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 준비와 대환란에서 승리하는 큰 비밀!
기도하는 중에 그리고 말씀 전하는 중에 아주 매우 강한 감동이 와서 지금 마지막 때에 신부 준비하는 모든 신부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길 원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신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휴거와 대환란에 대한 준비일 것입니다. 이제 지금의 때에서 마지막 시대에 남겨놓은 대 사건도 역시 휴거와 환난을 남겨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휴거에 대한 또 환난에 대한 최선의 준비를 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휴거를 준비하는데 있어서와 환난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그 중대한 해답이 성경에 깊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깊이 드러나 있는 말씀의 비밀을 나누고자 합니다. 휴거와 환난 때의 순교는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만 합니다. 사람이란 어떤 일을 당하거나 대비할 때 본능적으로 그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끝자락에 가서 꼭 준비하려는 본능이 매우 강합니다. 한마디로 미루는 게으름의 본능이 매우 강한 것이 모든 사람의 본능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준비도 마찬가지고 휴거에 대한 준비도 환난에 대한 준비도 대부분은 꼭 끝이 다 되어서야, 완전히 임박해서야 준비하려는 본능에 이끌리는 것입니다. 또 이런 믿음의 준비와 대비를 자꾸 미루도록 미혹하는 영은 바로 사탄의 세력입니다. 사람의 본능이 게으르기도 하지만 사탄의 궤계는 항상 신앙을 게으르고 미루도록 미혹하는 것이지요. 휴거에 대한 준비와 대환란에 대한 준비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먼저 성경을 살펴보면 ‘미리준비’에 대한 아주 확실한 증거는 열처녀의 비유입니다.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말씀에 기록된 바와 같이 다섯은 등은 가지되 기름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등을 가졌다는 것은 신랑이 올 것을 아는, 휴거가 올 것을 아는 신부들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이 올 것을 알고 믿고 있었으나 그 믿음의 기름을 정결하게 거룩하게 온전하게 적극적으로 최선으로 준비하지 않은 처녀들이었습니다. 휴거도 알고 주님 오실 것도 알고 있었으나 기름을 온전히 미리준비 하지 않으면 하늘 문은 닫히고 바로 남게 된다는 성경의 절대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미리 기름을 준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혹여 지금이 신부들의 이마에 신부의 인을 치는 지 누가 알겠습니까! [계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우리는 반드시 항상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기름 없는 다섯 처녀처럼 휴거를 알고 있어도 땅에 남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점을 반드시 명심하고 세속적인 모든 것들을 끊고 정결한 신부로서 우리는 신랑 맞을 기름을 최선으로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휴거를 놓쳤을 경우 환난에 대한 대비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휴거를 받을 것인가? 못 받을 것인가? 는 오로지 주님만이 아십니다. 오직 최선의 기름을 미리 준비하는 길 밖에요, 그래서 글을 쓰는 저도 남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단, 신부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휴거준비와 동시에 환난에 대한 준비도 미리 같이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난 때의 일은 그 때나 가서 대비한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큰 위험에 빠트리는 오류입니다. 영적 체험자들의 공통된 증거에 의하면 환난의 때에 남은 자들 중에 순교하는 숫자는 예를들어 100중에 1~3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환난 때의 고통과 공포감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지를 쉽게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환난의 때에 남게 되었다면 그에 대한 최선은 오직 순교를 믿음 안에서 주님부인하지 않고 잘 끝까지 성공하는 것입니다. 즉 환난의 때는 끝까지 순교의 죽음을 잘 이루는 것만이 길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순교를 잘 이루는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 순교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이 성경에서 펼쳐집니다. [마 26:56] ~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마 26:58]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 [마 26: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마 26: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고난당하시는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모두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도망갔겠느냐는 것이지요, 스승이신 예수님까지도 붙잡아서 십자가에 달아 죽으시게 하였는데 제자들이 만일 잡혔다면 틀림없이 같이 십자가에 달아서 같이 죽게 했을 것입니다. 바로 제자들까지도 순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제자들이 아니었기에 재빨리 도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나마 특이하게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결국을 보려고 아마도 도망했다가는 다시 멀찍이 다가와서는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비자들과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 예수님과 한 당이라고 말하자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결국 철저히 세 번을 부인하고 마는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순간은 말로 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공포의 순간이었기에 그 어떤 제자도 감당할 수 없었고 감당할만한 실제적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은 첫번째 순교의 순간을 맞이해서 순교의 실패를 맞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순교할 생각조차 없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분명 십자가 사건 전에 같이 죽고 순교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따라서 신부준비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절대 중요점은 이것입니다. 순교의 죽음은 인간의 결단과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으로 순교할 수 있는 초월적 믿음과 그 능력을 미리 받아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중대한 영적 문제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마음만 가지고는 절대 실패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 두 제자들이 실패하고 모두 도망간 증거입니다. 열 두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과 3년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가장 많은 이적과 기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고 체험했고 진리의 말씀을 살아계신 예수님의 생생한 실제음성으로 양육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첫 번째 순교에 실패했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엄청난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면에 예수님은 너무나도 담대하게 순교의 순간을 맞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순교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은 신이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순교의 고통을 넉넉히 이기실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똑같은 육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과 매우 비슷하고 흡사한 현상이 예수님께도 있었습니다. [막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막 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예수님께서 얼마나 죽음의 고민이 심하셨으면 십자가 죽으심 이전에 고민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시면서 가능하다면 이 일이 그냥 없는 것으로 지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되기를 구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만큼 계획된 죽음의 고통은 큰 것입니다. 또한 그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닌 가장 혹독한 십자가 고통임을 주님은 미리 알고 계셨기에 그 고통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 앞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번민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막상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그 순간이 다가오자 너무도 담대하시고 어느 순간에서도 두려워하시거나 주저함이란 전혀 볼 수 없는 것을 또한 보게 됩니다. [마 26:63] 예수께서 잠잠하시거늘 대제사장이 가로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마 26: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마 26:65]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마 26:66]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 26: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마 26:68]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심문을 할 때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제사장이 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무 증거도 찾지 못한 상태였는데 오히려 예수님 스스로가 결정적인 증거를 밝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증거도 하나님 편에서는 절대 맞는 진리입니다만, 대제사장 유대인들에게만 죄목이 되는 것) 대제사장에게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 뿐아니라 한 술 더나가서 아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는 예수님의 죄목과 분노와 형벌을 더더욱 가중시킬 결정적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고 담대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바로 전날 밤에는 심히 고민하셨는데 다음날에 이토록 담대히 죽음을 초월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해결의 답은 바로 기도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 26: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께서는 새벽에도 기도 하시고 늘 기도하시는 습관적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오래전부터 여러 번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물론 전능하시기 때문에도 십자가 사건을 미리 아시기도 하셨을 것이지만 제자들에게 여러차례 말씀하시고 밝히시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미리 준비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해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휴거는 물론 환난 날에 당할 순교의 죽음도 역시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기도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위의 성경 마 26:44절의 말씀처럼 휴거에 대해 환난 날에 대해 반복해서 미리 준비 기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같은 내용의 기도를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을 반복해서 기도하셨다면 우리는 3천번, 3만번이라도 반복적으로 기도해서 미리 순교적 믿음의 힘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의 고통을 이긴 증거는 제자들에게서도 결정적 좋은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첫 번째 순교의 순간은 실패했습니다. 절대 순교는 인간의 결단과 마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실패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으심을 친히 이루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을 받고 성령을 받은 후 전심전력으로 기도훈련과 능력이 쌓여진 후에는 제자들도 모두 순교를 이루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오늘날도 동일하게 부어주신 성령의 능력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순교를 실패하게 했던 제자들을 순교의 죽음 앞에서 당당히 성공하도록 바꾸어놓은 결정체는 성령의 임하심과 능력입니다. 그리고 또 결정적으로 중요한 필연요소는 훈련입니다. 성령을 받고 충만 가운데 절대기도를 미리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역시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서와 기도하는 가운데 설교사역을 했고, 능력을 행했고, 기적도 행했습니다. 베드로도 매일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는 기록이 성경에 분명히 나와 있고 모든 초대교회 성도들이 전심으로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과 기도의 충만으로서 제자들도 종국엔 모두 순교에 담대히 성공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도 휴거의 때와 환난의 때를 맞아야만 하는 이때에 예수님의 절대 모본을 따라서 또한 제자들의 모본을 따라서 휴거와 환난을 미리 준비하여 반드시 승리로서 맞으시길 축원합니다. 글쓴이 : 김병기 목사님 https://cafe.naver.com/grace0406/157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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