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님오시는 발자국 소리/주님오시는 발자국 소리

은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펌]은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고전12:4-12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고치는 은사를,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모든 일은 같은  성령이 행하사 
 뜻대로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위에 기록된바 말씀처럼  "믿음"도 한 성령으로 인한  은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은사가 있던지 은사가 주어집니다.

한 성령으로 인해 주어지는 은사가 없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은사는 한 성령으로 인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에 말씀에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은 물론 "믿음"도 은사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가지 은사는 은사가 주어지는 주된 목적입니다.


그 외에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 , 각종 방언, 방언 통역"

은사의 주 목적인 말씀으로 인해 형성되는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말씀과 믿음은 오로지 영적 생명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외의 은사들은 이를 돕는 보조 수단이라 할 것입니다.


이 모든 은사가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을 처음 만나 나의 모습을 본 후로는 오직 말씀의 길을 찾아가며

열어주신 말씀을 묵상함으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저나 교회안에서 육체의 필요도 공급해 주시는

여러 기적도 겪었습니다.

손으로 꼽을 수도 없을 정도로 여러 간증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모든 마음은 말씀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도 그 모든 은사를 모조하고

흉내낼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성령님 처럼 감화감동도 흉내내며 접근하기도합니다.


마귀의 모든 궤계를 이기고  결승선에 고울인하기 까지

말씀의 좁은 길에서 곁길로 빠지지 않아야 할 것인데....


처음 부터 속아서 잘못된 말씀을 받아 다른 길로 가는 가라지도 많은데

가라지가 더 열심인 것을 보기도합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착각하며 자기가 받은 바를 전하려고

대단한 열심을 내기도합니다.


그 확신도 대단합니다.

자기가 믿고 아는 것이 최고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류는 돌이키기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철저히 세뇌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준 은사를 성령님이 준 것을 착각하는 자들도 아주 많습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길로 든 것입니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것입니다.

 후로는 말할 것도 없이 다 잘못꿰어집니다.


사도 베드로가 제시한 믿음의 과정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그런데

처음 성령의 비추어 주심으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되는

"회개"에서 부터 교파 교리에 속고, 마귀에게 속고, 스스로 자기 생각에 속아

회개라는 첫 관문부터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기에

그후 삶가운데 성령님의 비추심과 인도로 말씀을 찾아가지도 못하고

자백도 없는 신앙생활를 하게됩니다.


이렇게 곁길로 빠지는 가장큰 요인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그 말씀을 증거하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원인은

자신을 믿는 교만때문입니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고집때문입니다.

육에 속한 자신의 본성을 본적이 없고 죄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혀 멸하여 짐으로

처리된 것을 본적이 없기에 성령의 은사를 가장해서 오는

자아의 교만을 부추기는 사단의 감화감동으로 인한 선동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회개와 자백과

말씀에 대한 믿음의 순종이 없이는 끝까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라도 말씀아닌 다른 은사들에 치우치게되어도

결과는 결실에 이르지 못하는 쭉정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천사에게 교만하나 들어가면 마귀가 된다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더욱 그럴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주님의 씨뿌리는 비유에서도 잘 설명되어있습니다.

또 이러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함께 나누는 교회에서나

카페를 통한 댓글이나 쪽지등 외부 상담자들 중

말씀은 받았으나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고 호소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런 분들이 결국 성령님의 열어주심과 인도로 인해 은혜를 입고

완전한 믿음과 안식에 들어가는 것을 보게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낮아)진 자

의에 굶주린 자

목마른 자"가 결국은  그 샘에 이르러 마시게 됨을 봅니다.


처음부터 마귀에게 속아 그 감화감동을 받는 자들의 특징은

자기 이론과 교리를 전하기 위해 대단히 열심이지만

마귀의 속성을 닮아 높아지고 견고한 자아가

인류역사상 가장 견고한 성이였다는 난공불락의 여리고성 같아 보입니다.

그 마음은 "쇠빗장을 채운 놋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자신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도 못 채고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처음부터 거짓의 아비요, 속이는 자요

대단한 경력을 쌓은 고수이기에 주님과 그 말씀으로 무장하고 깨어있지 아니하면

언제던지 그 밥이 될수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마귀와 그 졸개들도 그들의 운명이 이미 결정되었음을 그들도 잘 안다.

예수님의 공중 재림후 이 땅에 일어나는 대환란 후에는

그들이 땅속 지옥 무저갱에 들어가야 함을 알기에

그 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되었던 모든 인류를 영적 육적인 볼모로 잡고

함께 지옥에 가겠다고 모든 총력을 동원하여 마지막 발악을 하며

미혹과 속임의 대작을 꾸밀 것인데 이러한 영적 육적 전쟁과 역사를 통하여

마귀의 사악한 궤계와 하나님의 섭리를 대적하는 반역자들의 정체를

더욱 드러내되는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 드러내며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귀로 부터 오는 거짓 은사에 속고 있는가...

그들은 속이기 위해 진품을 흉내내는 모조품의 대가입니다.

진품이 있기에 짝퉁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살리는 생명의 복음이 있기에 죽이는 싸구려 짝퉁 복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하는 경제 용어가 있습니다.

같은 액면의 금화와 동화가 통용되면 금화는 자취를 감추이고

동화만이 유통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싸구려 짝퉁  유사 복음이 판치는 것은

받기 쉽고 가기 쉬운 넓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삶에 그 생명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는 쉬운 복음이기에

그 넓은 문을 지나 넓은 길로 가는 자들이 아주 많습니다.

쉽게 얻은 수 있는 싸구려로 몰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으나

"싼게 비지떡이다" 속담도있습니다.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 천로역정을 가지 않아도 되기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길로 몰려가게 됩니다.

마귀도 그러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고 있기에

그러한 매력적인 미끼로 낙시질을 하며 호황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교회와 지체들을 통해 일하시지만

마귀도 자신이 장악한 교회와 그 지체들을 통해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닮은 생명의 열매를 거두시지만

마귀도 자신의 형상을 닮은 사망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생명을 다해 희생하심으로

"정녕 죽어야하"  사망의 저주에서 구해내시고

자신의 생명을 부어 낳았기에 자신의 생명으로 사랑하시지만

마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들을 속임으로 볼모를 잡아

죽어도 같이 죽고 함께 지옥으로 끌고 감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함 이기에

그 계획과 경영하는 목적이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릅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사랑과 희생이지만

마귀의 속성은 독한 시기와 미움과 교만과 훼방입니다.

그러므로 그 열매를 보아 알수 있습니다.

그 안에 마귀를 품고있으니  그 열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벧전5:6-9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잘못된 교리에 빠져있는 자들은 사람의 권고는 물론

성령님의 권고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그 사람을 고난에 던지는 것입니다.

욥이나 요나처럼....

빛 비추임을 통한 회개가 가장 좋은 은혜로운 방법이겠지만

그렇게 구하고 찾는 믿음도 없으니 환경을 통해 실패와 고난을 통과 시키십니다.

이는 이미 회개하고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에게도 더욱 낮추고 깨트리어

비우기 위해 효과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대환란을 통과케 하시나 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약한 질 그릇안에 두어 연단하심도 비우고 낮추심으로

그 교만으로 인해 마귀의 선동에 당하거나 타락함을 막기 위함일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재료는 석탄이나 흑연같은 탄소인데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높은 열과 큰 압력이 가해질 때에 생성된다고 합니다.

천로역정, 천성에 이르는 길은 고난을 통과며 찾아가는 길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육체의 고난"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시편 12: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무엇하나 깨달았다하여 하루아침에 생성되며 결실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한 바와 같이

과정을 거쳐야합니다.

"갓난 아이처럼" 신령한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 결실해야 합니다.

"완전한데 나아가"야 합니다.


죄를 보는 회개와 사함(죽음) 그리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하늘 생명의 탄생으로만 가능합니다.

결국 생명문제입니다.

아담과 연합된 마귀의 생명이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하나님 생명이냐가 문제입니다.


믿음의 결국인 거듭남과 변화된 삶

교만한 자는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마귀에게 사로잡혀 다시 끌려가게됩니다.

진에서 낙오되는 자들은 아멜렉한테 포로로 잡혀가듯이

"지는 자는 이기는 자의 종"이 되고맙니다.


은혜로 시작하여 끝까지 믿음으로 입니다.


"혜 위에 은혜"

"믿음에서 믿음으로"입니다.


미련하고 무능한  인생은

말씀과 이를 증거하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집니다.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성령님은 기록된 말씀을 열어 인치심으로 "영이요 생명"이 되게하십니다.

계속해서 먹으며 자라갑니다.

영에 계시된 생명의 말씀이 마음을 새롭게하고 삶을 변화시키고

몸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령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요한10:26-28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아멘!!!


2019. 9. 15  03:32

청천홍심



ps: 한 동안 글 쓰는 일을 쉬고싶었지만

     어느 카페에 1년여 은사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음을 보며

     글의 주제가 떠올라

     천국 창고에 들일 결실에 이르는 말씀의 길을 상고해 보았습니다.





벌이 꽃을 보고 날아오지만

날아오는 목적은 그 꽃 속에 감추인 꿀을 먹으러 오는 것입니다.

꽃잎이 벌을 부르는 시각적인 은사라면

꿀은 생명을 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한 성령으로 주어진 모든 은사가 합하여 하나님의 선을 이루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