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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지옥 체험/지옥 간증

[스크랩]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지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은 미래를 염려하면서 삽니다.

 

학생은 시험성적이란 미래를 걱정하면서 그것에 몰두하고 취업준비생은 취업이란 걱정에 신경을 쓰면서 삶을 삽니다.

 

그리고 결혼을 앞둔 남자와 여자는 또 그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과 그리고 마음을 쏟으며 삽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늘 미래를 대비하고 준비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며 삽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대부분 우리의 일상에서 누구나 겪는 일들 중 하나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위에서 언급한 인생인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인생 중 우리가 잊고 지내는 인생이 있습니다.

 

이 인생은 실상 장가가고 시집가고 합격하고 취업하는 미래보다 더 확실하게 각 사람에게 임하는 미래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 미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입니다.

 

예. 우리에게 닥칠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미래는 바로 죽음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확실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대학 가려고, 취업하려고, 결혼하려고, 자녀 학원 보내려고, 돈을 벌려고, 부모를 봉양하려고 등의 미래에 대한 준비는 코피 터지게 하면서 그네들의 삶에서 가장 확실하게 일어날 예정된 미래인 죽음에 대한 준비는 코딱지만큼도 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 창밖에서 지금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삶임에도..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닥치게 될 삶임에도.. 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역사가 얼마나 컸는지는 지난 역사가 증명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50억의 인구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인구는 100년 후면 죽음이라는 괴물에게 거의 대부분 멸종됩니다.

 

100년씩 50억의 인구만 잡아도 지난 2000년 동안 죽음은 1,000억 명의 사람을 삼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두렵고 떨리는 죽음을 사람들은 죽음이 있는지도 모른 체 죽음의 존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삶을 살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도대체 사람들은 역사상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이 정확히 각 사람에게 임하는 죽음이란 미래를 왜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까요?

 

나아가 관심은커녕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 왜 “재수 없는 소리 하지도 말라”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을까요?

 

내가 재수 없게 여기든, 기분 좋게 여기든, 나의 기분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죽음은 자신의 시간표대로 각 사람에게 역사합니다. 실제로 삶에서 이뤄집니다.

 

결혼이나 합격 등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환경이 바뀌겠지만, 죽음만큼은 우리의 어떤 노력으로도 바뀌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준비하지 않고 넋을 놓고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요?

 

아직 죽을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장담할 수 있습니까? 지금 20대인 청년들에게 묻겠습니다.

 

정말 당신은 죽음이 당신을 데려갈 날이 많이 남았다고 확신합니까. 그것을 제게 증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죽음이 여러분을 데려갈 날이 많이 남았다는 증거를 제게 주실 수 있습니까?

 

하루에도 교통사고로 전 세계에서 몇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지 아십니까?

 

어제 뉴스에 군대에서 행군하다 쓰러져 폐렴으로 죽은 병사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아들의 죽음이란 통보를 받을 때 어쩌면 식사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밥을 먹다 전화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전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일랑 꿈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전화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옵니다. “죄송합니다. 아드님께서 복무 중 순직했습니다...”

 

이 사병의 부모님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꿈을 꾼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병의 죽음은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리얼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무리 그 사병의 시체를 부여잡고 “안 돼 아니야~”라고 외쳐도 그 사병의 죽음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죽음이 그 친구를 데려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며칠 전에 있었던 뉴스입니다.

 

이런 유형의 뉴스를 우리는 심심찮게 만나고 있습니다.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 아이들이, 젊은이들이 죽음의 덫에 걸려서 떠나가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게 젊다는 이유로, 어리다는 이유로, 건강하다는 이유로, 돈이 많다는 이유로 “죽음이 나를 데리고 가려면 아직 멀었어요.”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여러분은 오늘에도 건강하게 숨을 내쉬며 일어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럴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말씀드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명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불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야! 내가 성경에서 말한 죄란 죄는 모두 다 지으며 산다. 근데 나 아주 잘 산다. 그래도 하나님이 있다고 말할래?”

 

그러나 그는 모르고 있습니다. 그 죄인이 오늘도 무사히 아침을 맞은 이유는 당신이 그렇게 욕하고 저주하고 우습게 여기는 그 하나님께서 그래도 당신을 불쌍히 여기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죽음을 막으신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당신은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영원히 참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때가 되면 감추어두신 순수한 분노의 포도주를 당신에게 쏟을 것입니다. 그 순수한 진노의 포도주는 당신의 살을 태울 것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공포로 멈추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머리카락은 극심한 절망과 두려움으로 뻣뻣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날 것이며 당신의 입술은 계속해 “하나님 나를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하나님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 만 딱 한 번 만 용서해 주세요!”라고 쉼 없이 큰 소리를 울부짖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당신이 아무로 열심히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더 이상 당신의 소리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더 이상은 당신에게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저주하고 욕하던 모든 것을 사랑으로 참고 인내하며 그래도 “돌아오라. 돌아오라.” 라고 기다리시던 자비로운 하나님의 얼굴은 이제 굳어져 당신을 보기를 돌같이 보실 것입니다.”

 

예. 심판이 끝난 후에는 반드시 그리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십니다. 그분은 온 우주의 창조자이십니다. 그분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육체는 이 땅에 아무도 없습니다.

 

온 만물이 그분의 때에 그분의 진노를 보고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위엄 앞에 온 산과 들과 바다와 하늘은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창조주의 권위에 온 우주가 떨쳐 울 것입니다.

 

그 심판에 여러분이 서게 될 것입니다. 제가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 행한 대로 선악 간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언제 여러분의 삶에 리얼로 체험되게 될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분도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반복합니다. 그분의 임재에 두려워 떠십시오. 온 우주의 창조자의 권능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서 오라! 할 때 거만하게 머리를 치켜들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어디 있어? 만물이 처음 있는 것처럼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지”라는 어리석은 말을 쏟아내지 마십시오.

 

그분은 보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마지막 때 그분의 권위를 다시 찾으실 것입니다. 그분을 멸시하고.. 없다 하고.. 조롱하고.. 그분의 이름을 증거하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그분은 그분의 이름을 다시 찾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십니다.

 

죽음은 우리에게 이 진실을 말해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자라는 진실. 우리가 원숭이 따위로 진화되지 않았다는 진실

 

그 진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드시고 여러분을 만든 진짜 창조주라는 그 진실을 말입니다.

 

예. 죽음은 그동안 진화론에 속고 수많은 종교에 속고 있었던 여러분들의 눈꺼풀을 완전히 벗겨서 모든 것이 사탄의 장난이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직시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는 천주교에서 종교개혁으로 나왔으니 천주교가 형님이고 기독교가 아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셔야 합니다. 기독교의 주인은 예수님인데 그분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2000년의 역사가 아니고 인류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생명 그 자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생명이 오히려 천주교라는 이름으로 종교화되면서 생명을 상실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 천주교에서 종교개혁으로 기독교가 나왔다는 말은 참으로 참담하고 무지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만든 교리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시고 예수그리스도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곧 생명입니다.

 

이것이 진짜 기독교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그 사람에게 진짜 기독교를 알게 해줄 것입니다.

 

왜냐면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심판대 앞에 선 그자를 심판하는 것을 그 자신이 스스로의 눈으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죽음은 많은 거짓된 것들을 회복하는 기능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죽음으로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이미 너무 늦다는 것입니다.

 

불법을 되돌리기에는,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믿음을 회복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후회를 하게 될 때는 죽음 바로 직후가 될 것입니다.

 

돌이키려야 돌이킬 수 없는 철저한 절망... 그것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우리와 너무나 밀접하게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여러분이 눈을 뜨면 함께 눈을 뜹니다. 밥을 먹으면 함께 먹고, 길을 걸으면 함께 걷습니다. 차를 운전하면 함께 운전대를 잡고, 일하면 함께 일합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몸을 씻으면 그도 따라서 몸을 씻고 잠자리에 들면 죽음도 여러분의 옆자리에 이불을 들치고 살며시 당신 옆에 눕습니다.

 

예. 이처럼 죽음은 늘 당신 옆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림자가 늘 내 곁에 있으나 인식하지 못하듯 말이지요...

 

결론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신하에게 이렇게 말해 달라 주문했다고 합니다.

 

알렉산더가 일어나면 “대왕님 대왕님도 언젠가는 죽습니다.” 라고요.

 

그는 크리스천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지혜가 있었던 사람인 것은 확실합니다.

 

이 세상에서 참 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참 지혜 중 하나는 내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크리스천은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다른 말로 심판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의 때에 형식적인 크리스천으로서 회개를 모르고 그냥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일 거라는 전혀 비성경적인 교리를 단지 유명한 신학자가 그리고 대형교회 목사님이 말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멘 하며 당연히 구원을 따놓은 것처럼 거만하게 살면..

 

그는 심판대 앞에서 땅을 치면서 통곡하며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내가 몰라서 그랬다고” 눈에서 피가 나도록.. 손에서 피가 나도록.. 눈물을 흘리고 땅을 치게 될 것입니다.

 

구원은 완성이 없습니다. 바울은 내가 전한 후 도리에 내가 버림을 받을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구원은 완성 따위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입으로 구세주라고 시인했으면.. 구원이 완성되어서 끝난다는 저주의 메시지가 성경에는 단 한 구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오리라.

 

아버지의 뜻은 회개하는 삶입니다. 늘 나의 죄를 겸손히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하루도 빠짐없이 늘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여러분의 죄를 씻어야 합니다.

 

늘 그분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자비가 아직 여러분에게 머물고 있는 지금 회개하십시오. 지금 돌이키십시오. 지금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지 못할 때가 곧! 곧! 곧!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끝으로 불신자들에게 권면을 드립니다.

 

여러분에게 믿고자 하는 마음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이 안 믿어질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들었다는 것이 안 믿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에 만약이란 단어를 넣고 생각해보십시오.

 

만약에 내가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니라면...

 

만약에 진화론이 거짓이었고 창조론이 참 진리였다면...

 

 

만약에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만든 것이 진짜였다면...

 

만약에 천국과 지옥이 실제라면...

 

그렇다면 당신은 죽는 순간 바로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집니다.

 

성경은 지옥불이 너무나 뜨거워 사람마다 불로 소금을 치듯 함을 당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모든 내용들이 만약에 사실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몸을 불로 태우는 고통 속에서 영원이란 시간을 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지옥 불에서 온몸이 살라지는 고통 속에 있을 때 반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은 자들은 똑같은 시간 천국에서 기뻐서 뛰놀며 천상의 기쁨을 맛보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서 철저하게 소망이 끊어진 괴로움 속에 있을 때 반대편에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기쁨과 환희 속에서 영원이란 시간을 살고 있는 영혼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당신은 불꽃 속에서 온몸이 살라지면서 천국에서 기쁨의 잔치에 참여한 이들이 즐겁게 사는 것을 지켜보며 더욱 심한 후회와 절망과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창조주가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이 온 인류를 만드신 분이시라면.. 여러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된 것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당신께서 돌이킬 시간이 별로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제 곧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가 이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를 생각하셔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천국과 지옥에 대한 관심을 가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권면해드립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죽음은 영원한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영원의 세계가 실상 인간이 참으로 거할 곳입니다.

 

그 영원의 시간을 지옥 불에서 고통 속에서 살지.. 아니면 천국에서 끊이지 않는 행복과 평안 가운데 살지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여러분의 몫입니다.

 

저라면 만약이란 단어가 무서워서라도 예수그리스도가 누구 신가 한 번쯤은 열린 마음으로 알아보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이지 않을까요?

 

혹 불신자께서 이 설교를 들으셨다면 이 기회에 예수그리스도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아직 당신의 목숨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당신이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어떤 죄인이라도 하나님은 아직 그 자비로운 눈을 당신에게 거두지 않고 있는 증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펌)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글쓴이 : 시든들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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