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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반도/위기한반도·2

[스크랩] 성시백과 같은 제2의 간첩을 찾아라

성시백과 같은 제2의 간첩을 찾아라

소련 KGB, 동독 슈타지, 월맹 공산당, 북한 노동당

백승목 대기자  |  hugepine@hanmail.net
  
▲ 북한에 있는 성시백의 묘비 사진 ⓒ뉴스타운


북한 김정일은 1997년 5월 26일자 노동신문에 ‘민족의 영수(領袖;김일성)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열사’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서 자칫 잊을 뻔 했던 거물간첩 성시백(成始伯)을 특집으로 다뤘다.


성시백(1905~1950, 황해도 평산)이란 자는 1928년 상해로 망명 1932년 중공당(中共黨)에 입당, 중공 팔로군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통일전선공작책으로서 임정요원과 폭 넓은 교류를 가졌으며, 해방 후 평양으로 가서 ‘조선공산당북조선분국사회부(통일전선부)’에서 남노당 박헌영과 연락 및 정보수집, 좌우합작 일선에서 암약했다. 


성시백은 1946년 12월 김일성 특사자격으로 서울에 잠입, 남한 내 중도우파 정당 사회단체 인사를 포섭 광범한 통일전선을 구축하고 우익진영의 이간 분열 와해와 미군정청, 경찰, 군, 첩보기관, UN한국위원회 등에 정보수집 첩망을 구축 조종 통제 지도 해 왔다. 


성시백은 서울에서 정향백이란 가명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중앙일보’, ‘광명일보’ 등 10여개의 정치신문(政治新聞)을 발간 합법적인 선전선동전을 펼치는 한편, 광복군과 인연을 배경으로 군부침투에 주력, 2사단 정보참모, 해군통제부부사령관 등을 포섭 간첩망을 구축하고 표무원과 강태무 국군 2개 대대 월북사건도 배후에서 조정 지도했음이 드러났다. 


성시백은 국회 프락치 사건을 통해서 주한미군철수결의안을 통과시키고 김구(金九) 임정 주석에게는 김일성의 특사임을 밝히면서 ‘남북조선제정당단체대표자연석회의(1948.4.19~23)’ 초청장을 전달, 참석을 권유 성사시키는 활동 중 정체가 탄로되어 1950년 5월 15일 체포, 6.25 전쟁 수도 서울함락 전날인 6월 27일 총살 형을 당한 희대의 간첩이었다. 


성시백의 권유로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후속조치로 열린 김구.김규식.김두봉 김일성 4김(金)회담과 남북지도자협의회 결과 1948년 4월 30일 발표 된 4개 항의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 공동성명서’는 ▲미.소 양군동시철수 ▲내전 반대 ▲정치회의를 통한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단독 선거 절대 반대를 담고 있어 임박한 5.10 제헌의회 선거 저지를 위한 정치공작이었음을 여실히 드러낸바 있다.


성식백 이후에도 북한 노동당 정치국후보위원급 고위간첩이 남한에 직파되어 암약한 지하간첩지도부로는 1968~1973년 노동당연락부 공작원을 거쳐 1975년에는 연락부장 직위까지 올랐던 정경희(鄭敬姬)와 1980년 3월~1990년 10월까지 조선노동당중부지역당 등 지하간첩망 총책으로 암약한 이선실(李善實 )등을 들 수 있다. 


백일하에 드러난 것만으로는 성시백. 정경희, 이선실 등이 있지만, 동일계선(繼線) 동일임무에 단선연계(單線連繫), 복선포치(複線布置)원칙에 따라 수 개의 지하조직과 수명의 간첩망을 운영한다는 원칙에 비춰 볼 때, 2017년 6월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 제2의 성시백, 제2의 정경희, 제2의 이선실이 암약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논리일 것이다. 


1975년 월남 공산화 후 대통령궁까지 침투한 것으로 드러난 월맹 간첩망, 독일 통일 후 5만여 동독 슈타지 간첩 중에는 수십여 명의 국회의원과 총리 보좌관, 여당 원내총무, 내독성(통일부) 장관도 간첩이었으며, 소련 해체 후 1995년 비밀해제 된 미정부 문서에서 매카시가 지목한 200여명이 KGB 간첩이었음이 사실로 밝혀지고 1999년 이태리 연정 과정에서 밝혀진 이태리 공산당수 코수타 등 정친인과 학생 신부 등 200여 명이 KGB 간첩이었다는 사실이 시사해주는 바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2017년 5.9 대선을 통해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사상 이념적으로 투명하고 정말 깨끗한 정부이며, 적(敵 )과 내통 결탁해 왔거나 북한 대남공작지도부에 포섭 충성을 서약하고, 노동당이나 지하당 또는 불순서클에 가입, 의식화 학습이나 임무지령에 따른 대남적화혁명과업을 수행한 간첩은 단 한 사람도 없을까?

북한 김정은은 2015년 1월 5일 소위 대남공작 지시문을 통해서 “남조선에 있는 진보(종북)세력은 적진에 있는 우리들의 동지”라고 하면서 “미군철수, 고려연방제,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친 자는 애국자”라고 추켜세웠다는 사실을 새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나 그 추종동조세력 중에는 주한미군철수, 고려연방제 적화통일, 국가보안법 철폐 및 국정원 해체에 목을 매고 김정은이 바라는 대로 개성공업지구 활성화와 금강산광광 재개에 혈안이 된 자는 없는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제2의 성시백, 제2의 정희경, 제2의 이선실을 찾아 엄중하게 단죄(斷罪)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시백도 정경희도 이선실도 ①적화가 완성되거나 ②김정은 체제가 무너지거나 끝장이 날 경우, ③첩망이 노출 체포 되거나 ④간첩 김용규처럼 투항(投降), 귀순(歸順)하거나 ⑤ 스스로 전향(轉向) 자수를 하는 경우가 아니면 찾아 낼 수도 밝혀 낼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간첩수사를 주업으로 삼아야 할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군경검 대공수사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국내 정보 활동마저 포기하겠다는 용감한(?) 국정원장이 등장하게 됐다는 사실이 뜻있는 국민을 한숨짓게 한다는 사실이다. 


 http://www.newstow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7734 


출처 : 하늘향연
글쓴이 : 천향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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