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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2/말세 징조·3

온난화론 설명 불가 바닷고기 미스터리 (2)

[특집] 연·근해 지도가 뒤바뀌고 있다(2)
온난화론 설명 불가 바닷고기 미스터리
기름가자미·청어·대구 등 한류어종은 되레 더 남하

하지만 이러한 어족의 변화를 바닷물 수온상승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다. 전반적인 바닷물 수온상승에도 불구하고 일부 한류성 어종이 남하를 거듭하면서 동해와 남해의 어자원이 뒤죽박죽 섞이고 있기 때문이다.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도 “지난 2004년 이후 우리나라 배타적경제수역(EEZ) 해구별 트롤어획조사를 통해 어종별 출현 양상과 해양환경자료를 분석한 결과 동해 저층 냉수어종은 남해로, 동중국해 아열대 어종은 동해로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남하하는 대표적 한류어종으로는 동해 중부와 남부 해역에 이르는 수심 50~700m의 차가운 냉수대에 살던 ‘기름가자미’가 꼽힌다. 기름가자미는 지난 2004년에는 울산 울기곶 근방까지 내려왔으나 최근에는 부산을 돌아 남해 중부 해상까지 그 서식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때 자취를 감추었던 대구(大口) 역시 최근 어획량이 크게 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 한자문화권에서 ‘물고기 어(魚)’자와 ‘눈 설(雪)’자를 결합한 ‘설(      )’로 표현되는 대구는 대표적인 한류성 어종이다. 하지만 수온상승에도 불구하고 지난 2000년 1000t 미만에 불과하던 대구 어획량은 지난 2007년 7000t까지 7배나 급증했다. 수협 등 관계 기관에서는 올해도 대구 어획량이 5000t가량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협의 한 관계자는 “과거 수십 년 전부터 거제를 비롯해 마산, 진해, 의창 수협 등에서 대구 인공수정란을 대량으로 연근해에 살포해왔다”며 “그때 태어나고 자란 대구들이 용케 고향을 알고 다시 찾아오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 겨울철 동해안 황태덕장에서 명태를 말리고 있다. 이들 명태 대부분은 러시아산이다. / photo 조선일보 DB
한류성 어종인 청어(靑魚)의 어획량 역시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무려 4만5000t이 넘는 어획고를 올린 데 이어 올해의 경우 지난 9월까지 동해안에서만 1만9439t가량의 청어가 잡힌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동해안에서 잡히는 수산물 가운데 오징어와 붉은대게에 이어 3위에 해당하는 어획량이다. 값이 싸고 맛있어 ‘선비들의 살을 찌우는 생선’이란 의미에서 ‘비유어(肥儒魚)’로 불리기도 한 청어는 동해안 북부와 쿠릴열도 등에 서식하는데 수온 2~10도 사이의 저층 냉수대에 산다. 청어는 바닷물 온도가 급속히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동해안 포항 앞바다까지 내려와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봄에 다시 북쪽으로 올라간다.

지난 몇 년 새 청어의 어획량 급증은 분명 이례적이다. 지난 1960년대 이후 어획량이 급속히 줄면서 한동안 청어 생산은 거의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청어의 ‘눈을 꿰어(貫目)’ 겨울철 차가운 바닷바람에 반쯤 자연건조시킨 ‘과메기(‘관목’에서 비롯된 말)’도 난류성 어종인 꽁치를 말린 ‘짝퉁 과메기’로 거의 100% 대체된 상태였다. 이런 청어가 다시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포항 구룡포 등지의 일부 미식가들이 “조만간 꽁치가 아닌 청어를 말린 ‘전통 과메기’가 다시 등장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 정도로 청어의 재출현은 반가운 소식이다. 발빠른 일부 업체들은 이미 홈쇼핑과 전화판매 등을 통해 ‘청어 과메기’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포항지역에서는 연간 6000t의 과메기를 생산해 60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시장 풍경 급변, 난류성 어종이 70% 육박

바다지도가 바뀌면서 전국 각지의 수산물 시장에 깔리는 어종도 변화하고 있다. 지난 7월 국립수산과학원은 부산의 대표적 어시장인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어획물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제주도 남방해역에서 포획된 귀상어, 깃털제비활치, 민전갱이, 보라문어 등 아열대성 물고기들 상당량이 어시장에 출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조사 대상인 아열대성 물고기들은 연근해산 물고기와 비교해 덩치도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열대해역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진 깃털제비활치는 어른 팔뚝만한 40㎝였고, 새치류(다랑어와 비슷한 물고기의 일종)의 경우 길이가 성인 남성 평균 신장보다 큰 2.5m에 달했다. 이들 두 종의 물고기는 인도양과 서태평양 등에 널리 분포하는 어종으로 알려져 있다.

▲ 제주시 앞바다에서 집어등을 밝히고 조업 중인 오징어잡이 배들. / photo 조선일보 DB
특히 제주도 남방 바닷가에서 잡힌 귀상어는 몸 길이가 성인 남성 키의 2배 가까이 되는 3m에 달했다. 머리(대가리) 앞에 불도저와 같은 넓적한 큰 귀가 달린 귀상어는 성격이 상당히 포악해 종종 해안가에 출몰해 사람을 공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징어 등 크고작은 어류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데 덩치 큰 놈은 길이 5m,무게만 4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귀상어의 지느러미 역시 일반 상어와 마찬가지로 식재료로 쓰인다. 이러한 수산물 시장의 어종 변화에 대해 수산과학원의 강수경 연구사는 “지난 1970년대만 해도 고등어, 꽁치, 멸치, 농어 등 난류성 어종의 어획량은 전체의 40%에 머물렀으나 지난 1990년 중반 60%를 돌파한 이후 점점 증가하는 추세”라며 “현재는 대략 70% 가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열대성 어종 출현 울산 앞바다가 황금어장으로

한반도 주변 바다지도가 바뀌는 현상은 서민들의 ‘밥상’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서부 태평양과 인도양 등에서 잡아 횟감과 통조림으로 주로 먹는 참치(참다랑어, 가다랑어 등)의 경우 이제 연근해에서도 손쉽게 잡을 수 있는 어종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 수산과학원은 “지난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울산 앞바다 동해 가스전 주변 해역에서 다랑어의 회유를 조사한 결과 가스전 주변에서 다랑어류(참다랑어 및 가다랑어) 어군이 국내 최초로 확인됐다”며 “열대성 어종인 가다랑어가 동해안에 대량으로 모여 산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수산과학원의 강수경 연구사도 “지난 2003년 연근해에서 연간 84t 정도 잡히던 아열대성 어종인 참다랑어도 어획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지난 2008년에는 1536t이나 잡혀 어민들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횟감으로 쓰이는 참다랑어의 어획량이 5년 새 무려 20배 가까이 폭증한 것이다.

특히 가스전이 있는 울산 앞바다 주변 해역은 고급 어종이 새로 출현하면서 황금 어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해역에서는 참다랑어와 가다랑어 외에도 수심 40m 지점에는 담치, 해조류 같은 부착생물과 방어, 돌돔, 능성어와 같은 고급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또 아열대성 어종인 강담돔, 파랑돔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산과학원의 한 관계자는 “금년에 어획된 아열대성 어종 개체수가 평년에 비해 크게 늘지는 않았지만 그 종류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며 “지구온난화 현상에 따른 해양환경 변화와 아열대성 어종의 빈번한 출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자원관리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협의 한 관계자는 “한동안 전혀 올라오지 않던 물고기가 어느날 갑자기 많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며 “자연의 섭리가 오묘해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수산업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