이 아닌 염소도 함께 있음을 성령을 통하여 찾아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하더라.(행3:6)
베드로가 가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사역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은 베드로는 성령의 사역을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무엇인가 일하려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성령님은 활동에 제한을 받지 않으므로 베드로의 손을 사용해서 권능을 나타냈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백성을 가르침과 예수를 들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도전함을 싫어하여...저희를 잡으매....(행4:1~3)
2. 반대하는 원인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은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성령의 사역을 막았습니다. 성령의 사역에 역행하는 그 자체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성령훼방 죄에 해당됩니다.
[분석 #1]
제사장들........................어용 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들.....레위의(사독)후손들 ........ 아론의 후손(레위족속)
사두개인들 ...귀족적인 최고회의 단체
사두개 파: (히-מיקוךצ. 헬-Σαδδουκλῑοs)라는 이름은 이스라엘 제사장 사독(קוךצ)의 이름에서 유래된 ‘레위’ 후손입니다.(대상6:49~53. 6:1~8. 9:10~11). 이들은 아론의 후손으로 제사장직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특권을 주장하는 귀족적인 제사장들의 단체로써 그들의 관심은 성전에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사두개파는 성전과 성전에서 제사장제도의 특권에 대한 옹호자들입니다.
특권: 성전예배 집행권, 제사장의 율법해석권, 제사장직 실권의 영구성 주장과 정치의 행사권
교리: 육체의 부활에 관한 교리를 부인(否認)하고 인간의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되므로 미래의 방법을 부인합니다.(눅2:27. 행23:8. 고전15:12)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사장외에는 어느 누구도 율법의 해석을 허락지 않았고, 오직 자기들만의 것으로 착각하여 왔기에 베드로의 해석을 용납지 않았습니다.(행4:7). 자기들은 지금까지 육체의 부활에 관하여 부인해 왔었는데, 베드로는 부활의 도를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원인은 의식(儀式)적으로 내려오는 예배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의 독선적 소유물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사두개인의 지원을 받고 움직이는 어용제사장들 처럼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으므로 성령에 대한 무지는 성령의 사역에 최선을 하고 있는 사도들에게 도전했던 사건입니다.
[분석 #2]
제사장들.......교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전통만 주장하는 종들.
성전 맡은 자...................교회를 내 것으로 착각하는 중직들.
사두개인들.....재산, 학문을 자랑하며 당을 짓고 으뜸 되려는 교인들.
3. 문제가 되는 이유
이들은 자기는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났는데 왜 교회에서 문제를
만듭니까? 믿음의 시작을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물두멍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믿음의 시작을 잘못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아가 살아있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남이 하는 일이 싫습니다.
내게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내가 모르는 것을 가르침을 싫어하여....(행4;26)
자아가 살아있으면 회개하지 못합니다.
자기들의 주장과 잘못 가르쳐 온 것이 마음에 찔려....(행2:37)
자신의 거짓이 드러날 때 문제를 만듭니다.
자기들은 부인하려하나 사실로 나타나기 때문에....(행4:16)
자아를 버리지 못하면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합니다.
내 교회보다 빨리 성장하기 때문에.....(행2:41, 47, 4:4)
자기 학문과 정통(定統)을 자랑하는 사람은 남을 멸시합니다.
신앙연조와 정통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행4:13)
4. 왜 비방하나?
성도들은 성령을 받으면 주님의 권능으로 방언을 말하며 귀신을 쫓으며 병자를 고치면서 ㅈ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도들을 무어라 정죄합니까? 방언은 사도시대에나 있었고, 예언은 요한계시록이 다 쓰인 이후부터는 내려오지 않는다며 성령의 사역을 반대하며 훼방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고전14:1~2)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더라.(행19:6)
특히 에베소교회는 말씀을 잘 가르쳐 온 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라는 사실을 잘 가르쳤으나, 성령이 있음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한 것을 볼 때 성령을 모르는 소치였습니다.
계시문제는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이 다 기록했을 뿐이지, 계시가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표현자체의 차이가 아니라 인식의 차이라는 것을 알고 인식을 바꾸어야 됩니다. 그렇지 아니하고 계시가 다 이루어졌다면 천년왕국을 지나서 백보좌심판도 끝났어야 된다는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거나, 아니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수치라는 점을 깨달아야 됩니다.
1. 성령사역을 제한시키는 사람을 성령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2. 성령께서 주시는 방언을 부정하는데 방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3. 성령사역을 제한시키는 사람에게서 능력이 나타나겠습니까?
4. 성령사역을 훼방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부르시겠습니까?
5. 성령사역을 가로막는 사람이라면 휴거는 고사하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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