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언보다 예언을(14:1~5) 은사는 사랑의 관점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바울은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되, 무엇보다 사랑을 추구하라고 강조합니다. 은사 중에 특히 방언과 예언을 구체적으로 비교하며, 방언보다 예언을 더 추구하라고 조언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며,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입니다. 반면에 예언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권면하고 위로하기에 교회 전체의 덕을 세웁니다. 바울은 개인의 덕을 세우는 방언도 소중한 은사지만, 교회의 덕을 세우는 예언을 더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방언에는 통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남의 유익을 생각하는 ‘사랑’이 은사 사용의 핵심입니다.
☞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14:6~12) 방언으로는 아무리 좋은 내용을 말해도 그것을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기에 선한 영향과 변화를 실제적으로 주기 어렵습니다. 언어는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을 때에 의미가 있고 순기능을 발휘합니다. 바울은 만약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으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알아듣게 말하지 않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반문합니다. 특히 공 예배에서는 소통과 교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약 예배 시간에 설교자가 방언을 사용한다면, 청중은 얼마나 답답하고 소외감을 느끼겠습니까? 분명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악기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듯이,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은 서로를 낯선 외국인으로 만들 뿐입니다. 교회에서는 소통이 가능한 말로 풍성한 은혜를 나누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방언보다 예언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나의 은사를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 묵상 질문 상대방이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요? ● 적용 질문 친밀하게 교제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성도들은 무엇을 사모하고 구해야 할까요? |