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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설교/주기철목사님

십자가의 길로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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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로 행하라

(마 十六 21-27)

내용

1. 십자가의 길은 생명의 길

2. 십자가의 길은 진리의 길

3. 십자가의 길은 주님과 동행하는 길

4. 십자가의 길은 하늘에 평화가 넘쳐 흐르는 길

5. 십자가의 길은 천국에 가는 길


여긔 고난(苦難)이란 것은 예수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결코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해 오는 고난이나 세상으로부터 오는 고난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오는 고난이 아니다. 내가 받지 않으려면 얼마든지 받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이니 곧 주님을 위해 당하는 고난이다. 이 고난이야말로 값있는 것이니 대개 사람이 이 값있는 십자가의 길노 행할 필요는,


一. 그 길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그 길을 거르신 것이다. 물론 그는 그 쓰라린 길을 걷지 않으실 수도 있었지만 멸망할 인간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는 즐겨 그 길을 택하신 것이다. 그가 그 길로 거르섯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약동하게 된 것이다. 또 그 길을 거르신 주님은 하나님 우편에 영광스럽게 안즈시게 된 것이다.


二. 그 길은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을 가려 하는 자는 반듯이 십자가의 길을 밟게 되는 것이다. 고금의 성인들을 보라! 그들 중에 누가 진리의 길을 밟으면서도 십자가의 길로 행치 않은 이가 있는가. 성경은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딈후 三장 12절에 말하기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저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하였다.

이 패역 부도한 시대에서 칭찬만을 받고 의긔양양하게 평안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자가 있다 하면 그는 분명 십자가의 길에서 탈선되여 시대의 사조에 휩쓸리여 바람부는 대로 살아가는 자가 아니면 안될 것이다. 즉 자가(自歌)의 안일을 위하야 비진리(非眞理)와 타협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밟는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 가르친 진리대로 살아가려는 자에게 십자가가 있다는 것은 우리 각자 매일매일 체험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 진리를 아는 데 있지 않고 그대로 십자가의 길을 거러감에 있는 것이다.


三. 그 길은 주님과 동행하는 길이다


나무를 버히는 초부와 동행하려 하면 산으로 가야 할 것이며 고기를 잡는 어부와 동행하려 하면 바다로 가야 할 것이다. 그와 맛찬가지로 예수와 동행하려 하면 십자가의 길을 거러야 할 것이다. 이 길에서 벗어나면 예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 길을 원하기만 하고 사실 그 길로 가지 못하는 자는 그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주님 당시에도 허다한 무리 중에 극소수가 주님의 가신 길을 따라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긔서 맛당이 우리의 갈 길을 결단해야 하겠다. 예수를 따라 십자가의 길노 갈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마귀를 따라 넓은 길로 갈 것인가. 어느 길이든지 택하는 것과 가는 것은 자유다마는 그 길의 종말이 어떻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은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다 못 걸어온 그 종점에서 그 결과를 당할 것 밖에 없다. 즉 십자가의 길을 거러간 자는 천국에 이를 것이요 넓은 길을 찾아간 자는 지옥에 이를 것이다.

바울 같은 이도 구태여 그 길을 갈 필요는 없었으니 자긔가 원치 않엇더면 얼마든지 안 갈 수도 잇는 것이였지만 예수의 사랑 때문에 그는 험한 십자가의 길을 즐겨 거러간 것이다. 오늘 우리도 예수를 나의 생명으로 알고 진리로 알 것이면 맛당이 십자가의 길노 그를 따라가야 하겠다.


四. 그 길은 하늘에 평화가 넘쳐 흐르는 길이다


이 길을 것는 자의 맛보는 깃븜은 같은 길을 가는 자가 안이고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一견에 사는 길 같으나 사실 죽는 길이요 십자가의 길은 좁고 험하지만 그 종말은 생명에 이르는 것이다. 로마 八十 6절에는 육신의 생각을 죽는 것이라 하고 성신의 생각을 사는 것이라 했다. 이전 가룟 유다는 예수는 따라 다닐 때 순전이 이 땅우에 메시야 왕국을 몽상했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태도는 자긔의 예상하는 바를 조곰도 만족케 하려 하지 안고 도로혀 원수들에게 잡혀 죽는다는 말만을 할 때 그는 그만 실망케 되었다. 그는 예수를 따라감으로 평화롭고 호화로운 지상왕국을 생각했으나 십자가의 길은 깨닷지 못한 것이였다. 또 주님을 따라 가다가는 아모래도 고난을 당하게 될 터인데 이왕 고생을 당하게 될 바엔만츰 그 길을 벗어남이 상책이라 하야 예수를 파는 자리에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그는 혹 그같이 함으로 자긔에게 평안이 있을 줄로 알았을 것이나 막상 그가 요구했고 예상하든 평안은 찾을 수 없었고 자긔의 취한 길노 인해 자살하는 자리에 니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가시는 십자가의 길을 비록 이해하지는 못했다 해도 끝까지 떠나지 않고 따라간 제자들은 그때 형편으로서는 매우 불리할 것과 같았지만 맛츰내 말할 수 없는 깃븜을 얻은 것이다.

오늘 우리는 십자가라는 것을 막연히 생각할 때 그 길에 놓여있는 어려운 장면만을 보고 그 어려움을 익이고도 남음이 있을 깃븐 장면은 닛어 버리는 수가 많다. 과거 성자들의 경혐에 의하야 십자가의 길에 깃븜, 만족이 잇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깃븜은 과연 고귀하다. 믿는 자는 누구나 그 길을 거치여 친히 그 깃븜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五. 그 길은 천국에 가는 길이다


사도행전 十四 22절에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드러가려면 여러 가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했다. 또 롬 八 17절에는 “만일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또한 그와 함께 영광을 받을 것이라” 했다. 예수님과 같이 하늘의 영광을 받을 자는 누구인가 그 고난에 참여한 자이다. 또 딈후 二 12절에는 “한가지로 참으면 한가지로 임금노릇 할 것이라” 하였다. 과연 주님의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 이 다음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것이다. 그러나 마귀의 세상에서는 맛당이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세상은 점점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그럼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점점 식어가고 있다. 하나님을 마음대로 섬길 수 없고 또 우리 신앙에 장벽이 많은 시절이다. 이 때를 당해 우리 신앙은 잠자는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맛당이 깨여 우리 앞에 십자가의 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용긔를 가다듬어 혼연히 그 길을 거러갈 것이다. 우리의 거러갈 길은 세상사람이 가는 길이 아님을 명심하자! 십자가의 길! 그 길이 곧 우리의 갈 길이다.


<기독교 월간 잡지 「說敎」(1937년 9월호)에 실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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