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 글을 어버이주일 이전에 올렸더라면 좋았을 것이 늦어서 아쉽습니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Gennesaret)에서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시던 때의 일입니다. 그때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이곳까지 와서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고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며 힐난하던 날입니다.(마15:1~2)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지 않았느냐.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고(마15:3~4). 계속해서 “너희는 누구든지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는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하시면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마15:1-6)
이 내용은 제5계명이지만 가정의 질서를 위한 가정법입니다. 제1계명부터 제4계명까지는 영적문제로서 하늘을 향한 것이지만, 제5계명부터는 땅에 사는 인간의 육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을 향한 계명 중에서 가정법을 제일 앞자리에 둔 것은, 가정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육체와 마음, 그리고 정신에 문제가 일어나는 일이 그것에 대한 무질서가 육신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정신에 병들게 한 것처럼 모든 가정이란 공동체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질서라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이 질서의 계명은 에베소서 5장 22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며,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가정질서 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로부터 공경받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자녀를 사랑 하십시오! 젊은이들은 부모님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아내 분들은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남편에게 복종하십시오! 남편들은 아내가 복종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왜 그렇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께서 가정에 가정법을 주셨는데, 이것은 가정의 질서를 위함입니다. 이 질서가 무질서해지면 병이라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가정질서를 지키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죄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육체와 마음과 그리고 정신에 마귀가 침투했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율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모를 어떻게 공경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까? 부모님에게 참다운 복종과, 결함이 없는 사랑과, 신뢰하는 존경과, 존경을 곁들인 두려움의 행동이 말보다 앞서야 됩니다. 존경을 곁들인 두려움은 신뢰를 물리치지 않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나이 많은 사람들을 종이나 아래 사람이 되는 것같이 대우하지도 아니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 다음으로는 우리의 부모님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에게 육신을 주고 우리의 모든 물질의 필요한 것을 주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어린 존재의 첫 번째 선생이었습니다. 첫 번째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땅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주거나 음식을 주는 사람에게 우리는 “감사합니다.” 아니면 “고맙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를 배불리 먹이기 위하여, 또 우리의 옷감을 짜주고 옷을 깨끗하게 빨아주신 사람들이 부모입니다. 부모님들은 우리를 위해서 일을 하느라고 건강을 해치며 밤잠을 자지 않았습니다. 휴식을 취하지 않으셨고, 고통과 피로까지 한 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 당신들의 가슴이 우리의 침대를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사랑을 가지고 “복 받으세요”라는 말과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부모는 우리의 선생입니다.
우리는 선생님을 두려워하고 존경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또 먹는 것과 기본적인 말을 시작할 때에, 우리를 떠맡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어려운 교훈을 받아야할 때에는 예절을 배워야할 때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우리를 학교에 갈 준비를 시키고 인생살이의 준비도 시킨 사람들입니다.
부모는 우리의 친구입니다.
어떤 친구가 아버지보다 더 친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친구가 어머니보다 더 친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를 무서워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배반하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서 그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 더 어리석은 사람을 친구로 삼으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냉대하면서 죄가 된다고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또한 분별없는 관계로 자신의 정신과 마음을 망칩니다. 이러한 관계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는 눈물이요, 부모님의 마음을 찢어놓는 불효자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그 눈물들이 먼지 속에 떨어지지는 것을 보십니다. 보실뿐만 아니라 반드시 기억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눈물을 받으시고 세시고 있음을 깨달아야 됩니다. 자식들이 짓밟는 부모의 고통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답하십니다. 부모님은 자기 자식들이 행한 비정으로 지은 죄를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애원과 간구로 하나님은 용서를 합니다만, 부모님은 그 일을 잊어버리지는 않으십니다.
율법에는 “세상에서 잘되고 오래 살고 싶으면 부모를 공경하여라.” 했습니다. 거기에다 예수님은 “또 하늘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한다면”을 덧붙였습니다. 부모에게 모욕을 주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는 벌은 가벼운 벌입니다. 내세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세에서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서 상을 받고, 벌을 받게 됨을 명심해야 됩니다
아버지에게 모욕을 주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사랑의 계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 가정의 가장이라는 하나님의 위임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임을 받은 가장을 모욕하는 것은 곧 위임권을 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인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죄가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육신이상의 죽음이 있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리는 죽음이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를 버렸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 다음으로 가장 거룩한 사랑을 해치는 죄악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서슴지 않고 배반하는 사람이나, 백발이 된 부모를 무시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신뢰 하겠습니까?
자녀들의 의무에도 그와 비슷한 부모의 의무가 해당됩니다. 죄지은 자식들은 저주받아 마땅하듯이, 죄지은 부모도 저주받아 마땅하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나쁜 짓을 본받지 않도록 행동해야 됩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진실과 자비로 주어진 사랑으로 사랑받게 되도록 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무질서해 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든 생활의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너희가 나 여호와 하나님의 말을 듣고 따르는가 보리라”하시고(출16:4),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모든 질병을 치료한다.(출15:26)”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우리는 아버지를 모욕하고 어머니를 모욕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그런 일을 할수 있느냐고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는 먹여주고 양육시켜준 부모님에게 효도는 못하더라도 공경은 해야 합니다. 어른에게 참으로 복종한다는 것도 잘 압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도 잘 압니다. 그분들을 신뢰하고 존경하는 것도 잘 압니다. 또한 부모님을 두려워하는 것도 잘 압니다. 틀림이 없습니까?
우리가 부모님을 얼마나 공경하는지 알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에게 참으로 복종하고, 허물없는 사랑을 주고, 신뢰하고,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인가를 보기 원합니까? 어디에서 그러한 자신을 볼 수 있습니까? 거울 앞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합니까?
첫째; 가정에서는, 가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실 때, 그 집 가장이
라는 아버지를 어떻게 공경하는 지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둘째; 교회에서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실 때, 광야교회를 인
도했던 모세라는 지도자에게 어떻게 공경하는가를 통해서, 성도인 자신이 어떻게 하나
님을 섬기는가의 기준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나라에서는,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주실 때 백성들이 왕을
어떻게 공경하는지를 통해서 국민인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준이 된다고 하셨습니
다.
이러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성도들이 인도자에게, 백성들이 왕에게 대하여 말하고 행하는 것으로써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를 안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볼 수 있게 일하는 위임권위자인 ‘자신의 아버지, 자신의 목사, 자신의 대통령’에게 복종과 사랑과 신뢰하며 존경하는 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복종과, 온전한 사랑과, 신뢰하는 믿음과, 높이는 존경과, 두려움은 가정과 교회와 나라, 세 곳에서 똑같이 나타나야 됩니다. 이 셋 중에서 어느 곳에는 행하고 어느 곳에는 행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실이 없고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유익만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순종하는척하지만 사실은 완악하고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믿음도 형식으로 믿는 사람일 것입니다.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시온의 복을 받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실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요일2:3~4)
예수님은 ‘사랑’이란 용어에 대하여 사람들은 잘못 생각한다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자체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말씀하는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질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법을 떠난 인간의 욕구를 말하고 있습니다. 질서를 지키려는 사랑과,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사랑은 분명히 다릅니다. 생명을 살리려고 질서를 지키는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요일3:18. 5:3. 요이 6) 그러나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사랑은 마귀가 가져다주는 멸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질서를 지키려는 사랑은 생명을 살리게 하지만,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사랑은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질서가 잘 유지되면 그 가정은 화평과 번영이 됩니다. 가정이 무질서하게 되면 그 가정은 병들어서 항상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랑은 많은 허물을 덮는다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덮는다는 말의 참뜻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면 허물이 안 보인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사랑하면 허물이 없어진다는 뜻입니까? 오해하지 말아야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면 허물을 덮는다는 뜻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법대로 살기 때문에 무질서란 허물이 그에는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 인류의 조상 아담이 처음에 하나님의 법대로 살 때는 죄짓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는 허물이란 무질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대로 행하였을 때는 허물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은 무질서로 인하여 죄라는 허물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사랑한다고 없어졌습니까? 없어지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눈에 덮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질서대로 행하면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질서를 존중하고 무질서하게 행동하지 않으므로 그 사람에게서 허물을 찾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성경에서 사랑은 무엇이라고 정의합니까?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요이6)....“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치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항상 행위로 나타나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말로나 혀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또한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그러므로 저 안에 거한다하는 자는 그의 행하신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2:3-6)” 내가 주님 안에서, 주님은 내 안에서 동거한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여! 누구든지 그의 말(계명)을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을 온전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대로 자신도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하셨기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항상 문제라는 병은 무질서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서대로 행하는 삶이 곧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것을 사랑이라고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불화가 생이고 문제가 생깁니까? 사랑하는데 어째서 그렇게 됩니까?
그러한 사랑은 인간들이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랑이란 말로 자기 욕구를 채우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욕구나 욕망을 요구하는데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마귀가 가져다주는 탐욕이요, 탐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법을 어기고 무질서하게 행하면서 사랑을 말하니 항상 문제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질서
개인의 육체와 마음, 그리고 정신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 육체에 대한 질서가 지켜지지 않음으로서 육신이 병들고, 마음이 병들고, 정신에 병드는 것처럼, 가정이란 공동체도 같은 원리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의 질서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 질서의 계명은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부모는 자녀들 노엽게 하지 말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가정법이란 질서입니다.(엡6:1~4)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로부터 공경받기를 바라면서도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기를 바라면서도 부모님을 공경하지 아니합니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사랑받기를 바라면서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아니합니다. 남편은 아내로부터 순종하기를 바라면서도 아내를 사랑하지 아니합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께 각 가정에 가정법을 주셨는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으려는 죄의 뿌리라고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도 가정과 같습니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법이란 질서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그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 곧 무질서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구속사역에서 마귀는 가정이란 질서와 교회라는 질서를 파괴하려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크든 작든 공동체의 질서는 그 안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든 사람들의 영혼이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리고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하셨습니다(히13:17)” 왜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합니까?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유익이 없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무슨 유익입니까?
주의 종들은 그 영혼이 마귀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기도하며 지켜야 됩니다. 다른데 신경을 집중하는 동안에 그만큼 그 사람의 영혼을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질서 안에서 무질서자체가 병입니다. 마귀의 공격이라면,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벌써 병이 발생됐다는 입증입니다. 40년 광야에서 성막교회가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스스로 자신이 순결해지려면 하나님의 계명대로 질서를 지키면 됩니다.
나라에서 무질서는 여러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면에서 부정은 탐욕이란 물질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공격하는 초기 입니다. 두 번째는 그들로 하여금 부유하게 해서 높은 자리를 갖도록 합니다. 여기에서 두 번째 공격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해지면 국법알기를 우습게 압니다. 자기 마음대로 국법도 바꾸어 버립니다. 국가의 모든 공직자들이 이렇게 되면, 따라서 국민들도 같은 방법으로 부정을 짓게 됨으로 그 국가는 망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사람을 죽이고도 돈이나 권력으로 해결해 버립니다. 또한 도둑질 하고도 권력이나 돈으로 매수해서 사건자체를 없던 일로 해버립니다. 결과는 나라라는 공동체가 망하게 되는데, 그것이 옛 이스라엘이 나라 안에서의 질서가 무질서한 후에 남북 이스라엘로 갈라졌습니다. 그 후에도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빼앗기고 없어졌습니다. 남조 유다도 바벨론에 빼앗기고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메시야를 배척한 결과는 2000년 동안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범했다고 책망하실 때에,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을 빙자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하신 내용이 그것입니다.
너희의 유전이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서기관(국)법입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산헤드린 정치권을 유지하려고 정치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오랜 세월을 두고 후손들에게 전수되어 온 것이 유전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이용하는 무질서로 만들었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서기관(국)법을 고집한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이 국(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랑이 됩니까?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이나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질서를 무질서하게 만들므로 말미암아 문제라는 병이 생긴다고 예수님께서 알려 주십니다.
우리가 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아십니까? 질서란 사물의 조리입니다. 순리를 위한 조건이 조리요, 이 조리가 질서입니다. 질서는 순리를 나타내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를 공경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법을 지키지 않으면 불순종이 되는데, 어떻게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십시오. 그러면 부모에게 복종이 됩니다. 이 말에 오해하지 말고 모두 하나님의 계명대로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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