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나팔소리를 들어야 휴거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아와 가나안으로 진하다가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를 앞세우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때 여호수아 앞에 미가엘 군장장이 손에 칼을 잡고 호위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볼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에는 항상 천사들이 우리를 보호하심을 알수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아와 가나안으로 진군하였던 예표는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진군함을 말합니다. 또한 애굽 땅은 마귀의 소굴이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소굴이었고, 광야생활은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살아가되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가다가 마지막날에 하나님나라로 가는 과정을 영적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비유해 주고 있습니다.
당시에 여리고 성은 굳게 닫아 놓았듯이, 오늘날 사람들이 마지막 때를 외쳐도 마음 문을 굳게 닫아놓고 열지 않습니다. 그러나 굳게 닫혔던 여리고 성도 마지막 진군의 나팔소리에 허물어졌듯이, 닫아 걸어놓은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위력은 시온을 향하는 진군의 나팔소리를 울려야 합니다.
나팔소리는 여러뜻이 있습니다. 행군(ע??)의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즐거움(ἀϒαλλιάω)의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신호(ה?וּ?)의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공격(ה??)의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경고(χρηματίζω)의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임재(παρουσία)의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모으는(ἐπισυνάϒω)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마지막(ἔσχατο?) 나팔소리가 있습니다.
민수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소리에 따라서 생활하였습니다. 적군의 침범을 알리고, 백성들을 모으는 신호, 또는 행군의 순서를 짓는 것까지 나팔소리에 따랐습니다. 때로는 전초병들이 나팔을 불어서 본 진영에 적군의 매복이나 복병이 있음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나팔소리는 당시의 통신수단이었습니다.
경고의 나팔소리
(습1:14-16)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 도다.
(겔33:5)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강림 곧,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는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는 귀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고는 아무에게나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인에게 나팔수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게 되는 사람은 일종의 마지막 때를 알리는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따라서 주의 오심에 대한 나팔소리를 들은 사람은 만방에 알려야 될 책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나는 나팔소리를 듣는다.’고 말하면서 만방에 알리지 아니하고 혼자만 좋은 믿음이라서 듣게되는 줄로 착각하고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그러한 나팔소리를 들려주십니까? 만방에 알리라고 들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고도 만방에 알리지 않는 사람에게 피 값을 찾겠다는 의미는 무엇을 말합니까?
에스겔은 1절에서 6절까지에서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고도 알리지 아니하는 사람은 죽임을 당한 백성들의 피 값을 그에게서 찾겠다고 하였습니다. 피 값을 찾겠다는 뜻은 주어진 책임을 수행하지 않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불 못으로 보내진다는 무섭고도 두려운 경고입니다. 따라서 나팔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일어나서 외쳐야 만이 그 책임을 완수하게 되고 또한 불 못으로 가지 않게 됩니다.
(겔33:6)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을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나팔소리를 들었다고만 말하고 만방에 알리지 않으면 그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팔소리를 듣는 다고 말합니다. 들었으면 알려야 하는데 사람들은 듣기만 하고 알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팔소리를 들려준 것은 알리라고 들려주셨지 혼자 듣고만 있으라고 들려준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임재(παρουσία)를 알리는 나팔소리
(출19:16) 제3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20: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 때는 광야생활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임재, 곧 강림을 알리실 때 나팔소리와 음성으로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팔소리를 들었던 백성들 모두 두려움으로 떨었다 했습니다.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들었던 모세가 만방 곧 백성들에게 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곧 오시겠다고 알리시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않는 사람은 환난이란 재앙을 당하게 됩니다. 그 말씀은 요한계시록 8장 이하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누구든지 주님께서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실 때까지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다 환난에 남겨진다고 성경은 경고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이라는 이 시점에서 주님은 당신의 임재가 임박했음을 만방에 알리라고 특정인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고 만방에 나팔수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되는데도 알리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피할 수가 없음을 깨달아야 됩니다.
택한 자들을 모으는(ἐπισυνάϒω) 나팔소리
(마24: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4방에서 모으리라(ἐπισυνάξουσιν).
그날 어린양의 신부가 되려면 모으는 나팔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택하신 자를 ἐκλεκτού?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ἐκλεκτό?의 목적격 복수입니다. 따라서 어린양의 신부로 택함을 받게 되는 수는 한 사람이 아니며(계14:1), 믿는 자들 중에서 땅에서 구속함을 받은 첫 열매를 ‘택하신 자’라 하였습니다(계14:4).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자가 다 택함을 받게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주여 주여하는 자가 다 어린양의 신부가 아니라는 교훈입니다.(계14:3)
4 방에서 모은다는 ‘ἐπισυνάξουσιν’은 ἐπισυνάϒω의 미래능동입니다. 이는 ἐπί+ συνάϒω의 미래직설법 능동으로써 존귀한 자들만 뽑아 모은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입으로 어린양의 신부가 되겠다고, 또는 모두가 그날에 어린양의 신부로 들림 받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 요구하신 ‘요구조건’을 충족시킨 성도들만 입니다. 그 요구조건은 의로운 세마포 옷, 곧 ‘브씨노스(βύσσινο?)’로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고 맑고 빛나도록 옳은 행실로 주를 섬긴 사람들에게 세마포(βύσσινο?)가 입혀져 있어야 천사들이 모을 때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 (ἔσχατο?)’나팔소리
(살전4:16)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παρουσίαν)하시리니....
파로우시안(παρουσίαν)은 παρουσία의 목적격 단수로써 재림, 현존, 강림‘ 등의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할 때 주의 강림, 곧, 공중까지 오셔서 의인들 중에서 존귀한 자들만 뽑아서 구름위로 끌어올리는 것을 휴거(ἀρπάζω)라고 하였습니다(살전4:7). 휴거는 산자에게만 해당되는 표현이고 죽은 자들에게는 부활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여러차례 있을 지라도 휴거(ἀρπάζω)는 단 한번 뿐입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ἐσχάτη)나팔에 순식간에 혼연히 다 변화하리니.....
마지막이라는 ‘에스챠테(ἐσχάτη)는 ἔσχατο?의 주격 단수로서 ‘마지막, 최후, 가장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날에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리게 됩니다. 마지막이란 무엇을 말하니까? 여기서 두 가지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창세 때부터 들려주셨는데 나팔소리는 더 이상 없다 말입니다. 출애굽에서 하나님이 임재를 앞두고 3일 동안 나팔을 불어주셨던 것처럼, 주님이 오시는 때도 3일 동안 나팔소리는 계속하여 들려주실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나팔소리가 끝날 때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루에 열 번을 불던 백번을 불던 그 마지막은 Last가 아니라 Final 나팔소리로 끝남이 마지막 나팔소리 일 것입니다.
(예) 마지막 날에 불어질 나팔소리가 열 번이라고 가정했을 때, 어떤 사람은 아홉 번을 들었는데 열 번째 나팔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게 됩니다. 그것은 열 번째 나팔소리를 들은 사람은 들림을 받고 구름위로 끌려올라가 버렸으나, 아홉 번만 들은 사람은 대 환난에 남겨졌기 때문에 열 번째 나팔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마지막 나팔소리에 올라간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형태의 나팔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많은 줄로 압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고의 나팔소리를 듣지 못했다할지라도 마지막 나팔소리는 꼭 들어야 됩니다. 마지막 나팔소리를 들으려면 귀를 열어야 합니다. 귀를 열지 목하는 사람은 나팔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이 열려있는 사람, 귀가 열려있는 사람은 마지막 나팔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알리는 메시지에 귀를 막으면 그 사람은 마지막 나팔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여리고 성문이 닫혔듯이 그 사람의 마음 문도 닫혀있으므로 마지막 나팔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여리고가 성문을 닫았다고 안전했습니까? 아닙니다. 허물어 졌듯이, 마지막 때에 관한 메시지에 귀를 닫고 마음을 닫을지라도 그들은 대환난에는 허물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마지막 때를 알리는 메시지에 귀를 열어야 됩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메시지에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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